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힘든게 뭔 지 아니?
"글쎄... 사법고시?"
"틀렸어..."
"그럼.... 대통령?"
"아니야.."
"갑부.."
"것두 아니야.."
잠시 생각하던 영민이 무릎을 탁 쳤다...
"흐흐.. 알았다.. 정답은 자살!!"
"땡!!"
"에엑... 그럼 대체 뭐야?"
기원은 빙글 빙글 웃으며 대답했다.
"대오각성..."
"대오..... 뭐라고?"
"대오각성... 다른 말로 득도 라고도 하지... "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짓는 영민이었다.
"뭐야.... 괜히 열심히 생각했네.."
"득도란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야... 어제서야 비로소 결정했어.."
"엥..? 그건 또 뭔 생뚱맞은 소리야?"
"학과 말야... xx대 불교학과로 결정했어..."
"뭐? 미쳤어? 니 성적에 겨우? 대체 왜 그래?"
"오래 생각했어... 내 관심의 대상은 오직 득도 뿐야.."
"너 돌았구나... 잠시 바람 좀 쐬자... 남들은 스카이 못 가서 안달인데...."
"오전에 원서 넣고 오는 길이야.. 네 충고는 고맙지만.. 내 인생은 결정됐어..."
기원의 눈에선 원대한 포부가 넘실 대고 있었다.
"득도하면 뭐하는데? 뭐가 좋은데?"
"알 수 있지..."
"알아..? 뭘?"
"진리.... 이 세상을 관통하는 절대 비밀을 알 수 있어..."
"............."
쌀쌀한 2월의 어느날...
기원이 커다란 짐가방을 맨 채 집을 나서고 있었다..
"끝났어... 멀쩡한 내 새끼 다 베렸어...
거실에선 기원의 모친이 생기없는 얼굴로 중얼 거리고 있었다.
집을 나선 기원은 곧장 기차역으로 향했다.
'죄송해요, 지금 안 하면 죽을 것 같아서요...'
지난 며칠 간을 가족과 싸웠다. 가족들은 기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기원은 집을 나왔다..
"서울행 하나요.."
표를 건네 받은 기원이 기차에 몸을 실었다.
곧 덜컹 거리며 기차가 출발하자 기원의 눈이 감겼다.
지난 해 여름 홀로 가 보았던 고성 폭포암이 떠 올랐다.
폭포암의 주지 스님은 기세가 장군 같았는데.. 입을 열면 언제나 불호령이었다.
그 날 법문을 들으려 제법 많은 사람들이 폭포암을 찾았다.
기원도 마음속의 큰 의문을 품고 폭포암을 찾은 길이었다.
법당에 사람들이 주욱 둘러 앉았고, 곧 주지스님의 법문이 시작되었다.
그 날 기원은 법문을 듣는 내내 엄청난 희열을 경험했고, 지적 의문이 다소나마 해소되었다.
스님이 말하신 수십가지 얘기 중에서 특히 마지막 말이 신심을 자극했다.
"사람 몸 나기 힘들고, 불법 만나기 더욱 어렵도다.."
스님의 그 한마디가 기원의 인생 진로를 결정했다.
그 날 이후로 기원은 미 친 듯이 불교서적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성철스님부터 시작해 불교의 불자가 들어간 책은 눈에 불을 키고 읽었다.
하지만 읽을 수록 갈증은 더욱 심해졌고...갈증은 기원이 여기까지 온 원동력이 되었다.
10년 후..
오랜만에 영민은 고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했다.
여태껏 기반잡느라 눈코 뜰 새 없었지만, 올해 초 부터 다소 안정된 영민이었다.
"어째 니들은 변한게 없냐?? 여전히 개념이 없구만..흐흐"
"새끼 졸업하고 처음 나온 놈이 누군데 큰소리야!!"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영민이 큰소리로 떠들었다.
"오늘 먹고 죽자!! 야 다들 잔 채워!!"
"크크.. 이리 좋아할 놈이 왜 코빼기도 안 비췄담.."
"알잖냐.. 내 일이 좀 그렇잖아.."
영민이 원샷을 외치자 모두가 단숨에 잔을 비웠다.
어느새 얼큰하게 취한 민수가 영민에게 물었다.
"근데 너 올해 경사 진급 했다며?"
"그래... 까불면 확... 체포해 버린다..."
"크크... 제발 체포해줘.. 감방가면 공짜로 밥 주지.. 알아서 운동 시켜주지... 완전 천국이다 천국.."
"미 친놈..."
한시간이나 지났을까
모두가 기분좋게 취해 있는 그 때 누군가 술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잠시 둘러 본 뒤 곧장 일행쪽으로 걸어왔는데, 수염이 덥수룩 한 것이 예사 풍모가 아니었다.
"오랜만이다"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어라... 누구지?"
"어... 너는..."
"아....."
낯익은 그의 얼굴에 친구들이 기억을 더듬었다.
"야.. 새끼 너 기원이지?"
별안간 영민이 벌떡 일어났다.
"반갑다"
영민이 기원을 꽉 안았다.
"불교과 갔다더니... 그 담부터 감감무소식이야..."
"그렇게 됐어.."
"너.... 완전 도사가 다 됐네..."
영민이 기원을 훑어보자 기원이 씨익 웃었다.
"일단 앉자... 앉아서 얘기하자.."
영민이 기원을 잡아 자리로 끌고갔다.
"먹고 살만 하냐?"
창수가 물었다.
"굶지는 않아, 내 명대로 사는데 지장은 없지."
"세상 참 재밌구나... 니가 스님이 되다니...."
"그래 기원이 너는 판검사가 어울렸는데 말야.."
기원은 빙긋 웃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자자 다들 한잔 하자.. 원샷 안하면 수명 10년 단축이다!!"
"오케이!!"
다들 잔을 들고 마실 때 영민이 기원의 귓가에 속삭였다.
"새끼.. 반갑다 끝나고 따로 얘기 좀 하자"
"그래"
그렇게 시끄러운 동창회가 두시간이나 더 지속됐다.
지금 시각 새벽 두시 반... 영민과 기원은 근처 빠로 들어왔다.
"너 앞으로 뭐할거야?"
"내일 산에 들어갈거야.."
"산이라........ 넌 좋겠다... 마음만은 편하겠네.."
영민이 부러운 듯 기원을 바라보았다.
"무슨 고민 있나 본데 말해봐..."
"고민은 무슨...."
영민이 슬쩍 말꼬리를 흐렸다.
"괜찮아 말해봐.. 궁금해서 그래..."
기원이 재촉하자 영민이 결국 털어 놓았다.
순경으로 시작해 경장을 거쳐 올해 경사가 된 영민...
입사 5년만에 자신이 근무하는 강력반에서 꽤 중요한 위치까지 자리매김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관할 구역내에 자살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자살자 수가 두자리로 넘어가자 비상이 걸렸다.
영민이 책임지고 수사를 진행 했는데.... 수사하면 할수록 기이한 일들이 밝혀졌다.
자살자는 대학교수부터 막노동꾼까지 다양했고... 그들의 시체는 모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결단코 타살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스스로 선택했고.. 기쁘게 죽었다...
입이 마른 영민이 사이다를 벌컥벌컥 들이키곤 말을 이었다.
그렇게 영민이 필사적으로 수사하던 어느 날 드디어 단서 하나가 잡혔다.
자살자들의 공통점을 찾아 낸 것이다.
그들은 자살 직전에 누군가를 만났고...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가 끝난뒤 그들은 기꺼이 죽음을 받아 들였고, 그 누군가는 사라졌다.
영민은 한 여자를 용의자로 지목했고, 그 여자를 뒤쫓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던 어느날 상부에서 지시가 내려졌다. 당장 수사를 중단하라는 것이었다.
"네에?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제 잡기만 하면 끝난단 말입니다!!"
"상부지시 일세..."
최경감이 침통한 표정으로 말하자... 분노한 영민이 경찰 본부로 쳐들어갔다.
"그래서?"
기원이 흥미로운 얼굴로 재촉했다.
곧이어 나온 영민의 말은 엄청난 것이었다.
영민이 난동을 피우자... 검은 선글라스의 두사람이 영민을 어딘가로 끌고 갔는데,
그곳에서 영민은 까마득한 경찰 고위간부를 만났다. 헌데 그의 말이 충격적이었다.
"그대가 용의자로 지목한 그 여자...... 우리는 통칭 ' 붉은사쿠라' 라고 부른다네"
"붉....은 사쿠라?"
"그래 붉은 사쿠라... 올해가 그녀를 추적한 지 딱 50년 째 되는 해일세..."
"뭐라구요? 50년? 농담하지 말아요... 그녀는 많이 줘봐야 30세라구요"
"우리나라는 50년 이지만... 일본은 200년 일세....."
"............"
"그녀는 놀라운 화술을 지녔다네.....사람들을 논리적으로 설득시켜 자살에 이르게 하지..."
"설...득?"
"그래.. 믿지 못할 걸세..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절대 최면 따위가 아니야.."
"순수한 화술의 힘이지... 절대의 논리로 듣는 사람을 설득시키지.."
그의 안색이 갑자기 침중해졌다.
"그녀를 취조하던 나의 선배... 선배의 선배...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자살했네.."
"그럴수가..."
"아무리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도... 그 아무리 행복한 사람이라도.....
그녀의 논리적인 설득 앞에 결국 무너지지..."
"대체 그녀가 무슨 말은 하길래 자살까지 하는 거죠?"
"예전에 그녀를 취조할 때 녹음을 한 적이 있었지..."
"그..그래서요?"
그의 손바닥이 목을 그었다.
"다 죽었어... 녹음 테이프를 듣던 3명이 동시에 자살하자... 테이프를 부숴버렸지.."
"아....."
영민이 충격에 빠진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자살하기 싫으면 당장 손 떼게나.... 그래도 하겠다면... 내 말리진 않겠네.."
영민은 본부를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열흘 전 영민에게 일어난 일이다.
"어때?"
영민이 기원에게 물었다.
"대단한데... 아주 흥미로워.."
기원은 눈빛을 빛내며 다가왔다.
"오직 말로만 자살에 이르게 할 수 있다......흠"
기원이 턱을 괸 채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내가 괜한 말 했나보다....크게 신경쓰지마.."
영민이 머쓱해하던 그 순간 기원이 벌떡 일어났다.
"결정했어... 산으로 가는 건 미뤄야지... 나가자... 당장 수사기록 부터 살펴 봐야겠어!!"
기원이 대답도 안 듣고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출처-웃대
웃대 공포게시판의 히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