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군복무를 경기도 이천에 있는 ** 부대에서 했습니다. 육군 소속의 헬기들을 운용하고 지휘하는 육군 ****사령부가 있는 곳이죠.
그 부대에는 준위, 그러니까 일종의 기술직 직업군인 장교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하사관들과 달리 계급이 올라가지 않고, 연차에 따라서 호봉만 올라가는 직업 군인들로서, 제가 있던 부대에서 헬기 조종사들은 대부분 준위들이셨습니다.
부대장급들은 관사라는 집이 부대 안에 있기도 했지만, 준위들은 부대 근처에 자기 집으로 출퇴근을 하셨고, 대부분 군부대들이 그렇듯이 제가 복무했던 곳도 민간인 거주 지역에서 꽤 멀었기 때문에, 준위들은 크든 작든 자기 차를 몰고 다니셨습니다.
그 분들 중에서 제가 행정병으로 군 복무했던 ****실에는 허**준위라는 나이 지긋한 분이 계셨는데, 퇴근할 때 눈이 내리는 걸 몹시 싫어하셨습니다.
물론 눈이 내리면 길도 미끄럽고 위험해서 운전하는 사람들은 보통 싫어하지만, 그분은 싫어하는 정도가 좀 유별나서, 눈이 내리면 조퇴에 가깝게 어두워지기 전에 퇴근하려고 서두르시거나, 또는 아예 남의 차를 얻어 타고 들어가 가려고 애쓰실 정도셨죠.
무슨 사연이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언젠가 회식 때 듣게 되었습니다. 그 분께서 눈 내리는 밤에는 운전을 하지 않게 된 이유를…….
경기도 이천은 나름대로 꽤 번화한 지방도시이지만, 한편으로는 서울과는 아무래도 조금 차이가 있어서 대중교통이 서울만큼 다양하고 편리하지는 못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길이 약간 외진 곳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더욱 힘들어서 군인들만이 아니라 민간인들도 종종 잘 모르는 차를 얻어 타고, 또 태워주기도 했었습니다. 요즘도 그렇게 인심이 좋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니까, 90년대 초반이니 지금으로부터 오래 전 일입니다.
12월의 어느 겨울날 오후 늦게부터 갑자기 하얀 눈이 펄펄 내리기 시작했답니다. '스노타이어도 안 끼워 놨는데…….' 하고 허준위님은 걱정하시면서 조심조심 운전해서 부대를 빠져나와 차를 몰아서 댁으로 돌아가고 계셨답니다.
부대에서 조금 벗어난 한적한 차도변에서 위아래 전부 검은 옷을 입은 남녀 한 커플이 차도변에서 눈을 맞고 서 있더랍니다.
'버스를 기다리나 보구나! 눈이 이렇게 많이 내리는데…….' 하고 딱하게 생각하신 허준위님은 차를 세우면서 물었답니다. "어디까지 가세요? 이천시까지 가시면 태워드릴까요?" 젊어 보이는 남자와 여자는 반가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뒷좌석 문을 열고 준위님의 차 뒷자리에 앉았답니다.
아마 젊은 부부처럼 보였고, 추운데 눈을 맞아서인지 안색이 창백해 보이기는 했지만, 평범한 인상이었답니다. 워낙 한적한 곳인데다가, 눈까지 펄펄 내려서인지, 도로에는 오는 차도 가는 차도, 다른 차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부부가 탄 뒤에 차를 다시 출발시키면서, 어쩐지 오싹해지는 한기를 느끼셨답니다. 하지만, 부부가 타느라고 차문을 잠깐 열었던 탓이라고 생각하셨고.
"어이구! 날씨가 많이 춥죠?" 하고 뒤에 앉은 부부에게 큰 소리로 말을 걸었답니다. 그러자,
"예, 상당히 춥네요."
하는 남자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서 깜짝 놀라셨답니다. 분명히 뒷문을 열고 뒷좌석에 탔던 부부 중 남자가 어느새 조수석에 앉아 있었던 겁니다.
'언제 앞자리에 왔나?' 하면서……. 힐끔 뒤를 돌아보니 여자는 잠자는 듯 눈을 감고 조용히 뒷좌석에 앉아 있었답니다.
그리고 머리 위의 백미러 거울을 보는 순간, 다시 한 번 놀라서 펄쩍 뛸 뻔 하셨답니다.
거울에 텅 빈 뒷좌석만 보이고, 여자의 모습이 전혀 비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생각하면서, 옆에 앉은 남자를 힐끔 쳐다보니…….
창백한 얼굴로 무표정하게 앞을 보고 앉아 있는 남자도 어쩐지 산 사람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답니다.
무엇보다도 히터를 빵빵하게 틀었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저절로 덜덜 떨리기 시작할 정도로, 오싹한 한기가 점점 심해져 갔습니다.
한 번 더 힐끔 백미러를 보니, 거울에는 여전히 텅 빈 뒷좌석만 비치고, 뒷좌석에 앉아 있는 여자의 모습은 비치지 않고 있었습니다.
'내가 귀신을 태웠구나!' 그제야 상황을 깨닫고 겁이 덜컥 났지만, 주위에는 논밭만 있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답니다.
벌벌 떨면서, 아무데나 불 켜진 주유소라도 눈에 띄면, 그리로 차를 몰고 들어가서, 뛰어내려 도망칠 생각으로 열심히 차를 몰았지만, 그날따라 눈이 내려서 다들 문을 닫았는지 주유소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답니다. 한참 '귀신이다! 귀신!' 하고 벌벌 떨면서, 눈 내리는 밤길을 계속 운전해 가셨답니다.
그러던 중,
저 멀리 이천시의 환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답니다. '거의 다 왔다! 조금만 더 가면 산다!' 생각하고 엑셀 페달을 더 밟아서 속도를 내려고 할 때…….
"고맙습니다!"
하는 남자 목소리가 옆자리 조수석에서 들렸답니다.
깜짝 놀라면서, 옆을 바라보니 조수석에 타고 있던 남자가 어느새 없어져 있었답니다. 놀라서, 뒷좌석을 돌아보니 뒷좌석에 앉아 있던 여자도 어느새 없어져서, 차 안에는 혼자만 남아 있었답니다.
물론, 눈이 내려서 그렇게 빨리 몰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차를 모는 속도도 전혀 늦춰주지 않았고, 차문을 열고 닫는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았답니다.
벌벌 떨면서, 겨우 집까지 차를 몰고 가서……. 그대로 이불을 펴고 끙끙 앓아 누우셨답니다.
그 뒤로 며칠간은 또 귀신을 만날까 무서워서 밤에는 운전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고, 다행히 그 뒤로 다시는 그 젊은 귀신 부부와 마주친 적은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