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의 예연가 격암 남사고..

비애리 작성일 07.11.10 20:3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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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암(格菴) 남사고(南師古:1509~1571)는 조선 명종 때 이름이 높았던 예언가입니다..

본관이 영양(英陽)이고 호는 격암(格庵)으로..
소학(小學)을 즐겨 읽었던 그는 역학, 풍수, 천문, 복서, 관상의 비결에 도통하여 많은 예언을 하였는데 꼭 들어맞았다고 합니다.


그는 젊을때 권판서를 비롯해 당대의 석학들과 두루 사귀었는데 이미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터득했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몇 가지 예언을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첫째, 곧 조정에 당파가 생겨날 테니 조심하란 것이었고.

둘째는 왜적이 난리를 일으키는데 만일 용(辰) 해에 전쟁이 일어나면 나라를 구할 수 있으나
뱀(巳) 해에 전란이 시작되면 나라는 영영 망하고 많다라고 하였습니다..

셋째는 지금 사직동을 둘러보니 왕기(王氣)가 서려 있어 거기서 임금이 나올 것이고..

넷째는 태릉이 들어설 곳을 가리키며 장차 태산에 봉해진다는 거였습니다..


첫째 예언은 선조 8년(1575)부터 동인과 서인의 분당이 일어나 사실로 입증됐습니다.

둘째 예언 역시 용 해인 임진년(선조 25)에 왜적이 쳐들어와 꼭 맞아떨어졌고

셋째도 사직동에 살던 선조가 뜻밖에 대통을 이어 1567년 등극함으로써 적중했고,

넷째는 명종의 모후(母后)인 문정왕후가 죽은 뒤 태릉에 묻혀 기정사실이 됐습니다.

이처럼 남사고의 예언 능력은 신기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남사고는 예연뿐만 아니라 풍수지리학에 조예가 깊어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며 많은 일화를 남겼는데.
문집에는 격암일고(格庵逸槁)가 있습니다.

남사고는 워낙 신묘한 풍수가라 그가 묘결(妙訣)을 얻은 데는 진위를 가릴 수 없는 많은 일화가 전해져 옵니다.

그가 어린 시절 서당에 다닐 때 이유 없이 자꾸 야위어 가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훈장이 까닭을 물어보니
서당에 올 때마다 여우목 고개에 예쁜 여자가 나타나 입맞춤을 하자면서 자신을 희롱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묘령의 여자는 입맞춤을 할 때마다 입 속에 구슬을 가지고 논다고 하자..

훈장은 여우가 여자로 둔갑한 것임을 알고 다시 입맞춤을 할 때 여자 입 속의 구슬을 빼앗아 삼키고 도망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다음날 서당에 오는데 또 예쁜 여자가 입맞춤을 하자면서 따라오자
남사고는 스승이 시킨 대로 얼른 여자의 입 속에 있는 구슬을 삼키고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깜짝 놀란 처녀가 구슬을 내놓으라고 뒤쫓아오자 너무 당황한 나머지 땅에 넘어지고 말았는데 그만 구슬을 삼켰습니다..


그러자 처녀는 늙은 여우로 변하면서 슬피 울다가 되돌아가고
허겁지겁 서당에 온 남사고를 보고 훈장은 넘어질 때 어디를 제일 먼저 보았냐고 묻자
땅을 제일 먼저 보았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훈장은 탄식을 하면서 "아깝도다! 넘어질 때 하늘을 먼저 보았으면 천문에 능했을 텐데 땅을 보아 지관에 머물겠구나"하였다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일화는 남사고가 어렸을 때 경북 울진 불영사를 방문 했을때 얘기입니다..

이 절은 산자수명하여 부처를 비춘다는 불영계곡 안에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소년 남사고는 절간에서 한 노승을 만났는데 그는 소년이 남다른 인물이 될 줄로 짐작해 3권의 비결을 내주었는데.

천편(天編)은 별자리의 운행과 그 운세 등 천문에 관한 모든 사항을 항목별로 적어 놓았고.
지편(地編)은 산천의 지세와 명당 등 풍수를 자세히 논한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인편(人編)은 한번만 사람 얼굴을 쳐다보면 그 명운(命運)을 알아맞히는 방법을 기록한 비밀스러운 책이었습니다.

노승은 이 책들을 건네주며 아무쪼록 덕을 쌓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신신당부 했지만 남사고는 귀 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어리지만 사기꾼 아버지 덕에 사리에 밝았던 남사고는 풍수지리가 돈이 잘 된다고 생각해서 지편부터 익히기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밖에 있다 돌아와 보니 책이 다 없어 져서 그나마 익힌 지편의 지식으로 풍수 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책이 없어진 이유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유력한건 토정 이지함이 남사고의 관상을 보고
사리사욕을 위해 술법을 이용할것 같자..
술법사 전우치에게 부탁해서 책을 회수해 오라고 시켰다는 겁니다..

암튼 남사고는 이로부터 명지관이 되었고 세상일을 정확하게 예언을 하여 지금도 `남사고결록` `격암유록`등이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책이 실재로 남사고가 쓴 책인지 아니면 후세에 누군가 남사고의 이름을 도용하여 쓴 것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남사고는 분명 대단한 풍수가이자 예연가지만 이지만 이지함이 얘기한데로 좋은 인물은 아니였습니다..
그는  천기누설을 대놓고 하는데다 돈을 받고 주인이 있는 명당의 지기를 돌려놓기도 하는등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런 남사고도 무시 못하는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퇴계 이황 이였습니다..


남사고는 도술에도 능했다 하는데 그가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 퇴계 이황을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마침 점심식사 시간이라 식사를 하는데 퇴계 집안은 검약하기 그지없어
밥상에는 보리밥과 고추장밖에 다른 반찬이 없었습니다.


남사고는 몰래 도술을 부려 다른 집에서 잉어회를 가져와서 상에올렸는데 
퇴계는 어디서 도둑질이냐며 남사고의 뺨을 때려 쫓겨 냈다고 합니다..


이렇듯 남사고는 지관으로 능력은 대단 하지만 능력을 함부로 쓰고
사람됨이 좋지 못해 사기를 당하거나 정작 좋은 땅은 가지지 못했다고 합니다..


남사고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명당을 구해 장사 지냈는데 다음에 와서 보니 명당이 아니었고.
다시 명당을 구해 이장하고 다음에 와보면 역시 명당이 아니였기에
무덤을 옮기기를  아홉 차례나 반복하였습니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비룡상천형(飛龍上天形) 대지(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기가 흐르는 풍수사상 최고의 명당)를 구해서
아버지 유골을 안장하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오는데 밭을 갈던 한 농부가 노래를 부르면서 지난 가는 것이 였습니다..

"아홉 번을 옮기고 열 번째 장사한 구천십장(九遷十葬) 남사고(南師古)야!
용이 하늘을 날 듯이 올라가는 형국인 비룡상천(飛龍上天) 좋아하지 마라
죽은 뱀을 나무에 걸쳐놓은 형국인 고사괘수(枯蛇掛樹)가 아닌가..."

남사고가 이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산형(山形)을 자세히 보니 과연 사룡(死龍)이었기에
급히 밭을 갈던 농부를 찾으니 그는 홀연히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남사고가 탄식하면서 말하기를 "대지(大地)는 필히 그 주인이 있는 법이니 평소 덕을 쌓지 않은
아버지를 억지로 명당에 모시려고 해도 아무나 얻는 것은 아니구나"
하면서 욕심을 버리고 무해지지(無害之地)를 찾아 이장하였다고 합니다.
(풍수법엔 무덤을 10번 이상 옮기는건 금기 입니다..)

게다가 남사고는 명당을 옥산 장씨에게 뺐겼다는 일화도 전해 집니다..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에서 약 1㎞ 서쪽으로 가면 마족혈이라는 비석이 없는 커다란 무덤이 있습니다..
이 마족혈은 풍수가들의 입에서 전해지는 명당중 하나로 조선 중엽 최고의 지사(地師)로 불리는 남사고(南師古)가
점한것이 라고 합니다..


남사고는 자신의 죽기전에 후손들이 잘살게 되는 명당으로 마족혈을 점지해 자기가 죽으면 묻으라고 했는데..
남사고가 죽은후 자식들이 묻으러 가보니 그땅은 물이 차있었습니다..

자식들은 남사고가 실수 했다 생각하며 그의 시신을 딴곳에 묻었는데 옥산 장씨네로 시집간
남사고의 딸이 그 땅을 자기 시아버님 매장하는데
쓰고 싶다고 하자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건 딸의 계략 이였습니다..


남사고의 딸은 자기가 시집간 집이 가난하자 자기 아버지가 점지해 놓은 명당을 차지하기 위해
야밤에 그땅에 물을 부은 거였고 그 명당을 차지한 옥산 장씨네는 엄청 출세를 한 반면 남사고의 가세는 기울여 갔다고 합니다..


남사고가 가르쳐준 명당은 말이 뛰는 마족혈이라고 하기 때문에 비석이나 상석같은 석물을 하면 뛰는
말발에 지장이 된다고 하여
비석을 세우지 않는다고 합니다..

남사고는 대단한 예연가이자 풍수가 이지만 자신의 능력을 사리사욕에 사용한 결과
자신에 대해선 좋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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