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초능력은 선천적이나 혹은 어떠 사고를 계기로 생겨나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순수한 노력으로 엄청난 텔레파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는데..
바로 칼 니콜라이예프 입니다..
칼 니콜라이예프는 1926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습니다. 니콜라이예프의 아버지는
'혁명신문'을 만드는 언론인이이었고 학문적인 집안에서 니콜라이예프는 책을 많이
읽으며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니콜라이예프는 아버지같이 신문만드는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니콜라이예프가 15살 때, 세계 제2차대전이 일어났고 니콜라이예프는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군대에 들어갔습니다.
전쟁 중에 니콜라스예프는 왼쪽 다리를 심하게 다쳤기 되고 헝가리에
있는 요양소로 보내졌습니다.
그곳에서 다리가 완전히 나을 때까지 푹 쉬어야 했는데..
3달간의 요양소에서 보낸 니콜라이얘프는 점점 따분해지기 시작하자
다음 날부터 니콜라이예프는 저녁 때면 몰래 요양소를 빠져
나가서 거리를 돌아다녔습니다.
어느 날 밤, 니콜라이예프는 다른 날보다 조금 일직 요양소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시내에서 최면술쇼를 하기 때문이었죠.
최면술을 보여줄 사람은 오르란드라는 사람으로, 헝가리에서 인기있는 마술사 였습니다.
쇼가 진행되는 동안 니콜라이예프는 너무나 신기해서 입을 떡 벌리고만 있었습니다
그는 마술과 초능력에 빠져 들었고 그날부터
초능력과 텔레파시를 믿게 되었습니다.
니콜라이예프는 그날부터 심리학과 초능력에 관한 책을 수 십 권사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전쟁이 끝나자 집으로 귀환 했죠..
그는 계속 초능력 실험에 몰두 했고 종종 아버지께 심한 꾸중을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콜라이예프의 텔레파시 실험은 여전히 계속되었습니다.
이후 19살때 대학에 들어갔지만 그는 여전히 최면술과 텔레파시 실험을 한다고 하여 주위
사람들을 황당하게 했습니다..
그는 학교에서도 괴짜로 취급 받았고 선생님들에게도
요주의 인물로 뽑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쉬는 시간에 옆자리에 있던 친구와 예기를 나누던
니콜라이예프가 별안간 벌떡 일어나더니 교실 앞쪽으로 걸어가더니 칠판을
지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한 소녀가 소리를 질렀다.
"어머! 니콜라이예프! 내가 방금 칠판을 지워야겠다고 생각했었어."
니콜라이예프가 대답했다.
"난 네 생각을 전해 들었어, 그래서 지금 지우는 거야."
칼 니콜라이예프는 노력한지 5년만에 약간의 텔레파시 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주변의 마음을 읽을 뿐이 였지만 점점 능력은 커져 나갔습니다..
하지만 이후 그는 실험을 하지도 않았고 학교에서 조용히 지냈습니다..
그후 24살 때,대학을 졸업을 하고 모스크바에 있는 한 신문사에 취직을
했고 아냐 라는 여성과 결혼도 했습니다.
니콜라이예프의 아내는 몸이 아주 약해서 니콜라이예프는 자주 아내의 병간호를
했는데 그럴때마다 텔레파시 능력은 그에게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는 아내의 마음을 미리 눈치채 적절하게 병 간호를 했고
아내를 보살폈습니다..
그러나 니콜라이예프의 아내는 아이를 낳자마자 전보다 몸이 더 나빠졌고
이제는 아예 일어나지도 못했습니다.
4달 동안 니콜라이예프가 정성을 다해 병간호를 했으나, 그의 아내는 죽고 말았습니다.
니콜라이예프는 아들을 혼자 키워야만 했고 그는 아들에게 온 정성을 쏟았습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는데 하루는 아들이 시골에 있는 친척집에 혼자 놀러갔겠다며 얘기했고.
니콜라이예프는 허락을 했습니다.
그렇게 아들이 떠난 지 이틀째 되는 날, 니콜라이얘프는 이상한 생각이 자꾸 들기 시작 했습니다.
걱정이 된 니콜라이예프는 친척집 마을로 가는 기차를 집어탔습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니콜라이예프는 또 이상한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내려야할
정거장을 지나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는 무턱대고 걷기 시작했는데. 어떤 힘이 니콜라이예프를 잡아끌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느 허름한 집앞에서 걸음을 멈췄는데 컴컴한 곳에 그의 아들이 쭈그려앉아
자고 있었습니다.
니콜라이예프는 깜짝 놀라 아들을 흔들어 깨웠는데. 그런데도 아들은 눈을 뜨지
않았습니다 다급해진 니콜라이예프는 아들을 들쳐 업고 냅다 뛰기 시작했습니다.
새벽녘에야 겨우 병원에 도착해서 진료를 받아보니 아들은 영양실조에 걸려 있었습니다.
한참만에 정신을 차린 아들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기차에서 그만 지갑을 잃어버렸어요. 지금까지 아무 것도
먹지 못했어요."
다음 날, 니콜라이예프는 무사히 아들을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고 기차를 타고
오면서 니콜라이예프는 자기에게 텔레파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감사히 여겼습니다.
이후로 그는 자신의 능력을 사람들을 위해 쓰기로 마음 먹었고..
누군가의 실종사건이나 조난 당한 사람들을 구하는등 활약을 하자..
그의 능력이 알려지기 시작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물리학자인 유리 카멘스키를 만나 그의 연구를 도우면서 텔레파시 능력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연구를 시작 했습니다..
그리고 1966년 1월 19일. 40살이 된 니콜라이예프는 정부의 요청으로 시베리아 평원에 세워진 과학도시
'아카뎀고로도크'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과학자들이 니콜라이예프를 반갑게 맞이하며 그를 데려온 이유를 얘기 했습니다..
"어서 오시오. 니콜라이예프 씨. 이제부터 우리가 하려는 실험은 매우 중요한
것이오."
"모스크바에서 보내는 테레파시를 당신이 이곳 시베리아에서 받도록 하는 겁니다."
모스크바와 아카뎀고로도크 사이의 거리는 3천킬로미터 였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약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의 7배의 거리죠..
니콜라이예프는 마음의 긴장을 풀고 텔레파시 받을 준비를 했습니다.
바로 이때, 모스크바에서는 니콜라이예프의 협력자인 유리 카멘스키가 텔레파시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옆에서 한 과학자가 카멘스키에게 실험방법을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여섯 개의 물체를 준비했습니다. 그것을 하나씩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텔레파시를 보내는 시간은 한 물체에 20분 간격 입니다."
카멘스키가 있는 방은 사방이 막힌 방이었고 이윽고 시간이 되자, 과학자들은
카멘스키에게 꾸러미 하나를 주고는 밖에서 문을 잠궈 버렸습니다.
첫 번재 꾸러미에는 코일이 들어 있었고 카멘스키는 코일을 어루만지면서 그것을
모양과 감촉을 마음에 새기고 그와 동시에 니콜라이예프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가
곁에 앉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시베리아에서는 니콜라이예프가 정신을 집중시키고 있었는데,
그의 손은 마치 무언가를 어루만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종이 위에 자신이 보는 것을 적었습니다.
'둥글고, 금속으로 만든 것이며, 빛나는 물질.. 아, 코일이다.'
그 다음은, 카멘스키가 검은 플라스틱 손잡이가 달린 드라이버를 놓고 텔레파시를
보냈고 니콜라이예프는 '가느다란 금속과 플라스틱, 검은 플라스틱'이라고 썼습니다.
이런 물체 알아맞추기 실험은 일주일간 계속되었는데,
그때마다 니콜라이예프는 정확하게 알아맞췄습니다.
그래서 전에 유례없는 모스크바와 시베리아간의 텔레파시 실험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신문에서는 이 사건을 앞을 다투어 보도했고, 사람들은 놀라서 '정신무선(텔레파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때까지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던 과학자들도 텔레파시를 과학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움직임을 보였죠..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라도 자기의 생각을 보내고 읽을수 있는
능력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가공할 능력임은 틀림 없습니다..
니콜라이예프는 평범한 사람들은 환상이라 여긴 초능력을 노력으로 발전시킨
특이 케이스로 기록되 있는데..
인간의 몸엔 불가능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시킨 사례로 볼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