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정규방송이 끝난 텔레비전에서 들려오는 잡음만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남자는 돼지우리 같은 집안을 둘러보며 소파에 누워있었다.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느껴지는 한기에 몸을 떨며 소파에서 일어나 욕실로 갔다.
남자는 이미 난방이 끊겨 찬물밖에 나오지 않는 파란색과 빨간색 수도꼭지를
힘껏 비틀어 욕조에 물을 받기 시작했다.
곧 전기도 끊어지겠지.
남자는 싱크대에 가득 쌓인 설것이거리 사이에서 과도를 찾아 집어들고 다시
소파에 철퍼덕 드러누웠다.
남자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고장난 벽시계를 향해 소리쳤다.
꺼져! 내앞에서 꺼지라고!
남자는 과도를 들고 자신의 좌우손목을 번갈아가며 그었다.
아직 살아있음을 알리는 뜨거운 핏줄기를 흩뿌리며 남자는 욕실로 향했다.
수도 요금따위는 신경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넘치는 물소리를 듣고 누군가가 자신의 신성한 의식을 방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수도꼭지를 잠갔다.
남자는 옷을 입은채 욕조에 발을 담갔다.
온몸을 흐르는 한기에 몸을 떨며 욕조에 들어갔다.
양손목에서 흘러나온 그의 피는 욕조의 물과 섞이며 선분홍빛을 발했다.
이곳이 지옥이다.
내가 서있는 이곳이 지옥이다.
제2장
하얗다기 보다는 은색에 가까운 빛깔의 긴털을 휘날리며 늑대는 달렸다.
이 마을이 틀림없어.
늑대는 속력을 줄이며 주의를 둘러보았다.
마을 입구에 두명의 주민이 나무에 기대어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늑대는 둘에게 다가갔다.
이 마을에 바울이라는 자가 살고있는가?
그와 같은 이름의 형제는 전부 세명 있습니다.
저기 보이는 파란지붕의 이층집에 바울이 살고 있고,
그리고 중앙광장 떡갈나무 옆에 바울이 살고 있고,
또다른 바울은 바로 접니다.
늑대는 바울에게 달려들어 목을 물어 뜯었다.
옆에 있던 남자는 갑작스레 일어난 일에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늑대는 몸의 관절을 움직이며 자신의 몸을 변형시켰다.
잠시후 늑대는 인간의 형상을 한 검붉은 피부의 남자로 변신했다.
내 이름은 지옥의 돌격대장 위리놈.
오늘 바울이란 자의 목을 가지러 여기에 왔노라.
위리놈은 목을 물어뜯겨 쓰러져있는 바울을 보았다.
내가 찾던 바울은 아니지만 이름이 같은 죄로 놈을 죽였다.
너는 마을로 가서 위리놈이 바울을 잡으러 왔다고 전해라.
길을 막는자에겐 죽음뿐이다.
남자는 위리놈의 기세에 벌벌떨며 거의 바닥을 기어가다시피
마을로 돌아갔다.
남자가 돌아간 마을은 곧 시끌벅적해지며 위리놈의 공격에 대항할 준비를
하고 있는듯 했다.
위리놈은 당당하게 마을로 걸어들어갔다.
날개가 4개달린 2품천사가 위리놈의 주위를 맴돌았다.
이곳은 신의 땅. 천국의 주민들에게 해악을 끼치고 네가 살아날수있을것 같으냐!
위리놈은 검을 뽑아들었다.
죽으러 왔다. 어서 덤벼라.
2품천사는 긴창을 휘두르며 덤벼들었다.
어차피 위리놈 같은 상급악마에게는 마법같은것이 통하지 않을것을 알기에
육탄전으로 승부를 거는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2품천사의 오판.
그것은 곧 죽음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위리놈의 검이 2품천사의 몸을 두동강이로 갈라버렸다.
번개가 쳤다.
위리놈은 몸을 굴려 번개를 피했다.
그러나 연속된 번개를 모두 피하지 못하고 5번째와 6번째 번개를 연거푸
얻어맞고 바닥에 쓰러졌다.
젠장!
위리놈은 몸을 일으키다가 멈칫했다.
주민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바울이 눈에 들어왔다.
위리놈은 지옥의 파란불을 일으켜 천사들의 접근을 막은 후 바울을 향해
돌진했다.
주민들은 자신들을 향해 뛰어오는 위리놈을 피해 사방으로 도망쳤다.
천사들은 위리놈으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하기위해 위리놈이 만들어놓은
지옥불을 헤집으며 달려왔다.
위리놈은 마침내 바울의 목을 움켜쥐었다.
어서 우리 형제분을 내려 놓거라.이 악마야!
위리놈은 바울의 목을 움켜진 손에 힘을 주었다.
바울은 괴로워하며 외쳤다.
나를 놓아주고 신께 용서를 빈후 네가 있던 지옥으로 돌아가라.
위리놈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천사장 미카엘과 라파엘의 모습이 보였다.
3대 천사중 둘이 이미 도착했으니
어차피 살아 돌아간다는 생각자체가
사치였다.
위리놈은 바울의 목을 비틀어 뽑아버렸다.
나에게 돌아갈 지옥따위는 없다.
이곳이 지옥이다.
내가 서있는 이곳이 지옥이다.
제3장
남자는 지친 몸을 이끌고 버스에서 내렸다.
담배를 꺼내기위해 주머니를 뒤지던 남자는 자신이 마지막 한 개피를
버스를 타기전에 피웠다는것을 떠올렸다.
남자는 막 문을 닫으려는 동네의 구멍가게로 뛰어들어갔다.
아주머니 디스한갑 주세요.
이제 퇴근하는 길인가보네?
아~예.
쌍둥이 아빠, 그 얘기 들었수?
뭘요?
아 글쎄. 여기 윗 동네에서 강도가 들어서 일가족 전부가 죽었다더구만
문단속 잘해. 아유 무서워서 살겠나 이런
아~예. 여기 담배값.
남자는 담배에 불울 붙인후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집앞에 도착한 남자는 아내와 아이들이 깨지않도록 조용히 문을 따고 들어갔다.
남자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순간 뒤통수에 둔탄한 고통을 느끼며 쓰러졌다.
남자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자신이 묶여있는것을 알고 공포에 몸을 떨었다.
입에 물린 재갈 때문에 호흡이 거칠어졌다.
한명의 사내가 자신의 배위에 올라타고 목에 칼을 겨누고 있었다.
울먹이는 신음소리가 들렸다.
다른 한명의 사내가 자신의 아내를 발가벗기고 강 간하고 있었다.
남자는 몸부림쳤다.
배위에 올라타고 있던 사내가 남자의 배를 칼로 찔렀다.
극심한 고통에 정신을 잃을것 같았다.
남자는 순간 갓난아기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것을 깨달았다.
고통속에서 눈을 돌려 아기들을 찾았다.
남자는 머리가 깨져 널부러져 있는 쌍둥이의 모습에 치를 떨었다.
아내의 위에 올라타고 있던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남자를 칼로 찔렀던 사내가 일어났다.
다음은 내가 재미 좀 볼 차례군.
두 사내는 하이파이브를 하듯 손바닥을 마주치며 위치를 바꿨다.
그렇게 사내들은 번갈아가며 남자의 아내를 겁탈했다.
남자는 복부에서 흘린 피의 양이 늘어날수록 정신이 혼미해져감을 느꼈다.
사내들은 아니 침입자들은 무언가 서로 속삭였다.
그리고 남자의 아내를 죽였다.
사내들은 칼을 번쩍이며 묶여있는 남자에게 다가왔다.
남자는 피와 눈물과 분노로 범벅이되어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경찰차의 사이렌 불빛이 창문에 쳐진 커튼사이로 흘러들어오는것을 보았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남자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때는 병원의 침대였다.
아내와 두 갓난아이의 죽음.
경찰관계자라는 사람이 남자를 찾아왔다.
수상한 사내 둘을 보았다는 이웃의 제보로 경찰이 출동하지 않았다면
아마 남자는 지금쯤 이세상 사람이 아니였을꺼라는 얘기였다.
범인중 한명은 검거도중 반항하다가 사살되고
나머지 한명은 7건의 강도살인사건의 용의자로서
거의 사형이 확정적일거이라는 위로 아닌 위로를 하고 돌아갔다.
제4장
그로부터 1년 남자는 자신의 아내와 두 아이를 죽인 범인이 사형당했다는
소식을 접한것을 제외하고는 외부와의 접촉을 피한채 집안에 틀어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정규방송이 끝난 텔레비전에서 들려오는 잡음만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남자는 돼지우리 같은 집안을 둘러보며 소파에 누워있었다.
누군가 방안에 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신경쓰지 않았다.
기껏해야 죽기밖에 더 하겠냐는 생각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불쑥 나타났다.
나를 보고도 왜 안놀라나? 인간.
목숨이 필요하면 가져가! 그냥 줄게.
자네의 아내와 아이들을 죽인 녀석에 관한 얘기를 해주러 왔을뿐이야.
무슨 얘기?
그놈은 사형을 당했지.
알고 있어.
그리고 천국으로 갔어.
남자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왜? 왜? 왜 그놈이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은거지?
왜냐하면 녀석은 사형당하기 이틀전에 회계하고 세례를 받았어. 세례명은 바울.
말도 안돼. 말도 안돼.
그게 바로 신이라는 작자가 하는짓이야. 바로 용서하는거.
안돼. 못해. 용서 못해.
그래서 내가 이렇게 너를 찾아온거야.
내가 너에게 힘을 줄게.복수를 할수있는 힘을 줄게. 대신 너의 영혼을 나에게 줘.
좋아. 내가 어떻게 하면 되지?
자살해. 그래서 지옥으로 와. 그 다음은 내가 알아서 할게.
남자는 이미 난방이 끊겨 찬물밖에 나오지 않는 파란색과 빨간색 수도꼭지를
힘껏 비틀어 욕조에 물을 받기 시작했다.
곧 전기도 끊어지겠지.
남자는 싱크대에 가득 쌓인 설것이거리 사이에서 과도를 찾아 집어들고 다시
소파에 철퍼덕 드러누웠다.
고장난 벽시계옆에서 하얀 옷을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그만둬. 악마와 거래하지마. 네 영혼은 신의 것이야. 네 맘대로 악마와 거래하지마.
꺼져! 내앞에서 꺼지라고!
남자는 과도를 들고 자신의 좌우손목을 번갈아가며 그었다.
아직 살아있음을 알리는 뜨거운 핏줄기를 흩뿌리며 남자는 욕실로 향했다.
수도 요금따위는 신경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넘치는 물소리를 듣고 누군가가 자신의 신성한 의식을 방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수도꼭지를 잠갔다.
남자는 옷을 입은채 욕조에 발을 담갔다.
온몸을 흐르는 한기에 몸을 떨며 욕조에 들어갔다.
양손목에서 흘러나온 그의 피는 욕조의 물과 섞이며 선분홍빛을 발했다.
하얀옷을 입은 남자가 죽어가는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어나! 자살은 죄악이야. 지옥에 떨어질꺼야.
남자는 혼자 조그맣게 읖조렸다.
이곳이 지옥이다.
내가 서있는 이곳이 지옥이다.
제5장
천사장 미카엘과 라파엘은 위리놈의 양팔을 각각 하나씩 잡고 뽑아들었다.
위리놈은 그 자리에 힘없이 쓰러졌다.
미카엘의 삼지창이 위리놈의 목을 꿰뚫었다.
라파엘의 검이 위리놈의 허리를 두동강 내었다.
겁 없이 신의 땅에 들어와 그분의 백성을 죽인 악마에게 벌을 내리노라.
상관없어.
뭐?
상관없어. 빨리 죽여.
위리놈은 죽어가는 순간 쌍둥이 아기를 안고있는 여자 천사를 보았다.
위리놈은 혼자 조그맣게 읖조렸다.
이곳이 천국이다.
내가 서있는 이곳이 천국이다.
출처 : 오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