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에 해병대 청룡부대로 참전하셨던 큰아버지께 들은 귀신이야기입니다.
당시 농사를 짓던 정말 가난했던 집안인데,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장남이신 큰아버지께서는 월남전 파병이 결정되자 돈 많이 벌어오겠다며 월남전에 참전하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집안을 살렸지만, 큰아버진 몸이 많이 상하셨고, 고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적응을 잘 하지 못해 많이 고생하셨죠.
지금도 그렇지만 제가 어릴때의 큰아버지는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였지만, 막연하게 큰아버지를 좋아했고, 많이 따랐습니다.
어릴때부터 큰집에서 자랐던 저는 그렇게 나이를 먹고 지금까지도 큰집에 자주 찾아가고, 큰아버지도 몇번씩 뵜습니다.
그렇게 이십여년을 지냈지만, 지금까지 한번도 큰아버지의 월남전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어릴적 전쟁에 관심이 많았을 그때에도 사촌누나나 사촌형한테 큰아버지에게 절대 그런건 묻지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받았었고, 가끔 전쟁때 사진이나 군복을 꺼내보시는 큰아버지를 보면서 어린 마음에도 저 얘긴 하면 안되겠구나 싶었었죠.
그런데 제가 대학도 들어가고, 이제 제삿상이나 차례상에서 술도 한잔씩 얻어먹게 되면서 어르신들이 계시는 자리에 말석이나마 붙어있게 되고 나서 주워들은 이야기입니다.
큰아버지가 병장으로 복무하고 있을때, 작전 명령이 떨어져서 베트콩 마을을 소탕했답니다.
어른이든 아이든, 남자든 여자든 가릴 것 없이. 말그대로 '우리편빼고 움직이는 건' 모조리 쏴버리는 소탕전이었습니다. 지금으로선 상상도 못할 정도의 지옥이 펼쳐졌고, 큰아버지도 그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두세시간 뒤 전투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퇴로쪽을 정찰하던 쪽에서 벙커를 발견했다는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당시 근처에 있던 큰아버지가 그쪽으로 갔고, 중대장도 그쪽으로 갔습니다.
벙커라고해서 가봤는데, 실상은 벙커가 아니라 토굴이었습니다.
땅을 파서 진지를 구축해놓긴 했는데, 저 끝자락에 땅속으로 파여져 있는 토굴의 뚜껑이 덜 닫힌 채로 있었죠.
뚜껑은 밑은 대나무고, 위쪽은 진흙을 굳혀서 구멍을 덮어놓으면 전혀 알 수없게 되어있었답니다.
그때 당시만 해도 미군이 땅굴로 기습 게릴라를 펼치는 베트콩때문에 심각한 피해를 보고 있었고, 우리군도 그때까지는 이렇다할 피해가 없었지만, 마음놓고 있을 순 없었습니다.
저게 소문의 땅굴이구나.
저안에 드가면 함정이나 부비츄렙이 어마어마하데
병사들이 그렇게 웅성거리자 중대장이 화를 내면서,
'이 새끼들!! 헛소리하지 말고 하던 일 계속해! 이중사!! 애들 돌려보내!'
그래서 큰아버지를 포함한 대원들은 벙커를 떠났습니다.
그렇게 벙커를 뒤로하고 가는데, 그때 큰아버지가 뒤로 좀 쳐졌답니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이중사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마침 그소릴 들은 사람은 뒤에 쳐졌던 큰아버지 뿐이었는데, 호기심에 큰아버지는 풀숲에 숨어서 지켜봤답니다.
벙커에는 중대장과 이중사가 언성을 높이고 있었습니다.
보통 상식적으로 중대장과 중사라면 아무리 장교와 실무자라 그래도 차이가 많은데.. 이중사 저게 미쳤나 싶어서 의아하게 지켜봤답니다.
근데 가만히 보니 중대장은 별 동요없이 평소처럼 말하고 있었고, 이중사 혼자서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펄쩍펄쩍 뛰고 있었습니다. 대충 기억나는게. '그렇게는 못한다.'와 '본부에 보고하고 나서 하자' 정도였습니다.
멀리서 말은 제대로 들리지 않지만 상황과 언뜻언뜻 들리는 고성에서 추측컨데, 큰아버지는 중대장이 혹시 저 땅굴 수색하려는거 아니냐에까지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 생각을 하니 큰아버지는 등골이 오싹해졌답니다.
글재주가 없어서 머릿속 얘기를 잘 못쓰겠네요.
시간이 늦어 나중에 계속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