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 찍힌 테잎(3)

금돼지79 작성일 07.04.11 14:4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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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귀신이 찍힌 테잎(3)

비디오 테잎을 보고난후 김익재 촬영감독과 조연출 안영우는 몹시 놀란 표정이 역력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김익재 촬영 감독이었다.

"그.... 그러니까 저것들이 정말 귀신이다, 이거야?"

"한국대학 손남의 박사 얘기니까 상당히 신빙성이 있어요"

그러자 김감독이 갑자기 자신의 소매를 걷어 걷고선 안영우에게 말했다.

"야, 영우야, 내 팔 좀 만져봐라. 소름 돋은거 보이지?"

김감독의 말에 이영우도 양팔을 어루만지며 맞장구를 쳤다.

"저도 웬지 오싹 오싹해지는게 기분이 이상한데요?"

김감독 또한 테잎을 보며 카메라 이상이 아니라는 것에는 동의했다.

"그래서..... 정PD 얘기는 프로그램을 다시 만들자 이거요?"

"아닙니다. 전체를 모두 다시 만들잔 얘기는 아니고 후반부만 다시 만들어서 결론을 바꾸자 이거죠. 우리가 과연 저곳에 가서 똑같이 귀신을 찍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설사 못 찍어도 저 테잎이 있으니까 후반부는 수정할 수 있다는 거죠"

김감독이 다시 화면을 한번 바라보곤 이영우에게 말했다.

"야, 미치겠네! 올해는 완전히 귀신 붙은 해라더니, 그 점쟁이 얘기가 꼭 맞네, 꼭 맞아! 영우야, 담배 있으면 한대만 주라!"

"또요? 오늘 벌서 몇 개핀줄 알아요? 좀 사서 피세요. 사서!"

이영우가 마지못해 주머니를 뒤적거려 담배 한개피를 건네자 김감독이 또 다시 너스레를 떨었다.

"임마, 내가 뭐 담배 살 돈이 아까워서 그러냐? 담배 좀 줄여 보겠다는 내 마지막 몸부림을 넌 그렇게 이해 못하겠냐? 내가 담배 사 봐라. 하루에 두갑은 필거다. 근데 너한테 맨날 이런 구박 받으며 빌려 피니까 하루에 열개피는 안 넘잖냐? 그리고 얼마후면 어느 귀신한테 잡혀갈지 모르는 판국에 동지끼리 너무 그렇게 야박하게 굴지마라"

"아이구, 됐어요, 됐어!"

둘은 언제나 앙숙이었다. 촬영장에 가서도 토닥거리긴 마찬가지였다. 촬영 때는 술 한잔 안 걸치면 작품이 안 나온다며 틈만 나면 술 먹자는 김감독과 절대 음주촬영은 묵과할 수 없다며 술이라면 입에도 못대는 이영우. 그들은 정민수와 벌써 2년째 같이 작품을 하는 호흡이 잘 맞는 스텝들이었다. 정민수와 함께 그들은 올 가을 내내 귀신만을 찾아 다녔다. 나중에
는 스텝들이 모두 악몽에 시달린다며 비명을 지르곤 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야말로 정말 귀신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들은 내심 흥분되기 시작했다. 촬영일은 4일후로 잡았다. 대략적인 스텝회의를 마치고 해일이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온 것은 새벽 1시경이었다.

그가 아파트를 들어서기가 무섭게 전화벨이 울렸다. 심야에 걸려오는 전화는 두가지중 하나였다. 몹시 급한 일이거나 불길한 일이거나. 들고 있던 서류뭉치를 던지듯 쇼파에 내려놓고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해.... 해일이냐? 나.... 한수야, 김한수!"

"어? 웬일이냐, 이 야심한 시간에? 어디야, 편집실?"

"아.... 아니, 집!"

"집? 제수씨가 좋아 하겠군, 근데 무슨 일로?"

"뭐.... 특별히 일이 있어서가 아니고, 그냥....."

"이 자식이.... 지금 노총각 약 올리는거야, 뭐야? 집에 들어 갔으면 제수씨 껴안고 얌전히 잠이나 잘 것이지, 웬 전화질이야. 왜, 오랜만에 집에 들어 가니까 남의 집 온거 같아 잠이 안와?"

"그게.... 아니고..... 너..... 그 흉가 촬영 하기로 했냐?"

"그래, 덕분에, 잘 하면 한방 터뜨릴지도 모르겠다. 일 잘 되면 내가 한 잔 살께"

"그.... 그래, 그랬구나"

"근데 너 목소리가 좀 이상하다. 어디 아프냐?"

그제서야 해일은 김한수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조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고 초조해 보였으며 어찌 들으면 떨고 있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아... 아니야, 감기 기운이 좀 있는 것 같애. 근데, 저기 말이야...."

"그래, 얘기해"

"아.... 아니야, 됐어"

"임마, 너 답지 않게 왜 그래? 나한테 무슨 할 말 있어?"

"아니야, 그냥 술 생각 나서 전화 했는데 그만 두는게 좋겠어"

"짜식 싱겁긴, 그래, 괜히 감기 걸려서 술 먹었다가 더 고생하지 말고 일찍 자라. 제수씨 걱정 하겠다"

"그래.... 너도 몸조심 하고.... 이만 끊을께"

전화는 거기서 끊겼다. 해일이 다소 싱거운 그의 전화에 한번 피식 웃곤 막 웃옷을 벗으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그의 뇌리에 그의 마지막 말 한마디가 낯설게 다가섰다. 그래, 너도 몸조심 하고. 뭔가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인삿말이 아닐 수 없
었다. 그리곤 잠시 후 그는 피식 웃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짜식, 감기에 걸리더니 정신까지 오락 가락하나?"

* * *

전화를 끊은 김한수는 거실 쇼파에 넋나간 사람처럼 그대로 앉아 있었다. 어두운 정적속에서 불규칙한 숨소리가 규칙적인 시계초침 소리에 묻혀 가늘게 들려오고 있었다. 한참을 꼼짝 않고 앉아 있던 김한수가 갑자기 일어섰다. 그리곤 발작적으
로 거실의 불을 있는대로 밝히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어둠이 조각나고 거실은 대낮처럼 밝아졌다. 그러나 불빛에 드러난 김한수의 모습은 더이상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얼굴엔 식은 땀이 번질거렸고 몇 일째 잠을 못 잔 사람마냥 두 눈엔 핏발이 서 있었다. 그는 밝은 빛이 가득한 거실을 좌우로 서성이기 시작했고 그의 입에선 알 수 없는 얘기가 흘러 나왔다.

"빌어먹을 그럴리 없어, 현실이 아냐. 절대로"

한참을 그렇게 서성이던그가 이번엔 갑자기 주방으로 다가가 장식장을 열곤 위스키를 꺼내 들었다. 그리곤 거칠게 병마개를 따서 컵에 술을 가득 부었다. 술을 따르는 그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그는 또다시 컵에 술을 채웠다. 역시 이번에도 순식간에 술잔을 비웠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손은 안정감을 잃은 채 떨리고 있었다. 그가 탁자에 팔꿈치를 괴고 머리를 감쌀 때 였다.

"여보!"

낯선 소리에 그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아내 지윤이었다. 그는 얼른 다시 고개를 돌렸다.

"거실 불을 뭐 하러 있는대로 켰어요?"

지윤이 막 거실불들을 끄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김한수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끄지마!"

그의 뜻하지 않은 행동에 지윤이 흠칫 놀라며 얼어붙듯 그 자리에 섰다.

"여.... 여보!"

"거실 불.... 끄지 말라구!"

한동안 남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다가오며 말했다.

"당신 왜 그래요?"

그러나 그는 대답이 없었다.

"당신, 어디.... 아파요?"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남편의 고개를 들어 올리던 그녀의 표정이 일순 하얗게 변했다.

핏발 선 두 눈. 신경질적이고 창백한 얼굴. 섬뜩한 광기. 지윤은 지금까지 한번도 남편의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남편은 언제나 정력적이고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다.

"여보... 당신?"

그러자 김한수가 그녀의 손을 훽 뿌리치며 거칠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절망적으로 소리쳤다.

"날 보지마!"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고개 돌린 김한수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그의 머리와 얼굴은 온통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여보, 도대체 무슨 일이예요, 왜 그래요?"

그녀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가슴에 고개를 묻은채 김한수는 말이 없었다. 그러자 조금씩 흐느낌이 새어 나왔고 남편의 어깨가 약간씩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남편의 옆에 주저앉아 남편의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남편의 얼굴을
본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가엾게도 남편은 울고 있었다. 그녀는 너무 놀라 울먹이듯 말했다.

"당신 왜 그래요? 무슨 일인지 말을 해봐요. 제발, 여보!"

남편이 두려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남편의 입에서 나온 다음 얘기는 그녀로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얘기였다.

"여.... 여보, 나.... 너무.... 무서워"

"네? 당신, 지금 뭐라고 했어요?"

"제기랄! 여보. 나... 무서워 죽겠어!"

마침내 남편이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곤 애원하듯 소리쳤다.

"잠을.... 잠을 잘 수가 없어. 너무 무서워서 잠을 잘 수가 없어, 여보!"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남편의 온 몸은 그녀가 부둥켜 안기에도 벅찰 만큼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섭다니. 아득한 현기증이 그녀에게 찾아 들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불이 환히 밝혀진 거실을 둘러 보았다. 거실은 조금도 달라 진 것이 없었다. 자꾸만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안간힘을 쓰면서 눈물을 삼켰다. 그리곤 스스로에게 맹세했다. 남편에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를 지키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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