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군인 귀신 (1)

뷁뛣3 작성일 07.08.16 00:5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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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출발해 볼까."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를 따라 페달을 밟았다.

 

장마가 지나고 후덥지근한 날씨에 못이겨 갑작스레 떠난 여행이라 트렁크에 실린 것은 간단한 낚시도구와 세면도구 뿐. 충동적인 여행이라 잔뜩 밀려있는 일 생각에 머리가 지끈 거렸지만, 창문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잡생각도 털어버린지 오래다.

 

얼마 전 근처에 새로 생겼다는 낚시터의 소문을 들었기에 망설임 없이 그곳을 향해 페달을 힘껏 밟았다.

 

 

 

"생각보다 사람이 적은데?"

 

 

 

낙시터는 앞에 큰 강이 있고 그 강을 건너면 산이 있어 그런대로 경치가 좋았다. 근래에 생겼다더니 가격도 싸고 경치도 좋은데 사람이 별로 없었다. 경쟁자야 하나라도 적으면 더 편하고 쉽게 낚시할 수 있으니 상관은 없었지만.

 

그런데 입구 옆에 시선이 멈췄다.

 

작은 돌덩이 무덤 앞에 수 많은 군번 줄이 있는것이 아닌가.

 

나는 신기한 마음에 다가가 군번 줄을 들었다. 이런 곳에 왠 군번 줄?

 

잔뜩 녹슬은 군번줄에 뭐라 적혀있는지 보이지 않아 금방 흥미를 잃고, 찝찝한 마음에 군번 줄을 내려 놓으며 차로 돌아와 1인용 텐트와 휴대용 라디오, 낚시도구를 꺼내들고 자리를 잡았다.

 

한동안 일에 치여 살다보니 머리가 굳어졌는지, 일처리 속도도 느려지고 더운 날씨에 짜증은 짜증대로 쌓이고, 작정하고 쉬자는 생각으로 왔기 때문에 텐트를 치는 손놀림은 가벼울 수 밖에 없었다.

 

 

 

"오늘은 낚시로 밤을 새고, 내일은 바다라도 보러 갈까. 친구들이랑 같이 왔으면 더 좋았으련만."

 

 

 

보통 친구들과 같이 놀러다녔던 터라 혼자 놀러 왔다는 생각에 약간의 어색함을 느끼며 찌를 힘차게 뿌렸다. 그리고는 라디오를 틀어 주파수를 맞췄다.

 

작업 하다보면 심심한 경우가 많아서 보통 라디오를 들으며 하는데 딱히 고정 주파수는 없었다. 재미로 라디오를 듣는게 아니라 무료함을 달리기 위해 듣기 amp#46468;문에.

 

나는 습관처럼 주파수를 아무렇게나 돌려 방송을 찾는데 재밌는 일이 벌어졌다.

 

 

 

"다음 소식입네다."

 

 

 

라디오에서는 북한 특유의 딱딱한 어투로 진행하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간혹 가다 북한 방송이 잡힐 때가 있다는데 나는 처음 겪어 본 일이어서 그런지 몹시 흥미로웠다.

 

딱딱하면서도 약간은 어눌한 말투로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분명 특이했다.

 

재미있는 북한 어투에 빠져있는데,

 

그때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치익! 치익! 여기는 솔방울. 들리는가!"

 

 

 

북한 방송의 주파수를 뚫고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흔치않은 경우였기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라디오에 집중했다.

 

 

 

"치익! 치익! 여기는 현재 남한 군의 진지 앞. 지원 바람!"

 

 

 

그리고는 그대로 낯선 목소리가 사라지고 뉴스가 이어졌다.

 

무슨 전쟁 영화도 아니고, 갑자기 들려오는 낯선 목소리에 나는 피식 웃었다.

 

흔히 라디오 극장에서 해주는 설정극인가. 북한에도 이런 것을 해준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약간 의아했다.

 

뉴스 도중에 라디오 극장을 틀어주나? 방송 사고인가?

 

그렇게 잡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 옆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혼자 왔는가?"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인자한 미소를 짓고계신 아저씨가 보였다.

 

아저씨의 뒤로는 텐트 안에서 이야기 꽃을 피우고있는 아줌마와 여자아이가 있는 것으로 보아 가족끼리 놀러 온 듯 싶었다.

 

아저씨의 질문에 조금 전에 벌어진 일은 금방 지워져 버렸다.

 

 

 

"날씨도 덥고, 답답한 마음에 생각 좀 정리하려고 나왔습니다."

 

"머리 복잡할 땐 낚시가 최고지. 나도 요즘 골치아픈 일이 있어서 이렇게 왔는데, 딸아이가 바닷가 가자고 어찌나 보채던지."

 

"진정한 낚시 맛을 아직 모르는 거죠."

 

"하하.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보통 때 같았으면 냉큼 대답하고 말았겠지만, 혼자 와서 그런지 심심했던 터라 아저씨의 말벗이 되어 한참을 떠들어 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아저씨의 가족과 어느정도 친분이 생겨 막 올린 생선들로 매운탕을 끓여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아이스 박스 통을 들고있는 노인이 나타났다.

 

 

 

"옥수수 좀 먹지 않을텐가?"

 

 

 

매운탕에 밥 한공기 깨끗하게 비운 터라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더군다나 양 많은 옥수수를 식 후 간식 거리로 먹기에는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기분도 좋고 했던 터라 나는 웃으며 지갑을 열었다.

 

 

 

"네 개만 주세요."

 

"혹시 우리 것도 사는건가? 괜찮네. 내가 살게."

 

 

 

아저씨가 지갑을 꺼내며 돈을 지불하려 하자 나는 황급히 말리며 노인에게 값을 지불했다.

 

 

 

"솜씨좋은 매운탕도 얻어먹었는데 이정도는 해야죠."

 

"괜찮대도."

 

 

 

노인은 아이스 박스에서 옥수수를 꺼내 하얀 봉지에 넣어 나에게 건냈다.

 

나는 옥수수를 받으며 노인에게 인사 하며 옥수수를 한족에 놓았다. 시원한 곳에서 뜨거운 옥수수라니, 왠지 어울리지도 않고 그다지 입맛 당기지도 않아 먹을 생각은 없었다. 그저 아저씨 가족에게 대접하는 의미일 뿐.

 

옥수수를 받고 뒷쪽에 신경쓰지 않고 있었는데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아는가?"

 

 

 

계산을 해던터라 당연히 갔겠지 싶었는데 노인이 안가고 말을 건냈다.

 

무슨 할 말이 있나 싶어 노인을 보니 회한에 젖은 눈으로 낚시터 강가에 솟은 산을 보며 말했다.

 

 

 

"여기가 6.25 전쟁터 당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곳이지."

 

 

 

순간 아까전에 보았던 입구의 군번 줄이 문득 떠올랐다.

 

 

 

"그러면 입구에 있던 군번 줄도 여기서 나온 건가요?"

 

"그렇지. 여기에 남한 군 기지가 있었는데 북한군이 습격했다 실패하는 바람에 모조리 죽었지. 입구에 있는 군번 줄은 모두 북한군 것이네."

 

"그렇군요."

 

"이런 곧에 낚시터를 만들다니, 몹쓸 사람들. 위령제도 하지 않았는데, 길 잃은 혼령들을 어찌 감당 하려고."

 

"그게 무슨 말이죠?"

 

"북한 군 혼령들이 아직 저승으로 못가고 있단 말이지. 이곳은 아직 위험해. 그들은 아직도 이곳에 머물고 있어."

 

 

 

노인의 말에 아저씨는 큰 소리로 웃으셨다.

 

 

 

"에이, 영감님도.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걸로 겁주려 하십니까?"

 

"...그렇게 생각하는가?"

 

 

 

노인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발길을 돌렸다.

 

한 마디를 남기며...

 

 

 

"조심하게. 그들은 아직도 이곳이 전쟁터인 줄 알아."

 

"하하하!"

 

 

 

그렇게 영감님은 사라졌고, 아저씨는 웃으시며 잔뜩 겁먹은 딸을 달랬다.

 

아저씨는 장난으로 치부했지만, 나는 웬지 모르게 노인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순간 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치익! 치익! 여기는 솔방울. 들리는가!"

 

 

 

떠올라 버렸다.

 

 

 

'아까 라디오에 들렸던...?'

 

 

 

나는 번개라도 맞은 듯 몸이 떨려왔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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