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 종이학

새터데이 작성일 10.04.27 22:4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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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야, 내가 연애할 때 선물한 종이학 어디 있어? 왜, 유리병에 담아서 준 거 있잖아.”


짐정리를 하던 지영의 말에 가슴 한구석이 뜨끔했다.


“어, 뭐라고? 뭐 말하는 거야?”


나는 그냥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기 위해 괜히 못들은 척했다.


“종이학, 내가 선물해준 거 모르겠어? 내가 유리병에 담아서 준 거”


하지만 내 바람과는 다르게 지영이는 친절히 설명을 해가며 내게 말했다.


“그거? 그 거는”


“어디 있냐고”


내가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웃고 있던 지영의 눈이 심각해졌다.


“미안해”


사실 지영이에게 말을 하지는 못했는데, 선물 받았던 종이학은 꽤 오래전에 버렸다.

물론 내가 버리고 싶어서 버린 건 아니었다. 자취방에서 혼자 살 때, 친구가 애완견을 데리고 놀러온

적이 있는데, 그 애완견이 방안에서 난리를 치는 바람에 종이학이 담긴 유리병이 깨져버렸다. 그래서

나는 널브러진 종이학들을 마땅히 담을 곳이 없어서 박스에 담아뒀었다. 근데 하필이면 그 박스를 둔

창고에 물이차서 종이학이 모두 젖어서 찢어졌다. 그래서 버릴 수밖에 없었다.

꽤 오래전 일이라서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오늘 느닷없이 종이학의 행방을 묻는

지영에게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미안이라니? 어디 있냐고?!”


재차 묻는 지영이의 떨리는 목소리에 불안해졌다. 화난 거 풀어준 지 얼마 안됐는데 또 싸우게 생겼다.

나는 무조건 사과를 했다.


“정말 미안해, 그거 옛날에 우리 집 창고에 물이 찼을 때 기억나? 그 때 젖어서 버렸어.”


결혼한지도 얼마 안됐는데, 괜히 거짓말해서 들킬 바에야 솔직히 말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사실대로 말했다.


“버렸다고?”


나는 울먹이는 지영이의 얼굴을 보고 내가 실수했음을 알아차렸다.


“정말 미안해, 그게”


“버렸다고?! 어떻게 그걸 버려?”


지영이는 화가 많이 났는지 내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더 소리치려고 하다가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답답했다.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혼초기에는 사소한 걸로 많이

싸운다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몇 주 전부터 사소한 것으로 다툼이 있었는데 오늘은 크게 한 방 터졌다.

물론, 지영이가 손수 접어준 소중한 종이학을 버린 건 내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말도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 가버릴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대화가 안 통하는 지영의 그러한 행동이 썩 내키지는

않았다. 지영이는 방안에 틀어박혀서, 자정이 지나도록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문을 두드리며 사과도

해보고, 열어달라고 타이르려고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물론 서랍 속에 있는 열쇠로 문을 열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지영이가 더 화를 낼 거 같아 그만두었다.


‘결혼 한지 얼마 안됐는데 벌써부터 소파신세라니’


순간 어머니 몰래 베란다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음 날 아침까지도 방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나 회사 나간다?”


“쿵!”


뭔가 문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지영이가 뭔가를 문에 던진 거 같았다. 아침까지 이어지는

지영이의 그러한 태도에 나 또한 머리까지 화가 났지만, 꾹 참고 아무런 말도 안했다.

괜히 화내봤자 골만 더 깊어진다는 걸 잘 알기에 행한, 나름 최선의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 스트레스는 집을 떠나 회사에서도 계속되었다. 업무 중 실수도 많이 하고,

지영이 걱정에 멍을 때리고 있어서 부장님한테 혼도 많이 났다.


“박 대리 또 싸웠어? 요즘 자주 싸우네. 이번엔 무슨 일이야?”


김 과장님이 커피를 홀짝이며 내게 다가왔다. 모든 걸 알겠다는 눈치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김 과장님의 조언은 항상 효과가 있었기에 나는 어제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이 사람아, 그건 자네가 100% 잘못한 거야”


김 과장님이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그렇게 잘못한 건가요?”


“당연하지! 마누라가 연애할 때 준 선물을 버리는 남편이 어디 있냐? 정신 나간거지”


김 과장님은 나를 크게 나무라며 종이컵을 구겼다.


“그럼 어떡하죠? 딱히 풀어줄 방법이 없는데, 단단히 삐져서 대화하려고 하지도 않아요.”


“쯧쯧쯧, 앞으로 마누라한테 잡혀 살아가는 모습이 눈에 훤하다, 훤해!”


김 과장님은 그렇게 말하면서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쓰레기통에 나뒹구는 구겨진 종이컵의

모습이 처량해 보였다. 소파에서 쪼그리고 자던 나처럼.

사실 나와 지영이는 결혼까지 꽤나 큰 트러블이 있었다. 물론 서로의 애정전선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나의 어머니께서 부모 없이 고아원에서 자란 지영이를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셔서 결혼을

심하게 반대하셨다. 뭐, 결국에는 1년 동안 어머니를 설득함으로서, 결혼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서로의 사이는 냉랭하다.










“지영아, 나왔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문을 열며 외쳐보았지만, 묵묵부답이었다. 게다가 기분 탓인지 집안에서 뭔가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눈앞에 펼쳐진 집안 모습에 나는 집안이 싸늘한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가구들과 물건들이 사라져서 휑해진 거실의 모습.

꽤나 간 큰 도둑이 왔다갔는지, 집안에는 잡동사니부터 시작해서 텔레비전, 컴퓨터 할 것 없이

웬만한 물건들이 모두 없어져 있었다.


‘뭐지? 지영이는 어디 간 거야?’


혹시나 지영이가 무슨 일을 당한 건 아닌가 하고 걱정되었다.


“철컥”


순간 문이 열리더니, 추운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땀을 뻘뻘 흘리는 지영이가 들어왔다.

왠지 수상한 느낌도 들었지만, 무사한 지영이의 모습에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


“집이 어떻게 된 거야?”


나는 휑한 거실을 손으로 두루 가리키며 지영이에게 물었다.


“버렸어”


지영이는 평소와는 다르게 무뚝뚝하게 말했다. 아니, 평소와 달랐다. 초점이 흐린 눈빛이며, 칙칙한 얼굴.

확실히 이상했다. 나는 내 옆을 스치듯 지나가는 지영이의 어깨를 움켜잡고 말했다.


“지영아,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물건들 버렸어, 전부. 당신이 버리기 전에 내가 버린 거야.”


그런 얼굴을 한 지영이는 처음이었다. 아무리 화가 나도 그런 얼굴을 하지는 않았는데,

확실히 뭔가 문제가 있었다.


“왜 버려? 전부 쓰는 물건인데”


“말했잖아, 당신이 버리기 전에 버린 거라고”


“내가 뭘 버린다고?”


“내가 준 거는 전부 버릴 거잖아”


지영이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나 차가웠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설마 종이학 때문이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그래, 종이학처럼 버릴 거잖아. 결국엔 나도 버릴 거지? 내가 버림당하기만 할 거라면 큰 오산이야, 내가 먼저 버려주겠어.”


내게 소리치는 지영이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지영이는 어깨에 얹은 내 손을 뿌리치고는

방에 있는 옷장으로 다가섰다.


“이건 너무 큰 걸?”


지영이가 옷장을 위아래로 살피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무슨 소리야, 너 왜 이래? 미쳤어?”


하지만 내 소리는 안중에도 없는지 지영이는 나를 무시하고 공구함을 꺼냈다.

그리고는 쇠망치를 꺼내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거 위험해, 저리 치워!”


나는 지영이에게 다가가서 망치를 빼앗으려 했다.


“크면 쪼개서 버리면 돼”


하지만 내가 채, 다가서기도 전에 지영이의 망치가 옷장을 내리쳤다. 옷장은 싸구려라 그런지,

망치질 한방에 나무가 쪼개져 나왔다. 나는 황급히 뒤로 다가가 망치를 쥔 손을 제압했다.

그리고는 망치를 빼앗아냈다.


“너 미쳤어? 이게 무슨 짓이야?”


“버릴 거야, 버릴 거라고!!!”










“흠, 꽤나 심각하군요.”


의사선생님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네?”


“남편 분께서 보셔도 아시겠지만, 상황이 꽤나 심각합니다. 환자가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뭔가를 버려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어요. 우선은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겠군요. 뭔가 짚이시는 게 있습니까?”


“원인이라면”


순간 머릿속에 종이학이 떠올랐다. 혹시 그것이 원인이 될 수 있을까하고, 의사선생님께 말하려 했지만,

차마 입술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환자분의 가족관계가 어떻게 되죠?”


내가 머뭇거리자 의사선생님은 화제를 돌렸다.


“가족은 갑자기 왜 물어보시는 거죠?”


왠지 지영이의 가족사는 말을 꺼내기가 좀 그래서 되물었다.


“모두는 아니지만 정신질환의 경우 가족적인 성향이 있기도 하거든요. 현재까지 연구결과로만 봐도 정신질환자의 가족들은 일반인들에 비해 정신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답니다. 그래서 물어보는 겁니다.”


“지영이는 어렸을 때 가족 없이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내 대답에 의사선생님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뭔가를 알아냈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내게 말했다.


“버려지기 전에 버리겠다는 환자의 행동을 봤을 때, 그게 원인일 수도 있겠군요. 어렸을 때 부모한테 버려진 기억이 잠재의식 속에 일종의 트라우마로 자리 잡고 있다가, 최근에 표출되었다고 보는 게 맞는 거 같군요.”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영이가 가끔씩 말해주는 자신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영이는 확실히 버려졌다. 그것이 생계 때문인지, 복잡한 가족관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영이는

확실히 부모의 손에 의해 버려졌다.


“그렇다면 치료는 어떻게”


“아직 확실하게 원인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만약 환자분께서 어렸을 때, 버려진 기억으로 저런 행동을 한다면 부모를 찾아내는 방법이 가장 확실한 치료가 되겠군요.”


의사선생님이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다른 방법은 없나요?”


솔직히 그녀의 부모를 찾아낼 자신이 없었다.


“물론 진짜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는 모르죠, 아직 최근에 그녀의 정신질환을 악화시킨 동기도 모르고요”


최근에 정신질환을 악화시킨 동기라는 소리에 또 다시 종이학이 떠올라버렸다.


‘결국은 내 잘못인가?’










그녀가 살았던 고아원부터 찾기 시작했다. 그녀가 지내던 고아원은 아직도 존재하고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더구나 그곳에 있는 원장님이 지영이를 기억하고 있어서 왠지 일이 쉽게 풀렸다.


“흠, 지영이가 딱하게 됐군요.”


원장님께서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셨다.


“어떻게 부모님을 찾아볼 수 없나요?”


“사실 지영이는 본인의 어머니 손에 버려졌어요. 그날 지영이는 어머니의 차를 타고 이곳에 왔어요. 지영이의 어머니는 딱히 어려워 보이지 않는 가정환경인데도 지영이를 버렸죠. 아마도 가족문제 때문 같았어요. 재혼이라던가.”


원장님의 말을 듣고, 가슴이 울컥했다. 어린 나이에 크게 상처받았을 지영이가 너무나 가여웠다.

그런 지영이를 위해서라도, 꼭 지영이의 부모를 찾아내고 싶었다.










지영이의 증상은 날로 악화되었다. 모든 물건을 버리려하는 행동 때문에 입원을 시켰지만,

병원에서도 그녀의 행동은 계속되었다. 더구나 점점 폭력성을 띄는 바람에 가까이 마주하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그 동안 지영이 어머니의 주소를 알아내고, 종이학도 많이 접었다. 종이학은 지영이에 대한

나의 애정을 듬뿍 담아서 정성껏 접었다. 그녀가 내게 줬던 것처럼.










주소를 따라 간 곳은 집이라고 칭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매우 허름했다.

나는 다 부서질 것 같은 문짝을 두드렸다.


“똑똑”


“누구시죠?”


안에서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혜숙 씨, 계시나요?”


삐그덕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초췌한 모습의 아주머니가 얼굴을 내밀었다.


“전데요?”


나는 집으로 들어가 어머니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지영이 어머니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내가 들었던 것과 달리 가정형편도 어려웠고, 가족도 없이 혼자 살고 계셨다. 나는 그런 어머니에게

나와 지영이의 관계와 최근의 일까지 모두 말씀드렸다. 어머니 역시 지영이를 기억하고 계셨다.

어머니는 내가 지영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말라버린 눈가에 조금씩 눈물이 맺히셨다. 나는 그녀의

어머니에게 병원에 같이 가자고 설득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조금 망설이다가 자신의 탓이 크다며

흔쾌히 가겠다고 말했다.

그녀의 병실 앞에 선 어머니는 상당히 초조해 보였다.


“어떡하죠?”


“괜찮아요, 제가 아는 지영이라면 어머니를 용서해 줄 겁니다.”


병실 문을 열자 지영이가 보였다. 역시나 방안에는 물건하나 없이 깨끗했다.

휑한 방을 가로질러 그곳에 홀로 누워있는 지영이를 향해 다가갔다.


“지영이 맞니?”


어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그러자 지영이가 힘없이 고개를 돌렸다.

나 역시 지영이를 위해 고이 접은 종이학을 꺼내 보였다. 그러자 지영이가 활짝 웃었다.

순간 지영이의 어머니가 품에서 칼을 꺼내 누워있던 지영이의 배에 쑤셔 넣었다.


“버렸는데, 돌아왔어!! 이번엔 완벽하게 버려야해!!”


지영이의 어머니는 미 친듯이 소리를 지르며 지영이의 복부에 칼을 찔러댔다.

그럴 때마다 몸뚱이가 움찔거렸다. 순간 의사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모두는 아니지만 정신질환의 경우 가족적인 성향이 있기도 하거든요.”





손에 들고 있던 유리병이 떨어져 깨져버렸다.

그리고 수 많은 종이학들은 나를 떠나 사방으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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