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군대에서는 참 많은 귀신 목격담이 있었는데요.제가 들었던 귀신 목격담 중 가장 섬뜩했던것은.. 새벽 근무 시간에 근무를 서다가.. 부대 안쪽 초소 맞은 편 건물 지붕위에 쪼그리고 앉아서 초소쪽을 응시하고 있었다던 귀신과 눈이 마주친 목격담, 위병소 근무를 서던 고참이 목격한 경험 중, 밤 근무 시간에 부대 안쪽을 둘러보다가, 저기 앞 도로가에 심어진 가로수 뒤로 무언가가 숨듯이 사라지는 것을 봤는데... 다시 보니 아무것도 없어서 헛것을 본건줄 알고 있다가, 다음 순간에 그 무언가가 한 칸 앞의 가로수로 옮기면서.. 숨어있다가 한칸씩, 한칸씩 위병소 쪽으로 서서히 다가오는 귀신을 목격한 목격담 등등... 그리고 지난시간 말씀드린 지붕위를 달리는 귀신.. 입니다. 요건 섬뜩하다기 보다는... 귀신이 달린다? 라는 뭔가 자연스럽지 못한 위화감(귀신을 본다는 것도 자연스러운건 아니지만..)이랄까.. 그런것 때문에 기억에 남습니다. 하지만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목격담을 듣기만 했을 뿐, 귀신을 보거나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짬이 먹어갈수록 부대 상황을 보는 여유도 생기게 되었고, 아무것도 모르던 이등병때 들었던 귀신 목격담은 그냥 고참들이 밤 근무 때 정신 차리고 있으라는 뜻으로 들려준 것이었거니 하고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시간은 흘러 이듬해 겨울, 이제는 사수가 되어 밤 근무를 나가곤 하던 어느날.예전 그 고참이 귀신을 목격했다던 북서쪽 초소에 부사수와 함께 경계 근무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근무를 서면서 잠을 잔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고, 부사수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하는 방식으로 근무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그날 따라 낮에 힘든 일이 있었는지 잠이 쏟아지더군요.그래도 끝까지 대화를 하면서 졸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쏟아지는 졸음은 이길 수가 없는 법... 눈이 감기니 자연히 대화는 끊어지고, 잠시 동안 정적-밤 시간이기도 했고, 추운 겨울날이라 부대 안팎은 더 없이 고요했던 것 같네요. 졸면서도 깨어 있으려는 의지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부대 주변에 감도는 이상한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얼마나 졸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잠에서 깨어 눈을 떴는데... 초소 맞은 편 건물 지붕 저 중간 쯤에서부터 초소 쪽 지붕쪽으로 허연색의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것이 예전에 그 고참이 말했던 그것과 같은 것이었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저 뭔가 상당히 빠른 속도로 건물 지붕을 타고 달리는 것을 본 것 뿐. 그리고 어느 순간, 지붕 끝에 다다른 그 하얀 무언가는.. 마치 지붕이 끝나도 발 밑에 무언가 있는듯, 그 속도, 그 높이 그대로 지붕을 지나 허공을 달리다가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하얀것은 흔적도 없었고, 그제서야 예전에 고참이 말해주었던 그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귀신의 얼굴은 보지 못했고, '개가 달리는 속도'라는 말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는 것만 기억이 났습니다. 같이 근무를 서던 부사수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했습니다. 고참이 졸다가 귀신을 봤다한다면 왠지 쪽팔리기도 했고.. 내 기억속에 있던 그 경험담을 부사수와 나누어 공감대를 얻을 상황도 아니었어서..
그 후로는 전역할 때 까지 귀신같은건 보지도 못했습니다.과연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귀신을 믿지는 않는 편이라 확실치는 않지만 생각해보건데...초소앞 그 건물은 좀 큰 건물이라 동쪽 끝에 큰 난방 시스템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그 분야는 잘 몰라서 자세히는...).겨울이라 그 난방 시스템 환풍구에서 나온 수증기 같은것이 바람에 날려 의도치 않게 지붕을 따라 날린것은 아닌가 생각이 되더군요... 흠 그렇게 생각해보면 별거 아닌데... 그 수증기가 날리던 방향이 겨울 바람 방향과는 반대방향이라는 생각을 해보면 아직도 조금은 섬뜩하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