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왕릉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하나의 가설...

바컁 작성일 07.12.22 01: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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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어떤 분이 "신라왕릉에는 비석이나 지석 등이 없기 때문에 사실은 왕릉이 아니다. 신라는 대륙에 있었고 왕릉은 조작된 것이다."고 하시던데...

 

여기 하나의 가설을 소개해 봅니다. 하나의 가설이니 너무 테클 걸지는 마시구요...^^;;

 

일단 고구려와 백제부터 시작하죠. 고구려를 세운 주몽이 원래 졸본부여의 세력가였던 미망인 소서노와 결혼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세력을 키웠다는 건 다들 아시죠? 그리고... 왕권 계승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해 소서노가 두 아들과 함께 남하하여 백제를 세운 것두요... 왕권이 온전히 집중되기 이전에,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던 소서노가 주축이 되어 백제가 분리되었으므로...  고구려의 강력함만큼이나 백제도 무시못할 세력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기마(유목)민족 기반의 백제는 북방에서 쌓은 실전개념과 대규모 전투의 경험을 토대로... 당시 부족국가 상태로서 집단전 개념이 전무하던 남방의 삼한사회를 휩쓸게 됩니다. 결국 삼한사회의 실질적 맹주였던 목지국마저 쳐 없애고, 삼한사회를 초비상 상태에 빠뜨립니다.

 

삼한의 부족국가들도 백제를 모방하여 발전된 국가체계와 지휘체계를 갖출 필요를 느끼게 되지요. 당시는 현재의 한민족이 형성되기 이전으로서, 북방의 이민족인 백제에 대항해 남방의 원주민들끼리 단합할 시대적 필연성이 생기게 됩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신라입니다(부족국가의 결합이다 보니 왕권을 3개의 가장 큰 세력끼리 돌아가며 맡는 독특한 정치체계를 가지게 된 것이겠지요). 물론 원주민들 중에서도 백제와 대립하기보다는, 백제에 일부 기득권을 양보함으로써 살아남겠다는 또다른 선택이 있었을 것이며, 이것이 바로 백제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던 가야일 것입니다.

 

아뭏든... 이왕지사 이민족에 대항해 국가를 만들긴 했으나 신라의 고난은 필연적인 것이었겠지요. 훗날 상당한 실전경험을 쌓고 대항할 힘을 가지기 전까지는 정말 힘든 나날이 이어졌을 겁니다. 이 시기 신라의 고단함은 삼국사기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자~.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 신라왕릉의 수수께끼를 풀어봅시다...^^ 초기의 신라는 백제의 침입에 효율적으로 대항할 힘이 없었습니다. 신라의 고단함은 초대 왕인 혁거세의 죽음에서 단적으로 알 수있지요. 일반적으로 혁거세의 무덤은 "오릉"이라 불리는 5개의 무덤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삼국유사> 기이(紀異) 편의 기록에 의하면... 혁거세왕은 죽을 때 하늘로 승천했다고 하는데, 영혼은 승천하고 유체는 7일 후 다섯 조각으로 나뉘어져 땅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유체를 따로 묻어 다섯개의 능을 만들었다고 하지요.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아마도 혁거세는 백제와의 치열한 전투 중 사망해 유체가 훼손된 것은 아닐까요? 7일 후에야 가까스로 왕의 유체를 수습한 신하들이... 백성들에게 왕의 비참한 죽음을 그대로 알릴 순 없었을 것이니 결국 승천했다고 표현했을 것이고...

 

이후에도 상당 기간... 아니 삼국을 통일하기 직전까지 신라는 백제와의 전투에서 늘상 열세에 놓여 있었습니다. 수도인 경주 인근까지 백제의 침입을 허용했던 거, 선덕여왕 때의 기록 등에서도 잘 알 수 있지요.

 

이런 상황에서 왕의 무덤에 지석이나 비석을 설치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적군에 의해 수시로 훼손될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는데, "여기가 바로 왕릉이오"라고 광고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당시의 신라인이라면, 조상의 무덤이 어디인지 비석 없이도 충분히 알 수 있었을 테고... 때문에 높게 쌓아올려 일부러 적의 눈에 띄게 할 필요도 없었을 테고...

 

 

또 시간이 흘러... 결국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또 재미있는 현상이 생겨납니다. 삼국을 통일한 태종무열왕 이후에는 비석을 세우기 시작한 겁니다. 통일 신라기의 왕릉에는 거의 대부분 비문이 있답니다. 위협이 사라졌으므로 비문을 세우기 시작한 겁니다.

 

결국 신라의 당시 시대적 상황에 따라 비문이나 지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 뿐이고... 설명하지 못할 미스테리는 아닙니다. 왕릉의 수수께끼를 근거로 들어 대륙신라설을 주장하려면... 중국에서 신라왕릉이 발견되어야 하겠지요. 중국애덜이 사실을 꼭꼭 숨긴다 해도, 대륙신라설이 진실이라면 다 숨길 수는 없다고 봅니다. 애초에 없으니까 흔적조차 발견되지 않는다고 보는 게 타당하겠지요. 결코 대륙신라설의 근거가 될 수 없네요.

 

더구나 통일신라와 당나라 시기부터는 상당히 상세하게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합니다. 평가나 해석 면에서는 자국 중심의 왜곡이 가끔 있지만, 있었던 사실 자체까지 왜곡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당나라와 기타 민족국가들의 대립과 그 위치... 절도사들의 반란과, 그 절도사들이 통치했던 지역이 너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통일신라의 위치도 물론... 당나라측 사료와 우리측 사료가 대부분 일치하고... 대륙백제설과는 다르게... 대륙신라설은 근거 자체가 성립하지 않네요. 말그대로 판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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