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인(歸因)-2

엔초비 작성일 12.09.18 03:5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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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이야기의 대화 내용은, 당시 오갔던 대화의 기본 뼈대를 기반으로 재구성 한것으로, 단순히 제가 소설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100% 실화임을 알려드립니다. 아울러 이 글은 단편이 아니라 장편으로 2번째에 해당하는 글입니다.*




'왜 1인칭이 아닌 3인칭 시점으로 기억되있나' 처음 이상하다고 느낀 그날밤 이후, 그것이 일상 생활을 잠식할 정도로 큰 의문점은 아니기에 금새 잊혀졌습니다. 하지만 가위바위보를 하게 될 때마다 전보다 자주 그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즈음, 결정적으로 이런 사소한 의문점에 집착하기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역시 술자리에서의 일입니다. 친구J녀석이 예전에 제가 해줬던 이야기를 다시 저에게 들려주고 있는 겁니다. '그거 내가 너한테 해준 이야기잖아.' 친구 녀석은 되려'아닌데 나 이거 인터넷에서 본건데?' 그렇게 사소한 논쟁이 시작됐고 둘다 자신의 기억을 증거로 한치의 물러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분명 그 이야기는 제가 직접 들려준 이야기였습니다. 친구녀석은 인터넷에서 봤다고 굳게 믿고있더군요. 분명 자기도 인터넷에서 뭔가 보긴했을 겁니다. 다만 두 기억에 혼선이 온거라 추측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일종의 자기 성찰의 기회랄까. 어쩌면 어릴적 저의 그 사건도 제가 잘못 기억하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논쟁을 멈추고, J에게 예전에 들려주었던 이야기에 대한 저의 사정을 말해주고 그에 대해서 뭔가 이상한점이 없냐고 물었습니다. J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거 구라 아니었어?'하고는 담배를 피며 잠시 뭔가를 생각했습니다. 평소 둔하고 비논리적인 J에게 크게 기대를 걸고 있지는 않았지만, 의외로 그럴듯한 대답을 들려주었습니다.


 ?요모조모 따지고 들어가면 이상한 점이 많긴한데 가장 큰 오류는 이거야. 그 게임 애초에 두팀이 었자나. 백보 양보해서 정말로 니가 1:29로 가위바위보 연승을 거뒀다고 치자, 룰을 따르자면 패배한 녀석은 상대팀으로 흡수되는거지? 그럼 29명중에는 원래 너희편이였던 녀석도 있고 원래 상대팀 소속이었던 애들도 있겠지. 자. 이제 니가 전원을 상대로 이겼어. 그럼 승리감에 너를 영웅시 할 녀석들은 원래 너희팀 밖에 없지 않을까? 상대방 녀석들도 비록 너한테 져서 너희팀으로 흡수 당하긴 했지만, 기원은 적이였자나. 그런데 반 전체가 너를 둘러싸고 좋아했더라? 극단 적인 예로 우리나라가 일제 시대때 해방이 되지않고 먹혓어. 근데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했어. 그럼 넌 '일본 만세!'하고 좋아할까? 뭐 어릴적 꾼 꿈이 너무 오래되서 그게 진짜 있었던 일처럼 머리에서 왜곡된거 아니냐?


? 녀석의 이야기를 냉철하게 들어보니 굉장이 신빙성있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없었던 것이 되버리면, 이후 결과에 해당하는 '친구가 늘어나고 성격이 활달하게 바뀌고 저쩌고' 하는 제 인생 역사의 원인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럼 그건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분명히 또렸하게 기억에 남아있는데. 저는 그에대한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굉장히 그럴듯 하긴한데 이건 꼭 있어야만 하는 사건이야. 니 말대로, 뭐 꿈을 꾸고 잘못 기억했을 수도 있어. 그런데 그 사건이 미치는 영향력이 자그마치 1년이야. 원인이 없으면 결과도 없어. 그럼 나는 1년을 통째로 잘못 기억하고 있는건가? 토탈리콜도 아니고. 그리고 이 게임 자체가 일종의 교육적 의미를 지니는게 아닐까 싶은데. 지면 상대팀으로 흡수 당한다는 룰자체가 '애초에 이 게임은 패자가 없고 오직 승자만 있다' 뭐 이런 올림픽정신 비스무리한 협동심을 키우는 목적이 아닐까. 가위바위보에 져서 흡수당해도 포로로 존재하는게 아니라. 다시 흡수당한 팀을 위해 싸워야하자나. 그렇지 아니한가 친구?내가 의문스러운건, 그 사건이 실제로 있었냐 없었냐가 아니야. 분명이 있었던 일이야. '그런데 뭔가 왜곡이 있는것 같다. 그게 뭘까?' 하는거지.


 ?이야기를 듣던 친구J는 참 별것도 아닌 것가지고 사람을 귀찮게 한다며 불만을 토해내더니, 이내 제가 세운 전제조건에 맞춰 다시 자신의 추측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래! 있었던 일이라고 치자. 이 똥꾸녕아. 니 의문점이라는게 정확히, 왜 1인칭FPS시점으로 기억이 안나고 3인칭 RTS 게임 시점으로 기억이 나냐. 이거지? ㅄ아니냐 너? 컴퓨터의 저장이라는 개념하고 사람의 기억이라는 개념은 차이가 있지. 예를 들자. 군대에서 선임이 '너 누나나 여동생 있냐?' 하고 물었어. 물론 나는 외아들이고 너는 남동생 밖에 없지만, 너한테 누나가 있다고 치자. 있다고 대답하면 선임이 다시 묻겠지. '이쁘냐?' 숙명의 질문이여. 이거는. 이때 너는 '이쁩니다'하고 대답을 했어. 이 대답은 실제로 니네 누나가 이쁘고 못생겼고를 떠나서 너의 주관적인 견해가 포함되 있는 대답이야. 니 기억을 기반으로 너의 주관이 녹아있는 대답. 그런데 컴퓨터에 저장되 있는 '누나.JPG'는 틀리지. 떠블 클릭하면 있는 그대로 사진이 딱 뜨자나. 다시 니 이야기로 넘어가서 대입하자면 니 눈은 비디오 카메라가 아니자나. 니 기억은 어릴적 있었던 그 사건의 영상기록이 아니라 그때 받았던 느낌, 감회 이런 것들에 의해 재구성된 이미지가 아닐까? 따라서 기억이 3인칭 시점으로 떠올라도 이상할게 없는거지. 


 ?저는 놀라웠습니다. 논리정연하고 명확한 친구의 대답보다, 친구J자체가 새롭게 보였습니다. 와사비하고 겨자가 똑같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김태희 보다 핑클의 이진이 100배 이쁘다는, 자기네 동네도 네비게이션을 키고 헤매이는 친구J가 새롭게 보였습니다. 저는 그의 추측을 100프로 수용하고 술값을 제가 계산하는 것으로 보답하였습니다. 친구J답지 않은 명쾌하고 시원한 대답이였습니다. 어쩌면 그런 대답을 듣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으로 사소하지만 굉장히 신경쓰이는 의문점은 사라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비전문가의 그럴듯한 추측에 쉽게 해결될 정도로 싸구려 고민이었구만' 그렇게 집에와서 이부자리를 펴고 여자친구와 닭살스러운 문자를 주고 받다가, 슬슬 잠을 청하려 누웠습니다. 어두운 방안에서 저는 다시 한번 그때의 일을 떠올렸습니다. 


 화창한 날의 작은 운동장에서 있었던 사건. 사람들 앞에 서기를 벌벌떨며 두려워 했던 한 아이가 미칠듯한 확률을 뚫고 가위바위보, 약 29연승을 달성. 반 아이들 전체가 그 아이를 둘러싸고 환호를 했고 둘러쌓은 무리 밖에서 한 아이가 덩실덩실 춤을 추듯 빙빙 돌았다. 춤을 추듯 빙빙... 


 ?저는 누웠던 몸을 벌떡 일으켜세워 기억을 더듬었습니다.

1학년때 나는 몇반이었지? 3반이었다. 2학년때는? 역시 3반이었다. 3학년때도 3반.

그 이후 전학을 갔고 전학을 간 학교에서의 4~6학년 시절의 반은 헷갈리다.

유독 1~3학년때의 반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1~3학년때 까지 나의 출석번호가 3번 이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출석번호는 키순서.


 3번째로 작은 아이가 반 전체 아이들에게 오밀조밀하게 둘러쌓여 환호와 갈채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 무리 넘어로 빙빙 돌고 있는 아이가 어떻게 기억에 있는 것일까요. 이름은 모르지만, 당시 반아이들의 단체 사진을 들이민다면 정확하게 찍을 수 있을 정도로 확연한 그 얼굴. 저는 그 얼굴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 걸까요. '헹가래?' J는 틀렸습니다.

 제가 겪은 처음이자 마지막 헹가래는 제대날이 였습니다. 난생 처음 당하는 헹가래는 놀이기구를 가리지 않고 타는 저 조차도 오금이 저려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헹가래를 어린시절 겪었다면 분명 강인하게 기억에 남았을 터.


 의문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고 저는 처음으로 환호를 받던 아이가 내가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이후, 저는 항상 반복되던 제가 현실이라 정의하던 굴레를 무언가에 홀린듯 스스로 벗어나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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