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힐호텔 이야기

오세요제주도 작성일 23.03.09 19:58:54 수정일 23.03.09 2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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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말, 개발도상국이자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은 여전히 전쟁의 위험이 도사리는 위험국가 신분이었습니다. 

당시 3만여명에 달하는 주한미군과 유엔군 장병들은 관광기반시설이 전무하고 위락시설이 없는 우리나라를 떠나

이웃 일본에서 휴가를 즐기며 외화를 물쓰듯 쓰다오곤 했습니다.

극심한 외화 부족에 시달리던 정부는 이런 사정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63년 4월 8일, 

서울 광장동 아차산의 명당인 광나루에 48만 제곱미터, 

약 14만 5천 2백평의 부지에 동양에서 가장 크고 호화로운 호텔이 개관하여 

외래관광객과 외국 장병들을 유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재즈의 전설 루이 암스트롱이 내한하여 개관식 공연을 펼치기도 하였습니다.

이 호텔 이름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숨진 해리슨 워커 미8군사령관을 기념해 워커힐호텔로 명명되었습니다.

1968년에는 국내 최초의 카지노가 허용됐으며 내국인을 출입은 엄격히 통제되었습니다.

 

서울에서 일류급 호텔은 거의 다 수영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당시 워커힐에서 유일하게 일반인들이

출입할 수 있었던 풀장이 바로 워커힐 풀장으로 그 인근 사람들이 다 모여들던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인근에 광나루 해수욕장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워커힐 수영장에 메어 터질 만큼 사람들이

모여들던 핫한 곳이었습니다.

 

참고로 개관당시 재즈의 거장 루이 암스트롱이 공연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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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힐 호텔의 자랑(?) 하니비쇼

하니비쇼단의 입단조건은 매우 까다로워서 우선 신체적인 조건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아름다운 용모와 춤,

기능에 뛰어날 지라도 입단할 수 없었다. 거의 같은 키와 몸매를 우선조건으로 하기 때문이었다.

신장 162cm이상, 고등학교졸업이상 18~21세

 

  • 하니비는 선발과 함께 연구생이 돼 6개월에 걸쳐 발레, 고전무용, 국악 등 전반적인 부분을 모두 배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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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것이 숙달되고 1년이 지나면 허니비 가무단에 편성돼 1시간 동안 민속, 라인댄스, 뮤지컬 등 다양한 쇼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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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 허니비 가무단은 연구생이 70여 명이고 무대에 서는 현역은 35명 정도 규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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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니비쇼단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단원의 질을 높이기 위한 일환으로 동남아 순회공연을 시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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