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장사에 바쁘셨던 저희 부모님께서는
방학 때면 시골 할머니 댁에 저를 보내곤 하셨습니다.
할머니 댁은 거창에 공기좋고 뒤로는 산이 있고 마을 앞으로는 강이
흐르는 곳에 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앞집에 홀로 사시는 할머니와 종종 담소를 나누시며
친하게 지내셨는데요.
덕분에 저도 따라가 구운 감자라던가 삶은 옥수수같은 주전부리거리를
얻어 먹고는 했습니다.
방학때나 찾아 가던 저였던지라 많이 찾아 뵙지도 못했는데도
앞집 할머니께서는 저를 많이 귀여워해 주셨습니다.
어느 바람도 더웠던 여름날이었습니다.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네요.
할머니께 물놀이를 가자고 졸랐습니다.
하지만 할머니께서는 잔뜩 가라앉은 어두운 얼굴로 할머니는 집에서 쉬어야겠다며
조심히 갔다 오라고 말해 주셨습니다.
언제나 저에게 웃으며 자상하게 대해 주시던 할머니였던지라 좀 이상하긴 했지만
더웠던 나머지 별 생각 없이 마을 입구까지 걸어갔습니다.
마을 입구와 강 사이에 있던 도로를 건너려고 혹시 차가 오나
주위를 살피던 저에게 앞집 할머니가 보였습니다.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자 할머니께서는 위험하니 같이 건너자며 손을 내미셨습니다.
저는 손을 잡고 물놀이 생각에 잔뜩 신이나서 도로를 건너려는데
누군가 뒤에서 저를 휙 당기더군요
그리고는 갑자기 뺨을 때리시며 차 안보이냐고 큰일 날뻔하지 않았냐며 화를 내셨습니다.
저는 어안이 벙벙한 나머지 앞집 할머니를 찾았지만
앞집 할머니께서는 어디 가셨는지 보이지 않더군요.
이상하게 여겼지만 일단 아저씨께 앞으로 조심할께요 하고 말씀드리고는
그만 집으로 돌아와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상한 마음에 할머니께 앞집 할머니 어디 가셨냐고 물었더니
할머니께서는 잘 대답을 해주시지 않았습니다.
재차 물어 보자 할머니께서는 농약을 치시다가 역풍에 농약을 많이 먹어서 돌아 가신거
같다며 그런 일이 종종 있다고 그러시더군요.
알았다고 고개를 끄떡이는 저에게 할머니께서는 그건 왜 물어 보냐고 하셨지만
그냥 요새 안보이시는 거 같아서 물어 봤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주 밝고 더운 날이었는데 정말 기이한 경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