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사라졌다. 지금 방송에서는 난리도 아니다. 아니, 방송뿐만 아니라, 신문이나 인터넷과 같이 정보를 전달해 주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달의 실종만이 흘러나온다.
이유는 불명. 그냥 갑작스럽게 사라진 것이다. 아무런 조짐도 없이,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가운데, 달이 사라졌다. 덕분에 모든 사람들의 관심은 달의 실종으로 쏠려있다.
하지만, 나는 흥미가 없다.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달이 실종된 일이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가? 생각해보면 아무런 관련도 없다. 조수 간만의 차가 없어진다고? 나는 내륙지방에 살고 있다. 생태계가 교란된다고? 나는 잡식성이다. 뭐든 잘 먹는다. 밤이 더욱 어두워진다고? 가로등이 있으니 상관없다. 늑대인간이 곤란해진다고? 이건 뭐….
나에게 있어서 달의 실종이란, 이번 달에 받은 핸드폰 요금 고지서보다도 덜 충격적인 사건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달이 실종된 시간이 한국 시간으로 아침 9시이어서 달이 사라지는 순간을 보지 못했다는 정도? 그것 이외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다.
세사에 찌들려 극도로 현실적이 되어버린 나에게 충격을 주기에는, 달의 실종이란 사건은 너무나도 임팩트가 작았던 것이다.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피식 웃었다. 세상에… 달이 사라진 것이 임팩트가 작다고 한다면, 나에게 충격을 줄 사건이 있기나 할까?
나는 고개를 흔든다. 아마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세상을 알아버렸으니까. 왜냐하면, 나는 현실을 알아버렸으니까.
그래…, 이런 세상에서는 꿈을 꾸는 것은 잠을 잘 때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아아…. 나는 너무 염세적이게 되어버린 것 같다. 이런 생각은 시간 낭비이다. 차라리 이럴 시간에 아르바이트 자리나 찾아보자.
나는 고개를 흔들며 아르바이트 정보지를 펼쳤다.
--그리고 화요일, 화성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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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화성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알게 된 것은 오늘 아침이었다. 오늘 아침 별 생각 없이 신문을 펴보니 1면에 큰 기사로 나와 있었다.
화요일인 어제, 한국 시간으로 아침 9시에 화성이 사라진 것이다. 원인은 이번에도 역시 불명. 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징후도 없이 갑자기 화성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저께는 달이 사라지더니, 이번에는 화성이라…. 그렇다면 이제는 달 토끼와 화성인을 만나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실소한다. 그러고 나서 전 세계인을 놀라게 한 개구쟁이 2명의 가출 사건을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 버렸다.
어제도 말했지만 이런 건 나에게 아무런 관심도 끌지 못한다. 그저 졸릴 뿐이다. 그래, 차라리 낮잠이나 자자.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수요일, 수성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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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이 사라졌다. 원인은 불명. 이번에도 역시,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자기 사라졌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이쯤 되면 아무리 나라고 하더라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3번이다. 벌써 3번째나 같은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사건. 이상할 정도로 불가사의한 사건이다. 누군가의 힘이 개입된 것일까? 외계인의 짓? 아니면 인간을 벌하기 위한 신의 경고? 그것도 아니면….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생각을 커트한다.
어차피 내가 여기서 궁리를 해보아도,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해결책이 나올 거라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이런 건 보다 높으신 분들, 정치인들이나 과학자 같이 나와는 계급부터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면 되는 것이다.
뭐…, 적재적소라는 말이다. 나는 지금까지처럼 아르바이트 자리나 찾고, 그 사람들은 지금까지처럼-정치인들은 오랜만일 테지만- 머리를 굴려 해결책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진행되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 나답지 않게 그런 일로 골머리를 썩이는 것보다는, 아르바이트 자리나 하나 더 찾자. 그러는 편이 보다 현실적이고, 나를 위해서도 더 좋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흔든 뒤, 아르바이트 정보지를 펼쳤다.
--그리고 목요일, 목성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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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마다 하나씩 행성들이 사라져간다.
그 사실을 알고 나에게 느껴지는 것은, 공포가 아닌 답답함…. 물론 공포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이래봬도 하루에 하나씩 행성이 사라지는 것이다. 평범한 인간인 내가 공포를 느끼지 않을 리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알 수 없는 힘에 의해서 행성들이 사라져간다는 공포보다, 그 알 수 없는 힘을 내가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큰 절망감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절망감은 나에게, 이미 잊어버렸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던 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분했다…. 너무나도 분했다…. 내가 알 수 없는 곳에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이 세상의 룰을 정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분했다. 나는 어째서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는 거지? 나는 어째서 한 세계를 만들고, 그 세계의 룰을 정할 수 없는 거지? 어렸을 때 자신에게 수십 번, 수백 번 되물었던 물음들이 다시 한 번 솟아올라 머릿속에서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었다.
“야, 뭘 그렇게 생각해.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러 기냐?”
문득, 친구의 말에 상념에서 깨어나 주위를 둘러본다.
여기는… 카페이다. 역 앞에 위치한 조그마한 카페로, 싼 가격에 비해 커피 맛이 좋아 가끔씩 애용하고 있는 곳이다.
“뭘 그렇게 생각 하냐니까?” “아… 미안, 잠시 생각할게 있어서.”
친구의 책망어린 말에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한다. 아무래도 상념이 길어진 탓인지, 친구들의 말을 잠시 무시했던 모양이다.
“에휴, 됐다. 됐어. 내가 너에게 뭘 더 바라냐, 이렇게 나와 준 것만 해도 어딘데.” “하하하….”
나는 난처한 웃음을 흘리며 친구들과의 대화에 집중을 했다.
오늘은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난 날이다. 모인 애들은 나까지 포함해서 5명. 모두 고등학교 때 친구들로서,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악연이 지금까지 유지되는 것이다.
옛날에는, …아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뻔질나게 만나서 놀러 다녔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나서, 날마다 소주를 깠던 것이다.
하지만 근래에는 거의 만나보지 못했었다. 나 때문이다…. 최근에 나의 사정이 좋지 않아서, 만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해서인지 나와 4명과의 사이는 서먹서먹해졌었고, 얼마 전에는 연락마저 거의 끊긴 상태였다.
그러던 것이, 어제 나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었다. 오랜만에 만나자는 한 녀석의 연락이었다.
나는 한동안 만나지 못해 얼굴들이 그리웠고, 연락을 자주 못한 것이 미안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승낙을 했었다. 하루정도는 아르바이트를 빼먹어도 괜찮을 듯했고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우리들 5명은 커피숍 안에서 옹기종기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다. 사실 우리들이 만나면 거의 술집으로 직행이지만, 시간이 조금 일렀고 오랜만에 만난 것이니 맨 정신으로 이야기나 조금 하다 가자고 해서, 이렇게 커피숍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농담을 들은 탓인지, 아직 남아 있는 서먹서먹함을 날려버리기 위함인지, 모두들 큰 소리로 웃는다.
그리고… 침묵한다.
“……” “……” “……”
길게 이어지는 침묵. 서로가 서로의 시선을 피한다.
“……” “……”
방금 전의 그 말로 인해… 다른 녀석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알 수 없다…. 아니, 알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 “……”
그것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들을 둘러싼 세상은 깨져버리니까….
“만약… 그렇게 되면, 우리는 모두 죽네.” “……” “……”
아아… 말.해.버.렸.다.
한 녀석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의 말. 쏟아진 한줄기의 말은 총알이 되어, 각자의 가슴을 파고든다.
행성. 실종. 일요일. 태양. 그리고… 죽음. 몇 개의 키워드. 그것들이 가지는 의미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컸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한 녀석의 비명. 그것을 시작으로, 우리는 모두 미쳐가기 시작했다.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다고!!” “말도 안 돼. 이런 건, 말도 안 돼. 웃기지마. 이런 게 사실일리가 없잖아.” “살려줘!! 살려줘!! 잠깐 말도 안 돼!! 으아아아아아아아!!!” “죽고 싶지 않다고오오오오오!!!!!!!!!!!!!!!!”
순간적으로 터져 나오는 비명들. 냉철하다고 생각하는 나조차도, 손이 덜덜 떨리고 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당연하다. 여기는 카페이다. 이렇게 소란을 피우면 안 되는 것이 당연하다. 실제로 점원을 보니 수화기를 들고 있다. 신고하려는 것일까?
“일요일에… 일요일에 태양이 사라져버려!! 태양이 사라져버린다고!! 안 돼!! 안 돼!!” “저… 저 바보!!”
나는 한 녀석의 비명소리에 놀라 소리쳤다. 바보 같은 놈. 그런 것을… 그런 것을 말해버리면….
나는 그 녀석의 말을 수습하기 위해서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사람들의 굳어진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슴속에 뭉쳐있는 응어리를 내뱉기 위해서,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이 막막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서,
나는 소리를 질렀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나의 마지막 발악.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 미미한 수준이지만, 작은 저항이지만,
나는 세상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렇게… 어느 정도 소리를 지르고 있었을까? 가슴 속의 답답함이 약간이나마 사라진 것이 느껴진다.
내가 내뱉은 소리뭉치와 함께 하늘로 흩어진 걸까? 꽉 막힌 가슴속에 내가 지른 소리로 인해 약간의 구멍이 생긴 것일까?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가슴속 답답함과 함께 깊었던 절망감이 사라졌다는 것. 그리고 이대로 주저앉아 멈춰있으면 안 된다는 것.
움직이자. 그리고 행동하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 죽도록 발악해보자. 이 세상에 널려 있는 가능성을 찾는 것이다. 나에게 닥친 상황이 너무나 암울한 것이라도, 빠져나갈 일말의 가능성은 존재할 것이다. 그것을 찾자. 그리고 붙잡아, 절대 놓치지 말자. 그래, 해보는 것이다.
“……”
그렇게 생각하니, 약간이나마 마음속에 여유가 돌아오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입가에는 작게나마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모두가 절망에 빠져있는 이 상황에서 나만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만이 해결책을 찾으려는 것이다.
나는 위대하고, 다른 사람들과 달리 특별하다. 하하하, 웃음마저 나온다. 이제부터이다. 이제부터 무기력한 나는 사라지고, 새로운 내가 태어나는 것이다.
할 일은 정해져 있다. 그것은 이 세계에 닥친, 대재앙에서 살아남는 것. 중요한 고비는 일요일. 정확하게 말하면 모레 아침 9시이다. 대비할 시간은 아직 하루가 남아있다. 충분하다. 오늘은 일단 집으로 돌아가자. 준비해야 하는 것을 찾고, 앞으로의 일을 계획하자.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발버둥을 쳐보자.
--나는 살아남을 것이다.
나는 집 앞까지 걸어갔다. 아까 전에 달릴 때 무리를 해서인지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거기다가 넘어질 때 생긴 아픔이 아직까지 몸에 눌어붙어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그런 건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바빴기 때문이다.
나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TV를 켰다. 어째서냐고? 어떤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네모난 TV박스 안에서는 아나운서 한명이 뉴스를 전하고 있었다.
지루한 내용. 내가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채널을 돌리지 않고 끈기 있게 뉴스를 봤다.
그리고… 마침내 뉴스가 잠시 멈추고, 다급한 목소리의 아나운서가 내가 원하던 소식을 전해주었다.
“속보입니다. 한국시간으로 오늘 아침 9시에 금성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금요일, 금성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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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토요일. 태양이 사라지는 것을 대비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다.
나는 잠에서 깨자마자, 외출할 준비를 시작했다. 내일을 대비하기 위하여 준비할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구해야할 물건들의 목록은 어제 정해 놨다. 앞으로의 계획도 몇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둔 채 이미 세워 놨다. 이제 남은 것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뿐이다.
나는 외출 준비를 끝마치고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은 이미 점심때를 훌쩍 지나 오후에 다다르고 있었다. …오전 9시는 이미 지나가버린 지 오래이다…. 어젯밤에 이것저것 생각할 것이 있어 잠을 늦게 자서인지, 늦잠을 자버린 것이다.
토성은 사라졌을까…? 알 수 없다. 아니… 알고 싶지 않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토성의 실종 여부는 인터넷만 잠시 검색 해봐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그곳에 집중되어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의 준비란 살아남기 위한 준비이다. 토성의 실종을 확인하는 것은 모든 준비를 끝마친 후이다.
두고 봐라… 반드시 살아남고 말테다.
나는 다시 한 번 결의를 다진 뒤, 현관문을 박차고 나섰다.
약간은 비좁은 듯한 통로를 지나 계단으로 걸어간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통로형 아파트이다. 물론 이 아파트는 내 소유가 아닌, 친척에게 잠시 빌려서 살고 있는 것이다. 나의 열악한 자금 사정을 알고 있는 삼촌이 관리비나 낼 수 있을 정도의 굉장히 싼 가격으로 빌려주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이런 아파트에서 살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나는 걸음을 조금 빨리하여 계단을 내려갔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3층. 엘리베이터를 타기에도 뭐하고, 안타기에도 뭐한 층수이다. 나는 기다리는 것이 귀찮아서 보통은 안타는 편이다.
1층으로 내려간 나는 유리로 된 현관문을 밀고 밖으로 나갔다. 약간은 후덥지근한, 하지만 신선한 공기가 나를 맞이해주었다. 나는 구해야할 물건들을 다시 한 번 머릿속에 떠올린 뒤, 걸어갈 방향을 정하기 위하여 대강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세상이… 세상이… 불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는 손바닥으로 양 볼을 찰싹 찰싹 때렸다. 그러한 일련의 행동을 반복한 뒤, 나는 어느 정도 정신을 추스를 수 있었다. 정신을 되찾은 나는 다시 한 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불타고 있는 것은… 세상이 아니었다. 불타고 있는 것은… 저 멀리 보이는 산이었다.
나는 망연자실해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어째서… 산이 불타고 있는 거지?
꽈장창!
그때 갑자기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주위에서 들려왔다. 나는 깜짝 놀라며 살짝 움츠러들었다. 유리창이라도 깨진 걸까…? 나는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딱히 변화는 없었다.
바닥에는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쓰러진 나무에서 나온 가지들과, 부서진 건물에서 나온 파편들과, 파괴된 자동차에서 나온 잔해들로 뒤덮여 있었으니까 말이다. 여기에 깨진 유리창에서 나온 유리조각이 추가된다고 하더라도 딱히 변하는 것은 없다.
그래… 세상은… 이미 미쳐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일요일에 세상이 멸망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일요일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단 하루다. 단 하루 만에 세상이 이렇게 변해버렸다…. 아무런 낌새도 없이, 아무런 대비도 못 한 채로 세상이 180° 반전돼버렸다.
“우으….”
멍하니 있던 나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이것은… 분명 누군가의 신음 소리이다.
나는 멍한 머리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소리가 들려온 곳을 찾았다. 소리가 난 곳은 아파트 입구였다. 그곳에서 어떤 사람 한 명이 비틀거리면서 걸어오고 있었다. 아마도 저 사람이 낸 소리인 듯하다.
약간 거리가 있어 정확하진 않지만 다리를 다친 것일까, 그 사람은 한쪽 발을 땅에 끌며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니, 다친 곳은 다리뿐만이 아닌지 그 사람의 걸음걸이는 심하게 위태로워보였다. 마치… 한 발을 내딛는데 남아 있는 모든 힘을 다 쓰는 듯이 보였다.
“도… 도와… 주….”
갑자기 그 사람이 내 쪽을 바라보면서 손을 뻗는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일까, 심하게 흔들리는 그 사람의 손과 폐부에서 쥐어짜낸 듯한 그 사람의 희미한 목소리가 어우러져 처절하게 느껴진다.
“자… 잠깐만 기다리세요. 그쪽으로 갈게요.”
나는 그렇게 외친 후, 그 사람의 곁으로 다가가려고 했다.
그때, 그 사람의 뒤에서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비틀거리는 저 사람을 도와주려는 것일까? 다행이다. 솔직히 나 혼자만으로는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방금 나타난 사람들은 부목으로 쓸 것인지, 기다란 막대기를 들고 비틀거리는 사람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막대기를 두 손으로 부여잡고, 비틀거리는 사람의 머리를 후려쳤다.
퍽!
무언가가 깨지는 비현실적인 소리가 들린다.
쿵!
마치 물먹은 통나무가 쓰러지는 듯한 무거운 소리가 들린다.
…!? 어라…. 뭔가… 이상하지 않나….
어째서… 저 사람이 쓰러지는 거지…. 어째서… 쓰러진 저 사람에게 막대기를 내려치는 거지…. 어째서… 쓰러진 저 사람은 나를 향해 손을 뻗는 거지…. 어째서… 뻗어진 저 손이 힘없이 땅으로 가라앉는 거지….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세상이 미쳤다면… 미친 세상의 구성원인 인간들도 미치는 게 당연하다는 것을….
나는… 무엇으로부터 살아남아야하는 것일까…. 그것은… 세상으로부터인가. 아니면… 인간으로부터인가. 나는 지금까지…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 순간, 쓰러진 사람에게 일방적인 구타를 하고 있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 사람들은 각자의 얼굴을 마주보고 잠시 대화를 하더니,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것을 보고 나는 깨달았다. 도망쳐야한다. 아니면… 죽는다.
재빨리 아파트 현관으로 달려 들어간다. 계단을 목표로 1층 통로를 달려간다. 엘리베이터는 안중에도 없다. 계단에 도달했을 때 뒤에서 아파트 현관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들이다. 계단을 타고 죽자 살자 뛰어 3층으로 올라간다. 문득 아래를 내려다보니, 1층에 있는 그들과 눈이 마주친다. 3층에서 다시 통로를 지나 우리 집 문 앞까지 달려간다. 미리 꺼내둔 열쇠를 열쇠구멍에 집어넣는다. 손이 덜덜 떨려서인지 자꾸만 엇나간다. 그들의 위치는… 이미 3층에 올라와있었다. 간신히 열쇠로 문을 따고 안으로 들어간다. 들어가자마자 곧바로 문을 잠그고 걸쇠를 건다. 그리고… 벽에 기대어 쓰러진다.
살았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셨다.
쾅쾅쾅! “문 열어!”
그러나… 그 순간 들려오는 고함소리. 그들이다. 그들이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리며 고함을 지르고 있는 것이다. 점점 그들이 두들기는 소리가 커진다. 문이 부서질 듯 마구 흔들린다. 동시에 나의 몸도 마구 떨린다.
그들은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목격자를 해치우기 위해서인가?
아니, 아마… 아닐 거다…. 그들은 단지… 사람을 죽이는 것이 목적일 것이다. 몇 번 마주친 그들의 눈빛이 그렇게 말해주었었다.
내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있자, 그들은 지쳤는지 현관문이 잠잠해졌다. 그들이 돌아간 것이다.
“하하하… 하하하하….”
나는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웃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아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
한 번 웃게 되자 그야말로 웃음이 봇물 터지듯 새어나왔다.
“아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
그야말로 미친 듯이 웃었다. 이런 미친 세상은 웃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 이런 미친 세상은 미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
…그러다 문득 나는 한 가지 사실이 궁금해졌다.
나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으며 컴퓨터의 전원을 올렸다.
지루한 로딩 시간이 지나간 후, 간단한 조작으로 인터넷 검색창을 띄었다.
따닥따닥 경쾌한 타자 소리와 함께 화면에는 몇 가지 단어들이 써졌다.
가볍게 눌린 엔터와 함께, 화면에는 검색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나는 웃었다.
“아하… 아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토성은… 사라져있었다.
--그리고 토요일, 토성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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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일요일이 찾아왔다….
나는 눈을 떴다.
알람을 맞춘 것은 아니지만, 저절로 잠에서 깨어났다.
--시간을 확인하니, 8시 00분. 태양이 사라지기 60분 전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간단히 샤워를 하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8시 20분. 태양이 사라지기 40분 전이다.
일어나자마자 샤워를 해서인지 출출해진 나는 토스트를 구워서, 잼을 발라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아침이어서 그런지, 그런대로 맛있었다.
--시간을 확인하니, 8시 40분. 태양이 사라지기 20분 전이다.
배가 불러 기분이 좋아진 나는 베란다로 나가, 의자를 얹어놓고 그 곳에 앉았다. 하늘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시간을 확인하니, 8시 44분. 태양이 사라지기 16분 전이다.
앞으로 얼마 후면 태양이 사라질 것인데도 불구하고, 하늘은 여전히 맑았다. 태양이 사라지면, 아마도 저런 맑은 하늘은 다시는 볼 수 없을 테지…. 나는 아쉬움을 가득 담은 채로 파란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태양이 사라지는 예상 시간은 한국 시간으로 아침 9시이다. 이미 사라진 다른 행성들이 모두 아침 9시에 사라졌으므로 아마 틀림없을 것이다.
행성들이 아침 9시에 사라지는 이유는 정확하진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추측하기로는 세계표준시간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즉, 세계표준시간으로 자정이 지나서 요일이 바뀐다면, 바뀌는 요일에 해당되는 행성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월요일에는 달이, 화요일에는 화성이 사라지는 형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한국의 시간은 세계표준시간에서 9시간이 더해지므로, 세계표준시간을 기준으로 요일이 바뀌는 순간 한국에서는 아침 9시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아침 9시에 행성들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뭐… 아무튼 중요한 것은… 태양은 오늘 9시에 사라진다는 것이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말이다….
나는… 이미 저항하는 것을 포기했다. 아니, 저항하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 보다 옳은 말일 것이다. 태양의 실종은 연약한 인간에게 있어 너무나도 커다란 폭력이다. 한낱 인간인 내가 그것을 막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나는 어제의 일로 그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나에게 남은 마지막 방법이라 한다면, 그것은… 기다리는 것. 태양이 사라지지 않기만을 기원하면서, 오늘 아침 9시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 그것뿐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유일한 가능성이다.
유일한 가능성이라….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삐 삐 삐 삐
그렇게 얼마나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갑자기 손목시계에서 알람이 울렸다. 아까 전에 미리 맞춰 논 것이 울리는 것이다.
--시간을 확인하니, 8시 59분. 태양이 사라지기 1분 전이다.
이제 1분 후면 세계가 멸망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당장이라도 세계가 점멸하고, 나는 정신을 잃은 뒤 침대에서 눈을 뜰 것만 같다. “아! 꿈이었구나!”라고 안도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이다. 그런 만화 같은 일이 일어날리 없다.
--시간을 확인하니, 8시 59분 30초. 태양이 사라지기 30초 전이다.
죽음을 눈앞에 두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고 했나. 갑자기 여러 가지 일들이 생각난다. 즐거웠던 일… 슬펐던 일… 후회됐던 일…. 그 중에서도 후회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만약… 만약에 나에게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한 번만 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다시는 후회될 일들을 만들지 않을 텐데…. …하지만, 이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없다….
--시간을 확인하니, 8시 59분 45초. 태양이 사라지기 15초 전이다.
남은 시간은 드디어 15초. 태양이 사라질 때까지, 세상의 종말이 찾아올 때까지, 15초가 남았다. 이제 15초 후면, 이 세상은 암흑으로 뒤덮이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지구는 죽음의 행성이 되는 것이다. 아아… 상상만 하더라도 무섭다. 두렵다. 인류가 멸망하는 것이다…. 내가 죽는 것이다….
--시간을 확인하니, 8시 59분 55초. 태양이 사라지기 5초 전이다.
이제 남은 시간은 5초. 나는 시계의 초침에 눈을 고정했다. 태양이 사라지는 순간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 이다.
이제 남은 시간은 4초. 긴장과 두려움에 의해서 가슴이 두근거린다. 손바닥에는 이미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다.
이제 남은 시간은 3초.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다. 아직 태양은 존재한다. 아직은 말이다..
이제 남은 시간은 2초. 2초 후면 태양이 사라진다. 무섭다. 두렵다. 달아나고 싶다. 하지만… 달아날 곳이 없다.
이제 남은 시간은 1초. 눈에 힘을 주며, 시계를 바라본다. 온몸이 긴장되어 오감이 확장되어서인지, 초침의 작은 움직임마저 느껴진다. 1초가 1분 같고, 1초가 한 시간 같다. 이것이 바로, 제논의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패러독스라는 것일까…? 마치 이대로라면, 아침 9시는 영원히 오지 않을 듯한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시간을 확인하니, 9시 00초.
세상은 암흑에 휩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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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눈을 떴다.
약간 열린 눈꺼풀 사이로 밝은 빛이 비집고 들어온다.
“이… 이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나는 당황하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맑은 하늘. 하늘은 아직까지 파란 빛을 간직하고 있다.
태양은 어디 있지? 나는 미친 듯이 태양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환하게, 세상에 빛을 흩뿌리면서 빛나고 있는 태양을.
시간을 확인하니, 9시 02분. 태양이 사라져야 되는 시간에서 2분이나 지났다. 하지만 태양은 아직 존재한다. 그렇다. 태양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사라지지 않았다.
방금 전 세상이 암흑에 뒤덮인 것은, 단지 내가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웃음이 나온다. 아니, 웃을 수밖에 없다. 태양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살았다. 우리 인류는 살았다. 살아남은 것이다. 달이나 다른 행성들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그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태양만 사라지지 않는다면, 나만 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 딴 행성은 수십 개, 수백 개가 사라진다고 해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태양은 사라지지 않았고, 우리는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으오오오오오오오오!!!!!!”
나는 크게 웃으면서, 큰 함성을 질렀다. 우리는 살아난 것이다. 살았다. 살았다. 살았다. 살았다. 살았다. 살았다. 살았다. 하하하하하하. 우리는 살아난 것이다. 태양은 사라지지 않았고, 우리는 살아남았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살았다. 살았어.
태양이 사라질 것을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 인류가 멸망할 것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태양은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살아남은 것이다.
“하하하하하하하하!!!!!!!! 우리는 살았다!!!!!!!! 하하하핫.”
나는 기쁨에 겨워, 태양을 바라보았다. 태양은 강하게 빛나면서, 영롱한 태양빛을 세상으로 흩날리고 있었다.
아름답다. 미치도록 아름답다. 아름다운 태양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저렇게 아름다운 태양을 향해, 큰 환호성을 질러보고 싶어졌다. 아까 웃으면서 내뱉은 함성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훨씬 더 큰 소리로 말이다. 가능하다면 태양에서조차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말이다.
좋아 해보자. 나는 큰 소리를 지르기 위한 준비를 했다. 우선 손을 깔때기 모양으로 모아, 입으로 가져간다. 그런 다음 큰 소리를 지르기 위해서, 숨을 약간 들이마신다. 그리고…
--그 순간, 세상은 암흑에 휩싸였다.
“!!??”
나는 당황했다. 갑자기 누군가가 방안의 불을 꺼버린 듯, 갑자기 누군가가 커튼을 쳐버린 듯, 온 세상의 빛이 사라졌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검은 하늘. 그리고 그런 암흑의 세계에 촘촘히 박혀있는 수많은 빛 무리들.
별이다. 도저히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수의 별들이, 하늘에 새겨져 있었다.
나는 순간 어떤 예감이 들어, 태양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태양이 존재하지 않았다.
어째서 이지…? 태양이 사라진 건가? 하지만 왜!!?? 방금 전만 해도, 9시가 지났는데도 태양은 계속 떠있었는데!! 어째서야!! 어째서냐고!!?? 어째서냐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9시가 지났잖아. 태양이 사라지는 것은 9시이잖아. 우리는 9시만 무사히 넘기면 되는 거였다고. 규칙이 틀리잖아. 룰이 다르잖아. 룰을 준수하라고!!
말도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이유가 뭐야. 원인이 뭐야!!??
나는 순간적으로 패닉상태에 빠져들었다. 머릿속에서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복잡하게 뒤엉켜졌다.
수많은 가능성.
여러 가지 원인.
알 수 없는 변수.
카오스적인 요소.
“아!!!!!!!!!!”
그 순간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닫는다.
그것은 간단한 사실이다.
이 세상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는 간단한 상식이다.
그것은…
……
…
태양빛이 지구에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8분 19초.
그래… 태양은 이미 8분 19초전에 사라졌다는 것을….
아아… 태양이 사라졌다.
--그리고 일요일, 태양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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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온도계를 바라보았다.
1℃가 떨어진다.
아직은 괜찮다. 보일러를 가장 높은 온도로 설정해놓았고, 집에 있는 전기난로를 틀어놓아서인지 아직까지는 추위를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더울 정도이다.
1℃가 떨어진다.
하지만 난로를 끄거나, 보일러의 온도를 낮추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지금 느끼는 이 따뜻함이 내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맛보는 온기가 될 테니까….
1℃가 떨어진다.
나는 살짝 몸을 떨었다. 아직 온도는 높다. 추위 때문은 아니다. 두려움 때문이다.
1℃가 떨어진다.
미칠 것 같다. 무섭다. 두렵다.
1℃가 떨어진다.
1℃가 떨어질 때마다, 약간씩이나마 추위가 느껴질 때마다, 나의 심장은 미칠 듯이 요동친다.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제 우리 인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1℃가 떨어진다.
알 수 없다…. 알고 싶지 않다….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느낄 공포가, 너무나도 두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