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액정에 민진의 전화번호와 이름이 뜬다. 난 잠시 멍하니 번쩍거리는 핸드폰을 들여다 보고 있는다. 벨은 끈덕지게 울리더니 곧 끊어져 버리고
내 방은 아까보다 더욱 짙은 적막과 어둠속으로 녹아내렸다. 띠띠 _ 전화를 받지 않자 민진이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 왜 전화 안 받아! 내일 모임 있는거 잊지 않았지? 꼭 나와! 』
내일은 인터넷 동호회 '심령연구회'의 재건을 위해 동호회 간부들 모임이 있는 날이다. 육개월 전만 해도 꽤 규모도 크고 활동성이 적극적인 동호회였지만
그 사건이 있고부터 폐쇄되었다가, 이제서야 다시 조금씩 재건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민진은 동호회 회장이었고 나름대로 동호회를 전처럼 만들기 위해 애쓰는 듯 나에게 여러번 연락도 해오고, 이런저런 노력을 많이 하는 듯 했다. 나가지 말까, 하고 생각하다가 별다른 일도 없고 지금의 내 사정도 그들에게 알리고 도움을 받는 쪽이 좋을 것 같아서 모임에 참석하기로 했다.
"어, 여기야!"
역시나 호프에 들어서자마자 민진이 손을 머리위로 흔들며 아는척을 한다. 민진과 함께 앉은 세명 모두 다 아는 사람들이다. 나는 가볍게 손을 들어 오랜만이야, 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야, 우리 육개월 만에 보는거지? 그 동안 왜 그렇게 연락이 안됐어! 자식, 어? 너 못 본 사이에 살 엄청 빠졌다!"
자리에 앉자 동욱이 내 얼굴을 보며 놀란듯이 물어왔다. 나는 별 대답없이 그냥 씨익 웃어주기만 했다.
"뭐야, 너 다이어트 하냐?"
"다이어트는 무슨 .."
"그럼 뭐야! 뭐 안좋은 일이라도 있어? 정말 얼굴 장난 아닌데!"
민진이 걱정스러워하며 내 어깨 위로 팔을 걸쳐 몇 번 툭툭 나를 쳤다.
"으응, 사실 요즘 좀 이상한 일들이 자꾸만 일어나서 말이야"
"이야 _ 우리 박작가님에게 이상한 일이라니! 뭐 심령쪽이랑 관련된거야?"
눈치없이 큰 소리로 활기차게 물어보는 지훈에게 민진이 눈치를 줬다.
"예전에 그 사고 있잖아 .. "
내가 어렵사리 입을 열자 술렁대던 친구들이 조용해졌다.
" .. 나, 그 이후로 자꾸 이상한거 봐"
처음에는 농담처럼 안부를 물었던 친구들은 내가 진지한 목소리로 대꾸하자 할 말을 잃은 듯 마른 침을 꿀꺽 삼켜댔다. 게다가 동호회에 관련된 지난번의 좋지 않은 사건 때문에 분위기는 더욱 침체되었다.
"어떤거?"
" .. 이상한 거, "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 ... 죽은 사람들 말이야"
내가 말을 내뱉아 놓고도 오싹해져서 몸을 한차례 흠칫 떨어야했다. 다그치듯 물었던 민진 역시 오싹한지 파랗게 겁에 질린 표정이 되어 벗어두었던 점퍼를 몸위에 걸쳤다.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좀 얘기해봐"
우리 중 나이가 가장 많은 현호형이 담배를 태우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 .. 그러니까 "
육개월 전 쯤, 동호회에서는 정모 겸 꽃놀이 야유회를 가기로 했다. 정모는 매 달마다 했지만, 야유회를 가는 건 처음이라서 다들 들뜬 기분이었다. 생각보다 야유회에 참석하겠다는 인원이 많아서 관광 버스도 렌탈하고 동호회 주요 간부들은 도시락이며, 놀거리를 준비하기 위해 꽤 분주했었다. 동호회 초창기 멤버였던 나도 그 주요 직책을 맡은 사람 중 한명이어서 야유회에 관련된 이런저런 일을 하느라 제법 바빴다. 심령 연구회에서 내가 맡은 직책은 소설 부분 담당이었다. 나는 매일마다 인터넷 동호회에서 사람들이 올린 글을 읽고 코멘트를 달아주고, 호러 소설방을 관리하고 내 글을 연재했다. 꽤 오래전부터 호러 소설을 연재해왔기 때문에 동호회 사람들은 모두들 나를 '박작가' 라고 불렀다. 여튼, 꽃놀이를 위한 야유회를 가기로 한 날은 아침부터 날씨도 정말 좋았다. 몇 달 전부터 야유회를 준비해왔던 간부들이나 회원들이나 설레기는 마찬가지였다. 50명 정원인 버스를 렌탈했는데, 막상 약속 장소에서 모인 사람들은 50명이 넘었다. 연락없이 당일 무작정 나온 회원들이 꽤 있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돌려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간부 몇 명과 당일 나온 회원 몇 명은 현호형의 차를 타고 뒤따라 가기로 했다.
"에이, 뭐야 정말! 관광버스 안에서 분위기 띄우려고 노래도 준비해왔는데"
좁은 승용차 안에서 지훈이 투덜댔고, 나 역시 불만스러웠지만 아무말 하지 않고 꾹 참았다. 버스의 뒤를 따라가며 차를 운전하던 현호형이 연신 담배를 태워물며 입술로 싱긋 웃었다.
"뭐 어쩌겠어, 우리가 열심히 준비했는데 많이들 오시면 우리도 좋지! 하하, 기분 풀어_ 야유회장 도착해서 신나게 놀면 되 .. 어어어어?"
현호형의 입에 물려있던 담배가 툭 떨어지고, 형은 핸들을 거칠게 확 꺾었다. 끼이이익_ 하는 급제동 소리와 함께 차안에 있던 사람들의 비명이 뒤섞여 들려왔다. 눈앞으로 무언가가 불타오르고, 사방에서 웅성거리는 소리와 폭발음이 연신 터져나왔다. 깨어난 곳은 병원이었다. 고속도로에서 큰 연쇄 추돌사고가 일어났다고 했다. 앞서 달리고 있던 관광버스가 미처 사고 현장을 발견하지 못해 들이받았고, 내가 타고 있던 현호형 차 역시 버스의 뒤를 들이받았지만 다행히 우리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추돌사고는 없었기 때문에 현호형의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그리 심하지 않은 부상만 입고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버스 안에서는 안전벨트를 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 많았고, 노래방 기계를 틀어놓고 통로를 돌아다니며 놀고 있었던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사망자와 부상자가 제법 나왔다. 정말이지 현호형의 차에 타고 갔던 걸 천만다행으로 여겨야했다. 친하게 지내던 간부들 중 몇몇도 목숨을 잃었고, 회원들 중 다수가 사망하거나 불구가 되었다. 동호회 야유회에서 이렇게 큰 사고가 터지다 보니 심령 동호회의 정모라서 재수가 없었다는 둥 별의별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고 결국 동호회는 폐쇄되고 말았다. 나는 운 좋게도 현호형 차 뒷좌석에 앉은 덕택에 경미한 부상만을 입고 병원을 퇴원했고, 한동안 큰 사고 후유증이 남아 집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못했다. 꽤 친하게 지내던 찬영이, 미라, 유선이, 현건이, 진수 ..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부대끼며 놀던 친구녀석들이 한꺼번에 모두 즉사했다는 것이 못견딜만큼 현실감 없었고, 괴로웠고, 왠지 나만 살아남은 것 같아 미안했다. 친구들의 장례식 장에도 병원에도, 동호회와 관련된 어떤 일에도 나는 관여하지 않고 집밖으로 한 발자욱도 나가지 못한 채 한동안 죄책감과 불안을 안고 살았다. 그러다가 지난 달 조금 충격에서 헤어난 나는 여전히 동호회 사람들과는 연락하지 않았지만 친구들도 조금씩 만나기 시작했고, 다시 글도 손대기 시작했다. 꼭 한달 전쯤의 일이었다. 학교 친구 녀석과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골목 안쪽에 무언가 희끄무레한 것이 보였다. 별 것 아니려니 하고 지나가려고 했는데, 뭔가 낌새가 이상했다. 마치 영화 식스센스에서 보았던 것처럼 주위가 싸해지며 입김이 나올만큼 오한이 드는 그런 기분이었다. 나는 점점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지탱하며 걸음을 멈추고 벽에 기대어 섰다.
"뭐, 뭐야?!"
내가 지나치게 오버하는거야 라는 생각이 들어 간신히 쥐어짜듯 소리치자 상대가 빙글 한바퀴 돌아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 .. 바바바 .. 박작가 ..."
" ... ?!"
입술을 덜덜 떠는 듯한 낯익은 목소리, 혹시 .. 찬영?
"너, 너는? "
" .. 나 .. 찬.. 찬영 .. 박 .. 흐으으"
이럴수가 !! 사고 당시 친구들과 함께 즉사했다던 찬영이라니!
"으아아악_ 왜 이래 왜 이래 정말"
나는 손을 마구 저으며 눈을 감고 미친듯이 비명을 질렀다. 제풀에 놀라 뒤로 흉하게 엉덩방아까지 찧으면서 말이다. 죽은 찬영이를 우리집 앞 골목길에서 볼 만큼 술을 많이 마신 것은 아닐텐데.
"미안해, 아아악_ 혼자만 살아서 미안해 미안해!!"
정말 저 형체가 찬영이라면 혼자 살아남은 나를 데려가기 위해서 온 것일까, 머릿속으로는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 .. 그게 아니.. 흐으으 .. 우리를 .. "
바싹 그것이 고개를 숙인 나에게로 다가오며 시큼하고 뭉클한 악취를 풍겼다.
"우웁"
놀란 내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것을 바라보자 그것이 다시 입을 열었다.
" 글, 글을 써줘 .. 우리 .. 흐으읍 .. 이야기를 "
아아, 사고 당시 의자에 짓눌려 턱 한쪽이 완전히 날아가버린 찬영이가 자꾸만 덜렁대는 아래턱을 손으로 애써 맞추어 잡고 피와 침을 줄줄 흘리며 힘겹게 말을 잇고 있었다. 글을 써줘, 라며 끈적끈적하게 말하는 찬영의 목소리를 반복해서 들으며 나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럼, 찬영이 외에 다른 사람들도 만났단 말이야?"
현호형은 내 이야기를 꽤 심각하게 듣고 있다가 담배를 비벼 끄며 물었다. 나는 창백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찬영이처럼 그 사고로 죽은 동호회 사람들 뿐 아니라 사거리에서 차에 치어 죽은 여자애, 학교 정원 나무에서 목을 맨 아저씨, 심지어는 손목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거리를 돌아다니는 아이도 보여"
"귀신을 보는 눈을 가지게 된 거구나"
민진이 여전히 몸을 흠칫 거리며 추운듯이 두 팔을 꼬옥 껴안았다.
"왜 하필 나에게 .. 사고 후유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심하잖아! 현호형, 형한테는 별다른 후유증같은거 없어?"
"나?"
현호형은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이더니 곧 다시 담배 케이스에서 담배를 빼어물었다.
"다리 쪽은 아직 조금 불편한거, 음_ 담배가 늘었다는거? 뭐 그정도"
" .. 나, 사실은 그 사고 이후로 미쳐버린 걸까?"
"글쎄, .. 하지만 예전에 그런 얘기를 들은 적 있어. 귀신이나 악령에 관한 이야기를 하거나 글을 읽거나,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면 정말로 그 상념들이 형체가 되어 자신의 주변으로 모여든다고 하지. 이 이야기들은 알지?"
현호형은 둘러앉은 녀석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귀신들은 파장이나 음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도 좋아하지만 상념의 기가 맺히는 곳에도 자주 나타난다고 해. 그렇기 때문에 귀신 이야기를 떠올리거나 상상할때, 그리고 구체적인 모습이 나타나는 귀신 영화 촬영소 같은 곳에서 주변이 조금 더 서늘해진다거나 이상한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것도 귀신들이 주변에 모여들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지. 그런식으로 생각해 본다며 말이야, 호러 소설을 주로 쓰는 네 주변에는 언제나 귀신들이 모여들어 있다고 볼 수 있어. 네가 만들어낸 상념의 기가 모여 귀신이 된다던가, 혹은 떠도는 혼령들이 모이는 거지."
아, 하며 지훈도 입을 열었다.
"그 뭐냐, 아 그래! 프레디 vs 제이슨 그 영화 보면 프레디가 자기가 잊혀져서 사람들이 자기에게 두려움을 덜 느끼게 되면 그만큼 힘이 약해지잖아,
그래서 제이슨을 시켜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잊지 않게 하는 _ 도시괴담이나 학교 전설의 혼령들은 잊혀지면 존재감이 사라지니까 그때문에 박작가, 너에게 모여든 것은 아닐까?"
현호형도 지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그럼_ 나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써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
내가 조금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묻자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존재감이 잊혀진다는 것이 무서웠던 것은 아닐까? 그 혼령들 말이야"
죽어서 괴담같은 종류로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 남는게 그럼 더 낫단 말인가? 나는 지훈의 말을 잘 이해할 수 없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때 한쪽에서 무릎을 쇼파위에 올려 세우고 있던 민진이 물었다.
"아, 근데 박작가_ 요즘 글은 쓰고 있어?"
"글? 뭐 조금씩 손대고 있긴 한데, 한동안 손놔서 그런지 잘 써지지는 않아"
"박작가 글 빨리 봤으면 좋겠다, 아_ 근데 찬영이 혼령을 봤다며, 그 이야기는 쓰고 있어?"
"찬영이?"
나는 잠시 부서진 턱을 안고 떠듬떠듬 말하던 찬영의 모습을 떠올리며 작게 몸서리쳤다.
" .. 아, 아니 _ 그 녀석 그런 모습 너무 충격이어서 .. 무얼 어떻게 써야할지 .. 그리고 난 친구들의 그런 모습을 괴담이나 무서운 이야기로 만들긴 싫어"
순간, 공기가 차가워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더욱 으슬해지는 기분에 말을 멈추고 주위를 한바퀴 둘러보았다. 둘러앉은 다들 얼굴이 조금씩 굳어보였다.
" .. 박작가"
현호형이 주머니에서 담배 케이스를 꺼내다가 달칵 테이블 아래로 떨어뜨렸다.
" .... "
나는 왠지 어색해지는 분위기를 모면하려 현호형이 떨어뜨린 담배 케이스를 줍기위해 테이블 아래로 몸을 숙였다.
"?!"
은빛 담배 케이스를 손에 쥐자 끈적한 감촉이 손가락으로 휘감겨 왔다. 천천히 눈을 위로 치켜들자 현호형의 하체 대신 누렇고 시커먼 내장 기관과 하얀 척추뼈가 찢어진 티셔츠 아래로 삐죽이 나와 있었고 옷자락을 따라 핏방울이 천천히 또옥또옥 테이블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장면이 크게 각인되었다. 숨을 내쉬지도 못한 채 동공이 커진 내가 테이블 밖으로 머리를 내밀자 현호형이 조금은 우울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 보았다.
"괜찮아, 괴담이 되어도 _ 우리의 이야기를 써줘"
집안으로 들어서자 물에 빠져죽어 퉁퉁 부은듯한 여자가 현관 앞을 스쳐지나갔다. 막 부패가 시작되는 듯 썩은 듯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거실의 쇼파 위에는 토악질을 하는 여자와 그녀의 아들로 보이는 머리가 으깨진 남자아이가 둘, 컴퓨터 위 천장에는 교복을 입은 남학생이 천장에 매달려 혓바닥을 빼물고 켁켁거리고 있었다. 식칼을 들고 미친듯이 내 방을 뛰어다니는 사람도 있었고, 옷장안에서 머리에 붙은 불을 꺼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도 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옷장안에 외투를 걸어놓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얼굴 반쪽이 불에 타 버린 민진과 현호형의 상체가 쭈뼛거리며 내 방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