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수님 얘긴 결국, "학계는 내 편이다' 라는 것이군요.

Shaw 작성일 07.10.17 11: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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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특별히 개별적인 사건에 토를 달지는 않겠지만, 김형수님과 저의 말싸움이 시작된 최초의 계기는 "환단고기" 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거기서 저는 환단고기를 부정하는 학계의 정설을 따랐고, 김형수님은 그 반대쪽이었지요. 아닙니까?

 

그 때 김형수님은 그야말로 학계의 기라성같은 학자들이 뭐라고 하건 굽히지 않고 꿋꿋이, 환단고기에는 가치가 있으며 역사학자들은 연구도 제대로 안해보고 반대하고 있다고 주장하셨었지요.

 

 

 

 

 

 

그러던 분께서, 지금은 마치 "백과사전" 으로 대표되는 "정설" 의 수호자가 된 것 처럼 행동하시니 좀 우습네요. ㅎㅎ

 

 

그렇다면 앞서 주장하시던건 전~부 철회하신 걸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예증 하나 없는 백과사전의 설명이, 단지 그 설명에 "권위" 의 아우라가 드리워져 있다고 해서 제가 제시한 증거를 묵살할 정도로 강해진다는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는군요. 김형수님 스스로는 어떤 일관성을 지니고 그런 주장을 하시는지 몹시 궁금합니다. 입장을 밝혀 주시지요.

 

 

 

이런 "결론" 은, 원래 귀납적일 수 밖에 없지요.

 

"조선사" 를 실제로 펼쳐봤더니 식민사관에 근거하여 의도적으로 취사선택된 이러 이러한 흔적이 보이더라, 그러니 "조선사" 는 식민사관에 의해 왜곡된 사료집이라 볼 수 있다. -----> 실제로는 논리 전개 과정이 이렇게 되어야만 하지요.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이 결론을 내리는 데에는 "사실근거" 외에도 크게 두가지 주관적인 요소가 개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대체 어떤 취사선택이 있었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식민사관" 에 입각하고 있는 것인지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죠.

 

둘째는, 다소 아리송한 얘기일 수도 있겠는데 이것이 과연 "조선사" 의 다른 부분과 "상쇄" 가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조선사" 에 수록된 사료 a 는 일본의 식민사관을 대변하기 위해 선별적으로 수록된 것이라고 쳐도, 동시에 수록된 사료 b 는 사실 식민사관의 근간을 이루는 이론들을 흔드는 논거로 사용되는 것이라면, 하나의 사료집인 "조선사" 를 통해서 "식민사관" 이 유도되고 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이를 보는 사람이 a 를 중시한다면 식민사관쪽으로 갈 것이고, b 를 중시한다면 반대로 식민사관을 논파하려 하겠지요. 하지만 그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겠습니까?

 

 

 

김형수님의 프로파간다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사실 신뢰도 면에 있어서 저 같은 사람과 학계의 전문가들은 사실 비교 할 수도 없지요.

 

 

하지만 주장하려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생각 해 보셨으면 좋겠네요.

 

"조선사" 는, 그것을 참고하는 사람을 식민사관 쪽으로 유도하는 책인가?

 

 

-그건 아니지요. "조선사" 에는 단군 기록도 수록되어 있고, 삼국사기 초기기록도 나와 있습니다. 이 기록들의 사실성이 인정된다면 식민사관은 크게 흔들릴 수 밖에 없지요. 오늘날의 많은 역사학자들은, 단군 기록에 역사성이 있으며, 삼국사기 초기 기록에도 신뢰성이 있음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선사" 는, 이런 자료들을 수록은 하되 사실성에 의심이 가도록 편집해 놓았는가? -뭐, 그런 것 없습니다. 그냥 줄줄 원문을 전재해 놓았을 뿐.

 

그렇다면, 일제시대에는 이런 자료들이 오늘날과는 다른 용도로 사용되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이마니시 류 등의 일인 학자들은 이런 사료들을 "가치가 없다" 고 부정하려 했지요. 즉, 오늘날 식민사관과 식민사학을 부정하는 논거로 사용되는 것들은 그 시대에도 똑같이 식민사관 입론에 반대되는 증거로 분류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료들도 "조선사" 에는 같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조선사" 문제로 한 마디씩 하려 하시는 분들은, 문제를 엄밀하게 인식해 주시길 바랍니다. "조선사" 가 "식민사관에 의거하여 편찬되었다" 라고 주장할 때, 그것은 과연 모든 사례에 다 적용되는 것인가? 아니면 "일부는 공평했지만 일부는 왜곡되었다." 는 것인가?

 

일부의 왜곡이 있을 뿐이라면, 과연 "조선사" 가 식민사관을 전파하는 책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이를 보고 연구를 하는 학자들의 역사관이 오도된다고 볼 수 있을까?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일부의 왜곡이 있다고 해도 다른 부분에서의 공평함이 이를 시정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혹은 그 반대로, 다른 부분의 공평함이 오히려 일부의 왜곡으로 인해 오도될까? 그렇다고 한다면, 왜 그럴까? 일본인 학자들의 "권위" 때문에?

 

 

 

 

 

만약 다른 분들께서 "조선사" 를 분석하신 후, 명백히 식민사관에 입각하여 취사선택된 것을 찾아오신다면 저는 종래의 주장을 철회해야만 하겠지요.

 

왜냐하면 종래 제 주장은, 어느 정도 "일반성" 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사는 식민사관에 입각하여 편찬된 것이 아니다." 라고 말이지요.

 

아마 이렇게 바뀌어야 되겠네요.

 

"조선사는 사료집이지만, 내용 일부는 일본의 입맛에 맞도록 교묘히 배열된 것이다."

 

 

 

 

뭐,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냥 백과사전 들고 와서 "네가 뭔데 이런 분들의 말씀에 반대하고 쥐랄이야?' 라고 따지는 분들만 계시니, 당분간은 철회 안 해도 될 것 같네요.

 

 

 

사실 냉철하게 사고를 하시는 분이라면, 제 의견을 반박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실물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파악하실 것이므로 "조선사" 를 먼저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웹으로 백과사전에 "조선사" 타이핑 부터 하지는 않겠지요.

 

 

 

 

 

*****전 이 문제로 자주 인용되는 논문들의 실태를 봤습니다. 다른 분들도 한 번쯤은 직접 찾아보시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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