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제대하고 바로 복학했을때의 일입니다. 3월 학기중에 바로 복학한거라 정말 정신없이 보냈야만 했습니다. (예비역들은 다 아실겁니다. 적응기간없이 바로 투입되면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그렇게 어리버리 보내다, 3월말쯤에 술을 거나하게 마셨죠. 신입생 환영회다, 뭐다해서 학교 구멍가게앞 발바리까지 술에 취해버린 날이었을 겁니다. 정신없이 마시다 보니, 어느덧 지하철은 끊겨버렸고, 버스노선도 잘모르는 서울촌놈인 저로선 택시를 타야만 했습니다.
학교앞에선 그 시간대에 택시가 잘 안잡힌다는 것을 그 동안의 경험으로 알고있는 저는 한 20분정도 걸어서 모운동장역으로 향했습니다. (학교앞이나 거기나 마찬가지지만 거기가 더 기회가 많죠. 지금도...^^) 그 곳에서 운좋게 합승을 했는데, 뒤에는 거나하게 취한 여자애 두명이 뻣어있더군요. 그런데, 택시기사님이 절 한번 훓어보더니, 혹시 XX대학생 아니냐고 물어보더군요. "네, 그런데요."라고 대답하는 순간 뒤에 두 여자애들이 갑자기 아는체를 하더군요. 서로 상견례(?)하고 이야기를 나눠보니 저희 학교 신입생 애들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정말 어리더군요. 아직 젓냄새(?)도 나는듯 하구....(별로 흥미없슴-ㅅ-) 어쨌든, 여자애들은 이야기를 마치자 마자 다시 뻗어버렸고, 전 택시기사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가 그만 실수를 해버렸습니다. 기사님이 전라도 사투리를 쓰시는데, 저의 장난기가 발동했거든요. 어떻게 택시비라도 좀 깍아주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생각에 마치 전라도 후배인 것처럼 행세했는데, 그게 지금도 못잊을 공포의 시작이 될진 정말 몰랐습니다. 깡마르고 머리는 스포츠형인 기사님은 후배인 척하는 하는 저에게 말을 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전에 조폭이었던 자신의 이야길하더군요. 거기까진 좋았는데, 그만 택시를 한강도로로 몰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한마디 하더군요.
"야! 경치 좋지, 워커힐로 가자!"
"예?!"
"제내 따먹자고..크크크. 맛있을거 같지않냐?"
정말 머리를 망치로 맞는 느낌이라는게 어떤 느낌인지 확실히 알게 되더군요.
"워커힐근처에 아는 형님이 운영하는데가 있는데, 거기 가자구. 알겠어? 동생."
- 이런! 개같은 놈!- 이라는 욕이 속에서만 멤돌았습니다. 하지만, 일단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설득을 시켜야만 했습니다.
"형님, 그래도 제내 동생 학교 후배데, 어떻게 따 먹습니까? 한번 봐주시죠?" 순간, 살기 가득한 눈이 저를 노려보았습니다.
"이 개새끼가! 형이 하자고 하면 하는거지, 너 죽고싶냐?" 이 한마디와 함께, 그는 차를 도로변에 세웠습니다. 그리고 저보고 나오라도 하더군요. 그리고, 저를 트렁크쪽으로 오라고 손짓했습니다.내려서 트렁크로 걸어가는 그 짧은 걸음이 저에겐 마치 교수대로 향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무언가가 날아올거만 같았습니다.
"잘 봐라잉!" 하면서 트렁크속을 보여주는데, 이젠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트렁크속에는 삽과 곡갱이 그리고 밧줄같은 연장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순간 제 모든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내가 술만 안취했어도, 괜히 장난만 안쳤어도, 학교앞에서 택시만 탔더라도 이런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몰랐습니다. 전 공포에 뇌조차 얼어버리는 것을 느꼈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살아야 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제 후배들도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그래서, 전 너무도 비굴하게 웃기시작했습니다.
"아따! 형님은 그말도 모르쇼. 거시기 털도 안난 애들 따 먹으면 3년간 재수 없다잖소. 나중에 내가 여대생 소개시켜줄테니께, 그 애나 따먹으쇼." 다행히, 이 한 마디에 그 자식은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아그야, 약속이다잉~" 그러곤 다시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택시에 올랐습니다. 저와 그 자식 사이에 한동안 아무말도 없었습니다. 그 침묵속에서 그 놈이 입을 열었습니다.
"동상, 전화번호가 뭐여?"
전 애써 침착하게 튀어나오는데로 아무 숫자나 불렀습니다. 녀석은 거짓말이면 각오하라는 눈빛으로 전화번호를 입력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필사적으로 핸드폰과 배터리를 분리시키고 있었습니다.
"확인해 볼텡깨, 한번 받아보드라고."
"아, 지금 배터리가 다 되서요...."
"(잠시 노려보며) 거짓말은 아니겠지?"
"그, 그럼요. 헤헤"
"약속은 지키는거다!"
"네, 제가 연락할께요." 3월 말의 상쾌한 밤 공기도, 저에겐 뼈가 시리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제 인생 최악의 시간들 중 하나는 지나가고 여자애들의 목적지인 대공원에 다 다랐습니다. 원래 좀 더 타야되는데, 도저히 탈 기분이 아니라 저도 같이 내렸습니다. 그리고, "동상, 연락혀."란 말과 동시에 녀석은 멀리 사라져갔습니다. 그때서야, 제 울분이 터지더군요. 개새끼! 십새끼! 죽여버릴꺼야! 좃같은 새끼! 전 제가 아는 욕 퍼부우며 절규했습니다. 왠지 눈물이 나더군요. 너무도 무력했던 제가 원망스러웠습니다. 그 무력감과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엄한 벽만 쳤댔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울다 뛰다가, 전 걸어서도 올수 있는 거리를 다시 택시를 타고와야만 했습니다. 택시안에서도 눈물은 멈추질 않더군요.
아, 그 여자애들은 어찌됐나고요. 걔들은 거기서 친구들과 또 한잔 한다고 그러더군요.
그런데, 헤어지면서 한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오빠, 고마워."
단, 한마디 말이었는데 과연 그 여자애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잠만 잤던건지, 아니면 모든 걸 다 알고 있었는지는 지금도 모릅니다. 물론, 걔네들을 학교에서 볼 일은 없었습니다. 서로 얼굴을 기억하기엔 너무도 짧은 만남이었으니까요.
가끔 택시를 타다 제가 겪은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대부분의 기사님들은 그냥 아 그래요? 하는 식으로 넘기시더군요, 그런데 2달전인가
한 택시기사님과 얘길하는데 그 분은 짐짓 놀라시면서, 그러시더군요.
"아, 예전에 그런 놈들이 있었지요. 네가 예전에 아는 놈도 그런 놈이었는데, 그땐 택시쪽으로 많이들 왔거든요. 조폭이라던가, 깡패들이라던가 하는 놈들 말이에요. 그런데, 결국 그놈도 잡혀들어갔어요. 아, 예전에 누구더라? 아 온보현 알아요? 아 그놈이었다. 내가 그놈을 알았었죠. 암튼 그땐, 그런 놈들 많았어요. 지금은 거의 없으니까 안심하셔도 됩니다."
p.s 정말무섭네요 ㄷㄷ;; 제가 직접 쓴 글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