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많은 성씨는 '고려' 이후에 만들어지고 확산되었다는 점. 신라에 기원을 둔 성씨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성씨는 고려에서 만들어졌거나 혹은 중국인이 시조라 말하는 성씨들입니다. 중국인이 시조라는 성씨들도 그들 조상이 최초로 한반도로 건너온 무렵은 대개 고려 무렵이죠. 여기서 한국인의 성씨 상당수는 '고려' 에 기반한다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나아가 시조가 중국에서 넘어왔다고 말하는 성씨들의 상당수도 정말 중국인을 시조로 두기보다는, 고려 때에 중국문화에 품은 -사대주의라고도 부를 수 있는- 상당한 환상에 기인한 측면도 많습니다. 즉, 같은 뻥을 치더라도 조상이 중국인이라 뻥치는 게 더 있어 보인다는 겁니다. 그래서 고려적에 귀화했다는, 다소 선조 내력이 불분명한 중국계 성씨의 상당수도 고려에서 시작된 성씨로 볼 여지가 많습니다.)
2. 더 근본적인 이유는 대부분의 성씨 보유자들이 '조작' 을 통해 그 성씨를 얻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성씨라는 것은 본디 고대 혹은 중세의 귀족급, 최소한 지방향리급 이상 되는 사회지도층의 전유물입니다. 우리 성씨들을 보면 조상이 노비라거나 평민이라는 경우는 거의 없죠. 다들 양반, 왕족, 귀족들이 선조로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과거 노비나 평민들은 다 후손이 끊겼을까요? 그럴 리 없지요. 조선시대 몇몇 지역의 호구를 시대별로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만, 몇몇 지역의 예를 들면(울산, 대구 등) 조선 초기에 지역 인구의 10% 안팎 이던 양반 인구수가 조선 말기에는 지역 인구의 90%까지 늘어납니다.
이것은 자연적 증가(출산에 의한...)라기보다 사회적 증가(양반신분을 후천적으로 얻었다는 뜻)에 의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조조선 후기의 역사를 공부하면 노비, 평민들이 뼈대있는 양반 성씨를 획득했던 다양한 방법들에 대해서도 배우게 됩니다. 투탁, 환부역조 등등의 방법 말이지요. // 이상의 이유로 인해서 성씨에 의해 한국인의 조상이 어느 계열이라 밝히기는 어렵습니다. 차라리 신라 무덤에서 나오는 인골백제 무덤에서 나온 인골, 고구려 무덤에서 나온 인골의 DNA 를 추출하여 현대 한국인의 표준적 DNA 와 비교하는 것이, 현대 한국인이 삼국 중 어느 쪽의 피를 더 많이 물려받았는지 평가하는 객관적 지표가 될 것입니다
신라본기 처음에 조선의 유민들이 6개의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라는 구절이 삼국사기에 나와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