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거너스(Belle Gunness) 1859년 노르웨이 태생의 미국 사상 최대의 여성 연쇄 살인마. 노르웨이 이주민으로 미국으로 이민해 두 명의 미국 남자와 결혼한다. 이 두 명 모두 결혼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의문사를 당했고, 살던 집이 불타는 등 벨 주변엔 불길한 일이 끊이지 않았다. 이후 벨은 자신이 낳은 아들과 입양한 딸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어느 날 집에 불이나 집에 있던 가족이 모두 불타 죽는 참사가 벌어진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벨 거너스로 보이는 시체만 목이 없는 것을 발견한 경찰은 집 주변을 수색했고, 그 결과 집의 농장과 돼지 우리에서 14구의 절단된 시신을 발견한다. 1구는 벨이 입양한 딸 제니퍼였고, 다른 한 구는 신원불명의 여성, 나머지 12구는 벨의 집에 묵었던 여행객이나 떠돌이 남성들이었다. 모두 벨에 의해 무참히 살해 당하고 돼지먹이로 던져졌던 것. 벨의 살해 동기는 돈이었다. 전 남편들은 보험금을 위해 살해됐고, 자신의 집에 묵었던 남성들 역시 돈과 물품을 빼앗기 위해 살육됐던 것. 사건은 화재 현장에서 발견된 벨의 시신이 끝내 벨의 것인지 확인되지 않은 채 종결된다. (목 없는 시신이 벨의 몸에 비해 너무 작았다는 점, 화재 전날 새벽 벨이 집을 빠져나간 것을 목격한 사람도 있었다는 것 등은 화재 역시 벨이 꾸민 범행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여태후(呂太后) BC 241~BC 180. 한나라를 세운 유방(劉邦)의 황후. 뛰어난 지략으로 유방의 천하통일을 보좌했으며, 한나라가 세워진 뒤엔 유방이 제후들과 공신들을 제거해 왕권을 공고히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녀는 왕권 강화를 위해서는 그 어떤 잔혹 행위도 서슴지 않았는데, 개국 공신인 한신과 팽월을 숙청한 것도 여태후의 독자적인 행동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낳은 아들이 즉위하자 실권을 장악, 권력의 화신이 된다. 그녀는 맨 먼저 아들의 왕권을 위협했던 후궁 척희의 아들을 독살하고 그녀를 감옥에 가둔 뒤 끔찍하게 살해한다. (척희는 감옥에서 혀와 귀가 황산에 녹고, 눈과 팔 다리까지 뽑힌 채 돼지의 오물 밭에 던져졌다.) 이후 여태후는 아들의 권력을 무력화 시킨 후 정권의 요직을 여씨 친인척들의 자리로 만들어 버렸다. 이렇게 황제의 자리를 대신한 8년 동안 여태후는 자신의 정권을 지키기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정적을 무참하게 죽여 나갔다. 여태후는 여씨 정권을 지키기 위해선 그 어떤 야만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았지만, 한나라 사회를 안정시킨 군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녀는 재임기간 동안 강력한 민생안정 정책을 세우고 가혹한 형벌을 폐지시켜 사회 질서 안정을 도모하고 피폐했던 경제를 회복시켰다.
에일린 워노스(Aileen Wuornos) “미국의 첫 번째 여성 연쇄 살인자”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 에일린 이전에 미국의 여자 연쇄 살인자는 수도 없이 많았음. 고속도로에서 매춘 행위를 하면서 잠자리를 같이 한 6명의 남자를 죽인 혐의로 2002년 플로리다 법정에서 사형이 집행됨. (원래 7명을 죽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재판 중 확인된 살인은 6명.) 어린 시절 아동 성추행범이었던 아버지는 감옥에서 목을 매달아 죽고, 어머니는 에일린을 외갓집에 넘긴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에 의해 에일린은 침대 위에서 벌거벗긴 채로 혁대로 맞는 등 지독한 학대를 받고 자란다. 14살에 강간을 당해 학교를 중퇴하고 15살에 매춘부로 나선다. 이후 에일린은 티리아 무어를 만나 동성 간의 동거를 시작한다. 둘은 사랑에 빠졌으나 에일린이 매춘 행위로 벌어오는 돈으로는 생활이 어려웠다. (에일린은 나이가 든데다 약물 중독 등으로 외모가 많이 상해 매춘부로서 인기가 별로 없었다.) 이때부터 에일린은 고속도로에서 매춘과 강도를 업으로 삼았고, 1989년과 1990년 사이 7명의 남자들을 권총 살해한다. 검거된 에일린은 재판에서 이들 남자들이 모두 자신을 강간하려 했으며 자신은 정당 방위를 위해 총을 쐈다고 진술한다. (실제로 돈을 위한 강도 살해는 1건 밖에 없었으며, 잠자리를 같이 한 모든 남자를 죽인 것도 아니었다. 이 진술의 사실 여부는 아직도 밝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재판은 에일린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흘러갔고, 결국 그녀는 자신이 어린 시절의 학대 때문에 미쳤다고 주장하는 변호사를 해고하고 자발적으로 사형선고를 받는다.
엘리자베스 버덴(Elizabeth Andrew Borden) 19세기의 OJ 심슨 사건이라 할만큼 이상한 판결이 난 살인사건. 1892년 뉴 잉글랜드의 한 부자집에서 앤드류 버덴과 그의 두 번째 부인인 사라 버덴이 도끼 류의 날카로운 무기에 머리와 얼굴을 맞아 잔혹하게 살해된다. 사라는 두개골에 흉기로 맞은 18개의 치명상이 있었고 이중 13개가 뇌 속 깊이 파고 들었다. 앤드류 역시 같은 흉기로 두개골에 12번의 치명상을 입었고 이중 4개가 뼈를 박살 내 놓았다. 앤드류 버덴은 그 지역에서 가장 돈 많은 70세 노인. 그는 평소 특별히 원한 산 사람도 없었고, 백주 대낮에 인구 밀집 지역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인데 목격자도 없었다. 결국 경찰은 처음 시체를 발견한 앤드류 버덴의 딸 엘리자베스 버덴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한다. 버덴은 그 주변에서 알리바이가 없는 유일한 인물이었고, 같은 집안 사람이 아니면 두 명을 그렇게 1시간 반 간격으로 여유 있게 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재판 중에 엘리자베스의 살인 도구와 피 묻은 옷에 대한 증언이 나오면서 그녀의 살인은 거의 확정적이 돼갔다. 그러나 문제는 남자들로만 구성된 배심원. 엘리자베스가 부모의 시체를 보고 실신하고 통곡을 하는 등 여러 감정적 드라마를 연출하자 배심원들은 그녀의 모습을 동정해 무죄 판결을 내린다. (사실 결정적 증거물은 재판 중 제시되지 못했음.) 무죄 판결 후 엘리자베스는 부모의 어마어마한 유산을 상속 받아 이름을 바꾸고 시 외곽에 대저택을 지어 여유롭게 살았다. 그러나 바토리 백작부인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 헝가리 왕가의 증언에만 의존하고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다.
엘리자베스 바토리 백작부인(Countess Elisabeth Bathory) 17세기 동유럽에 살았던 잔혹한 엽기 성주. 폴란드 왕족 출신의 엘리자베스는 헝가리 Csejthe 성의 성주와 결혼해 백작부인의 작위를 얻는다. 남편이 죽은 뒤 이 성의 성주가 된 엘리자베스의 주변엔 이상한 소문이 들리기 시작한다. 엘리자베스가 젊은 여성을 납치해 죽이고 있다는 것. 소문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헝가리 국왕은 성을 급습해 수색 작전을 폈고, 성 안 도처에 피가 빠진 여성들의 시체를 발견했다. (몇몇 문헌에 따르면 650명에 달하는 피 빠진 하얀 시체들이 성에서 나뒹굴고 있었다고.) 헝가리 국왕에 의해 밝혀진 사건의 전모를 이러했다. "어느 날 백작부인이 성 안에서 여자 죄수를 고문하다가 그 여자 피가 백작부인 얼굴에 튀었고, 그 피를 닦고 나니까 피부가 훨씬 젊어졌다. 그 뒤로 백작부인은 젊어지고 싶은 욕망에 그렇게 처녀들의 피를 갈구했다"는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벽돌로 완전히 막힌 방안에 갇혀 그 안에서 3년 후 미쳐 죽는다.
측천무후(則天武后) 624~705. 본명은 무조(武照). 아버지의 사망으로 몰락의 길을 걷다 운 좋게 천거를 통해 황궁의 시녀로 들어감. 미모도 연줄도 없이 지략 하나로 황태자 치노와 연인 사이가 된다. 피비린내 나는 궁정 암투 속에 마침내 치노는 황제(고종)에 오르고 무조는 고종의 두 번째 황후의 자리에 오른다. 황후에 오르기 위해 무조는 자신의 아들을 목 졸라 죽이고 이를 고종의 황후에 뒤집어 씌웠으며, 이후 폐위된 황후의 재기 움직임을 포착하자 그녀의 손발을 잘라 술독에 빠뜨려 죽이는 등 무시무시한 행각을 일삼았다고 전해진다. 무조는 정치에 무관심하고 나약한 고종 황제를 대신해 제국의 실권을 잡는다. 그녀와 고종 사이엔 4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무조는 첫째아들과 둘째 아들의 왕위 계승권을 박탈한다. 야심이 강해 아버지의 자리까지 넘본 둘째 아들은 자신의 손으로 처형하는 "용단"을 내리기도 한다. 결국 셋째 아들 현이 황제에 올랐으나 그마저도 성에 차지 않았던 무조는 그를 폐한다. 그리고 690년 국호를 주(周)로 개칭하고 스스로 황제라 칭하여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제(女帝)로서 약 15년간 전국을 지배한다. 이 동안 왕권을 지키기 위해 치밀한 밀고제도 및 고문 처형 방법이 동원됐는데, 귀에 진흙을 넣고, 두개골을 조이고 꺾고, 눈동자를 가르는 등 특히 고문 방법이 말도 못하게 잔혹했다고 한다. 측천무후에 관한 이야기는 그녀에게 눌려 지냈던 수많은 남성들의 증언에 의해 쓰여진 것이라 논란의 여지가 많다. 무후의 공포정치는 여성이 왕권을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며, 황후에 오르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죽였다는 등의 이야기도 날조됐을 가능성이 높다
사진설명 1 : 벨 거너스(Belle Gunness) 사진설명 2 : 여태후(呂太后) 사진설명 3 : 에일린 워노스(Aileen Wuornos) 사진설명 4 : 엘리자베스 버덴(Elizabeth Andrew Borden) 사진설명 5 : 엘리자베스 바토리 백작부인(Countess Elisabeth Bathory) 사진설명 6 : 측천무후(則天武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