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놀러가기 싫었다. 그래도 갔다. 허름하고 새까만 집 주변으로 어둠이 웅크린 곳. 할머니가 남은 수명을 하루하루 삼키는 그곳으로 나는 갔다. 형이 동행해서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편한건 아니었다. 방항을 알리는 매미 울음소리도 불쾌했다. 기차에서 내리고 버스를 타고, 산등성이를 돌아 돌아 겨우 찾아갈 수 있는 곳은 귀신들의 아지트 였다. 논두렁 옆에 솟아오른 무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냥 무덤이잖아. 뭘 무서워 하냐? 병신아." 형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더니 겁이 없어졌다. 밤에 혼자 다닐 수도 있다고 큰소리 치기도 했다. 할머니는 더욱 작아진 체구로 우리를 안아 주었고, 나는 할머니의 주름 속에서 송장을 느끼고 있었다. 시골은 밤이 빨리 찾아온다. 늙어버린 누렁이와 놀다 들어와 할머니가 대청마루에 잘라놓은 수박을 삼켰다. 모기향이 하늘거리며 검은 공기 사이로 아지랑이 진다. 나는 형의 허벅지에 머리를 기대어 누워 또 한조각을 씹었다. "할머니, 무서운 얘기 아시는 것 없어요? 이야기써내는 숙제 있거든요. 기왕이면 무서운 얘기 써내려고요. 반 애들이 놀라자빠질......" 형은 눈을 반짝이며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나는 괜스레 불안해졌다. 할머니의 입이 우물거리며 정말 무서운 이야기를 뱉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서운건...... 네 아빠가 전셋집을 나와 월세로 들어간다는 얘기지." "에이, 그러지 말고요. 할머니." 할머니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바람에 나도 따라 시선을 돌렸다. "있지." 잠시 정적이 흘렀다. 풀벌레 소리도 잠시 멎은 듯했다. 보름달을 검은 구름이 스치듯 지났다. "머리 돌아가는 여자 이야기. 그거 아니?" "몰라요"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목이 돌아가는 여자라니........ 저번 달에 본 공포영화 때문에 한 동안 화장실을 제대로 못 갔는데.... 나는 원망스레 형을 올려다보았다. "그거 얘기 해 주세요." 할머니의 표정이 이상했다. 당황한 것일까. 뭔가 난감함이 할머니의 얼굴에 비쳤다. 그럴수록 형은 할머니를 더욱 졸랐다. 누렁이가 짖는 바람에 나는 놀라 자세를 고쳐 잡았다. 까닥 잘못하면 잘 때 오줌을 싸는 수가 있다. 팬티도 몇 벌 안 가져왔는데.......
할머니는 수박 한 토막을 습습 삼키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예전에 이 동네에 한 처녀가 살았단다." 할머니의 입술가로 벌건 국물이 떨어졌다. "바로 고개 넘어가면 나오는 곳이야. 한 오십년 됐을라나...... 처녀가 남자를 알게 되었어. 건장하고 승주처럼 잘 생긴 남자였지." 주름진 손이 내 볼을 문질렀다. "문제는, 남자가 마누라가 있었다는 거야." "불륜이네요." 형이 크게 말했다. "그렇지. 승호는 그런 말도 아는 구나. 그런데 처녀는 그 사실을 모르고 계속 남자를 만났던거야.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지. 결국 마누라가 있따는 사실을 알게 됐어. 남자는 사실 도시로 이사갈 참이었고 외가에 신세를 많이 져서, 처녀가 많이 부담스럽게 된 거야.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죽였겠죠" "그래. 죽였어. 처녀를 조용히 불러내서 같이 겉다가........뒤에서 목을 휙, 하고 돌렸단다. 그렇게 하면 죽는다고 어디서 들었던 모양이야. 하지만 처녀는 머리가 반 바퀴 돌아갔는데도 멀쩡했단다. 도리어 남자에게, 당신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하고 소리치기까지 했다는구나. 남자는 놀라 머리를 더 돌렸지. 한 바퀴 돌아 제자리에 돌아온거지. 그러면 사람이 살 수 있을까?" 형은 자신의 머리를 돌리는 시늉을 하다 인상을 썼다. "못 살죠." "당연히 못 살지. 하지만 처녀는 살았단다. 남자를 밀어내고 달려갔지. 머리가 한바퀴 돌아간 채로 말이야. 남자는 당황했지. 처녀를 죽여서 어디 묻어야 하는데 저렇게 뛰어다니고 있으니 말이야. 남자는 여자를 쫓아갔어. 사실 남자도 무서웠지.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을거야." 그만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무섭다고 하면 형이 놀릴 게 뻔하다. "남자가 도리어 죽었나요? 보통 이야기들이 그렇잖아요." "그러니? 하지만 남잔 안 죽었단다. 여자를 쫓아가 잡고, 이렇게.........." 할머니는 허공에서 머리를 돌리는 시늉을 했다. "한 번 더 돌렸어. 여자는 아직 안 죽고 엉엉 울며 복수하겠다고 소리쳤지. 남자는 큰 소리로, 이귀신년아! 네 년한테 홀려 죽을 뻔한 건 나다! 하고 외치며 머리를 힘껏 돌렸단다. 이제 몇 바퀴 돌렸지?" "세 바퀴요!" "그래. 세 바퀴 딱 돌아간 순간, 부드득 소리가 나면서 여자의 힘줄이 쫙 바지더란다. 결국 죽은 거지. 남자는 아무도 모르게 산 구석에다 묻었지." 할머니가 워낙 실감나가 담장 너머의 산을 바라보는 바람에, 우리도 놀라 시선을 쫓았다. 어둠만 웅크리고 앉아 귀뚜라미 소리를 뱉을 뿐이었다. "그리고요?" "그리고 남자는 도시로 갔단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자꾸 발생하는거야. 처녀를 봤따는 사람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지. 무섭다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사람도 있었어." "처녀가 살아 돌아왔나요?" "아니, 죽어 돌아온 것이지. 그것도 아주 무서운 모습으로............ 밤길을 걷다 보면 머리를 돌리며 걸어가는 여자가 보인다는거야. 오른쪽으로 세번, 왼쪽으로 세번 이렇게 풀고, 감으며 길을 걷는 거지. 사람들은 멀리서 그 모습을 보면서 벌벌 떨었어. 그런데......." 할머니의 흘러내려온 눈주름이 날카로워졌다.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단다. 이유는 아무도 몰랐어. 그러다 괴담이 퍼지기 시작했다. 머리를 돌리는 여자와 눈이 마주치면..... 죽는다는 거야. 하지만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까 확인할 길은 없지." "할머니도 본 적이 있어요?" 나는 이런 대목이 가장 무섭다. "멀리서........잠깐........." 갑자기 누렁이가 일어서며 컹컹 짖는다. 형도 얼굴이 굳어 있다. "걱정 마, 눈만 안 마주치면 아무 문제 없단다. 길가다 머리 돌리는 여자 있으면 그냥 피해가면 되고." "농담이죠?" 한참 듣기만 하던 내가 입을 열었다. "너 겁 먹었지? 또 밤에 오줌 쌀라고?" 형이 금세 공격을 시작한다. 자기도 무서우면서...... "아이고, 연속극 시작 할 시간 되었다. 둘이나가서 모기향 좀 사와. 버스정류장 있는데 가게 있는거 알지? 좀 늦으면 문 닫으니까 서둘러야 할 거다." 할머니는 천원짜리 몇장을 형에게 건넸다. "과자도 같이 사오고." 이런, 버스 정류장 까지는 꽤 먼데...... 안 간다고 할 수도 없고. 형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 했다. 귀를 한 번 후비더니 가자, 아며 나를 끌어당긴다. 나는 입술에 수박 물을 닦아내며 신발을 신었다. 누렁이가 검은 눈망울로 대문을 나가는 우리를 흘겼다. "형, 안 무서워?""뭐가?" 날씨는 좀 후덥지근 했다. 등에 벌써 땀이 차오르고 있었다. 이상하게 허벅지는 시렸다. 내가 허벅지를 문지르며 걷자, 형이 빨리 오라며 종용한다. 논 사이로 난 길은 하수도 구멍처럼 좁고, 어둡고, 길다. 형이 플래시 스위치를 올리고 빛을 이리저리 흔들어 댄다. 길게 자란 풀잎이 무릎에 스친다. 우리는 개구리 울음 소리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야, 너 혼자 갔다 와." "왜?" "나 똥마려. 수박 먹은 게 잘못됐나봐." 형은 배를 움켜잡고 있었다. "나도 같이가." "병신아, 빨리 갔따와. 가게 문 닫으면 어떡하려고? 여기 플래시 들어." 나는 플래시 불빛으로 형의 등을 비췄다. 형은 곧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혼자 남자 개구리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뭔가 튀어 나올 것만 같은 상상이 머릿속을 해집고 들어왔다. 플래시로 내가 가야 할 길을 비췄다. 그래도 어둡고 무섭다. 어떻게 여길 혼자 가지? 오줌이 마려워졌다. 플래시를 내려놓고 논두렁에 오줌을 갈겼다. 형은 다시 올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냥 돌아가면 형한테 맞을 텐데.......... 그냥 빨리 갔다 오자. 플래시로 바닥을 비추며 논길을 따라 쭉 달렸다. 텁텁한 공기에 숨이 막혔다. 이러다 고양이라도 뛰어 나온다면 놀라 심장이 멈추는 게 아닐까? 튀어나온 풀에 걸려 한번 넘어졌다가 일어나 다시 달렸다. 어둠이 너무 짙어서 동굴에 들어온게 아닐까 착각할 정도였다. 이미 달은 구름에 숨어버렸다. 갑자기 개구리 소리가 잦아들었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살펴보았따. 내 숨 소리만 어둠속에 스며들었다. 멀리서 가로등 불빛아래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다시 플래시를 비추며 사람 쪽으로 달렸다. 길을 잘못 든 게 아닌가 싶어 물어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그에 가까워질수록 기분이 묘해지고 있었다. 좀 뒤뚱거리며 걷는 듯하기도 하고, 너무 빠르게 혹은 너무 느리게 걷는 것 같았다. 머리카락이 긴 것으로 보아 여자 같긴 한데 나이는 짐작하기가 힘들었다. 플래시로 비추자 여자는 천천히 내쪽을 향해 걸었다. 사타구니 쪽의 신경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다. 머리가 돌아가는 여자가 떠오른 까닭이었다.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심장이 박동 질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돌아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도 간절했는데 다리가 굳은 것 처럼 떨어지질 않았다. 겨드랑이 사이로 한기가 새어드는 것 같다 몸을 움츠렸다. 그럴 리가 없어, 나는 생각했다. 그 여자는 머리를 계속 돌리며 다닌다고 그랬는데, 저여자는 안그렇잖아.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야. 분명히 그럴거야. 그러는 사이 여자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여자의 시선이 나를 향해 있다는 것을 육감으로 알 수 있었다. 머리가 안 돌아가잖아. 그냥 사람이야. 무서워 할 필요 없어. 나는 여자를 플래시로 비췄다. 여자는 눈 깜빡하지 않고, 처음과 같은 자세로 걸었다. 어떻게 이 어두운 밤에 플래시도 없이 걸을 수 있지? 동네 사람이면, 익숙해서 그럴 수 있을거야. 여자는 네 걸음 정도 앞까지 다가와 멈췄다. 나는 플래시로 바닥을 비추며 여자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개구리 소리도, 귀뚜라미 소리도, 모두 사라진 것 같았다. 천천히, 내가 할 수 있는 한 천천히, 플래시 불빛을 들어 올렸다. 불빛이 여자의 공허한 표정을 비췄다. 그리고 빙빙 꼬여있는 목도 비췄다. 꼬인 피부 때문에 목은 더 가늘고 길게 보였다. 여자는 곧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그렇게, 나는 죽었다. 형과 할머니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죽었다. 논두렁으로 떨어져 죽은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 죽겠지만....... 죽은 사람이 무슨 말을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