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여자애 치곤 인형이 별로 없었다.
쓸데없이 장난감 많이 사줘봤자 쓰레기만 된다는 엄마의 지론 때문에
친구들의 미미 쥬쥬 컬렉션을 부러운 듯 구경하는 게 다였다.
그런 나에게 학습지 선생님이 어린이날 선물로 강아지 인형을 선물해주셨다.
그날부로 강아지 인형이 보물 1호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때가 여덟 살 때였는데, 아홉 살이 되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사를 간 후로도 나의 인형사랑은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숨바꼭질에 정신을 팔린 나머지 인형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날 하루종일 눈물 범벅으로 온동네를 뒤지고 다닌 걸 지금도 기억한다.
엄마가 새 인형을 사주겠다고 했지만 그 당시 나는 인형을 거의 동생으로 여겼으므로 그 인형이 아니면 소용없는 일이었다.
인형이 다시 나타난 건 일주일 정도가 지난 후였다.
마치 나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강아지 인형은 놀이터의 벤치에 얌전히 놓여있었다.
조금 더러워져 있었지만 한쪽 귀가 닳아서 해진 내 강아지 인형이 확실했다.
엄마는 찾아서 다행이라며 인형을 깨끗하게 빨아주고, 귀도 제대로 달아줬다.
그날 밤.
뭔가 육중한 것이 나를 짓누르는 느낌을 받았다.
정신은 맑았으나 몸을 움직일 수 없어 숨이 막히는 듯 갑갑했다.
처음으로 가위란 걸 눌린 날이었다.
이후로 나에게 밤은 공포 그 자체였다.
괜히 아픈 척 핑계를 만들어 부모님과 자는 일이 일쑤였다.
대낮에도 머잖아 다가올 밤이 두려운 나머지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부모님은 원인을 모르니 답답해 하셨고, 괜히 주말에 놀러왔다가 드라큘라 이야기를 해준 사촌 언니가 책 당했다.
그런 상황이 삼주 정도 지속되던 중이었다.
하루는 엄마와 시내에 갔다. 동생같은 강아지 인형도 함께였다.
푸드코트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내 또래의 아이가
내 강아지 인형을 보더니 돌연 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그쪽 부모가 난처해하며 사과를 하자 애가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런데 인형을 등 뒤로 숨기면서도 이상하게 한편으론 '줘도 된다'는 모순된 생각이 마음 속에 피어났다.
그때 분명 나는 그 아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떼를 쓰길 바라고 있었고
바람대로 그 애는 숨이 넘어갈 듯 고개를 젖히며 울어댔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인형을 내밀었다.
엄마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정말 줘도 되냐고 물었고
나는 짐짓 의젓한 척 괜찮다 했다.
그날 저녁 엄마는 양보하는 내가 자랑스러웠던지 집에 와서 아빠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늘어놓았고
옆에서 듣던 나는 도대체 왜 그 인형을 선뜻 내줬는지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신기한 일은 밤이 가까워졌음에도 무서운 마음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밤의 공포에서 완전한 해방을 맞이했지만
대신에 일종의 죄의식 비슷한 것을 얻었다.
내 두려움을 이름도 모르는 아이에게 떠넘긴 듯한 찝집함.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마음 또한 자연스럽게 상쇄되어갔다.
10년이 더 지난 지금 괜히 그 일을 상기해 보는 이유는
얼마 전 홍대 앞에서 우연히 비슷한 인형을 보았기 때문이다.
대량생산된 평범한 강아지 인형이니 유사품을 봤다 하여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다만 생면부지의 인형 주인이 나와 비슷한 연배였다는 게 의외였고
지나는말로 들은 그녀의 어투에서 부산 내음이 물씬 나서 다시금 돌아보게 했다.
무엇보다도, 어딘가 반쯤 정신이 나가 있는 얼굴을 하고 있는 게 조금 꺼림했다.
점점 빨라지는 내 발걸음을 보며 헛웃음이 나왔지만
끝내 그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는 걸 여기에 털어놓는다.
+) 쓰고 보니 '그래서, 저 인형이 가위눌린 거랑 뭔 상관인가' 싶기도 한데,
인형에 뭔가가 깃들여 있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했던 것 같다.
모르는 물건 함부로 주워오는 거 아니라는 얘길 들을 때마다
나는 보물 1호였던 강아지 인형을 떠올리곤 해.
나와 잠시 떨어져 있던 일주일간 인형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궁금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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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외방커뮤니티
무섭네요
문제시 자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