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만들면 크게 흥행할 것 같은 판타지 단편 [퍼옴] 스크롤 압박

금돼지79 작성일 07.04.11 14:3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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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길한 취재(1)

승용차는 어느덧 비포장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서울을 출발한지 정확히 5시간이 지난 후였다. 덜컹거리며 차의 요동이 심해지자 옆좌석에서 자고 있던 김한수 기자가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부시시 눈을 뜨곤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입을 열었다.

"야, 무슨 길이 이렇게 험하냐?"

"포장이 안되서 그래요. 눈 좀 더 붙이지 그래요? 이런 길로 앞으로 한시간은 더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카메라맨 이창수가 연신 멋대로 돌아가는 핸들을 움켜 잡으며 소리쳤다. 그러나 김기자는 그의 말대로 또다시 눈을 붙일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잠든 동안 내내 께름칙한 악몽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QBS 방송국의 뉴스 보도국 취재기자와 카메라맨이었다. 보도국이란 곳은 원래 사람 잡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김기자가 이번주 내내 취한 수면의 양은 모두 합해야 10시간도 체 되지 않았다. 그것도 대부분은 지금처럼 차안에서 새우잠을 잔 것이었다. 이젠 5년된 그의 엑셀 승용차가 그의 집이나 마찬가지였다. 면도도 차에서 하고 옷도 차에서 갈아 입는다. 그는 보도국에서도 악명 높기로 소문난 사회부 기자였다. 온갖 지저분한 쓰레기와 잡동사니들을 죄다 끌어다 놓은 곳이 사회부란 곳이었다. 그곳에서 버티려면 같이 쓰레기가 되고 잡동사니가 되어야만 했다.

"젠장, 길 한번 더럽게 험하네"

눈을 잔뜩 찌푸린 이창수의 말대로 길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몸의 균형조차 잡기 어려울만큼 점점 더 험하게 좁아지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미친놈이 이런 험한 곳까지 들어와 세명씩이나 사람을 죽였는지.... 아참 김기자님, 뒤에 카메라 괜찮은지 좀 봐주세요. 또 저번처럼 I.C라도 나갔다간 저, 아주 돌아버립니다"

"걱정하지마. 내가 아주 단단히 고정시켰으니까!"

"어차피 오늘 마감뉴스에도 내보내긴 어려울 것 같은데 아예 새벽에 출발할걸 그랬나 봐요. 그랬으면 한 세시간이면 왔을텐데"

"괜히 새벽에 있는대로 밟아 달리다 황천길 가면 박기자가 우리 취재하러 오는 수가 있어. 차라리 조금 여유있게 오는게 낫지"

그들이 목촌리라는 낡은 이정표와 함께 약간의 공터가 있는 막다른 길에 도달한 시간은 오후 5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이정표의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에는 한사람이 겨우 지나갈만한 작은 오솔길이 숲속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건 완전히 오지중에 오지구만!"

카메라를 챙기며 이창수가 투덜거렸다. 그의 그런 불평과는 대조적으로 하루해를 마감하는 붉은 노을은 늦가을의 단풍을 더욱 붉게 물들이고 있어 숲은 더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눈부신듯 김기자가 노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올해는 이렇게 단풍구경 한번 하는 거지 뭐!"

"됐습니다. 조금 있으면 끔찍한 시체들을 카메라로 찍어야 할 판인데...."

오솔길로 접어둔 후 20여분 지나자 숲은 어느새 칠흙같은 어둠으로 변해있었다. 앞장 선 김기자의 조그만 렌턴 불빛이 그들의 앞길을 불안하게 비추어 주고 있었고 늦가을의 쌀쌀한 날씨임에도 이미 두사람의 등줄기엔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하고 있었다.

"길이 여기 밖에 없나? 이런 산길은 혼자 다니려면 제법 겁나겠는데요? 으시시한게 어디서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게.... 이 안쪽에도 사람이 산대요?"

"사건 현장에서 한 1킬로 떨어진 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하더라구. 그래도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냐, 이쪽 강원도 오지엔 이보다 더한 산속에도 사는 사람들이 있다구. 대부분 약초 같은 것 케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지"

"김기자님, 천천히 좀 가요. 빈몸이라고 그렇게 빨리 가면 어떡합니까?"

이창수는 내심 겁이 나는지 김기자의 뒤에 바싹 붙어 따라오고 있었다. 겁이 나긴 김기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연상시키며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이름모를 짐승의 울음소리와 한치 앞을 보기 어려운 칠흙같은 어둠. 그리고 무엇보다 등산 객 세명을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그 살인마가 바로 이 숲 어디엔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저절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어둠을 헤치며 한 40여분을 부지런히 걸어가자 그들의 앞에 꽤 넓직한 개울이 하나 나타났다. 그리고 그 개울위에는 낡은 목조다리 하나가 위태롭게 놓여 있었고 그 너머 멀리서 마을 인가의 불빛이 가늘게 새어나오고 있었다. 둘은 불빛에 겨우 한숨을 내쉬며 삐걱거리는 목조 다리를 건너 서둘러 길을 재촉했다.두사람이 현장에 도착하자 그곳엔 의외로 한 10여가구는 됨직한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마을은 쥐죽은듯 고요했으며 더우기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마을과 현장 사이에는 조그만 고개가 하나 가로막혀 있었고 고개를 넘어서자 서너명의 경찰들과 너댓명의 주민들이 현장을 둘러서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거 사람들 보이니까 엄청 반갑네"

이창수가 다소 힘이 나는지 너스레를 떨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두사람이 주민들을 헤치고 안으로 들어서자 사건 현장이 나타났다. 그리고 제일 먼저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믐달을 뒤로 하고 유령처럼 버티고 선 음침한 기와집이었다. 그 기와집을 보는 순간 김한수 기자는 알 수 없는 공포감을 느꼈다. 사람이 살지 않은지 무척 오래된 듯 방문은 하나같이 부서졌고 찢어진 한지가 볼상사납게 이리저리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기와집 앞마당 무수히 자란 잡초위에 세구의 시체가 가마니로 덮힌채 나란히 누워 있었다.

김기자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그때 그들의 앞을 가로막으며 한 여자가 나타났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QBS 뉴스 보도국의 김한수기잡니다. 사건 취재차 지금 막 서울에서 내려왔습니다. 여기 책임자가 어느 분이신지?"

"제가 책임잡니다. 이번 사건때문에 횡성군에서 파견나온 윤형삽니다"

그녀의 말에 김기자가 다소 놀랍다는 표정으로 찬찬히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다시 반문해 왔다.

"왜요? 뭐가 잘못 됐나요?"

"아... 아닙니다. 시체가 오늘 아침에 발견 되었다구요?"

김기자가 시신들을 내려다 보며 말했다.

"아참, 얘기하는 동안 저희 카메라맨이 취재를 좀 해도 되겠습니까?"

"예, 그러시죠. 대신 시신 촬영은 안됩니다"

"가마니에 덮힌채로는 괜찮겠죠?"

윤형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김기자가 이창수에게 소리쳤다.

"주변 스케치 좀 하고 특히 저 앞에 낡은 기와집 좀 잘 잡아. 시신은 있는 그대로 슬쩍 덮어 주고...."

취재팀 때문인지 주민들이 다소 술렁 거렸지만 이내 잠잠 해졌다. 곧 그들은 이창수가 하는 일을 호기심 어린 눈길로 지켜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엔 하나같이 막연한 공포심이 서려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긴 그럴만도 했다. 자신들의 집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사람이 셋 씩이나 죽었으니.


1. 불길한 취재(2)

"신원은 확인 됐나요?"

"예. 한 사람은 K일보 신문 기자이고 나머지 둘은 모 잡지사 기자들이었습니다. 자세한 인적사항은 따로 적어 드리죠"

"신문 기자와 잡지사 기자요?"

"취재를 하러 왔다가 변을 당한 것 같은데 무엇을 취재하러 왔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가 없습니다"

"피해자들의 사인은 뭡니까? 살해된 것이라고 들었는데 확실한가요?"

"아직 뭐라고 확실히 단정할 수 없습니다. 부검해 보기 전에는"

"대충이라도 짐작가는게 있을 것 아닙니까?"

"글세요"

"혹시 목격자가 있습니까?"

"현재로선 없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살해된 것인가요?"

"아직 살해된 것인지 단정할 수 없다고 아까 말씀 드렸을텐데요?"

"아, 그래요. 그럼 여기 이곳에서 사망한 건가요?"

"그것도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쌀살하게 대답하는 윤형사의 표정에서 김기자는 그녀에게 특기할만한 정보를 얻기는 어려우리라는 판단을 했다. 앞뒤가 뻔한 얘기라해도 촌구석에 말단 형사가, 그것도 임시로 파견 나왔을 여형사가 공식화되지 않은 자신의 사견을 함부로 얘기할 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묻는 것보단 자신이 직접 시신을 보는 편이 빠를 듯 했다. 이젠 자신도 웬만한 베테랑 형사 뺨칠 정도의 실력을 지니고 있다고 자부하는 그였다.

"시신을 좀 봐도 될까요?"

"보시지 않는게 좋을 겁니다"

그녀의 말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여자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적잖이 자존심이 상한 것도 사실이었다. 반발심이었는지 그는 일부러 힘주어 말했다.

"사회부 기자가 어떤 직업인지 잘 모르시나본데 우리도 웬만한 형사들보단 험한 꼴 더 많이 보고 다니니까 걱정 말아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언젠가 그는 한꺼번에 30구의 시체를 본 적도 있었다. 시외버스가 50미터 절벽 아래로 구른 교통사고였다. 팔이 잘리고 얼굴이 뭉개진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운 끔찍한 경험이었다. 이제 그에게 시체 따위를 보는 일은 백화점에 진열된 마네킹을 보는 것만큼이나 일상적인 일이었다. 김기자가 렌턴을 아래로 비추며 구둣발로 가마니를 슬쩍 걷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는 끙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발작적으로 두어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말대로 지금까지 많은 시신을 봐 왔지만 지금처럼 끔찍한 것은 처음이었다. 시신의 이곳 저곳에는 마치 홈이 파인 흉기 같은 것으로 찌른 것처럼 굵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구멍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를 섬뜩하게 만든 것은 시신의 부릅 뜬 눈동자에 아직
도 남아있는 형언키 어려운 공포의 잔재였다. 그의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자신을 향해 살려달라며 달려들 것 같았다.

"도..... 도대체 뭘로 죽였길래?"

"그러게 부검을 해 봐야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나머지 둘도 마찬가진가요?"

김기자가 두려운 눈으로 윤형사를 돌아 보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차가운 눈으로 시선을 돌릴 뿐이었다. 사실 나머니 두구의 시신은 보고 싶은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확인은 해야만 했다. 추정 기사라도 쓰기 위해선.

그는 이번엔 먼저보다 훨씬 신중하고 조심스런 동작으로 다시 두번째 가마니를 들추었다. 그러나 그는 아예 '욱'하는 소리와 함께 입을 틀어 막으며 그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심한 구토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으며 머리끝이 쭈삣하는 전율이 온
몸을 휘감아 왔다. 두번째 시신은 거의 사람이라고 하기에도 어려울만큼 심하게 손상되어 있었다. 마치 짐승에게 뜯어 먹힌 것처럼 얼굴 한쪽이 거의 없어져 버렸고 오른쪽 팔꿈치 아랫 부분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질 않았다. 특히 가슴부분의 손상은 차마 말로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것은 마치 초원의 맹수에게 뜯어 먹히다 만 사슴의 내장을 연상케 했다. 몇번의 구토와 함께 김기자는 세번째 시신은 볼 엄두도 내질 못했다.

* * *

교양 제작국의 정해일PD가 보도국 김한수 기자의 다급한 전화를 받은 것은 새벽 3시경이었다. 그들은 대학동창이자 QBS의 입사동기 였다. 그는 아직도 잠이 덜 깬 눈으로 멍하니 침대에 걸터앉아 안간힘을 쓰며 밀려오는 졸음을 쫓고 있었다. 방금전 김기자와의 전화 통화 내용이 꿈속 처럼 어렴풋이 떠올랐다. 오늘 살인사건 취재 때문에 강원도 횡성 쪽을 다녀왔는데 그 테잎을 편집하면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평소의 차분한 성격과는 달리 그의 목소리는 몹시 흥분되어 있었으며 약간의 두려움까지 섞인 듯 했다. 그는 한없이 가라앉는 무거운 몸을 가까스로 추스리며 방에 불을 밝혔다. 방 한쪽 구석에는 멋대로 벗어 제낀 옷가지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시계는 언제 밧데리가 떨어졌는지 잠자기 전부터 줄곧 8시 50분만 가리키고 있었다.

서른 여섯의 나이에도 그가 아직 독신인 이유는 전적으로 그 망할놈의 PD라는 직업때문이었다. 청바지위에 셔츠 한장과 가죽잠바를 대충 걸치 고 현관을 나서려다 그는 뭔가 잊은듯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쇼파 위에 검은 캡모자를 집어 눈썹까지 푹 눌러쓰곤 비로소 아파트 현관을 나섰다. 싸늘한 새벽 공기가 겨울처럼 매서웠다. 그는 달리듯 자신의 엘란트라 승용차까지 가서 안으로 뛰어 들었다. 그리곤 서둘러 시동을 걸고 히터를 틀었다. 추위로 이빨이 아래위로 부딪혀 왔지만 다시 올라가 옷을 더 껴입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엔진이 체 달기도 전에 그는 깊숙히 악셀을 밟았다. 그의 집은 잠실이었다. 올림픽대로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승용차의 속도계는 160을 가리켰다. 잠실에서 여의도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4분이었다.


1. 불길한 취재(3)

그가 보도국 편집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때 김한수는 자리에 없었다. 그리고 편집실 모니터에는 어느 공포영화에서나 나옴직한 음침한 기와집 한채가 을씨년스럽게 버티고 서 있었다. 그가 막 조그셔틀을 만지려는 순간 김한수가 커피 한잔을 들고 들어섰다.

"어? 벌써 왔어? 또 있는대로 밟았구만?"

"야, 잔말말고 그 손에 들린 커피나 빨랑 주라, 오는데 얼어 죽는줄 알았다. 이젠 완전히 겨울이다, 겨울!"

김한수에게서 건네받은 커피를 한모금 입에 넘긴 해일이 그제야 살겠다는 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 떴다.

"성질 급한건 여전하구만, 그렇게 벌벌 떨지 말고 옷이나 좀 챙겨 입고 나오든지"

"새벽에 황당하게 사람 불러내 놓고 이젠 잔소리까지 늘어 놓을려구? 남 걱정 하지 말고 그렇게 불 나는 일이 뭔지 어서 용건이나 말해. 나 빨리 들어가서 다시 자야 돼! 요즘 귀신들한테 시달려 잠도 제대로 못 잔다구"

농담같은 그의 말 때문이었는지 김한수의 얼굴엔 금새 웃음기가 가셨다. 해일은 그의 진지한 표정이 웬지 마음에 걸렸다.

"그래, 본론부터 말할께! 너 요즘 귀신에 대한 특집 다큐 제작중이랬지?"

"그래서?"

"그럼, 혹시귀신을 찍거나 본 적은 있어?"

"자식! 지금 농담하냐? 뻔히 알면서 왜 그래? 정말 귀신이 있어서 프로그램 만드냐, 요즘 사람들 워낙 그 쪽으로 호기심이 많으니까 부랴부랴 특집 편성한거지. 근데 갑자기 그 얘긴 왜 묻는거야?"

잠시 망설이던 김한수가 이내 모니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오늘 내가 취재 가서 찍은 테잎인데....."

"아까 들어오면서 봤어. 근데, 요즘은 보도국에서도 귀신 찾아 다니냐?"

"그게 아니라.... 저 곳에서 오늘 세명의 등산객이 살해 당했어"

그리곤 책상위에 종이 몇장을 집어 건네며 계속 말했다.

"이따 읽어봐, 이건 그 사건에 대해 내가 작성한 내일 아침 뉴스 기사야!"

"젠장 내일은 시민들이 출근길을 살인사건 뉴스로 시작 하겠구만. 근데 그게 어쨌다는거야?"

"테잎을 잘 보라구"

말을 마친 그가 테잎을 되감아선 풀레이 했다. 카메라는 폐허가 된 기와집의 처마에서 부터 천천히 아래로 앵글을 움직이고 있었다. 부서진 문짝들, 찢겨져 너풀거리는 한지, 검게 그을린듯한 처마 기둥, 그리고 주위론 온통 어둠뿐이었다. 뭘 보라는건지 영문을 알지 못하고 열심히 화면을 보던 해일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잠깐, 거기!"

화면은 그가 소리친 바로 그 곳에서 멈추었다. 멈추어진 화면에는 카메라 가 기와집의 창고 내지는 부엌으로 보이는 왼쪽편의 부서진 문짝을 크로즈업으로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부서진 문짝 틈새 어둠속에서 뭔가..... 뭔가 번쩍이는 것들이 있었다. 푸른 빛을 띠고 있는 그것은 반딧불 같기도 하고, 혹은..... 광채를 내뿜는 짐승의 눈 같기도 했다. 더우기 그것들은 한두개가 아니었다. 하나, 둘, 셋..... 족히 열두세개는 될듯이 보였다. 정민수는 눈을 더욱 찡그리고 화면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도대체 저게 뭐야? 뭘 찍어 온 거야?"

김한수는 대답 대신 다시 화면을 플레이 시켰다. 카메라가 이번에는 기와집 대신 바로 김한수 자신과 낯선 남자 한 사람을 잡고 있었다. 김한수가 빠르게 말했다.

"내 옆에 있는 남자는 현장에 있던 형사야!"

두사람을 크로즈업으로 잡고 있던 카메라가 서서히 줌아웃 되면서 그들의 발 아래 가마니로 덮힌 시신들의 모습이 막 화면 안으로 들어 올 때였다.

"잠깐, 저건 또 뭐지?"

이번에도 화면은 그가 소리친 바로 그곳에서 정확하게 멈추었다. 김한수도 이미 그 곳에서 화면을 정지시키려고 준비한 것 처럼. 해일은 다시 화면 앞으로 얼굴을 바싹 갖다 댔다. 화면은 김한수와 형사라는 사내가 발 아래 가마니로 덮힌 시신을 내려다 보고 있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들의 바로 뒤 어둠속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었다. 형체는 희미해서 뚜렷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마치 화면을 막 오버랩 시킬때와 같이 보일듯 말듯 희미한 모습으로 버티
고 선 것은 분명한 사람의 형상이었다. 그리고 그 형상은 똑바로 카메라의 렌즈를 응시하고 있었다. 뚫어지게 화면을 바라보던 해일이 김한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도대체 뭘 찍어 놓은거야? 카메라 포커스를 잘못 잡은 것 같지도 않고"

"사실은 그게 뭔지 나도 잘 몰라. 물론 카메라맨도 전혀 모르고.... 분명히 현장에서 촬영할때 화인더에는 아까 보았던 그런 광채나 지금같이 저런 이상한 형상 같은건 전혀 없었다는 거야. 네가 보기엔 어떠냐?"

"어떠냐니?"

김한수의 질문에 반문하며 화면에서 눈을 떼어 그를 돌아보던 해일은 그제서야 그가 이런 새벽에 자신을 급히 부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럼..... 넌 저게 카메라에 귀신이 찍힌 것이라고 생각한다는거야?"

"카메라에도 이상이 없고 현장에선 보이지도 않았고, 그렇다면 저 이상한 것들을 뭘로 설명하지?"

김한수의 표정은 그 어느 때 보다 진지해 보였다. 해일은 다시 화면으로 눈길을 돌렸다. 여전히 그 이상한 형상은 똑바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고 마침내는 해일 바로 자신을 노려보는 듯한 섬뜩함까지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는 몇 번이나 테잎을 돌려가며 두가지 이상한 형상의 수수께끼를 풀어보려고 했지만 무엇으로도 그것들을 설명하긴 어려웠다.

"그리고 이건 현장에 있던 주민한테 얼핏 들은 얘긴데 말야, 그 집엔 귀신이 있다는 거야. 그러면서 취재한답시고 설치다 괜히 무서운 화를 당하지 말고 어서 돌아가라며 은근히 협박까지 하지 않겠어?"

"그래서, 설마 그 주민의 얘기를 믿는단 얘긴 아니겠지? 사실 나두 귀신의 존재를 전혀 부정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이번에 특집 프로 제작하면서 오히려 귀신이란 존재가 사람들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허무맹랑한 허상이란 확신이 들더란 말야! 대부분의 귀신 목격자들을 취재하러 다녀보면 뭔가 앞뒤가 않 맞는 구석이 반드시 한 두개씩은 나오더라구. 자신의 체험을 증명할만한 객관적인 증거나 일관성이 없다는 것도 공통점이구. 귀신이 나온다는 온갖 음침한 곳과 집들을 다 찾아 다니며 카메라로 찍어댔는데 귀신의 모습은 커녕 그 비슷한 것도 한번 찍힌 적이 없어. 그래서 나는 이번 프로그램의 결론을 아예 귀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부정으로 끌고 가기로 했어. 사실 처음 기획부터가 좀 우스꽝스럽기도 했구"

해일은 상당히 확신에 찬 어조로 자신의 의견을 얘기했다. 그러나 김한수는 그의 얘기에 단 한마디 반박도 없이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평소의 그였다면 결코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둘은 만나기만 하면 언제나 열띤 논쟁을 벌이곤했으니까.

"그래, 나 자신도 내가 지금 얼마나 황당한 얘길 하고 있는지 잘 알아. 하지만 사람에겐 이성적인 논리나 합리성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예감이나 본능같은게 있잖아. 처음 현장에서 그 기와집을 보았을때 내 기분이 어땠는지 알아? 그야말로 지옥문 앞에라도 와 있는 기분이더란 말야. 난 그기와집을 그 곳에서 처음 본게 아니었거든. 서울서 내려오는 차안에서.... 잠든 동안 내내 나는 꿈속에서 그 기와집을 봤어. 뭔가에 계속해서 쫓겨다녔던 것 같은데 자세히 기억이 나질 않아"

김한수는 지금도 그 당시의 기분이되살아 나는지 양 어깨를 움츠렸다. 몇 시간후에 보아야할 이상한 기와집을 미리 꿈속에서 보았다는 김한수의 말에 해일은 비로소 쉽게 무시하지 못할 무언가가 그곳에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예감을 가지기에 이르렀다. 그때 다시 김한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뿐이 아냐! 화면속에 그 이상한 형상이 도대체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는거야. 마치 나를 잡아 먹을듯 노려보는 것 같더라구! 게다가 그 집앞 마당에 있던 참혹하게 살해당한 시신들. 그 시신의 눈. 대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 눈동자에는 지금까지 한번도 상상조차 해본적이 없는 무서운 공포가 깃들어 있었어! 자꾸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군. 창피하게..... 하여튼 하고 싶은 말들은 다 했어. 어차피 판단은 네가 해야 하 니까. 아까 건네준 자료에 모든걸 자세히 적어 놨어. 집에 가서 읽어봐!"

김한수는 거기까지 얘기하고 급히 담배를 한대 피워 물었다. 2년전부터 완전히 담배를 끊었던 그 였다. 오랫동안 김한수를 봐 왔지만 오늘같은 그의 모습을 보긴 처음이었다. 얼마 후 해일은 개운치 않은 기분으로 편집실을 나왔다. 그리고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그의 승용차 속도계는 한번도 120을 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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