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한지는 꽤 되었는데, 로그인만 하다보니 저도 어느덧 상병이네요
그동안 눈팅만 하다가, 무서운글터도 꾸준히 들락날락 거리며 재밌게 보냈는데,
그냥 군대에서 겪은 이야기가 하나 있어서
재미가 없더라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2005년 1기군번으로 경기도 모 전방사단에서 근무했죠.
저희 연대가 GOP연대라 1년주기로 3개 대대가 교대하며 GOP경계를 했습니다.
마침 제가 상병달때쯤 해서 GOP에 상승하게 되었구요.
저는 행정병이라, 경계근무는 서지 않고, 상황근무에 투입되었습니다.
서보신 분은 알겠지만, 이게 또 나름 만만한게 아니거든요
군 전화, 유선, 무선, 일반전화까지 대충 5~6개의 전화기를 상황일지 작성하면서
서는게, 뭐 널럴한 타임도 있지만, 전,후반야 철수 교대 등등, 그리고
높은 간부가 자주 들락날락 거리고, 간부 위치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전파하고
등등, 나름 골칫거리가 많습니다. 게다가 상황업무와 본연의 행정업무를 같이
병행해야 하다보니, 언제나 피곤함에 쩔어있었죠. 특히, 시트지로 글자파는데는 아주 이골이 났습니다.
그래도 눈비오고 바람불고, 특히 북한군이 불질러 맞불작전 한다든가,
진지공사한다고 7월땡볕 무더위에 철조망 갈아끼우는 작업하는걸 보면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기도 했죠. ㅎㅎ
아무튼 각설하고,
상황근무는 2교대로 6시간씩 서게됩니다. 2명이 1개조로 6시간동안 상황을 보는거죠
뭐 한 1~2시간 빼고는 평소엔 그다지 바쁘지 않아서 자기 업무하거나 졸거나 할때도 있죠.
근무자체는 빡세지 않지만, 생활하기가 엄청 힘듭니다. 6시간 근무서고 6시간 휴식이라지만,
개인정비와 기타 업무, 또 내무생활등등 하다보면 2시간씩 끊어서 하루에 4시간 정도 자는게
평균생활입니다. 하지만 복무기간중 절반정도는 거의 하루에 2~3시간 정도밖에 못잤어요
밀린 업무, 기타 비상시 등등 해서, 특히 낮타임에 쉬게 되었을때는, 고참들 눈치도 있고
같은 생활관 쓰는 60미리포반은 그때가 활동시간이라 생활관이 소란스럽기도 하고 해서
거의 잠을 못잡니다. 한번은 후임이 자살한적이 있었는데, 헌병 수사대부터 시작해서 연대장
대대장 사단장등이 아예 한 2일 상주하는 바람에 2일간 행정병은 아무도 못잤을 정도로
급박하기도 했죠.
그래서 행정계원은 언제나 피곤에 쩔어있었습니다. 제대하고 나와보니 '쩐다 쩐다' 하길래
무슨 의민가 싶었더니, 그 때 그 생활이 딱 떠오르네요.
그때가 아마 제가 병장이었나 8~9월쯤이었던 걸로 기억하니 병장을 갓 달고 나서네요.
그 날도 공용이다 뭐다 해서 하루하고 반나절을 꼬박 잠을 못잔걸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근무시간내내 졸다가 딱 칼타임 되자마자 후임근무자 들어오든 말든
같이 상황보던 교육계 후임병한테 맡겨놓고 그냥 나와 버렸습니다.
(정시 30분후 밀어주기가 하나의 에티켓으로 작용하던 때였거든요)
어차피 상황실이 내무실 바로 옆이고, 널럴한 시간이라 간부도 없고, 또 교대인원이
저랑 동기거나 한달선임 정도라서 늘상 군기가 빡세진 않았습니다.
너무 피곤해서 환복만 한채 바로 침대에 누워버렸죠. 잠아 쏟아져라 이러면서.
하지만 그런거 있잖습니까
하루 꼴딱새고 죽어갈듯이 피곤할때 막상 침대에 누우면, 정신은 몽롱해도
잠은 안오는 상태요. 그 상태에서만 머물고 막상 잠은 안오는 겁니다.
마침 그때가 낮시간이라 식당에서는 애들이 떠들고, 자는데 내무실에서 티비보는 애들도 있고
그래도 짬 좀 찼다고 이제 애들한테 조용히 좀 하라고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기조차 귀찮아서 그냥 냅뒀더니, 역시나 잠이 잘 안오더군요.
그렇게 30분정도를 뒤척였을까,
이게 또 그런게 있잖아요. 한참 잠 안오다가, 몸에서 쑤욱~하고 아래로 꺼지듯이
붕~뜬것 처럼 되면서 정신이 혼미해지고 잠이 드는 그런거요.
마침 그 때 그런 신호가 왔습니다.
'얼씨구나! 드디어 잠들겠다!' 라고 생각하고 잠들생각에 잠깐 신났었죠
근데 이게 몸부터 쑤욱 빠져서 머리부분에서도 쑤욱 빠져야 되는데
목에서 탁 걸린겁니다.
'어라? 이게 아닌데...' 싶다가, 왜이러지 싶어 몸을 뒤척여보니
몸이 안움직입니다. 순간, 아 이게 가위구나 싶었죠.
처음 눌려보는 가위라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뭐랄까 기대감도 생기고,
막 무서운얘기 읽고 하는걸 좋아하는지라, 한창 학원빼먹고 피씨방에서 하루종일
가위게시판 같은데서 글도 읽고 했는지라, 은근히 반갑기도 했어요.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이제 뭐가 나타날까 하는 기대도 하고..
주변에서 이야기하는 소리도 또렷이 들리고, 티비소리도 들리고,
근데 차마 눈은 무서워서 똑바로 못뜨고 실눈으로 흘깃흘깃하고 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침대옆을 곁눈질로 보고 있는데, 검은 치마자락이 보이더군요.
아..이거구나.. 무서운마음보다는 호기심에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어요
게다가 워낙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듣고 읽어놔서, 어떤 가위의 패턴? 이런것도
나름 예상하고 있었던 거죠. 오히려 뭘할지가 궁금해지는 그런때였습니다.
그러더니 이 치마자락이 제 침대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걸어서 한발짝씩 움직이는게 아니라 붕 떠서 빙글빙글 말이죠.
에이 그냥 헛것이겠지..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또 그게 아닌가 싶었던게
제가 침대 머릿부분 뒤로 빨래비닐을 짱박아 뒀었거든요. 벽쪽에 붙어있어서,
근데 이 치마자락이 그 부분을 지날때면 비닐봉지 특유의 부스럭거림이 들리는 겁니다.
침대가 벽쪽에 20센치정도 이격되어 바짝붙어 있었는데, 이 때쯤부터 오싹해집니다.
어라...어 좀 무섭네...어 이거 안되는데...
근데 그 검은 치마자락은 제가 이렇게 공포를 느끼는걸 모르는지, 마치 자기를
인식하지 못하는것 같은 뉘앙스로 결국엔 제 사타구니에 앉는 겁니다.
마치, 내가 여기서 널 무섭게 하려고 하는데, 너는 눈치도못채고 잠만 자냐. 무섭게 해줘야겠다
이런 것처럼 말이죠.
근데 특이한건, 저를 바라보며 제 위에 앉는게 아니라, 저를 등지고 앉은 겁니다.
이때부터 정말 무서워지기 시작한거죠. 그래도 나름 가위이야기는 많이 알고 있어서
딱히 인터렉티브성, 즉 제가 어떤 행동을 하면 반응을 보이는 행위를 하지 않으면
정말 죽을듯이 무섭진 않겠다 라고 내심 생각도 했죠.
뭐 예를 들어 가위를 풀기위해 손가락을 움직였더니, 어쭈 제법인데? 뭐 미친놈 또지랄이네.
이런식만 아니면 괜찮겠다. 니가 내 예상을 빗나갈 일을 하진 않을거다. 이렇게 생각했죠.
반쯤 뜬 눈으로 앉은 상대를 보니까, 검정색 원피스인데, 왜 여성분들이 잠옷으로 많이
사용하는 그런 반팔 원피스입니다. 그리고 머리가 아주 길었어요. 허리를 넘어서까지.
거기까진 괜찮은데, 이거, 서서히 눕기 시작합니다. 아 정말 미치겠습니다.
마치 제가 '거기까진 좀 덜무서워' 이런 생각한걸 읽기라도 한 듯 말이죠. 더 무섭게 보여야겠다
싶은 심정으로 하는것처럼요. 그 와중에도 저는, 그래도 뒷모습이니까 그나마 덜 무섭겠다.
라고 생각을 했죠.
생각을 마치자 마자, 이거, 고개를 돌리기 시작합니다. 아주 천천히 누우면서 고개를 돌리기 시작합니다.
머리카락이 제 얼굴을 스치듯 지나가면서 천천히 다가옵니다. 그것도 고개를 돌리면서.
그러더니 결국 제 얼굴 바로앞까지 당도하더군요.
정확히 180도로 목이 돌아간 채로요.
그리고 한창을 마주봐야했죠. 그렇게 180도 돌아간 목과 함께요. 코앞에서.
어찌어찌 간신히 가위가 풀려 몸을 움직일수 있게 됐고, 저는 일어나자 마자
후임들한테, 니네 어떻게 그럴수가 있냐고 다그쳤습니다. 벙찐 후임들 표정.
가위눌려서 진짜 무서워서 죽을뻔 했는데 노가리나 까고 있냐고! 막 징징댔죠..-병장이...
애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김병장님 쌔근쌔근 잘도 주무시더라고 합니다. 허허.
그렇게 생애처음 가위경험은 지나갔네요. 잠이 안올줄 알았는데, 막상 너무 피곤했는지
다시 잠도 잘 잤습니다.
막상 길게 써보니 영양가가 없군요. 뭐 그냥 같이 보고 알고나 있자라는 심심한 맘에
쓴 글이라 재미있게 보셨으면 좋겠네요.
암튼 뭐 이런경험도 있었고. 다시 저는 눈팅하러 가야겠습니다.
쩝. 예상한걸 다 빗나가게 한 그분도 참 대단하고,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하고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