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어느 시골.
"이 샹놈의 새끼가! 어서 가서 막걸리 안 띄어올겨!"
선미는 눈에 함빡 눈물이 고인채로 주전자를 손에 들었다.
얼추 새벽 2시. 늘 아버지는 술에 취해서 욕설과 난동을 부렸고 단둘이 사는 선미가 그
모든 고통과 수발을 뒤집어 써야했다.
"니 에미년 찾아오란 말여! 그 쳐죽일 년, 지 서방 놔두고 어디서 배붙어 사는지 모를년 말여!"
동네가 떠나가도록 소리를 지르는 아버지를 빨리 재울수 있는 길이 역시나 술이라는것을 아는
선미는 오늘도 외상장부에 연필을 갖다대며 눈을 부라릴 아랫재 점방 아주머니를 떠올렸다.
'지금 막걸리 받아놓은것이 외상값이 700원이 넘으니께, 이젠 못준다고 아부지에게 말혀라. 잉?'
그래도 어떻게든 울며불며 술을 달라고 해야했다. 맞지 않기 위해서는.
걸어서 30분이 넘는 산길을 갔다 오는것이 오죽 무섭겠느냐만은, 죽이고 싶은 아버지와 떨어져 있을수
있는 그 시간이 선미에게는 더욱 소중했었다.
재빨리 주전자를 들고 집문을 나가서 뒷산길을 오르며 선미는 이를 악물었다.
'내가...내가 언젠간 꼭 죽이고 말겨....내가 못살제...암 못살제....'
그렇게 눈에 파란 독기를 머금고 선미는 술을 받아올수 있었고
평상시의 대거리를 하려던 아주머니도 그 눈에 겁을 먹었는지 순순히 따라주셨다.
온통 머리속을 쥐어뜯는 생각....'내가 죽여야겠다...내가 죽여야겠다....'
그렇게 다시 산길을 돌아가는중간...
앞에 흐릿하게 앞서 걸어가는 사람이 보였다.
분명히 사람인데...사람인데....?
가까이 가보니 꾸부정한 할머니였다. 선미는 왠지 무서운 산길에서 사람을 만난것이 반가웠다.
"하,할머니 같이가요."
뒤돌아보는 할머니역시 달빛에 비치는 쪼글한 얼굴에 웃음을 띄우며 입을 오물거렸다.
"그리여...아가는 저 웃말에 산당가?"
"네."
"나도 웃말에 가는디 어서 같이 가소."
그렇게 선미는 할머니와 웃음꽃을 피우며 산길을 지났고 그 와중에 자신의 고통과
또 아버지에 대한 분노, 살의까지 이야기 했다.
"그래...우리 아가가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하는겨?"
"네 할머니! 꼭요!"
할머니의 잠시 눈이 새빨갛게 타오르다가 가늘어지는듯 했다.
이윽고 할머니와 같이 집앞까지 온 선미는 할머니에게 꾸벅인사를 하고 대문을 열었다.
"이 씹어갈 년이 뭘하다 이제 들어오는겨!"
욕설을 퍼부으며 요강 뚜껑을 던지는 아버지의 뒤에 어느새 할머니가 서 있었다.
할머니가 잽싸게 말했다.
"저 아가가 당신을 죽이고 싶어 한다는구만."
"뭐요? 이 호랭이가 물어갈 년이!"
곧이어 아버지의 주먹이 선미의 아구창을 날렸고,
할머니도 선미의 얼굴을 발로 걷어찼다.
할머니 후덜덜덜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