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약고에서의 신기했던 그 여름날의 하룻밤의 한 시간은, 그저 훈련과 작업을 빙자한 갖은 중노동(;)으로 점철된 군대
일상생활을 스쳐지나가는 하나의 에피소드였을뿐, 뭐 그 일로 군생활에 어떤 큰 영향이 생기진 않았습니다.
가끔 생각날때마다 '혹시 탄약고의 그 개 짖는거 한번이라도 봤냐'고 물어본게 다였죠.
같이 근무섰던 일병은 '빗자루가 서 있던 그 장면'은 못봤던 모양입니다. 어리둥절해 하더군요.
그리고 그 강아지? 개?..어느 무더운 강원도의 여름날..행보관의 손에 이끌려 부대를 나선뒤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ㅅ-; 어느분의 뱃속에 들어갔는지..혹은 대대에서 키우기로 했는지..;
그렇게 아무생각없이 바쁜 일상생활에 쫓길때쯤이었습니다. 저희 부대는 사실 4.2인치 박격포 지원중대였습니다.
그래서 아시다시피 '5분 대기조'라는 것이 있지요. 이 5분 대기조에 걸리게 되면, 물론 아시는것처럼 밤에도 옷을 입고
자야되고, 낮에는 전 인원이 초소 근무에 투입되어 아침부터 저녁 10시까지 두 조로 갈라 1시간씩 교차 투입되게 돼죠.
어떻게 보면 그날 훈련이나 작업이 빡세다 싶을땐 이것도 참 나름대로 껀수라면 껀수죠^^;
물론 그날 일상이 한가할때는 참 운도 없는거지만..밥안되고 한가할 때가 별로 없는 군생활이기에
전 병장달기전까진 5분 대기조를 선호했습니다;
아무튼 서울이었다면 여름의 끝자락좀 됐겠지만..이 저주받을 강원도 땅에서는 아직도 여름의 전*일 무렵;
저희 분대에 5분 대기조 차례가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다보니까 거의 말년급의 병장과 다시 탄약고 근무를
서게 돼었습니다. 이 사람이 참 사람이 좋아서 저한데 싫은 소리 한번 안한 사람이고 키도 훤칠한데다 얼굴도 나름
착하게 잘 생긴 사람이라 당시 제가 소대내에서 가장 좋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재밌는 점은 서울 출신인데도 불구하고
어디서 배웠는지 가끔 말끝에 '~했자네' '~그랬자네' 라고 하더군요. 일단 편의상 정병장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날도 정병장과 탄약고 근무를 서다가 문득 전부터 눈여겨 보았던 밑둥에서부터 잘린 나무가 다시 눈에 들어왔습니다.
탄약고 주위에 나무가 몇 그루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그 나무중에 그것 하나만 밑둥부터 잘려있었습니다. 근무 서다가
지루해지면 이런저런 잡생각에 빠지는데, 한번은 왜 그 나무만 잘렸을까..하고 궁리했던적이 있습니다. 초병의 시야를
가려서 시야 확보를 위해 잘랐다고 보기엔..다른 나무들하고는 조금 멀찍히 떨어진 위치라 위치상으로 볼때도 그건 아닌것
같고..혹시 창고 지을때 자재가 부족해서 잘라썼나? 일반 성인이 두팔을 벌려 안으면 손이 서로 닿을만한 굵기라
그럴 가능성도 있겠더군요. 만약 아직까지 잘리지 않고 있었으면 이 뙤양볕에 근무설때 그늘이라도 좀 제공할텐데..
아깝다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그러고보니 나무 밑둥이 흑갈색이더군요. 혹시 나무가 죽어서 썩기 시작해서 잘랐을 수도
있었을것 같았습니다. 혹은 나무를 베어내고 나서 썩었던지..아무튼 시커멓더군요.
그날도 마침 그게 시야에 들어왔던터라 무료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별뜻없이 이야기거리로 삼기로 했습니다.
"정병장님, 저기 저 나무 말입니다. 왜 저것만 저렇게 잘렸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창고 지을때 자재로 썼나..?'
정병장이 그 나무를 바라보더니 '아 저거~?' 하곤 이야기하더군요.
"너 저거 몰랐어? 저거 귀신 때문에 베어낸거자네."
"예? 귀신 말입니까? 아니 왜 귀신 때문에 나무를 벱니까? 나무에 귀신이라도 붙었었답니까?;"
"아 응, 음..나도 고참한데 전해들은 이야긴데, 지금 중대장의 전,전 중대장때 일이라더라..
그 중대장이 부임해왔는데, 그 중대장이 인물이 그렇게 훤칠했다네? 거기다가 언변도 좋아서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도 있었데. 그래서 부하들은 물론이고, 사단장이나 연대장들도 그 중대장을 그렇게 좋아했다네?
근데 문제는 이 중대장이 인물도 좋고, 언변까지 좋으니까 여자들이 많이 꼬인거야..거기다가 이 중대장이 하필
바람기도 다분했고 말이지..당시 화천 다방레지중에 이 중대장 모르는 사람 없었다지 아마? 그것 때문에 중대장 부인이
그렇게 속을 많이 썪였데..그런데 다방레지들이야..그냥 스쳐지나가는 여자들이니까 그렇다 쳐도..나중엔 드디어 대형
사고가 터진거야..몸 파는 여자도 아닌 일반인하고 깊이 바람이 나버린거지..쉬쉬 했지만 결국 이 사실이 중대장 부인
귀에까지 들어가게 된거자네..충격에 질투에 화까지 난 중대장 부인이 야밤에 이 나무에다가 목을 매었다더라.."
"헐..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살까지..그런데 자살할때 아무도 그걸 몰랐답니까?"
"나도 잘 모르는데..밤 10시 넘어가면 다른 사람들이야 점호 끝내고 취임에 들어가니까..사람있어봐야 각 초소 근무자들
밖에 없을텐데..사실 이 초소가 그 전에는 이 탄약고 뒤쪽 후방에 있어서 야산을 넘어 접근하는 사람들을 감시하도록
위치했었단 말이지.."
"우와..여자가 한을 품으면 무섭다던데..;"
"다음 탄약고 근무자가 밑에서 어둠속에 올라오다가 여기 허연옷을 입은게 둥실 떠있는거 보곤 자질러졌다자네..
아 소름끼쳐;..그거 정문초소에서도 이쪽을 바라봤으면 아마 이쪽에 허연게 떠있는 모습이 보였을껄? 그럼 그날 잠은
다 잔거지 ㅋㅋ
뭐 아무튼 그 뒤로..그렇게 부대에 귀신이 자주 출몰했었다는군. 저 아래 창고..저기서 막 밤에 창고안에서 푸른불빛이
새어나온다는 둥..말이 많았데..그래서 고민하다 못해 전 행보관님..너도 봤지? 이젠 대대로 가신 노원사님..그래 그분이
결국 용하다는 무당을 데리고 왔데. 그리고 그 무당이 굿을 하더니 행보관한데 그랬다는군. 그 여자 원귀가 돼서..이 부대를
떠날 생각을 안한다고..내 힘으로도 어떻게 쫓아보낼수가 없겠다고..그래서 행보관이 그럼 어떡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쫓을수는 없고..다만 약화시킬수는 있을꺼 같다고..일단 먼저 목맨 저 나무 먼저 베어내서 잘라내고, 초소를 옮겨서 항상
남자들을 그 자리에 세워서 양기로 음기를 최대한 눌러야, 그나마 그 귀신이 제대로 힘을 못 쓰겠다고..그래서 무당이
이 자리에서 산 닭의 목을 쳐서 그 피로 나무에 뿌리고 원사님이 전기톱으로 잘라버렸다데..그리고 상부 허가 끝에 초소를
옮기게 된거고.."
"헐..섬뜩한데요; 근데 그 바람핀 중대장은 어찌 됐습니까? 그 사람은 해코지 안 당했답니까?"
"글쎄..별 해코지는 안 당했던 모양인데? 나도 잘은 모르지만..뭐 그 소문이 퍼지고..사단장, 연대장 귀에까지 들어가게
됐으니..자진해서 옷을 벗었던, 아니면 위에서 기회를 줄테니 명예롭게 퇴역을 하라고 했던지..얼마 후에 옷 벗었다던거
같은데..아니 딴데로 발령받았다던가? 아무튼 화천에선 사라지게 됐다는데 떠나기전에 여길 찾아왔었다지 아마"
"아~그래도 양심은 있었나봅니다. 그래도 찾아와서 사죄까지 할 정도면"
"피식~사죄는 무슨..그런일때문에 중대에 제대로 출근도 안하다가 떠나기 하루전엔가 이틀전인가..야밤에 찾아왔는데
그 훤칠하던 사람이 빼싹 말라져가지곤..수염도 덥수룩하고 눈도 충혈된게..당시 정문 근무자가 자기 중대장도 못
알아볼뻔했다자네..그런데 경례를 하던말던..무서운 눈빛으로 들어와서 여기까지 단숨에 찾아와서 이 나무 밑둥에
신나인가 뿌리곤 불까지 질렀다더라."
"헐..근데 이 나무는..까맣긴 한데 탄거 같지는 않는데 말입니다?"
"응 그래, 태울려고 불을 붙였는데..이게 무슨 조화인지..불이 잠깐 붙었다가도 금방 꺼지고 안붙더랜다..그래서 계속
불 붙이고, 그러면 꺼지고..나중엔 괴성까지 질러가며 그러던 참에, 정문초소하고 탄약고 초소에서 보낸 * 받고
일직사관하고 일직하사, 마침 중대가 뒤숭숭해서 영내 대기하던 다른 간부 몇이 와서는 끌어안아 말리고, 데리고
내려가서 부대밖으로 델고 갔다던데? 그게 그 중대장 마지막 모습이었다더라.."
"우와 이거 최곤데 말입니다; 우웃 오싹해라~"
'탄약고 앞에서 목매달아 자살한 귀신이라..설마 얼마전에 내가 본 그거랑 연관이 있는건..아니겠지?;'
그때 저는 정병장에게 제 생각을 물어볼까 말까 망설이다가..결국은 하지 못했습니다. 왠지 별것 아닌 일에 너무
오버하는거 같기도 하고..제가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정병장에 들려준것이긴 했지만, 정병장은 원래 그런거
별로 재밌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던지라..이야기해도 별 재미없어 할 것 같기도 하고..
탄약고 정문 앞에 사람이 목 매 죽었다던 나무와..제가 싸리빗자루를 보았던 탄약고 앞마당..불과 50여미터
떨어져있었을까요? 저는 나무 밑둥과 탄약고를 번갈아 바라보며 그냥 제 마음속에 묻어버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있어 정병장이 제대했고,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엔 제가 알기로는 이 이야기는 우리 소대에선 저밖에
몰르는 일이 되버린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되어서야 결국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게 돼었군요.
별로 대단치 않은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이 에필로그는 저희 부대에 내려오던 이야기 두세가지와
같이 묶어서 쓰려고 했는데..예상외로 에필로그만 두드려도 분량이 장난이 아니네요;
뭐 밑에 다른분이 올려주신 군대 괴담과 크게 다른 이야기도 아닌지라 생략하고 에필로그만으로 제 이야기를 끝맺음
하겠습니다^^ 좋은밤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