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종 마법사 칼리오스트로 백작..

비애리 작성일 07.11.19 17: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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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왕과 귀족을 주무르던 마법사인 칼리오스트로 백작은 그의 마법적 소양은 대단하다고 하나
인간말종이라 할만큼 엉망인 삶을 살았던 인물이죠..

본명은 주제페 발사모로 1743년 경 시칠리아의 가난한 구두방에서 태어났고
부친의 사망으로 외조부 댁에 맡겨졌지만
툭하면 싸움질을 18세 때 살인 사건에 연루되 고향을 떠났다가 로마에 나타나는데
그가 떠돌던 1768년 25세 때까지의 기간은 그의 생애에서 수수께끼 입니다.

그의 자서전에 의하면  유랑하는 동안 그리스인에게 연금술 비법을 전수받고
이집트에서 고대 신관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는데,
성격은 개판이지만 재능은 있는지 마술, 점성술, 연금술 등에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칼리오스트로 라는 예명을 달고 1768년 갑자기 로마에 나타난 그는 '돈나 로렌챠라'는 미녀와 열애끝에 결혼합니다.
그녀는 육감적 몸매와 갈색 머리에 유리같은 피부, 둥근 눈, 풍만한 가슴을 자랑하는 당시 최고 미인중 하나였지만

그에 반해 칼리오스트로는 배불뚝이에다 키는 작고 거무스름한 피부,등 잘 봐줄데라곤 하나도 없였죠..


둘은 점쟁이 노릇이나,정력제 장사, 강령술, 순회 마술사로 마드리드, 리스본, 파리, 런던에서 동반 제국,
러시아까지 떠돌아 다녔습니다.

하는짓을 보면 사기꾼 같기는 한데 정력제등은 의외로 효과가 좋았는지 입소문이 붙었고
귀족들에게  '칼리오스트로 백작'이란 이름은 널리 퍼졌습니다..

어느정도 사회적으로 이를을 쌓고 귀족들의 정력제를 제조하면서 그들의 지원을 받게되자
마법적인 능력을 선보였습니다..

그는 브뤼셀에서 연금술로 다이아몬드와 황금을 제조하기도 하고 페테르스부르크에서는
시의도 못 고친 황제의 병을 고치기도 했죠..
이때문에  시의에게서 결투신청을 받기도 했지많요..


점점 드러나는 마법적 결과물에 그를 사기꾼 취급하던 사람들도
인정 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영국에서 이름을 날린 그는 프리메이슨에 입단, 고직에 오릅니다..


그를 프리메이슨에 가입시킨 사람은 불사로 유명한  '생제르맹 백작'인데 그에게 연금술을 전수 하기도 했습니다..

생제르망 백작에게 인정을 받을 만큼 마법적 재능이나 능력면에선 타고 난 칼리오스토 였으나
하는짓은 영락없는 난봉꾼에 사기꾼 이였습니다..


그는 1785년에 파리에서 그들 부부는 생클루 가에 호화저택을 지어 호루스의 눈이라는 일파를 조직했죠..

그는 런던의 고서점에서 발견한 기묘한 사본을 통해서 이집트의 마법과 종교 의식에 관한 지식을 얻었고
이것을 이용하여  칼리오스트로 백작이 만든 조직으로
곧 파리 귀족과 부르주아들이 그에게 몰려들자 부부는 화려한 사제 복장으로 갈아입고 손님들을 맞아
그럴듯한 의식이나 야유회를 열었습니다.

어느날 그들은 손님은 여섯인데 자리를 열두개 마련하고, 볼테르와 디드로 같은 죽은 문인들을 초청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마법적 성과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 일파에 들어오는 입회금은 어처구니 없게 비싸서 그 돈은 사기꾼 부부의 사치스러운 생활에 쓰여졌죠.

게다가 성적으로 상당히 문란한 집회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칼리오스트로가 유명해진게 스트라스부르에 체제하고 있을 때 먼 베르사유 궁전에 있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내아이 출산을 예언한 이야기죠.
임신 중이던 왕비는 매일 밤 악몽을 꾸는 것이 걱정스러워 무사히 출산할 수 있는지 칼리오스트로에게
점을 쳐달라고 부탁했고,
그는 하녀 한명에게 최면을 걸고, 물이 든 유리병이 놓여 있고 양쪽에 횃불이 밝혀진 테이블 쪽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병을 가만히 쳐다보는 하녀에게 뭐가 보이냐고 묻자 하녀는 왕비님이 사내아이를 낳는 것이
보인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말대로 왕비는 몇 주후 무사히 사내 아이를 낳았죠.

그런데 파리에서 대성공 뒤, 앙투아네트의 목걸이 사기 사건(라모트 백작 부인이 앙투아네트의 이름으로 목걸이를 주문하고
훔친 사건으로 수많은 귀족들과 앙투아네트까지 상당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에 휘말려 아내와 바스티유에 갇혔지만
교묘한 화술로 무죄를 주장하고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었습니다.

하지만 재산의 반을 잃고 프랑스에서 추방당해 런던, 스위스 바젤로 유랑하고 다녔죠..
그리고 1789년 부부는 로마에 정착해 호로스의 눈 지부를 설치할려고 하다가 체포 당합니다.
마법을 혐오하는 카톨릭 한복판에 마법 조직을 갖고 들어 온건 솔직히 죽을려고 환장한 짓이였죠..

게다가 그의 집에서 발견한 시의 구절은  로마와 프랑스를 발칵  뒤집히기에 충분 했죠..

"두달후 굶주린 이리들이 배부른 개들을 덮치리라..
루이 16세 굶주린 이리들로 인해  최후의 왕이 될 것이며,
10년후 비오 6세는 성난 사자에게 쫓겨날 것이다,!" 라는 구절 이였습니다..

실제로 그가 잡힌 두달후 루이 16세 역시 시민 혁명에 의해 죽음을 당합니다..
그리고 교황 바오 6세는 프랑스 시민 혁명 이후 세력을 잃은데다 나폴레옹에게 교황령을 잃고 로마에서 쫓겨났죠..


암튼 이 일로 인해 그가 부르봉 왕조를 뒤엎으려는 국제적 음모에 가담했다는 소문이 퍼졌고
결국 1791년 이단 심문 법정에서 그는 프리메이슨 , 이단, 마술라라는 죄로 사형을 받았습니다.
그의 아내 로렌차는 '신앙고백'과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조건으로 목숨을 건졌죠.

그러나 사형 판결은 교황명으로 산탄젤로 성에 종신 감금으로 감형되고
칼리오스트로는 후송중 탈주를 시도해 어느 농가에 숨었지만
농부의 고발로 다시 잡혀가 산레오 요새로 옮겨져 죽을 때까지 살아야 했습니다.

광란 상태에 빠진 그는  우울증으로 자살기도 등도 몇번 했지만 실패했고
문이 달린 입구는 벽으로 개조되고 음식은 천장 구멍을 통해  줄로 매달려 내려왔다고 합니다.
요술을 부린다는 무서운 인물이니 교황은 두번 다시 그에게 살아서 바깥세상을 보여줄 마음이 없었습니다.

결국 1795년, 옥중에서 아사 했는데 소문에 따르면 경련을 일으키며 광란에 빠져 교황을 저주하며 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죽은 1795년 이후도 유럽 여기 저기서 살아 있다는 목격담이 떠돌곤 했습니다..


마법학자들은 그가 어떤 이유로 마법적 지식을 얻게 됬는지는 모르겠지만
학문을 배울 소양을 갖추지 못한체 재능만 가진 가진 반쪽 짜리 마법사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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