8. 선과 악
"종교가 있던 없던 선한 사람은 선한일을 하고 악한사람은 악한일을 한다. 하지만 선한사람이 악한일을 할때는 종교가 필요 하다." -스티븐 와인버그
필자는 브라이트소속이며 무신론 운동가이다. 하지만 20대를 교회에서 보낸탓에 친구들중 대다수는 교인이다. 혹자는 종교와 싸운다며 어떻게 종교인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의사는 질병과 싸우는 사람이지 질병에 걸린사람과 싸우는게 아니듯, 나도 종교와 싸우는 사람이지 종교에 걸린 사람과 싸우는게 아니다.'
때때로 우리는 종교와 종교인의 문제를 혼동해서 뭉뚱그려 이해한다. 하지만 '종교'의 잘못과 '종교인'의 잘못을 냉정하게 구분 할 수 있어야 한다. 스티븐 와인버그가 날카롭게 지적했듯 일반적으로 종교는 사람의 선악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하지만 때때로 선한사람을 '악'하게 만든다. 여기서 우리는 바로 이 '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악이 누구의 관점에서 악이냐를 생각해 봐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악은 외부인 입장에서만 악일뿐 종교인에게는 여전히 '선'이기 때문이다.
"2005년 7월 런던에서 동시 다발적인 자살 폭탄 공격이 일어났다. 지하철 세 군데, 버스 한 대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신문마다 젊은이들을 자폭으로 이끎으로써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도록 충동질 하는것이 무엇인지를 놓고 고심하는 기사들이 가득 실렸다. 살인자들은 크리켓을 좋아하고 예의 발랐으며 누구와도 어울릴 만한, 젊은 영국 시민들이였다."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中
이웃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들은 착하고 선량 했다고 한다. 위선이라고 생각할만 한 요소는 없었다. 그런 그들을 자폭을 이끈것은 그들의 종교였다. 이들은 누가 보기에도 악한 행동을 했다. 하지만 그 악은 희생자들의 관점에서만 악일뿐이다. 그들은 여전히(그들이 만일 생각 할 수있다면) 선한 일을 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국에서 있었던일을 생각해보자. 2007년 7월 13일 분당의 샘물교회에서는 남녀교인 19명이 아프간에 선교활동을 목적으로 출국했다. 이후에 있었던 일은 모두알고 있으리라. 엄청난 국고손실을 일으켯던 이 사건은(인터넷에서 이들에 대한 평가를 보면 알수있듯이) 누가 보기에도 나쁜 행동이였다. 분명 국가의 권고가 있음에도 무시하고 간 행동은 용서받기 힘든 행동이라는 평이 많다.
그렇다면 감정을 추스르고 냉정하게 이들의 행동을 돌이켜보자. 이들이 평소에도 국고 탐내기를 호시탐탐 노리는 기생충 같은 마음의 소유자였을까? 어떻게 하면 국가와 나라에 걱정을 안길까하는 생각에 몰두한 아나키스트들이였을까? 그들은 그저 평범한 국민들이였을뿐이다. 그저 자신의 집단에 충성심이 과했을뿐, 집에서는 좋은 부모와 자녀, 이웃들이였을것이다. 그런 평범한 그들에게 '악'한 행동을 하도록 만든건 다름 아닌 종교다. 영국에서 테러를 일으킨 청년들 처럼 말이다. 남들은 잘못된 행동이라 말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선한 행동을 했다고 믿는다.
그렇다. 평범한 그들을 악하게 이끈것은 결국 종교다. 몇몇 호교론자들은 '그건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과도한 충성심의 문제다.'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충성심 자체가 무슨 문제란 말인가? 국가에 대한 충성심, 가족에 대한 중성심, 부모에 대한 충성심이 문제가 되는가? 만일 부모가 자녀들에게 폭력을 권장 한다면, 그리고 아들은 과도한 충성심으로 그를 그대로 따른다면 그건 충성심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의 문제 아니겠는가?
종교는 문제가 없고 사람이 문제다라고 주장하는 호교론자들, 그리고 순진한 중립자(종교에 대한 중립적 관점을 취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틀렸다. 선한 종교인들은 종교가 있어서 선한것이 아니다. 종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한것이다.(*26.5) 인간이 악한것이 아니라 종교가 악한것이다.
도킨스는 모든 악의 근원은 종교라고 했지만(*27) 나는 이에 동의 할 수는 없다. 종교가 사라진다고 해서 모든 악이 사라질거라는 생각은 순진한 생각이다. 하지만 종교가 사라지면 '최소한 지금보다는' 악이 줄어들 것 이라는 데에는 동의 할 수 있다. 이정도만 되어도 종교를 철폐시킬 충분한 이유는 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선한 행동은 어떨까? 소록도에서 평생을 바친 두명의 수녀가 한국을 떠났을때 많은 이들은 그들의 존경과 경의를 표했다. 하지만 만일 그들이 종교가 없었다면 선하지 않은 사람이였을까? 선하지 않은 사람을 '종교가' 선하게 만든 것이였을까? 사실 이를 포폄하기는 쉽지 않다. '종교가 없는 두명의 여성'이라는 대체 역사가 없는 한 비교 할 수는 없을것이다. 하지만 나의 관점은 그 두분은 종교가 없다 할 지라도 선한 사람이였을 것 이라고 생각한다. 그 두'인간'의 공로를 '종교'의 공로로 돌리는 것이야 말로 그분들의 순수한 이타심과 박애주의를 훼손하는것이 아닐까?
9. 에필로그
내가 처음으로 종교를 공부한건 오히려 내가 믿고있는 종교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자는 다소 '불순한'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종교에 대해 공부하는건 마치 번데기가 없는 고치에서 실을 자아내는것과 같았다. 종교에 대한 공부를 할 수록 그 중심에 있어야할, 그 종교라는 고치를 만들어낸 번데기는 존재하지 않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의 믿음은 그때즈음 기울어가고 있었다. 고치에서 모든 실을 자아냈을 무렵 모든건 명확해졌다. 그 가운데 신과 같은 초자연적 존재는 존재하지 않았다. 번데기는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번데기가 우리를 창조 했다고 믿고 싶어 한다. 댄 바커는 우리가 신이 우리를 창조 했다고 믿는 이유를 "우리는 신을 우릴 만든 신으로서 창조했기 때문이다."(*28)라고 설명 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신이 우리가 신을 우리의 창조주라고 여기기를 바란다고 생각할까? 그것은 마치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를 부모라고 여기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만든 신은 우리를 본따 만든것이다.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말했듯 신이 자신의 모습대로 우리를 만든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모습대로 신을 만들었기 때문이다.(*29) 그렇기에 신학은 신을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라 하지 않았던가.(*30) 이제 우리는 우리가 자연과 복잡계의 창발적 피조물이지 신의 피조물은 아니라는걸 알게 되었다.(*31) 과연 미래에도 대중들 사이에 신앙심이라는게 남아 있을까?
"당시는 문맹이 결코 수치가 아니였다. 글을 읽고 쓸 줄 모른다는 것은 오히려 기사에게 있어 용맹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심지어 왕족이나 귀족들 가운데서도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경우마저 있었다."(*32)
먼 미래에 21세기 초를 되돌아보며 이런 말을 할 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신실하다는 것은 결코 수치가 아니였다. 신을 믿는다는 것은 오히려 충성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심지어 정치인이나 교수들 가운데서도 교회를 다니는 경우마저 있었다."
신의 정체를 알아버린 인류가 과연 미래의 바다를 헤쳐나갈 수 있을까? 아니 신의 정체를 모든 인류가 알게 될 날이 과연 올까?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우리는 바로 그 자긍심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인간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올바로 고찰 해야 한다. 설령 활짝 열린 과학의 창문들이, 처음에는 대대로 내려온 인간화한 신화들이라는 안락한 실내 공기에 적응되어 있던 우리를 덜덜 떨게 할지라도, 결국에는 신선한 공기가 우리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드넓은 세상이 우리 앞에 장엄함을 드러낼 것이다." -버트런트 러셀(내가 믿는 것中. -1925)
26.5 신없는 우주- 빅터 J. 스탠저
27. https://www.youtube.com/watch?v=8nAos1M-_Ts
28. 신은 없다-댄 바커
29. 신은 위대하지 않다-크리스토퍼 히친스
30. 종교의 본질에 대하여-루드비히 포이어바흐
31. 다시 만들어진 신-스튜어트 카우프만
32. 세 종교 이야기-홍익희
! 직접 참고한 책은 아니라 책에서 다른책을 인용 했음
십수년간 공부해왔지만 어렵고 복잡한 영역이라 단언하기 쉽지 않은게 종교입니다. 저는 생물학적,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종교를 공부해왔습니다. 하지만 정치학, 지리학, 경제학,미술사학 등 수많은 다른면을 공부하자면 또 끝이 없을것 같습니다. 제가 과연 죽기 전까지 종교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