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저는 정말로 죄인입니다."
고해소의 건너편에서 비통하게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신부는 변하지 않은 편안한 표정을 지은 채
고해소에 들어온 사람을 친절로써 맞이하고 있었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죄인입니다.
그리고 죄를 고백하고 진심으로 그 죄를
늬우침으로써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신부의 따뜻한 말 한 마디에,
고해소의 건너편에 있는 사람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고해하고자 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탓에
그의 눈에 흐르는 눈물은 볼 수 없었겠지만,
간헐적으로 터지는 울음소리와 울음을 참으려고
꺽꺽대는 소리를 통해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신부님! 저는 정말로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죄를 용서하십니다. 걱정말고 죄를 말씀해보세요."
"오오... 신부님! 어디서부터 저의 죄를 고백해야할지가 두렵습니다.
금방이라도 주님의 손길과 벼락이 저의 머리위를 내려칠까봐 너무나 두렵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매정하신 분이 아닙니다.
그 분은 집을 떠나 부랑아가 된 자식까지도
행복한 미소로 받아들이시는 분이십니다."
울음소리가 한결 멎은 듯 했다.
이윽고 신부는 그의 울음소리가 천천히 사그러들어
완전히 사라질때까지 단 한마디도 말하지 않았다.
왠지 그가 그걸 원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고해소 건너편에 있는 그가 말을 꺼냈다.
"저는 비천한 화가였습니다."
"계속해보세요."
"저는 원래 귀족들의 유희나 귀부인들의 초상화를 그리고
받은 돈으로 먹고 사는 가난한 화가였습니다.
언제나 그들이 만족할만한 그림을 그렸음에도,
저는 언제나 항상 가난했지요.
그들이 주는 돈으로는 그들을 그리느라 쓴 물감값을 대기도 벅찼거든요.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언제나 항상 즐거웠지만,
그로인해 가난을 떨칠수가 없다는 점은 굉장히 무서운 사실로 제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는 한 귀부인을 너무 음란하게
그렸다는 죄목으로 두 눈을 잃게 되었습니다."
"두 눈을 잃게 되었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제가 밝은 눈이었을 때 본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제 그림이 그녀의 외모보다
더 초라해지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들 정도로 말이죠.
그리고 너무 무서웠습니다.
제가 그리는 그림이 그녀보다 더 아름답게 되어버리면
저는 영원히 그녀에게 사로잡혀 헤어나올 수 없게
되어버릴까봐 말입니다. 하지만 제가 그린 그림이
그녀보다 더 초라해져 그녀가 비통해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 역시 무서웠습니다. 그녀를 보는 순간
그녀는 저에게 있어서 모든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죠."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결국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 저는 그녀가 아닌
완전히 다른 사람을 그려버리고 말았습니다.
바로 거리의 창녀들 말이죠!
오오... 제가 어쩌자고 그때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 마음 한켠에는 그녀를 향한 그런 어두운 구석도 있었나 봅니다.
거리의 창녀들의 몸뚱아리위에 그녀의얼굴을 그려넣어 버렸으니까요.
그런 저의 그림을 본 백작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하인들을 시켜 저의 두 눈을 뽑아버리라고 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두 눈이 뽑히고는 아무것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괴로움은 그때부터 시작이었습니다."
"무슨 말씀이시죠?"
"그들이 제게서 두 눈의 생기와 빛을 앗아갔지만,
그녀에 대한 그 모습만은 앗아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히려 그 모든 빛이 사라지고 제게 남은 그 끝없는 어둠속에서
그녀의 모습은 칼로 새긴 조각처럼 더욱더 선명해져만 갔습니다.
눈앞에서 하염없이 아른거리는 그 모습을 붙잡을 수가 없다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요!
그러다가 저는 결국 다음과 같은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바로 그녀가 죽으면 저를 괴롭히는 그 모습 또한 사라질 것이라고요."
화가의 말 한마디에 신부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그저 화가의 광기에 가까운 집착에
억눌린 채 조용히 그의 말을 계속 경청했다.
"저는 제게 남은 모든 재산을 털어서 한 암살자에게
그녀를 죽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암살자가 제게 그녀를 죽였다고 하면서
그녀의 머리를 만져보게 해주더군요.
부드러우면서도 윤기있어보이던 그 머리칼,
가늘고도 섬세한 얼굴, 빙판처럼 차갑지만 매끈한 피부.
틀림없이 그녀였습니다.
저는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그에게
사례금을 주어 돌려보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계속 그녀의 모습은 지워지지 않고,
더 선명하게 남아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제 죄책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눈에 더 할나위 없는 슬픔까지도 서려있어보이고,
또 저에 대한 격렬한 증오까지도 남아있는듯해 보였습니다.
아아! 신부님 저는 정말로 용서받지 못할 죄인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지. 용서받지 못할 수 밖에 없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나는 너를 죽어도 용서할 수 없어.
너의 그 강렬한 집착이 그런 피를 부르게 된 거니까."
"아아!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요!
신부님 제발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나는 너를 용서할 수 없어. 아무도 너를 도와주지 않을거야.
이 좁은 공간에는 오로지 너와 나뿐이고,
나는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있어."
"그럴수가... 끄아아아아아아악!!"
화가의 비명소리가 성당에 울려퍼졌다.
신부는 황급히 고해소의 문을 박차고 달려나가
화가가 있던 고해소의 문을 열어봤지만,
이미 화가는 자신의 목을 칼로 찌른 채 죽어있었다.
[출처 : 루리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