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나이가 지금 30대 초반...초등학교 3학년때 겪은 일이니 벌써...20여년이 지난 일이네요.
그 당시 전 서초동 우면산 자락 아래에 살고 있었습니다. 신중국민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땐 학교 주변에 2층집 단독주택촌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우리집은 그 주택가 2층에 세를 들어 살고 있었구요. 이해를 돕기 위해
주변 구조를 좀 설명하자면, 조그만 정원을 가로질러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앞쪽엔 궁전빌라라는 빌라가 있었고, 집 뒷문을 열고 나가면 넓은 공터에 시멘트
벽돌을 만드는 허름한 벽돌 공장이 있었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방과후면 항상 그 공터에서
야구나 축구를 하면서 놀았지요. 그 일이 일어났던 그날도 우린 어김없이 공터에서 야구를
하며 놀고 있었습니다. 그 날이 수요일이라 부모님은 교회에 저녁예배를 보러 가셨고, 저와
동생, 그리고 친구 3명이서 정신없이 놀다가 7시쯤 되면서 해가 뉘엿뉘엿 저가는 걸 보고는
밥을 먹으러 우리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랑 동생이 하도 친구들을 집으로 잘 데려와서
그랬는지, 부모님은 친구들이 집에 오는걸 그리 달가워하지 않으셨고, 외출하실 땐 꼭 안방
문을 잠그고 나가셨죠. 우린 집으로 들어가자 마자 바로 부엌으로 가서 먹을만한 게 있나
확인을 해봤는데, 있는 거라곤 밥 2공기에 라면 1개하고 반쪽-_-;; 5명이 먹기엔 부족한
양이었죠.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맘에 자장면이라도 시켜먹으려고 안방문을 열어봤는데, 역시나
잠겨 있었습니다. 어쩔수 없이 라면을 끓이고, 거기다 밥을 말아서 적당히 나눠 먹기로
했습니다. 라면을 끓이는 동안 심심하기도 해서 tv를 켰습니다. 만화시간도 지나고 별달리
재미있는게 없던 터에 afkn에서 흑백 공포영화를 하고 있더군요. 드라큘라 백작이 다락방
에 올라온 할머니를 쇠갈고리로 목을 찍어 피를 빨아먹는-_-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래도
어렸던 때라 그런지 꽤나 무섭더군요. 라면 냄비를 거실로 가져와서 다섯이서 나눠먹으며
꽤나 긴장을 하고 숨을 죽이며 영화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크게 개의치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영화보는 내내 어디선가 분명 계속 웅~하는 소음이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워낙 모두가 영화에 빠져 있어서 아무도 그걸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죠.
한 10분 정도가 그렇게 흘러갔던거 같습니다. 라면을 한입 가득 문채로 tv에 시선을 고정
시키고 있던 저는 뭔가 좀 이상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려 왼쪽을 쳐다봤습니다.
친구 뒤통수가 보이더군요. 친구도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뭔가를 바라보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전 자연스레 친구가 바라보고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죠. 순간 전, 딱 얼어붙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까만해도 분명 잠겨있던 안방문이 반쯤 열린채로 시커먼 입을 벌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그 웅~하는 소리(기계실 기계
소리같기도 했는데, 꼭 느낌이 사람이 목소리로 웅~하는 소리는 내는 그런 묘한 느낌이었죠)
가 갑자기 몇배는 크게 귀속으로 쳐들어왔습니다. 저는 소리를 지르고 싶었는데 "어...어..."
소리밖에 안나더군요. 그 소리에 나머지 친구들도 모두 제가 보고 있던 장면을 보고 말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로 뒷문을 열고 뛰어나갔습니다. 친구들은 모두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도망가버렸고, 저와 동생은 시커먼 실루엣의 벽돌공장을 등뒤로 하고
집쪽을 감시-_-하며 부모님이 돌아오실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답니다. 나중에 부모님께
얘기했지만, 그럴수도 있는 거지...라는 반응이더군요. 왠지 똑같은 리플이 달릴 거 같은
불길한 생각을 해보며 ㅋㅋ 이야기를 마칩니다. 그래도 그땐 대박 무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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