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업(林慶業, 1594~1646)장군의 부친인 임황은 원주감영의 옥사장이었습니다.
비록 말단직에 있었으나 그의성품은 의협심이 강하고 인정이 두터웠습니다.
어느날 살인혐의로 한 청년이 붙잡혀 들어왔는데 자세히 보니 살인할 것 같지 않은
지극히 선량한 사람이었고
애끓게 무죄를 주장하는 그의 말을 들어 보니 누명을 쓴것 같았습니다..
그대로 두면 살인자로 몰려 억울하게 죽을것 같았기에 그는 한 계책을 일러주어 그를 도망가게 했습니다.
그후 십년뒤 임황은 옥사장을 그만두고 고향인 손우 리로 돌아와 농사를 짓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중이 찾아와서 시주를 청하기에 곡식을 주니
그 스님은 "이 집이 임옥사장 집이 아니오?" 하고 물었습니다.
스님의 물음에 의아해진 임황이
"그렇소 그런데 왜 그러시오?" 하고 묻자 스님이 답하기를
"나를 못 알아보시겠습니까?"
하며 고깔을 벗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 보아도 기억에 떠오르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럴만도 하시리이다,, 소승은 십년전 원주 감영에 살인혐의로 붙들려 갔던 사람이올시다.
그때 옥사장님께서 살려주시지 않았다면 영낙없이 죽음을 면치 못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깊으신 인정으로 무리해서 제가 살아날 기회를 마련해주셨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나 다시 찾아온 것입니다
.
소승은 그간 뜻한바 있어 삭발을 하고 입산하여 수도에 힘썼으며
이미 부처님의 덕을 입어 명산 대찰의 자리를 잡아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소승이 옛날 저를 살려주신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묘자리나 하나 잡아드려
훌륭한 자손이나 보시게 하여 드리고 싶습니다.."
임황은 자신이 살려준 사람이 무사히 스님이 된것도 기쁘지만 묘자리를 알아봐 준다니 너무가 기뻐 했습니다..
이리하여 그 스님은 지금 평촌마을 건너편 산기슭에 그의 조부의 묘자리를 잡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스님은 묘자리를 정하고 나서 경고 하기를..
"만약 상을 당하면 삼일장으로 하여 관을 모신다음 그 근처에 광을 지어 거적을 씌어 두십시요..
상주 혼자서 광을 지키는데 광속에서 혹시 어떤 소리가 들리거나 괴이한 일이 일어나도
절대 들여다보거나 그 자리를 떠나서는 안됩니다"
라며 신신 당부 하고는 길을 떠났습니다..
그 뒤 부친상을 당한 임황은 스님의 말한 묘자리에 시신을 묻고 근처에 광을 짓고
그 위에 거적을 씌우고 밤샘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삼일장 마지막날 자정이 되었을 무렵 적막하기만 하던 광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고 나중에는 쨍그렁거리는 쇠소리마저 들렸습니다.
임황은 호김심에 스님의 경고를 잊고 거적의 귀퉁이를 쳐들고 광속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가 목격한 광속의 광경은 괴이하기 이를데 없는 것이었습니다.
광속에서 두 사나이가 칼을 휘두르며 겨루고 있었는데 임황이 거적을 들추는 순간
한 사나이와는 눈이 마주쳤습니다.
임황과 눈이 마주친 사나이가 한눈을 파는 순간 다른 사나이의 칼에 맞아 무참이 쓰러져 죽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황급히 거적을 씌웠지만 이와 같은 두 사나이의 싸움이 무엇을 뜻하는것일까 하는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채
삼일장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삼우제를 올리려고 묘에 가보니 누구의 짓 인지 관이 묘밖으로 튕겨져 나와있었습니다.
그는 다시 관을 묻고 그날밤은 누구의 짓인지 알아보기 위해 무덤곁에서 지키기로 했습니다.
한밤중이 되자 붉은옷을 입은 세사람의 무사가 나타나더니 임장군의 아버지를 보고 꾸짖었다.
"당신같은 비겁한 사람은 이 명당에는 묘를 모실수 없오. 이 자리는 따로 임자가 있는데 왜 여기다 묘를 썻소"
하고 나무라는 것이었습니다.
당황한 임황은 그들앞에서 비는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중의 한사람이
"이왕 이리 되었으니 할수 없소"하고는
"그럼 김공의 자리는 저편으로 정합시다"
하고는 사라지는 것이 였습니다..
알고보니 이명당은 이 고을을 다스리는 김군수가 점한 땅으로 임홍이 본 무사들의 싸움은
가문의 수호신들의 대결 이였습니다..
이 싸움에서 임 가문의 수호신이 승리했지만 임황이 금지 사항을 지키지 않았기에
토지신들이 이를 받아 들이지 않은 거였죠,,
하지만 이미 입관한 이상 토지신들은 임홍의 아버지의 관을 모십니다..
그리고 명당을 뺏긴 김군수의 아버지가 묻힌 땅 역시 명당이긴 하지만 사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가 명장 임경업 장군과 역모자 김자점(金自點, 1588~1651)이었습니다..
임경업은 태어날때 흰 옥을 가지고 태어났고 김자점은 이마에 핏자국 같은 붉은 점이 있었습니다..
그후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임경업은 청나라 군을 막으면서 나라를 지키지만
김자점은 인조반정을 성공시켰으며 이후 청(淸)나라의 위세에 빌붙어 영의정 벼슬까지 올랐으나
효종이 즉위하고 송시열 등 산림 세력의 등용으로 북벌론이 대두되자 위협을 느끼고,
청나라의 앞잡이인 역관 정명수(鄭命壽)등을 통해 그 계획을 청나라에 누설 하였습니다..
그리고 인조를 위협하여 임경업을 잡아들여 갖은 고문으로 죽게 만들었죠..
김자점은 후세 역사의 평가가 엇갈리긴 하지만 청나라에 나라의 기밀을 알려준건
분명 역적 행위라고 볼수 있습니다..
나중에 사형 당하긴 하지만 그는 젊을때부터 임경업에 대한 알수 없는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임경업과 김자점의 악연은 어쩌면 명당을 둘러싼 두 가문의 대립의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