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와 사진참사검(四辰斬邪劍)의 저주,,

비애리 작성일 08.04.07 13:3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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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고승인 나옹대사가 제자인 무학을 데리고 함흥을 지날때 한 산소자리를 보고
왕이 날 자리라고 무심코 중얼 거립니다..

그런데 마침 지나가던  이자춘의 종이 듣고 그사실을 주인에게 알렸습니다..


그러자 이자춘은 환급히 말을 타고  따라가 나옹대사를 찾아 땅의 정확한 위치를 물었습니다.

그러나 나옹대사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무학이 스승 몰래 명당을 알려주었고 이자춘은  즉시 그 묘자리로 조상의 묘를 이장했는데
그 땅을 파자 도가 한자루 나왔다고 합니다.

 

그 도는 금빛으로 찬란하였고 칼자루 끝은 용머리로 되어있는것이
예사롭지않아 이자춘은 이것은 임금 될 자의 칼이라며 크게 기뻐하며 칼을 아들인
이성계에게 건내주었 습니다.


그러나 칼을 받은 후부터 이성계는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어느 괴인이 그 조상의
묘자리를 파해치는 꿈이었죠.

몇날 몇일 같은 꿈을 꾸자 이성계가 괴이히 여겨 아버지 이자춘에게 말을 하니
이자춘은 이는 필시 누군가 그 묘자리의 내역을 알고 그것을 훔치려하는것이다 라며
이성계에게 묘자리를 지킬것을 명했습니다.

이성계가 묘자리를 지키려 며칠간을 그 근처에서 해메었는데 3일째되는날
장신의 털복숭이 괴인이 나타나 천자의 묘자리를 능멸한 죄인을 처단하겠다며 이성계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이성계가 맞서싸웠으나 그 괴인은 활을 맞아도 피를 흘리지않고 칼로 베어도
그 상처가 아물어서 이길수가 없었습니다.


할수없이 몸을 피한 이성계가 이자춘과 괴인을 어떻게 물리칠것인가를 논하다
결국 나옹대사가 머물고 있는 절로 가서 괴인을 물리치는 법을 물었지만 그는 대답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무학이 이성계에게 은밀히 알려주길 오얏나무가지로 화살을 만들어
괴인의 미간에 맞추면 쓰러질것이라 했는데
단 한가지 괴인을 묘자리 근처에서 죽이지 말라하였습니다.

이성계는 기뻐하며 오얏나무로 화살을 3개 만들어 다시 무덤을 지키고 있으니
다시 괴인이 나타나 덤벼 들었습니다..
그러자 이성계가 활을 들어 괴인의 미간을 맞추자 괴인이 크게 울부짖으며 땅에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괴인이 다시 일어나려 하는걸 본  이성계는 무학의 당부를 잊고
괴인을 죽이려 칼로 목을 쳤으나 오히려 칼이 부러졌습니다.


이성계가 보통 무기로는 괴인을 어찌할수 없음을 알고 묘자리에서 나온 칼을 뽑아 괴인의 목을 친 순간
 피가 분수처럼 솟구쳐 그 일대를 다 적시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된 나옹대사는 '천자의 묘자리를 역적에게 뺏긴것도 억울한데
저주받은 피를 묻혀 훼하였으니 이제 천자가 아닌 왕의 땅이 되었구나 " 라고 한탄하며 무학을 파문 시켰다고 합니다..


이후 이성계의 설화에서는 칼을 쓰는 모습이 별로 등장하지 않으며 활과 관련된 무용만이 전해집니다.
이 도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것은 위화도 회군 때로 이성계가 군을 돌려 압록강을 건너려하자
칼이 크게 울며 그 울음은 강을 모두 건널때가지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성계가 개성에 들어와 우왕을 폐하고 창왕을 세운뒤 우왕을 신돈의 자식이라하여 죽이려 했습니다.
이에 우왕이 왕씨는 용의 후손으로 겨드랑이에 비늘이 있는것이 증거라고 하며 자신의
겨드랑이를 드러내 보이자 그곳에는 비늘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성계일파는 그것을 무시하고 우왕을 죽이도록 하였죠.

그러나 우왕을 죽일때 어떤 무기로도 그 몸에 상처를 낼수없자 사람들이 고려의 왕족은 용의 후손이라
사람의 무기로는 우왕을 해할수없다 라며
두려워하자 이성계는  친히 내려가 무덤에서 얻은 도로 우왕의 목을 베었는데

그러자 우왕이 가지고 있던 마를 베는검인
사진참사검(四辰斬邪劍-진년,진월,진일,진시에 만들어진 사인참사검보다 더 강력한 신검)이 울부짖자
근처의 이성계의 수하들이
입에서 피를 토하며 죽기 시작 했습니다..

당황한 이성계가 무학에게 묻자 그는 우왕을 죽인 도로 사진참사도를 막으라고 했습니다..
이성계가 칼을 던지자 도는 사인참사도 옆에 꽂혔고 두 칼은 서로 싸우는듯 떨며 울부짖는 소리를 발산 했습니다..

이 울림은 3일간 계속 됬으며 이성계의 도는 박살이 났고 사진참사검은 금이 가 있었습니다..

무학은 사진참사검을 봉인 하고 이성계의 도의 파편을 늘 가지고 다녔는데
사진참사검의 저주가 끝나지 않았으니 조심 하라며 이성계에게도 도의 파편을 가지고 다니라고 했으나
이성계는 거절 했는데 저주 탓인지 자식에게 왕위를 뺏기게 되죠..



(역사서에는 태종이 태조를 극진히 모셨다고 하지만 야에선 비참히 죽였다고 합니다)

또한 조선시대 사인검만 만들고 사진검을 제조 금지 시킨것도
이성계가 사진검의 저주를 받아서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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