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y4you 작성일 09.05.09 04:3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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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에서 경준은 눈을 떴다. 장엄한 풀숲이 눈앞에 펼쳐지자, 경준은 여간 당황스러운게 아니였다. 자신이 그곳에 왜있는지는 전혀 기억에 남지않는다. 술이 취해서 그런가? 전날밤 과하게 술을 마신게 원인인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만취한 상태라도 집에는 곧잘 찾아가던 경준에게는 특이한 일이였다.

 

무의식적으로 주머니를 뒤져본다. 주머니를 툭툭 쳐보기도 하고, 손을 깊숙히 집어넣어 이리저리 휘둘러도보지만 무엇하나 손에 잡히는것은 없다. 강도의 짓인가? 경준은 그저 지갑에 들어있던 많은 카드와 신분증. 그리고 현금 5만원이 너무도 아까웠다. 게다가 새로 구입한 휴대폰까지 없어지자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경준이였다.

 

"ㅆ발! 내 휴대폰!"

 

모든것을 체념한듯 경준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처음 눈을 떴을땐 이곳이 낯선 느낌이였지만, 지금은 한눈에 그곳이 어디인지 알아차렸다. 자주 운동을 하러 올라갔던 산이다. 만취한 상태로 여기까지온 자신이 이상하고도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터벅터벅 산길을 내려갔다. 찌뿌등한 목을 이리저리 휘돌리며 경준은 몸을 풀었다. 길바닥에서 잠을 자고나니 몸 구석구석이 쑤시는가 보다. 그러던중 어느덧 산 입구가 보였다. 그리 높지 않았던 곳인지라, 경준은 금방 내려올수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 하나 보이지않았다. 평소라면 사람들의 발길이 그닥 끊기거나 하지않는 유명한 산이였다. 그런곳에 경준 혼자 우두커니 서있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뛰어다니며 장난치는 아이 하나 보이지않았다.

 

일단은 계속해서 걸어갔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차도가 있을것이다. 그곳에서 땡전한푼 없는 경준은 차를 얻어타고 갈 속셈이였다. 하지만 차도에 도착한 경준은 놀란 눈을 떴다. 휑한 도로. 줄지어 다녀야할 자동차 하나 보이지않는다. 어떻게 된일이지? 고민에 빠져버린 경준이였다.

 

경준은 근처 바위돌 위에 걸터앉아 생각하였다. 사람들이 몽땅 어디갔지? 갓길에 세워진 차들은 있지만, 도로를 달리고있는 차는 단 한대도 없다. 줄곧 끊임없이 차가 다니는 도로인데 말이다. 마치 이세상에 자신 혼자인 기분. 경준은 어안이 벙벙하였지만, 고민해봤자 별 효과는 없다. 잠시후 엉덩이를 들어 자신의 집방향으로 계속해서 걸어가는 경준이였다.

 

어느정도 걸어가던 경준에게 민가가 보였다. 급한 마음에 그곳으로 달려가본다. 그리고 이리저리 둘러보지만, 불이 켜져있는 곳이라곤 단 한채도 없었다. 인기척또한 찾아볼수가없다. 사람들이 모두 이민이라도 간것인가? 아니면 외계인들에게 침공이라도 당한것인가? 자신의 어이없는 생각에 쓴웃음을 터트리는 경준이였다.

 

그렇게, 몇십분간 민가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 하나 찾을수 없었고, 점점 경준은 불안해져만 갔다. 하지만 별수 있겠는가? 일단은 집으로 가고보자라고 생각하는 경준이였다.

 

산에서 집까지 걸어서 가려면 족히 하루는 꼬박 걸릴 거리였다. 그런 거리를 무턱대고 걸어간다. 그 외에는 별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경준의 마음을 몰라주고, 배에선 밥달라며 요동을 쳐대고있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민가에서 뭐라도 훔쳐먹을껄.."

 

그렇게 걷던 경준에게 무엇인가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사람의 형태를 뛴 물체는 경준을 향해 걸어오고있었다. 그모습을 본 경준은 뛸듯이 기뻤다. 오늘 자신이 눈을뜨고 처음보는 사람이였다. 반가운 마음에 무턱대고 경준은 그것에게로 뛰어갔다.

 

멀찌감치 떨어져있던 둘의 간격이 어느정도 좁아졌다. 그리고 경준 시야로는 그것이 점점더 뚜렷하게만 보인다. 이윽코 그것이 완전하게 보이자, 경준은 경악하였다. tv나 책에서만 보던 외계인 모습. 달걀 노른자만큼이나 동그란 얼굴형에, 수박씨처럼 생긴 새까만 눈이 박혀있다. 코는 바늘로 쿡쿡 찌른것처럼, 작은 구멍이 두개 뚫려있다. 왠지 만지면 흐느적 뭉게져 버릴것만 같은 피부를 가졌다. 그리고 몸전체는 녹색으로 전형적인 외계인의 모습이다.

 

둘의 간격은 어느덧 100m도 되지않았다. 그것은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있었는데, 그것을 경준을 향해 치켜들었다. 그것은 바로 총이였다.

 

"히익!"

 

놀란 경준은 뒷걸음을 쳤다. 총구에서 금방이라도 총알이 튀어나와 자신에게 박힐것만같았다. 몇걸음 뒤로걷던 경준은 몸을 획 돌려 냅다 달리기 시작하였다.

 

- 삐비빔!

 

그순간, 총구에서는 총알대신에 레이저빔이 뿜어져나왔다. 그것은 경준 바로 앞 바닥을 맞쳤고, 그 바닥은 까맣게 그으렸다. 아마 저것을 맞으면 자신도 검게 타버릴것만 같았다.

 

경준은 뒤도 안돌아보고 달렸다. 만화책에서 나오던 다리를 없애고, 줄로만 휙휙 그어놓은 듯이 달렸다. 발이 안보일 정도로 말이다. 뒤를 힐끔 바라보니, 외계인같은 생물체가 계속해서 쫓아오면 레이저를 쏘아댔다. 아슬아슬하게 빗나갔지만, 위험해보인다.

 

얼마쯤 달렸을까? 정신없이 달리다보니 레이저소리가 더이상 들리지않았다. 뒤를 보니, 외계인이 사라져있다. 따돌린 것인가? 한숨을 깊게 내쉰뒤, 커다란 바위뒤에 숨어 마음을 진정시켰다.

 

"말도안돼.. 말도안돼.."

 

사람들이 사라지고, 자신앞에 나타난 외계인. 이 모든것들이 자신이 장난삼아 생각했던 외계인의 침공인것만 같았다. 그들이 지구인을 몽땅 잡거나 죽여서, 더이상에 인간들이 보이지 않는것 같았다.

 

"빌어먹을.. 하룻밤 사이에 이게 무슨일이람?"

 

경준은 일단 볼을 꼬집어본다. 따끔함이 느껴지는게 더더욱 절망에 빠지게 만든다. '화성침공'이라는 영화의 내용처럼 외계인이 지구로 침공하였다. 믿을수 없지만, 자신의 눈으로 외계인을 봐버렸으니 그 사실을 인정할수밖에 없었다.

 

잠시간에 휴식을 취한 경준은 몸을 이르켜 계속해서 걸어갔다. 무턱대고 그곳에 있을순 없어서이다. 집에 홀로계시는 어머니는 무사한지, 아니면 다른곳에 아직 자신처럼 사람이 있는지, 그런것들을 알아봐야만했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집을향해 걸어간다.

 

이미 날은 어둑어둑해져있다. 새파란 달빛만이 경준의 앞을 아슬아슬하게 나마 밝혀주고 있다. 어림잡아 저녁 8시는 된것같았다. 경준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길을 걷는다. 오늘따라 유달리도 반짝반짝 빛을 뿜어대는 별들이 아름답기만 하였다. 그리고 달을 바라보니, 그곳에선 어머니 얼굴이 나타났다. 어머니는 어떻게 되셨을까? 경준은 어머니 걱정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경준은 사람이 너무나도 보고싶었다. 그 누구라도 상관이 없다. 싸가지가 없건, 난폭하건, 그무엇도 상관이 없었다. 단지 지금 이상황에 대해서 대화를 나눌수있는 그 누군가가 경준은 필요하였다.

 

"저기요.."

 

"누..누구야!"

 

순간, 가녀린 여자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른쪽을 바라보니, 새까만 어둠속에서 여자하나가 불쑥 나왔다. 외계인은 아니였다.

 

"저.. 사람맞죠? 그렇죠?"

 

여자는 경준의 얼굴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물었다. 그럼 내가 외계인같아 보인단말야? 경준은 어이없어 했다.

 

"외계인 아니에요. 걱정마세요."

 

"와! 다행이다. 저 오늘 처음으로 사람보는거에요!"

 

"그래요? 사실 저도 그래요."

 

여자는 얼핏봐도 고등학생 정도로 보였다. 깨끗한 피부와, 명랑한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흐으윽.. 아저씨를 보니.. 얼마나 기쁜지몰라요.. 흐흑.."

 

여자는 갑작스레 눈물을 쏟아냈다. 경준은 자신을 아저씨라 불러 기분이 나빴지만, 우는 그녀앞에서 내색할순없었다.

 

"하하, 저도 그래요. 당신을 보니 기쁘네요."

 

여자는, 자신의 집이 근처라며 그곳으로 가자고하였다. 배가 너무나도 고팠던 경준은 마다하지않고 그녀를 따라갔다. 어느덧 한 마을로 들어섰고, 3층높이 빌라에 2층에 자리잡은 여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경준은 제일먼저, 외계인에게 쫓기느라 땀범벅이된 자신의 몸을 씻었다. 따뜻한 물이 자신의 몸을 쓸어내리자, 피곤함이 확 가신다. 머리를 감고, 몸에 비누칠을 끝마친 경준은 수건으로 닦은뒤 여자가 빌려준 옷을 입었다. 아마 그녀의 아버지 옷인것같았다.

 

욕실에서 나온 경준을 맞이한것은 먹음직스런 한상이였다. 식탁위에 여러반찬과 김을 모락모락 뿜어대는 흰 쌀밥이 매우 반지르르하다. 경준은 곧바로 의자에 앉아 밥을 퍼먹었다. 밥그릇 가득 쌓았던 밥이 순식간에 경준 목구녕으로 넘어들어간다. 다먹은후, 꺼억하며 트림을 하는 경준이였다.

 

"잘먹었다. 고마워."

 

경준은 어느새 그녀에게 말을 놓았다. 딱봐도 자신과는 나이차가 많이 나보여서이다.

 

"아저씨, 우리 일단 각자 소개부터하죠?"

 

"흠, 그럴까? 우선 너부터해봐."

 

"네! 제 이름은 이유리이구요. 나이는 19살이랍니다. 수능생이였죠."

 

이였죠라며, 과거형으로 말하는것보니, 그녀도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어느정도 이해한것만같았다.

 

"난 김경준 이라고해. 나이는 27살이지. 수능생이라고? 고생이 많았겠구나."

 

"에휴, 말도마세요. 어찌나 힘들던지..미칠것만 같았어요."

 

유리의 한숨에 그간 고생이 한껏 묻어났다.

 

"넌 어떻게 무사한거니?"

 

경준이 질문하였다.

 

"흠,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불을 머리까지 덮고 자서 그런가? 아침에 일어나보니, 부모님은 없어졌고, 길거리에도 사람 하나 안보이는거에요. 그러던중 외계인같이 생긴 생물체가 저희 집앞에 있더라구요? 놀란마음에 그대로 장롱안에 숨어서 이때까지 기다린거에요. 어느정도 안심이 되자 어두운것을 틈타서 사람을 찾아보려 나온거구요. 그러다가 아저씨를 본거죠."

 

"그렇구나, 좁은 장롱안에 오랫동안 있었으면 많이 힘들었겠네?"

 

"괜찮아요. 제방 장롱이 워낙에 커서 그리 불편하지는 않았어요. 어디 얼마나 큰지 보여드릴까요?"

 

"하하하, 그럴까?"

 

유리는 자신의 방으로 경준을 안내하였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향긋한 숙녀의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아얏!"

 

경준은 무엇인가를 밟은듯, 발바닥에서 고통이왔다. 발을 들어 바닥을 보니, 알약하나가 놓여져있었다.

 

"에이, 아저씨 엄살은. 자, 저거에요. 엄청 크죠?"

 

그것은 도저히 숙녀방에 있는거라곤 생각되지않는 장롱이였다. 웅장한 크기에, 엔틱한 문양이 박혀있는것이 꽤나 오래된것 같았다. 저 안에 있었다면, 충분히 버틸수 있었을것이라 생각하는 경준이였다.

 

경준은 유리의 침대에 걸터앉아 말했다.

 

"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

 

"글쎄요.."

 

경준은 손으로 자신의 턱을 주물럭거리며, 고민하는듯했다. 하지만 도저히 마땅한 방안이 떠오르진 않았다.

 

"흠, 일단은 우리처럼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을 찾아보자. 나의 어머니도 무사한지 보러가야하고."

 

"그럼.. 우리 엄마 아빠는 무사하실까요?"

 

어느새 유리눈엔 투명한 눈물이 한가득 고여있었다. 그런 유리에게 다가간 경준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래주었다.

 

"괜찮아. 무사하실꺼야."

 

유리는 경준을 안방으로 안내하였고, 거기서 잠을 청하기를 권유하였다. 흔쾌히 받아드린 경준은 푹씬한 침대위에 몸을 누인다. 천장을 바라보며, 작은 안심의 미소를 짓는다. 유리처럼 아직 곳곳에 사람이 있을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도 원하던 대화를 할수있는 사람을 만났다. 게다가 어여쁜 고등학생 아가씨. 결코 나쁘지않다. 경준은 눈을감자, 머리속에 한가득 차있었던 오만가지에 생각들이 모두 배게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일단은 피곤한 몸을 쉬어주는것이 급선무였다.

 

경준은 눈을 감자말자 잠에들었다. 어지간히도 피곤하였나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후, 경준의 단잠을 깨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 쿵! 쿵! 쿵!

 

경준은 피곤한 눈꺼풀을 억지로 뜨며, 눈을 비볐다. 그소리는 현관쪽에서 들려오는듯 하다. 경준은 슬금슬금 현관문으로 다가가 작은 구멍으로 밖을 살펴보았다.

 

"이런, ㅆ발."

 

현관앞엔 여러마리에 외계인이 진을 치고있었다. 문을 쾅쾅 두들기며, 금방이라도 문을 뚫고 들어올것만같다. 경준은 다급했다. 우선 유리를 깨워야만했다. 곧바로 유리의 방으로 들어가 흔들어 깨웠다.

 

"유리야! 일어나! 도망가야해!"

 

"으..음.. 네?"

 

유리는 쏟아지는 잠에 정신이없었다. 그런 유리를 놔두고, 만일에 사태를 대비해 부엌에서 식칼을 하나 집어들어 식탁위에 놓여져있던 신문지로 둘둘 말았다. 그것을 바지춤에 끼운채 다시한번 유리방으로 향했다. 그러자, 유리가 먼저 방문을 열고나왔다.

 

"아저씨.. 무슨 일인데 그래요?"

 

"쉿, 조용히해. 지금 외계인들이 현관앞까지 와있어. 당장 여길 빠져나가야해."

 

벽걸이 시계를 바라보니, 6시를 가르키고있다. 아직 어둑어둑하지만, 약간의 빛이있는 새벽시간이다. 그다음으로 현관문을 다시한번 바라봤다. 엄청난 소리와 함께, 종이짝처럼 찌그러지고있는 문이보였다. 금방이라도 열릴 기세다.

 

경준은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탈출구를 찾기 위해서이다. 2층높이라, 뛰어내리더라도 다리에 무리가 갈수있었다. 그러면 그다음이 문제다. 최악의 사태로, 걸을수조차 없게된다면, 붙잡힐것이 뻔하였다. 게다가 유리는 2층 높이에서 뛰는것이 도저히 무리일것만 같았다. 경준은 창문을 열어 밖을봐라보니, 지상 가까이 이어진 가스배관이 눈에 띄었다.

 

"저거다!! 저걸타고 내려가야해."

 

"저걸 어떻게 타고내려가요.. 저 무서운데.."

 

역시나 유리가 문제였다.

 

"괜찮아, 오빠가 잘 잡아줄테니까 걱정하지마. 지금은 저것밖에 탈출방법이 없어."

 

경준은 손을뻗어 가스배관을 잡았다. 서서히 다리까지 창문밖으로 뻗으며, 근근이 배관에 발을 디딜수있었다. 이어서 몸을 전부 빼내어 양손으로 배관을 붙잡고는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왔다. 경준의 발이 바닥에 닿을순있었지만, 유리에겐 힘든 일일것만 같다.

 

"자, 유리야 내려와!"

 

"으앙.. 무섭단 말이에요.."

 

유리의 눈물이 2층높이에서 뚝뚝 떨어진다. 시간이 없는데, 금방이라도 외계인이 그들을 덮칠것만 같았다.

 

"유리야! 우린 꼭 살아남아야해.. 그래야지 너도 어딘가에 있을 부모님을 볼수있을거 아니야? 그러니까, 어서 내려와. 내가 꼭 잡아줄테니까."

 

그말을 들은후, 유리는 마음을 굳게 먹은듯 결의에 찬 표정을 지었다. 눈을 부릅뜨며, 손을 뻗었다. 가스배관이 손에 잡히자 서서히 발까지 뻗는 유리였다.

 

- 콰앙!!

 

"꺄아악!!"

 

그순간, 무지막지한 소리가 현관에서 들려왔다. 아마 문짝이 떨어져나간듯 싶다. 그소리에 놀란 유리는 창문밖으로 떨어져버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밑에있던 경준이 그녀를 붙잡았다. 유리는 놀란가슴을 진정못하고 폭포수마냥 눈물을 쏟았다.

 

"자, 어서 도망가자."

 

경준은 유리를 바닥으로 내룬후, 곧바로 그녀손을 잡은채 달렸다. 뒤를 바라보니, 여러마리에 외계인들이 창문에서 뛰어내리고있었다. 그리곤 엄청난 속도로 그들을 쫓아왔다. 유리는 아까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듯, 발을 절뚝거리며 스피드를 내지못했다. 억지로 그녀를 끌고갈수밖에 없는 경준이였다.

 

골목길을 지나, 무조건 숨을수 있는곳을 찾아보았다. 더이상 도망가긴 무리였다. 달리면 달리수록 그들이 점점 가까워만 졌다. 일단 몸을 숨겨, 시간을 번후 도망가는게 나을거라 생각하였다.

 

커브를 돌고나니, 작은 골목길안에 커다란 쓰레기통이 보였다. 그들은 곧바로 그뒤로 숨어들어갔다.

 

- 키야아악

 

징그러운 소리가 들린다. 아마 외계인들의 소리인듯싶다. 괴상망측한 소리가 점점 가까워 지는게 느껴졌다. 그소리는 이제 바로 옆에있는 것처럼 크게 들린다.

 

외계인들은 그들이 보이지 않자, 당황한듯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대부분의 외계인은 계속해서 앞을향해 달려갔고, 2마리 정도만이 주변을 수색하였다. 이윽코, 한마리가 서서히 쓰레기통쪽으로 다가갔다.

 

- 터벅터벅

 

- 캬하키히크

 

괴상한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경준의 숨이 턱하니 막혀버린다. 유리는 그런 경준에게 기대어, 숨이 멎을듯한 두려움에 몸을 덜덜 떨었다.

 

- 키야아악

 

이번소리는, 꽤나 거리가 있는곳에서 들려왔다. 그러더니, 근처까지 와있던 외계인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되돌아간다. 다른 외계인이 그를 부른것이다.

 

걸음소리가 점점 멀어지자, 경준은 안심한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힐끔 얼굴을 내밀어 외계인이 있는지 확인하였다. 그순간, 경준은 아까 그 외계인과 눈이 마주쳐버렸다.

 

"ㅆ발!"

 

외계인이 곧바로 그에게 달려왔다. 어제 봤던 녀석과는 다르게 이번엔 총은 들고있지 않았다. 하지만, 입부분이 네갈래로 갈라지더니, 그안에선 무시무시한 이들이 나타났다. 날카로운 그것은 스쳐도 살결이 뜯어져 나갈것만같다.

 

그렇게 입을 벌린채, 외계인이 경준에게로 달려들었다. 경준은 손을 들어 다가오는 외계인을 저지하였다. 입을 두손으로 힘껏 막으며, 다리로 그것에 복부를 걷어찼다. 하지만, 힘이 어찌나 쎈지, 밀어붙이는게 장난이아니였다. 그것은 경준의 손을 뿌리친채, 다리를 붙잡았다. 힘껏 잡아당기자, 경준은 힘없이 쓰러져버린다. 외계인이 경준을 서서히 잡아당기더니, 다시한번 입을 크게 벌렸다. 삼켜버릴 기세였다.

 

경준은 무엇인가 주섬주섬거리더니, 바지춤에 끼워두었던 식칼을 꺼내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외계인에 손을 잘라버렸다. 뼈가 없던 그것의 손은 쉽사리 잘려나갔다.

 

- 키야아아악!!!!

 

괴상한 울음소리가 퍼져나갔다. 경준은 잡혔던 발을 빼낼수있었다. 외계인의 잘린 팔에선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열받은 외계인이 입을 최대한 크게 벌렸다. 이미 얼굴전체가 입이였다. 날카로운 이빨이 경준을 위협한다. 설상가상으로, 다른 녀석이 하나 더나타났다. 그녀석또한, 입을 벌리며 경준에게 달려들었다.

 

"ㅆ발!!!!! 꺼져버려!!!"

 

경준은 *듯이 칼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이가, 자신의 살을 뜯었지만, 고통따윈 느껴지지않았다. 이미 외계인들도 몸 구석구석이 피로 물들어갔다. 그순간, 경준 뒤에서 짱돌하나가 날라왔다. 그것은 외계인 한마리 머리에 명중하였고, 머리가 터지면서 녹색에 살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경준은 뒤를 바라보니, 부들부들 떨고있는 유리가 보였다. 아마도 그녀가 짱돌을 던진듯싶다.

 

다른 한마리가 머리가 터져버린 자신의 동료를 바라보는순간, 경준은 곧바로 나머지 놈에게 달려들어 머리통에 칼을 쑤셨다. 푸딩에 숟가락을 집어넣는것 처럼 칼이 머리통으로 쑤욱 들어갔다. 곧이어 피가 솟구치면서 외계인이 *듯이 소리를 질렀다. 잠시후, 발광을 하던 외계인은 이내 쓰러져버린다.

 

경준의 몸은 피투성이가되어, 굉장히 섬뜩하였다. 그는 쓰러진 외계인에게로 다가가 머리통에서 칼을 빼내었다. 바닥에 떨어져있던 신문지를 들어 다시한번 칼을 둘둘 말아 바지춤에 끼웠다. 그리고 멍하니 서있는 유리의 손을 붙잡고 외계인들이 지나간 반대쪽으로 달려갔다.

 

유리는 다리에 힘이 빠져버린듯 계속해서 주저앉았다. 그런 유리를 경준은 억지로 일으켜세워, 달려갔다. 잠시후, 공원이 보였다. 그들은 공원으로 들어가, 벤치뒤로 몸을 숨겼다.

 

유리의 눈은 초점이 없었다. 혼이 빠져나간것처럼, 멍하니있다. 그런 유리를 경준은 안쓰러운듯이 쳐다보았다. 어린나이에, 끔찍한것을 보았으니 저러는것도 당연하겠지. 하지만, 경준또한 그녀와 마찮가지이다. 자신의 손에 덕지덕지 묻은 피를 바라본다. 조금전 일이 믿기지않았다. 내가 어떻게 그런짓을 할수있었던거지? 분명 칼을 휘두르던 자신의 모습은, 그야말로 악귀였다.

 

"유리야, 고맙다."

 

"네? 뭐가요?"

 

"너가 뒤에서 돌을 던지지 않았다면, 난 이미 죽어버렸을거야."

 

"아.. 그거요? 제가 짐만 될순없잖아요.."

 

경준은 생각했다. 유리가 없었더라면, 자신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혼자 방황하다가, 외계인들에게 붙잡혀 날카로운 이빨에 살결이 몽땅 뜯겨져 나갔을것이다. 유리는 결코 짐이 아니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였다. 만약 그런 유리가 한순간에 사라진다면? 상상도 하기싫은 일이다. 결코 그래서는 안된다.

 

벤치 뒤에서 휴식을 취하던 둘에게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악!! 오지마!!"

 

뚱뚱한 중년남자가 정신없이 달리고있었다. 그의 뒤에선 총을 든, 외계인이 쫓아왔다. 뚱뚱한 남자는 그리 빠른 속도로 달리지 못하였고, 어느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외계인이 총을 들었다.

 

- 삐비빔!

 

총구에선 레이저빔이 발사되었고, 남자에게 명중하였다. 경준은 그가 까맣게 타버릴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예상외로 그는 외상은 찾아볼수가없었다. 그저 기절해버린듯 그자리에 쓰러져버린다. 외계인이 천천히 쓰러진 남자에게로 다가가더니, 무거운 그를 들쳐매고 유유히 사라졌다.

 

"저..남자는 어떻게 된걸까요?"

 

여전히 초조해보이는 유리가 물었다.

 

"흠, 외상이 없는것으로보아, 단지 기절했을 뿐일거야.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어. 사라진 사람들이 죽지않고 살아있을거야."

 

"정말요?"

 

"그..래.."

 

사실 경준에겐 확신은 없었다. 저 남자도 외상은 없지만 죽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리에게 희망을 주기위하여 거짓말을 하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경준은 홀로계신 어머니가 더더욱 걱정되었다.

 

경준은 우선 집으로 가야만했다. 몸에 떨림이 어느정도 가시자, 둘은 다시한번 길을 나섰다. 이미 해는 중천에 떠있다.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경준의 집으로 향했다. 거리는 반정도 온듯 싶었다.

 

유리는 긴장을 늦출수 없는듯, 계속해서 이리저리 둘러보며 걸었다. 금방이라도 입이 네갈래로 갈라진 외계인이 자신을 덮칠것만 같았다.

 

"아아~ 배고파요."

 

긴장감은 흘러넘쳤지만, 배는 공복으로 허전하였다. 유리는 배를 두손으로 움켜지며 배고프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런 유리를 바라보며, 경준은 쓴웃음을 짓는다. 모든지 해주고싶지만, 해줄수 없는 상황이 그저 괴로울뿐이였다.

 

"집으로가면, 제일 먼저 밥을 먹자. 이래뵈도 오빠가 요리는잘해. 기대하라구."

 

"에이~ 순뻥인거 다알아요!"

 

"하하"

 

해가 저물어간다. 여전히 둘은 걷고있다. 해가 완전히 사라져 푸른 달이 돋보였다. 여전히 둘은 걷고있다. 푸르스름한 빛이 생겨났다. 여전히 둘은 걷고있다. 이내 다시한번 온세상이 환한 빛으로 덮혔다. 여전히 둘은 걷고있다.

 

오랜시간 공복이 유지되자, 어느새 배고픔도 잊어버렸다. 하루종일 막연하게 걷다보니, 다리가 좀 쉬게해달라 성화였다. 하지만 쉴순없었다. 언제 외계인이 올지 모른다. 그래서 걷고 또 걷는다.

 

드디어, 경준의 집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파란지붕에 단독주택이였다. 경준은 자신의 집을 보니, 반가운 마음에 뛸듯이 기뻤다. 무작정 뛰어, 현관문을 잡아당겼다. 잠겨있지 않았는지, 그냥 열려버린다.

 

"어머니!! 어디 계세요?!!"

 

경준은 신발을 내팽겨 쳐버린채, 무작정 어머니부터 찾았다. 이방 저방 모두 살펴보았지만, 그의 어머니는 보이지않는다.

 

"젠장.. 이미 늦어버린건가?"

 

경준은, 절망감에빠져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뒤이어 도착한 유리가, 안쓰러운듯 그를 바라봤다.

 

"괜찮아요.. 아직 무사하실꺼에요.."

 

"그래.. 그래야지.. 그래야만해.."

 

경준은 곧바로 부엌으로 향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요리할만한 것들이 보였다. 주섬주섬 꺼내어들어, 싱크대위에 올려놓았다.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다. 거기다가 재료들을 몽땅 부워버리고, 밥을 퍼서 그것까지 후라이팬에 넣어버린다. 수저로 이리저리 젓고는, 어느정도 재료들이 익어버리자, 가스레인지를 꺼버린다. 그리고 후라이팬을 들어, 식탁위에 올려놓았다.

 

"자! 완성."

 

"이게 뭐에요?"

 

"일명 '잡탕 볶음밥'이지."

 

"말도안돼.."

 

하지만 보기와는 달리,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게다가 공복이라는 반찬까지 곁드려 최고의 밥상이 만들어졌다. 잡다한 생각들은 버리고, 일단 배부터 채우는 그들이였다.

 

"이젠.. 어떻게 해야하죠?"

 

식사를 끝마친듯, 수저를 내려놓은 유리가 말했다.

 

"흠.."

 

더이상에 방법이 없었다. 집에 왔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경준의 어머니는 이미 사라졌고, 외계인들의 본거지를 알지도 못한다.

 

"외계인들을 미행이라도 해야하나? 그들의 본거지를 알기위해서 말야."

 

"무서운데.."

 

잠시동안 정적이 흘렀다. 둘은 고민에 빠진듯, 더이상 말을 하지않았다.

 

- 쾅! 쾅! 쾅!

 

- 키히캬히크

 

정적은 깬것은, 문을 두들기는 소리와 외계인 특유의 괴상망측한 소리였다.

 

"ㅆ발! 여기온건 어떻게 알아낸거야?!"

 

"꺄악! 아저씨! 어떡해요?"

 

"걱정마. 도망갈수 있어."

 

경준은 유리의 손을 잡고 뒷문쪽으로 향했다. 평소 별 필요없다고 여긴 뒷문이 오늘 빛을 바랬다. 뒷문을 열고 골목길로 빠져나갔다. 정신없이 뛰던 둘 옆으로 레이저가 지나갔다. 뒤를 보니, 자신들에게 총을 겨누고있는 외계인이 보인다.

 

"썩을!"

 

그들은 정신없이 달렸다. 레이저는 온사방에 벽을 맞추었지만, 그들에게 명중하진 않았다. 하지만, 4갈래에 골목으로 들어서자, 양쪽에선 총을 들지않은 외계인들이 입을 크게 벌린채 달려왔다. 그래서, 경준은 계속해서 직진하였다. 수많은 외계인들이 그들을 쫓아왔다. 어느정도 거리는 가까워진듯하다. 골목길을 빠져나와, 한 건물이 보였다. 그리고, 그 건물에서 불현듯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이윽코 거기까지 다다르자, 손의 주인이 나타났다.

 

"이곳으로 들어와."

 

"어? 예.예."

 

경준과 유리는 그와 함께 건물로 들어갔다.

 

"여기는 안전해. 걱정하지 말게나."

 

"그런데, 아저씨는 누구시죠?"

 

"하하, 그냥 평범한 공무원이지. 이름은 김성한일세."

 

그는 덥수룩한 수염에, 중후한 카리스마를 가진 중년의 남자였다. 그는 둘을 데리고, 점점 어두운곳으로 들어갔다. 이윽코, 그누구도 보이지 않을정도로 깜깜해졌다. 그러자 왠지 불안해지는 경준이였다.

 

"정말 이곳이 안전한가요?"

 

"허허 자네, 속고만 살았나? 이곳은 안전하니 걱정 붙들어 매게나."

 

"아니.. 그래도 너무 깜깜해서."

 

"그래서 안전한거네."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어떤 액체를 따르고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잠시후, 경준손엔 따뜻한 느낌이 전해졌다. 코코아였다. 따뜻하고, 달콤한 코코아를 한모금 마시자, 피곤함이 가신다.

 

"정말 맛있군요! 감사합니다."

 

"하하, 별말을. 근데 자네들은 용캐도 안잡히고 버텼군? 대단하구만, 허허."

 

"아저씨야 말로, 대단하신걸요."

 

"뭐, 나야 운이 좋았던게지."

 

"그래도 대단하세요."

 

그들은 한동안 말없이 코코아를 마셨다. 코코아에 진정제를 타놓은것처럼, 마실수록 진정이 되어간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편안해진다. 잠시후 경준이 입을 열었다.

 

"공무원이라면, 어떤 직업이세요?"

 

"음? 그건.. 어떤 관리를 한다네."

 

"관리? 무엇을요?"

 

"하하, 너무 어둡군. 어느정도 안정이 되었으니 괜찮을꺼야."

 

성한은 경준의 말엔 대꾸없이 일어섰다. 그리고는 주머니속에서 라이터를 꺼내어, 불을 켰다. 주변엔 촛등이 여러개 있었으며, 성한은 촛등 하나하나에 불을 붙여갔다. 잠시후, 칠흑같은 어둠이 사라지고, 꽤나 밝아진 공간이 되었다.

 

"내가 아까 이곳에 들어가면서 안전하다했지 않는가?"

 

"예? 그랬었죠.."

 

"왜 안전하냐면, 그것들은 어둠속에선 모습을 나타낼수 없기때문이지. 하지만 어둠은 그들에게 집이야. 다만 모습을 들어내지못할뿐, 그곳에서 지내는 것이지."

 

"그렇다는 말은.."

 

"하하, 눈치가 빠르구만?"

 

불이 미치지못한 공간에서, 외계인들이 서서히 모습을 들어냈다. 원을 그리며, 총을든 외계인과 입을 네갈래로 벌린 외계인들이 그들을 포위했다.

 

"뭐.. 뭐야!! 당신이 짜고 이런거야?!"

 

"하하, 너희들이 생각보다 성가셔서말이야.. 내가 직접 나섰지."

 

"그럼.. 관리한다던 것이.."

 

"그래, 바로 이들이지."

 

"ㅆ발.. 완벽하게 속았군."

 

경준은 슬그머니, 바지춤에 끼워둔 식칼을 꺼내었다. 그것을 오른손으로 움켜쥔채,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는 성한에게로 달려들었다.

 

"ㅆ발! 죽어버려!"

 

- 삐비빔!!

.

.

.

.

.

 

경준이 또다시 눈을 뜬곳은, 사람들과 외계인들이 부쩍부쩍한 곳이였다. 커다란 의자에 앉아있는 성한도 보였다. 구석에서 울고있는 유리또한 보인다. 그리고, 눈앞에선 수많은 인간들이 외계인들에게 고문을 받고있었다. 다리를 양옆으로 찢기고있는 사람도 보였고, 물속으로 머리를 담궜다가, 꺼냈다를 반복하는것도 보였다. 그리고 불에 달궈진 쇠덩이로, 몸을 지지고있는것도 보인다. 고전적인 고문으로 보인다.

 

"허허, 자네 드디어 깨어났나보군?"

 

"여긴.. 어디야?"

 

"보면 모르겠나? 죄값을 치르는 장소이지."

 

"죄값?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죄값을 치러야하는데? 이 망할자식아."

 

"말버릇이 고약하구만."

 

성한은 의자에서 일어나, 경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팔다리가 포박되어있는 경준의 눈높이를 맞춰 몸을 숙인다.

 

"목숨을 소중히 여기지않는 것들은 벌을받아 마땅한것이지."

 

"뭐?"

 

경준은 그의 말이 몽땅 개소리로만 들렸다.

 

"그게 무슨 궤변이냐! 우리가 목숨을 소중히 여기지않았다면 그처럼 도망칠 필요가 어디있어?!"

 

"하하, 흥분하지 말게나. 면상을 한대 쳐버리고 싶어지니 말이야."

 

"쳐볼테면 쳐보라지. ㅆ발쎄끼."

 

- 퍼억.

 

육중한 성한의 주먹이 경준을 강타하였다. 볼살이 출렁이며, 뒤로 넘어가버린다. 성한은 손을 펼쳐 손목을 위아래로 흔들며 일어섰다.

 

"으..윽.."

 

"인간이란 말이지. 참 속편한 존재야. 싫은 기억들은 모조리 삭제해버리니 말야. 항상 좋은 기억들만 남겨놓고 싶어하지. 그래서 이런 상황이 발생해. 미련한 것들.. 하지만 그렇기에 신께서 나에게 그러한 능력을 준것이 아니겠어?"

 

성한은 계속해서 이해못할 말을 하였다. 경준을 내려다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선택해. 잃어버린 기억들을 찾고싶은가? 아니면, 필요없는가? 나는 찾지않는것을 추천하네. 너한텐 좋을거 하나 없는 기억일테니 말야."

 

"기억..?"

 

경준은 혼란스러웠다. 눈을 뜨니, 사람들이 없어지고. 대신에 외계인이 나타났다. 도망쳤지만, 성한덕에 결국 잡혀버리곤 이곳에 왔다. 그리고는 그녀석이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준다고한다. 잃어버린 기억? 도무지 이해가 되지않는 상황에 어안이 벙벙하였다. 그리고 문뜩 그 잃어버렸단 기억들이 궁금해졌다.

 

"당신이 하는말이 도통 이해가 가질않아. 내가 단기 기억상실이라도 걸렸단 말이야? 그리고 그 사실을 당신이 어떻게 알고있는거지? 그래. 보아하니 당신이 말한 신 나부랭이가 준 능력이 기억을 돌려주는건가 보군? 지금까지 눈앞에 펼쳐진 말도안되는 상황덕에, 당신이 하는말에 어느정도 일리가 있다고 느껴져. 그 기억을 찾아준다는 말 말이야. 좋아. 개같은 기억이고 나발이고 무척이나 궁금해지는군. 할수있다면 나에게 잃어버린 기억을 돌려줘봐."

 

"흠, 그래? 너의 선택이 그러하다면, 내 그렇게 해주지. 하지만 후회하고 말꺼야."

 

성한이 경준에게로 다가가 오른손을 머리위에 두었다. 그리고는 두눈을 감고 무엇인가 중얼거렸다. 이내, 찌릿한 느낌이 경준 머리를 맴돌았다. 그리고는 잃어버린 기억들이 새록새록 자라나고 있었다.

 

"어때? 후회되지?"

 

경준은 얼이 빠진듯 멍하게있다. 초점없는 눈을 뜨며, 정신없이 찾아온 기억들을 차곡차곡 정리하고있다. 그리고는 막심한 후회감이 찾아왔다.

 

"으아아악!!! 염 병할!!"

 

경준은 두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통스러워 했다. 이미 모든 기억들을 되찾은 유리가 그모습을 보며 안쓰러워했다. 경준은 숨을 크게 몰아쉬며 진정시키려 애를썼다. 어느정도 안정이 되자 입을 열었다.

 

"그럼.. 그럼.. 저들은.."

 

"음? 너희가 말하던 외계인 말인가보군? 하하하. 그래. 너가 지금 생각하는 데로야. 그들은 참으로 고귀한 존재이지. 가끔 영적능력이 뛰어난 인간들이 저들을 보곤 외계에서 온 생물체라는 말을해서 그렇게 불리우게 되었지만, 사실 저들은 특별한 존재야. 이세상에 없어선 안되며, 바로 너희처럼 미련한 것들을 위해 존재하지. 어때? 이제 완벽하게 이해가 가는가?"

 

"하하.. 빌어먹을.. 당신이 말한 죄값도 그렇게 되는거였군.."

 

"그렇지! 역시 기억을 돌려주고나면 말이 잘 통해서 좋단말이지! 어이, 밧줄하나 가져오게."

 

외계인 하나가, 밧줄을 들고 성한에게로 다가갔다. 밧줄을 건내받은 성한이 그것을 동그랗게 말아, 올가미를 만들었다. 그리곤 경준에게로 다가갔다.

 

"너는 특별히 내가 직접 고문해주지."

 

성한은 올가미속으로 경준의 머리를 넣었다. 얼이 빠진 경준은 작은 저항조차 없었다. 목까지 내려온 밧줄을 성한이 힘껏 잡아 당겼다. 팽팽하게 조여지며, 튼튼한 밧줄이 경준의 목을 조여왔다. 숨이 턱하니 막힌다. 옷갖 핏줄이 일어나며, 얼굴전체가 핏빛으로 물들어갔다.

 

"하하하!! 어때? 이 느낌 기억나지? 다시한번 느끼니 감회가 새롭지 않아? 이 멍청하고 미련한 자식아! 특히 너는 그러면 안됐어. 어떻게 그녀를 두고 그럴수가 있어? 너같은 녀석을 볼때면 항상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그래서 내가 직접 고문을 하곤 하지. 그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알아? 멍청이들을 내손으로 고통주는게 얼마나 기쁜지 아냐고?"

 

성한은 더욱더 강하게 밧줄을 잡아 당겼다. 오랜시간 지속되었지만, 경준은 숨을 거두지 못하였다.

 

"어때? 죽고싶지? 하지만 그렇게는 못해. 왜인지는 너도 잘알지? 넌 이미 죽은 몸이니까 말야. 하하하하!!! 두번 죽을순 없잖아? 그리고 너가 목숨을 소중히 한다고? 어리석은 녀석. 그런 녀석이 자살따윈 왜한거야? 넌 이미 선택받은 녀석이야. 목숨이란게 생긴것 자체가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거라고. 그런 특혜를 미련하게 스스로 버려? 그러면 신께서 용서해 줄지 알았니?"

 

경준은 공기와에 장시간 단절에,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이렇게 된것은 모두 자신의 잘못이다. 처음 눈을 떴을때, 커다란 나무 밑에서 있던 자신의 모습. 그리고, 유리의 방안에서 밟았던 하얀색의 알약. 그리고 지금 눈앞에 펼쳐진 고문받는 사람들. 모든것들이 이해가 갔다. 자신이 미련했고, 여기있는 사람들이 미련했다. 그렇다. 이것은 미련하게 자살을 택한 자들이, 죄값을 지불하는 것이다.

.

.

.

.

.

 

환하게 웃고있는 영정사진 앞에서 서럽게 울고있는 노 모가있다. 그녀의 뒷편에선 친언니로 보이는 두 여성이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보고있었다.

 

"에휴.. 불쌍한것. 남편 잃은지도 얼마 안되서 아들까지 저렇게 보냈으니.. 쯧쯧."

 

"그러게 말이에요 언니. 얘가 자살을 했다죠?"

 

"그래.. 어쩌자고 애미를 혼자두고 자살을 택한건지.. 참 불효한 녀석이야.."

 

*는 영정사진을 두손으로 붙잡고는 끊임없이 눈물을 쏟아내었다.

 

"엉엉엉.. 경준아!! 나 혼자두고 가면 나보고 어떻게 살라고 그랬니!!"

 

*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모든 장례를 끝마쳤다. 더이상 나올 눈물도 없었다. 혼이 빠져나간듯, 멍한 상태로 집앞에 도착하였다. 그리고는 현관문 앞에서 열쇠를 꺼내어 들었다.

 

"음? 문을 안잠구고 갔나?"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갑작스런 경준의 사망 소식에 정신없이 집을 뛰쳐나갔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너무 놀란 나머지, 문을 잠구는 것을 깜빡한 것이다.

 

*는 현관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터벅터벅 힘겹게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러던중 부엌 식탁이 눈에 띄었다.

 

"저게.. 뭐지?"

 

노 모는 좀더 가까이 다가가 식탁위를 바라보았다. 식탁위엔 아직 요리가 남아있는 후라이펜과, 밥그릇 두개가 놓여져있었다. 문뜩 노 모 머리속에선 기억하나가 생각났다.

 

"엄마! 내가 직접 만든거야. 한번 먹어봐바."

 

"이게 뭐니?"

 

"일명 '잡탕 볶음밥'이라고 하지!"

 

"아아아! 배부르다! 잘먹었습니다."

 

"얘는! 또 밥 다먹고 숟가락을 밥그릇안에 넣어놓지?"

 

"도대체 이게 어때서?"

 

"다먹고 난 다음엔 수저를 가지런히 식탁위에 두거나, 싱크대안에 넣어놔. 알았어?"

 

예전에 경준이 한번 해준적있는 잡탕 볶음밥이 후라이펜 안에 들어있었다. 그리고 밥그릇 하나엔, 숟가락이 올려져있었다. 경준의 버릇중 하나였다.

 

"경준아.."

 

노 모는 더이상 나오지 않을것만 같았던 눈물을 다시 흘렸다. 경준과 함께했던 많은 추억들이 떠오르며, 지금 눈앞에 펼쳐진, 경준의 자취가 너무도 따뜻하게 몸을 감싸왔다. 노 모는 창문을 열어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얀 구름이, 마치 경준의 형상을 띄고 있는것같다. 환하게 웃고있는 경준을 닮은 구름이 노 모를 향해 손을 흔든다.

 

"경준아. 이곳에 왔다 간거니?"

 

노 모는 대답없는 질문을 한뒤, 한동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순간, 번쩍이는 물체가 보였다.

 

"음? 저게 뭐지?"

 

그것은 알지못할 비행물체였다.

 

비행물체에 올라탄 저승사자들은, 오늘도 푸른 하늘을 날아다니며 미련한 인간들을 찾아 해매고있다.

 

-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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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하지 맙시다. 비록 살기 힘든 세상 일지라도..

 

출처 : 웃대 와이구야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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