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눈의 위안부

띵성이 작성일 07.02.18 16: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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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은 자바 섬에 살던 네덜란드 여성이었습니다.
일본군이 자바를 점령하고 민간인 포로수용소에 갇히면서
그녀의 슬픈 삶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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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 밖에서도 인종 국적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인 '여성노예사냥'이 대대적으로 벌어졌습니다.
얀 할머니 증언으로 추정되는 네덜란드인 피해자만도
100명이 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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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의 시간들...
사람으로서 지내는 시간은 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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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은 그렇게 해서 풀려났습니다.
그런데 진짜 지옥은 이제부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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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라고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돌아온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쏟아지는 시선은 얼음송곳처럼 차가웠고, 소름끼쳤습니다.
가문의 수치라고 쫓아낸 집도 있었습니다.
왜 피해자 할머니가 더 고통을 받아야 하는 걸까요?
나이 어린 소녀에서부터 어른이 된 여성에 이르기까지
일본군에 끌려가도록 만든 국가가 짊어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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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얀은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그때 어떤 일을 겪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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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상처를 딛고
자신의 수치심을 이겨내고
역사적 상처를 용기 있게 드러낸 얀 할머니
서양인 피해자들까지 당당하게 발언대에 세운 우리 할머니들.

아름다운 영혼들 앞에 저는 머리를 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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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나고 조국으로 돌아오면서 피해자 할머니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우리, 정말로 해방된 걸까?"

그러자 다른 할머니가 대꾸합니다.
"아마 그렇겠지..."

그리고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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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묻습니다.
진정, 우리 해방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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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주인공 얀 뤄프 오헤르네(Jan Ruff-O`Her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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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뤄프 오헤르네(Jan Ruff-O`Herne) 의 현재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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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바섬에서 일본군들에게 강간당한 네덜란스 소녀들의

인적기록부.

일본군들의 의해 보관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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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바섬에 설치되었던 일본군 위안소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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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면 일본왕이 살고있는 쪽을 향하여 동양식으로 절을하게

강요받던 네덜란드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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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차고있던 번호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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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가 젠 오허네 할머니. 같이 위안소생활을 했던 네덜란드인할머니들.

이들은 아직도 과거 일본군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1940년도, 당시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자바"섬에 가족들과 파견되어 이주하게된

네덜란드여성 젠 오허네는 일본군이 동남아를 침략하면서

19세였던 당시, 9명의 다른 젊은 네덜란드여성들과 일본군들에게

끌려가 끝없는 강간을 당하며 위안부생활을 하였다.

겁탈과 폭행의 날은 계속되었고

외부에알리면 가족들도 죽이겠다는 협박으로

그녀와 다른 네덜란드 소녀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알리지 못했다.

 

극적으로 탈출한 그녀는 가족들과 호주로 이민을 갔다.

훗날 결혼을하여 아이들도 갖게된 그녀는 평생을

그날의 악몽과 피해를 입밖으로 내지않았지만

그러던그녀가 위안부 문제를 세계에 알리겠다고 다짐했던 일이

1992년, 세명의 한국인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정부의 사과를 요청하면서

전세계를 놀라게 한데서였다.

물론 일본정부는 사과하지않았고 그런사실조차 거부했다.

이에 분노한 그녀는

1992년, 도쿄에서 결국 전세계 언론에 그녀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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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 are still waiting for an apology!!!" - 우리는 아직도 사과를 기다리고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일본종군위안부 모임에서

인도네시아 위안부피해 할머니들과 함께 참석한 젠 오허네 할머니가

일본정부의 공식사과와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하고있다

 

증언-

 

"저와 제가알던 다른네덜란드 소녀9명은 트럭에태워져 어디론가 실려갔습니다.

그곳에가니 다른 네덜란드 소녀들도 많이 있더군요. 일본군들은 나이별로 소녀들을 나누고

저는 17살 이상소녀들의 그룹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우리들을 한줄로 세우고

걸어가며 위아래로 흩어봤습니다.

우리들에게 일본이름도 하나씩 지어줬는데, 내이름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모두 꽃이름이었다는것밖에 기억이 안납니다.

우리를 가축처럼 트럭에 태우고 간곳은 그들이 벌써 장악한 네덜란드 군본부

건물이었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우리들이 이제부터 일본군들을위해

성적인 노예가될거라고 말했습니다.

몇몇소녀들은 울부짗으며 그것은 "제네바조약" 에 위반되는 행위라고

따졌으나 일본군들은 그들을 비웃으며

우리는 우리마음대로 한다 고 하였습니다.

한명씩 방으로 끌려들어가고 처절한 비명소리가 방에서 들려오고

나머지는 자기차례를 기다리며 밖에서 떨고 서있어야 했습니다

제차례가되어 들어가니

뚱뚱하고 못생긴 대머리의 일본군장교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수녀가되는게 꿈이었습니다

고향에서도 항상 수도원에다니며 꼭 커서 수녀가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제가 저항하자 그 군인은 저를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칼을 뽑아들었습니다.

저는 무릎을꿇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죽음따위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수모를 당하기보단 빨리 하나님곁으로 가고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저를 강제로 침대에 던져놓고 범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태어나서 당한 고통과 수모중 지금까지도 가장 심한것이었습니다..

그후로 2년동안 그캠프안에서 다른 네덜란드 소녀들과 위안부생활을 했습니다,"

 

--할머니의 자서전입니다. 한국어로도 나왔는지는 모르겠는데,

동양인들말고도 일제치하의 서양인들, 특히 여성과 아이들이 당했던

고통이 비교적 자세히 수록되어있다고 생각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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