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날은 저물어 해가 산 중턱에 걸렸을 즘. 나는 미끼를 확인하며 복잡한 머리 속을 정리하고 있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치명적인 일을 겪었기에 나는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내가 지금 낚시를 하는지 마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분명 북한 방송 중에 끼어든 말은 무전을 보내는 북한 군의 메세지였다.
그것도 노인이 말한 6.25 전쟁 당시, 남한군 기지 습격을 바로 앞에 둔 북한 군의 상황과 너무도 흡사했다.
너무도 오싹한 기분에 머리가 복잡했던 나는, 더 이상 낚시에 집중 할 수 없을 것 같아 텐트 안에 들어가 문만 반쯤 열어 놓은 채 라디오를 틀고 낚시대를 확인했다.
산이라 그런지 날은 너무도 빨리 저물었고, 저문 해와 같이 흥분된 나의 마음도 어느정도 차분해 지는 듯 했다.
"오랜만에 나와서 그런가? 몸이 찌뿌둥 하구만. 나는 먼저 쉬겠네."
아저씨는 가볍게 스트레칭 하며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노인의 말은 안중에도 없나보다. 나는 뒤숭숭한 마음에 낚시대도 잡지 못했는데 말이다.
짙게 깔린 검은 융단 위로 모래알처럼 퍼져있는 별조각은 나의 마음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산 계곡을 흐르는 강물 소리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소리가 어울린 합주에 경직된 나의 몸이 풀려갈 때 쯤 악몽 같은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치직! 치직!
분명 기분을 전환하기위해 맞춰돈 FM고정 주파수임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레 들려오는 노이즈 소리에 나는 오래된 고목처럼 그자리에 굳어버렸다.
"치직! 치직! 여기는 솔방울. 응답하라!"
이게 무슨 해괴한 일인가.
노인의 말대로 여기서 죽은 북한군 혼령들의 장난인 것일까?
사람이 장난치는 것이라면 귀신 복장을 한채 한 번 놀래키고 웃어넘겼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정도로 나는 겁에 질려 있었다.
나의 마음이 어떠고 간에 무전은 계속 되었다.
"치직! 치직! 현재 남한 군 진지 앞에 매복 중. 날이 저물었으니 공습을 시작하겠음. 치직!"
고작 무전 음이었지만 나를 쇼크 상태로 몰아가기에는 충분했다.
너무도 기분 나쁜 무전음에 라디오를 내팽겨 치듯 전원을 꺼버렸고, 너무도 무서운 마음에 실례를 무릅쓰고 아저씨와 얘기를 해볼까 텐트 밖으로 몸을 나서는데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낚시터 앞에 강이 있고 그 앞에 큰 산이 있었는데 그 거리는 꽤나 가까웠던터라 산의 정산까지 모두 보일 정도였다.
그 산 정상에 부근에 황색의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분명 사람의 모습 같았다. 아니,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것도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이 입었던 황색의 전투복.
황색의 전투복을 입은 인영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산을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순간 나는 차를 몰고 도망가야겠다고 생각만 할 뿐.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텐트 문을 닫고 한정된 공간안에서 사시나무처럼 몸을 오들오들 떨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 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헛것을 본 것 같았다.
노인의 말에 너무 신경쓴 탓인지 왠 야밤에 북한군 귀신이 나타나겠는가. 요즘 세상에 귀신이라니. 더군다나 나는 그 흔한 가위조차 눌려보지 못한 터라 헛것을 본것이라 굳게 믿으며 찬송가를 부를 때, 나의 믿음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치직! 치직! 남한 군의 진지가 보인다. 치직! 보초가 없는 것으로 보이니 파란색 진지부터 노리겠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분명 눈 앞에서 전원 꺼진 라디오로 들려오는 무전 음에 그토록 부정하던 것이 실제상황이라는 것으로 극명히 드러났다.
'파란색 텐트라면... 아저씨 가족!'
내 텐트는 녹색이었고, 옆에 낚시하던 아저씨의 텐트는 분명 파란색이었다.
사람 마음이 어찌나 간사한지, 금새 친해져 이것저것 얘기하던 아저씨가 먼저걸렸단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 자신을 부정하고 싶었다.
지금 귀신에 홀린 것이 분명하지만 귀신이 사람 죽인다는 말은 들어 본 적도 없고 본 적도 없었기에 지금 벌어지는 끔찍한 상황이 어서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강물 흐르는 소리만 들릴 뿐 너무 조용해서 나는 공포를 무릅쓰고 텐트 문으로 다가가 지퍼를 조금 열어 밖의 동향을 살폈다.
아저씨네 텐트가 보이는 순간 나는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텐트 안에 랜턴을 켜놨는지 텐트 안에 삼 가족의 실루엣이 보였는데 랜던이 비추고 있는 쪽에서 검은 그림자가 나타나 텐트로 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의 두 눈은 밖으로 튀어 나올 듯 커졌고 밖으로 빠져나오라는 외침의 입가에서 맴돌 뿐 나는 쇼크 상태로 그 모습을 지켜 볼 수 밖에 없었다.
검은 그림자가 텐트에 다가서고 실루엣이 합쳐질 때 랜턴이 꺼지며 아저씨네 텐트에서 비명소리도 들리지 않고 고요해졌다.
나는 조그만 구멍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며 어떻게 된 일인가 조마조마 하고 있을 때 아저씨네 랜턴이 켜지며 드러나는 실루엣에 머리카락이 쭈삣 섰다.
랜턴이 내 쪽으로 방향이 바꾸어 비춰지며 북한 군의 실루엣이 나를 정면으로 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오른손에 한 덩어리, 왼손에 두 덩어리를 든 채로.
순간, 북한군의 손에 들려있는 것이 아저씨네 가족의 머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고, 눈앞에서 목격하고 나니 오히려 뻣뻣해진 몸이 풀리며 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텐트를 뛰쳐나와 내 차로 부리나케 달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맨발에 돌길을 달려 순식간에 피칠갑이 되었지만 그 고통도, 그 상황도 인지할 수 없었다. 그저 살기 위해선 무조건 이곳을 벗어나야 겠다는 생각 뿐이 없었다.
나는 차에 도착하자마자 문을 열고 들어가 차키를 꼿아 시동을 걸고 무작정 밟았다.
어딜가던 이곳을 벗어나야한다. 이 생각이 나의 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낚시터 입구에 당도에 지나가는 순간 북한 군 군번 줄이 있던 무덤에 군번줄이 사라져 있다는 것을 보고는 더욱 오싹해졌다.
좁은 산길에서 무작정 밟아 엄청난 속도로 벗어나는 그때 우측 코너를 앞두고 옥수수를 팔던 노인이 서있은 모습이 들어왔다.
순간 나는 급히 차를 멈추며 창 밖으로 소리쳤다.
"도망치세요! 북한 군이... 북한 군이..!"
"쯧쯧, 또 희생자가 생겼구만. 그러게 위험하다 했거늘..."
노인의 말을 보아 일전에도 이런 일이 벌어진 듯 했다.
실제로 귀신따위가 존재했다니, 바로 면전에서 목격하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몇 십년 전 전쟁터에서 죽은 혼령이 사람을 죽이다니. 아직도 자신을 향해 머리 세통을 들고 서있던 북한군의 실루엣이 선명하다.
평소 같았으면 노인을 태우고 얼른 도망갔겠지만, 패닉상태에 있던 터라 나는 달관한 듯 한 표정의 노인을 냅두고 그대로 출발해 버렸다.
노인은 낚시터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대들의 마음이 그렇게 해서라도 풀릴 수 있다면 어찌 말리겠소..."
나는 노인을 뒤로하고 금방이라도 머리 통을 든 북한 군이 amp#51922;아올까 엑셀이 부숴저라 밟았다.
골목 끝에 오른쪽 코너를 돌아 낚시터 영역을 벗어날 때 오른쪽 아래 무언가 반짝였다고 느껴졌다.
골목을 돌며 반짝인게 무엇인가 싶어 고개를 돌려 보니 낚시터를 보고있는 노인의 옆에 있는 경사진 면에 황색 전투복을 입은 북한군이 왼손에 짧은 단도를 든 채 나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낚시터 옆 무덤에 있던 녹슨 군번줄을 단 채.
집이 경기도 외곽 쪽이다 보니 주위에 산이 많아서 문득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북한군 귀신이 나옴 무섭지 않을까해서...
직접 글로 적고나니 서둘러 끝내야 생각 뿐이 않나더군요. 마무리 안 짓고 시간끌면 내 망상에 젖어 괜히 가위 눌릴 것 같아서....
내가 더워서 무서운 이야기 쓰면 시원할까 싶어 글을 쓰는데 산을 타고 내려오는 북한군 망령의 생각에 오히려 땀 범벅이 되더군요. 아 괜히 뻘짓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