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그들은 모르고 있다

금산스님 작성일 13.04.09 23:5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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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대의 초록환타님 작품입니다.

 

빌 러프넥은 일어난 뒤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래서 눈을 감고, 한차례 기지개를 켰다. 찌뿌드드한 몸이 개운해진다는 느낌이 들었고,
 
이내 자신이 완벽히 정신을 차렸다는 생각이 들자 눈을 떴다.
 
여전했다. 그는 감옥안에 누워있었다.
 
어젯 밤, 평소대로 직장을 마친 후 차를 몰고 집으로 왔다. 서류를 재검토 한 뒤에 자신의 침대에서
 
잠이 든 것이 분명하게 기억이 나는데.
 
지금 이 진풍경은 무어란 말인가.
 
우선, 왼쪽 손목에 느껴지는 쇠고랑의 차가운 감촉이 꿈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빌은 천천히 일어나서 방을 한번 훓어 보고는, 자신이 한번도 와본적이 없는 곳이라고 단정지었다.
 
어두운 회색 콘트리트가 전부였다. 단단해보이는 회색 벽이 사면을 꽉 막는 작은 방이었다.
 
자신이 깨어난 침대는 쇠로되어 있었고, 매트리스와 이불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얇았다.
 
문은 단 하나, 침대 옆쪽 면의 가운데 튼튼해보이는 쇠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쇠문 위쪽에 난
 
작은 창이 하나, 그리고 문 아래 식사를 넣어주는 듯한 작은 여닫이 하나.
 
그리고 문 반대쪽 벽에 3m 위에 나있는 작은 창문.
 
저렇게 높은 위치에 창문을 달 필요가 있었을까? 창의 크기는 20cm를 못되어 보였고
 
설령 저 곳에 손이 닿는다 한들 정상적인 키와 몸무게를 가진 성인들은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을 터였다.
 
이 생각을 마지막으로, 빌은 이곳을 감옥이라고 단정지었다.
 
생각은 자연스럽게 다음으로 연결되었다.
 
'내가 죄를 지었나?'
 
순식간에 반론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우선 빌은 전혀, 절대로 수감될만한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
 
게다가, 어떠한 연고나 절차도 없이 이렇듯 감옥에 처박히는 일이 말이나 되는가!
 
결론을 내린 빌은 앉은자리에서 일어나 쇠문으로 다가갔다. 왼손에 채워진 고랑은 방 전체를 무리없이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길었다.
 
빌은 문위의 창을 통해 밖을 확인했다. 양 옆은 볼 수 없었지만 깨끗하고 흰 복도였다.
 
혹시나 범죄조직에게 납치된 것은 아닐까, 하던 빌은 묘한 안도감을 느끼고 쇠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텅텅텅-!
 
"이봐요!, 아무도 없어요!"
 
아무 응답이 없었다. 빌은 오기가 생겨 문을 더욱 크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두드린지 오분여 정도 되었을까, 구두소리와 함께 반무테 안경을 쓴 백인남자 한명이 나타났다.
 
눈매가 날카로웠다. 흰 색 옷을 보니 무슨 의사같았다.
 
어떤 갱들은 일반인들을 납치해 장기를 밀매하기도 한다던데, 하는 끔찍한 상상을 억누르고
 
빌이 말했다.
 
"어, 저기요. 무언가 착오가 있는 것 같은데요"
 
"...."
 
그는 아무 말 없이 빌을 빤히 바라보았다.
 
"제가 왜 여기있는 거죠? 전 이런 상황에 처할법한 어떠한 일에도 동의한적이 없거든요.
 
아니, 그보다 대체 여긴 어디죠?"
 
남자는 여전히 빌을 빤히 바라보았다. 무언가 분석적인 시선이었다. 대화가 포인트가 아니라,
 
빌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내는 것이 자신의 과제라는 것처럼.
 
참지못하고 빌이 한마디 하려는 찰나 남자가 말했다.
 
"*** *****?"
 
빌은 귓구멍을 후볐다. 상대방의 말을 잘못들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니면 상대방이 외국어를 썼거나.
 
"저기, 전 미국인이거든요. 영어 할줄 몰라요?"
 
"****** ***** *******"
 
"에, 뭐라고요?"
 
"**** ** ***"
 
전혀 알아 들을 수 없었다. 마치 4,5살의 아이들이 횡성수설 지껄이는 말이랄까, 그런 비슷한
 
웅얼거림이었다. 혹은 아기들의 옹알이라고나 할까. 귀로 듣는다고 이해할 수 있는 범주의 소리가 아니다.
 
청소년들의 은어라거나, 다른 형식을 가진 타 민족의 언어라던가 하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그냥 소음이다! 뭐지, 저 소리는?
 
빌이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괴상한 중얼거림이었다. 비유하자면... 초고속 재생화면을 통해 듣는
 
뉴스랄까? 빌은 얼이 빠졌다.
 
그리고, 그 이상한 소리를 중얼거린 사람은 흰 종이에다가 재빨리 무언가를 휘갈기고 빌의 방 앞을
 
지나쳐갔다.
 
"이봐요! 기다려!"
 
빌은 낙담해서 다시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체감상 십여분이상을 두드려도 이번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쇠문을 걷어차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정적이 찾아왔다.
 
그러자 대답은 쇠문이 아니라 옆에서 들려왔다.
 
"보아하니- 새로 들어온 모양인데"
 
묵직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침대가 놓인 벽 앞쪽에서 들려왔다. 빌은 번개같이 달려와 벽에다
 
귀를 가져다 댔다. 혼자가 아니란 사실에 적잖이 안도가 되었다.
 
"이봐요, 옆에 있어요? 휴, 난 또 나 혼자만 있는 줄 알았잖아. 아, 당신도 여기 있어서 유감이 아니란
 
말은 절대로 아녜요. 아무튼, 내말은... 왜 내가 여기 있느냐는 거에요"
 
옆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낄낄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퍽 재미있는 친구야. 이제 좀 심심하지 않겠어"
 
"이봐, 난 진지해요! 난 아무런 잘못도 한 적이 없다구! 왜 이런 빌어먹을 감옥에 갇혀야 하는지,
 
난 몰라!"
 
옆방의 목소리가 목을 가다듬었다.
 
"흠, 글쎄. 나도 여기에 갇혀 있고. 당신 생각에 동의해, 당신은 죄가 없어.
 
어떻게 아냐구? 나도 죄가 없거든. 아마추어 야구 선수였지만 내 배팅은 끝내줬어,
 
연습 게임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빌어먹을, 잠에서 깨보니 이곳이더군"
 
옆 방 남자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은 여유로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이 곳에서 오랜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제기랄! 처음보는, 아니.. 처음 대화하는 사람하고 말다툼하긴 싫지만 당신 따윈 관심없어!
 
여긴 어디지? 왜 우릴 가두고 있는 거냔 말이야!"
 
옆 방에 잠시 침묵이 일었다. 하지만 아주 잠시였다. 상대는 곧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일단 친구, 자네 이름이 뭐지?"
 
"빌, 빌 러프넥" 빌은 차가워진 손끝을 초조하게 물어 뜯었다.
 
"좋아, 빌. 잘 듣는게 좋을 거야. 우선, 나도 많은 것을 아는건 아냐. 명심하라구.
 
다만, 확실한 건, 아까... 대화해 보았지?"
 
빌은 눈치가 빨랐으므로 금방 대답했다.
 
"그래요, 문 밖에 빌어먹을 안경쟁이 말이지요."
 
다시 낄낄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그 안경쟁이 친구. 대화해 보았다니 알겠지만, 전혀 의사소통이 되질 않아.
 
그 사람만 있는게 아니지. 이곳에도 많은 사람이 있어. 그런데,
 
우리처럼 갇혀있는 사람들끼리는 문제가 없지만. 문 밖에 있는 사람들하고는 절대로 이야기 할 수 없어.
 
우리가 무슨 애기를 해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해. 역으로, 그들이 무슨 말을 해도 우리에겐 이해가 안되지.
 
나 같은 경우엔 어린아이 떼쓰는 소리로 들리던데. 자네는 어떤지 궁금하군. 아무튼...
 
다행인건 그 친구들이 우리에게 해를 입히지는 않는다는 거야. 이곳에 가두어 두고는 있지만
 
하루세끼 식사는 꼬박 꼬박 가져다 주지. 뭐, 메뉴가 훌륭한 건 아니지만 말이야"
 
"제길, 이런 곳 따윈 관심 없어! 난 나가야 돼! 내 삶! 내 식구! 내 직업!"
 
옆 방의 목소리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다시 이야길 꺼내는 그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이봐, 친구... 아니, 빌이라고 했던가? 그래, 빌.
 
잘들어둬, 난 이곳에서 벌써 4년 남짓을 보냈어. 내 오른쪽 방에 네가 있고, 왼쪽 방에도 한 녀석이 있는
 
데, 이름은 케플러라고 하지. 케플러는 이곳에서만 13년을 보냈어. 알아들어?
 
13년.이.라.구. 그의 말에 의하면 이 수감실을 살아서 나간 사람은 없다지.
 
네가 오기전까지 그곳은 보르주라는 늙은이가 썼지. 칠십살이었어. 작년에 노환으로 죽었지.
 
따분하긴 해도 좋은 할아범이었는데... 아무튼, 그 늙은이가 죽고 자네가 온거야.
 
알겠어? 나가려는 기대는 접어, 괜한 꿈꾸면 기분만 엿 같지. 참, 자살시도는 꿈꾸지도 말라고-
 
혀를 물던 벽에 머리를 꼴아박던... 놈들은 자연사하기 전에는 죽어도 살려내서 다시 방에 처박아두니까.
 
케플러 옆방에 녀석은 손목을 물어뜯어 동맥을 잘랐는데, 평생 고정식 침대에 묶여서 수감생활을 했다지."
 
구역질이 났다. 구토가 올라오려는 것을 간신히 삼켰다. 위액의 신맛이 혀끝에 느껴진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빌은 허물어지듯 침대에 누워서 눈을 꼭 감았다.
 
옆 방의 남자또한 그의 심정을 이해하는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빌의 수감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옆 방 남자에게 이름을 묻자, 제임스 헤더웨이라고 했다.
 
갇혀 있는 상황이었기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그는 건장한 흑인이라고 했다.
 
아마추어팀의 배터(batter), 에이스 타자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자랑스러움이 담겨있었다.
 
빌은 이 감옥에서 유일한 유흥거리라고는 대화뿐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제임스는 자살 따위의 극단적인 상황을 피하기에 아주 좋은 대화상대였다.
 
그는 유쾌했고, 빌은 능청스러웠다. 그들은 대화로 하루를 때웠다.
 
가끔 케플러가 불평을 한다고 벽의 반대쪽으로 갈때를 제외하고는 둘은 언제나 이야기를 나눴다.
 
제임스가 케플러에게 갈 때면, 빌은 자신도 반대 쪽 벽으로 가보곤했다.
 
한동안 거기서 말을 걸어보기도 했지만 아무도 없는지 대답을 들려오지 않았다.
 
제임스가 말해줘서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곳은 허공이었다. 빌의 수감실이 가장 마지막이었던 것이다.
 

빌은 자신의 아내와 직장상사, 형편없는 월급과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고민이었다는 애기를 털어놓았다.
 
제임스는 그대로 학창시절 갱단에게서 스카웃 제의를 받은 일이며, 야구를 처음 가르쳐준 삼촌애기 등을
 
해주었다. 빌은 제임스와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면서, 육체적 접촉이 인간과의 교감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 그랬다니까. 그래서, 들어봐. 그래서, 나는 그 얼간이에게 이렇게 말했지.
 
'이봐, 그렇게 억울하면 너도 내 그곳을 차라고, 야구공보단 덜 아프겠지만 말야' "
 
빌은 숨죽이도록 웃으면서 콘트리트 벽을 탕탕 쳤다.
 
일견 놀라운 것은 빌은 한국계 미국인으로 인종적인 차별을 많이 받아왔다.
 
제임스도 흑인으로써 그런 경험이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바깥 세계에서는 서로를
 
터놓지 못했다. 타인과의 시선이 정답일까.
 
아무튼 그러한 장벽과 눈길을 넘어서 두 인종이 이처럼 터울없이 우정을 나눌 수 있다는 데에서
 
빌은 많은 것을 느꼈다.
 
그들이 대화외에 재미를 붙인 것은 성희롱이었다. 문 위의 조그만 창으로 복도를 지켜보고 있으면
 
가끔 흰색 옷을 꽉 조이도록 입은 섹시한 여자들이 돌아다녔다.
 
"휘익! 이봐! 엉덩이 끝내주는데!"
 
제임스가 외치면 빌은 낄낄대며 딴죽을 놓았다.
 
"빌어먹을, 취향하고는"
 
"그러는 자네는?"
 
"기다려.. 어, 지금 지나간다"
 
곧 흰색 가운 위로 호피색 브라자가 비춰보이는 금발의 여자가 지나갔다.
 
"휘유~ 오늘은 더 섹시한데? 그러다 터지겠어!"
 
금발의 여자는 요염하게 윙크를 하면서 빌의 방 문 앞을 지나쳤다.
 
제임스와 빌은 한참동안 낄낄 거리다가 그녀와 섹.스를 하게 된다면 어떠한 체위를 하고 싶은지
 
주도면밀하게 토론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농담들을, 그녀들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면 무슨 반응을 보였을까.
 
냉큼 따귀를 날리지 않았을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수감실 외부의 '자유로운' 사람들은
 
절대로 그들의 말을 알아듣는 법이 없었다.
 
빌은 서서히 그 생활에 적응을 해나가고 있었다. 싫던 좋던간에 본인도 그것을 인정했다.
 
현실을 타계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최대한 이 생활을 즐기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일상이 유쾌한 것은 아니었다. 갇혀 있다는 사실 자체는 항상 불만스러웠지만,
 
그것은 그런대로 참아낼 수 있었다. 참기 힘든 것은, 바로 대화가 통하지 않는 이들과 1:1로
 
대화를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빌도, 유쾌한 제임스도 질색하는 일이었다.
 
한달에 한 번, 쇠문 앞으로 의자가 놓여지고 흰 가운을 걸친 남자가 앉아서 그들에게 질문을 했다.
 
물론,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요지는 그것이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두 시간 내내 들어야 한다는 것은 고역이다.
 
더구나 그 날이면 식사도 한시간 뒤로 밀렸다. 옆방에 죄수들과는 절대로 대화할 수 없었다.
 
빌은 처음에는 대화를 시도했다. 그리고 그 하루만에 포기해버렸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빌이 대답을 하든 말든간에 남자는 흰색 차트에 무언가를 잔뜩 휘갈기면서
 
두시간을 꿏꿏이 채웠다.
 
"***** *** *********** *"
 
"그래, 너 얼굴 한번 멋지다."
 
"***...***"
 
"혹시 아프리카계 흑인이랑 아랍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어? 그쪽 튀기들이 꼭 너처럼 생겼거든."
 
빌은 제임스가 이 농담을 들었으면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
 
"흠, 빌어먹을. 의문형인건 알겠네. 근데 대체 뭐라는 거야?"
 
"******* ****"
 
"닥치고 얼른 갔으면 소원이 없을 텐데..."
 
요령이 없었다. 말 그대로, 그들은 그 괴상한 소리로 쉼없이 지껄이다가 정확히 두시간 되는 시점에
 
쇠문 앞을 떠났다. 지켜운 일과였다.
 
그들이 가고 나면 몸이 축 쳐졌다. 빌은 이것을 신개념 고문으로 사용하면 누구든지 굴복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좋잖아, 폭력성도 없고.'
 
하지만 그것은 무언의 폭력이었다. 제임스도 그것을 두려워했다. 면담 하루 전이되면
 
유쾌한 그도 말이 없어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어제는 제임스, 오늘은 빌의 차례다. 빌의 쇠문 앞에 철제 의자가 놓여졌다.
 
빌은 손톱을 물어뜯으며 초조하게 의자를 주시했다. 이제 곧 빌어먹을 안경쟁이가 앉아서
 
기괴한 지껄임을 시작하겠지... 나는 두시간동안 질식사 당할거야.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구두소리와 함께 안경쟁이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의자에 앉아서 은제 만년필과 함께 종이를 꺼냈다.
 
"******* **?"
 
"몰라... 모른다고"
 
"**** ****"
 
"이런 씨.발, 염.병... 한 두번이라야지, 대체 이 빌어먹을 연극은 왜하는 거야? 엉?"
 
빌은 문으로 다가가 발로 강하게 걷어찼다.
 
그리고 빌은 보았다. 안경쟁이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고 있었다.
 
속이 부글 부글 끓었다.
 
그는 침대 위로 박차고 올라가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그리고 자신이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약올리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놈이 한수 위였다. 놈은 다시 피식, 웃어보이고는 만년필을 접어 웃옷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빌을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빌은 자신이 이길수 없는 게임을 시작했음에 확신했다. 화가 난 그는 몸을 거칠게 뒤를 돌렸다.
 
철걱! 왼쪽 팔에 걸려있던 사슬이 순식간에 침대 다리에 걸렸다.
 
동시에 그는 뒤쪽으로 홱 잡아당겨졌다. 시선이 순식간에 기울어져 보였다. 바닥 타일이 순식간에
 
눈 앞으로 달려들었다. 침대에서 기울어진 까닭에 발은 여전히 침대 위에 엎어져있다.
 
머리가 수직으로 바닥을 향했다.
 
눈 앞에 붉은 불꽃이 번쩍했다가 이윽고 시선이 점차로 어두워졌다.
 
굉장히 큰 소리가 날 것 같았는데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천천히 허물어지는 시야.
 

 

짹- 짹- 벽에 난 샛창에서 참새 한마리가 지저귀다 날아갔다.
 
빌은 힘들게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키다가 머리가 욱씬 거리는 것을 느끼고 몸을 수그렸다.
 
조심조심 더듬어보니 머리에는 흰색 붕대가 메어져 있었다.
 
배가 고팠다.
 
하지만 샛창 밖의 하늘을 보니, 식사를 받으려면 적어도 두시간은 있어야 했다.
 
오늘은 그 빌어먹을 면접이 있었으니 한 시간 더 있어야 하려나...
 
빌은 침대에 누운채로 오른손을 들어 콘트리트 벽을 두드렸다.
 
"이봐! 제임스, 내 면담이 끝나고 얼마나 지난지 알아?"
 
"...."
 
빌은 다소 짜증스러운 어조로 재차 물었다.
 
"갑자기 귀먹어리라도 됐어? 이봐! 제임스!"
 
그때였다.
 
"으힉힉"
 
낮은 톤의 묘한 웃음소리가 옆 방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이내 쿵, 쿵, 쿵 하고 벽을 두드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제임스? 누구야? 이봐요?" 빌은 인상을 찡그리며 벽에다 다시 물었다.
 
"크힉..으히흑, 그극,극. 이히히히"
 
실성한 듯한 웃음소리가 옆방에서 들려왔다. 그 이후로도 간헐적인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제임스의 옆방에서도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웃음을 필두로 전 복도에서 정신을 놓아버린 듯한
 
섬뜩한 웃음소리가 왁자하게 터져나왔다.
 
빌은 두려움을 느끼고 그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처럼 행동했다.
 
있는 힘껏 철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것이다. 제임스가 이상해졌다! 뿐만 아니라 이 층자체가
 
이상해진 것 같다!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몸으로라도 알릴 요랑이었다.
 
"이봐요! 아무도 없어요! 내 옆에 친구가 이상해!"
 
텅텅텅-!
 
"누구라도 좀 와봐!"
 
그런데...
 


"또 무슨 일인가요, 러프넥 씨?"
 
빌은 눈을 껌벅거렸다. 너무나 놀란 까닭에 오히려 반응이 빨리 나오지 않았다.
 
쇠문 앞에는 호피색 브라를 요염하게 뽐내던 그 여자가 흰색 가운을 입고 서있었다.
 
"어..."
 
"다친 머리가 아픈 모양이군. 곧 선생님을 호출해줄테니까, 기다려요"
 
순식간에 지나치려는 그녀에게 빌이 급하게 외쳤다.
 
"이봐요! 기다려요!"
 
또각 거리던 하이힐 소리가 멎고, 이윽고 커다랗게 뜬 눈을 한 그녀가 쇠문 앞으로 돌아왔다.
 
"러, 러프넥 씨. 혹시... 제 말이 들리세요?"
 
"듣고 있..."
 
그녀가 흥분에 휩싸여 소리를 꽥 질렀기 때문에 빌의 말은 중단되었다.
 
"선생님! 선생님! 러프넥 씨의 정신이 돌아왔어요!"
 
그녀는 힘껏 소리지르고 반대쪽 복도로 후다닥 달려갔다. 잠시 뒤에 요란한 구두소리와 함께
 
그녀와 안경쟁이가 상기된 얼굴로 나타났다.
 
"러, 러프넥씨가.. 완치되었다고?"
 
"예, 그런것 같아요"
 
안경쟁이는 미심쩍은 눈으로 빌을 바라보며 물었다.
 
"러프넥 씨, 기르던 고양이가 죽었습니다. 당신의 감정은 기쁠까요? 슬플까요?"
 
빌은 어리둥절하게 대답했다.
 
"물론.. 슬프죠"
 
"그렇군요. 기르던 금붕어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기쁠까요? 슬플까요?"
 
"글쎄요.. 기쁠겁니다."
 
안경쟁이는 다시 종이를 꺼내 무언가를 미친듯이 적었다. 급하게 무언가를 휘갈긴 뒤 안경쟁이는
 
상기된 얼굴로 빌을 보며 중얼거렸다.
 
"믿을 수 없군. 믿을 수 없어.. 이런 경우가 있다니."
 
빌은 안경쟁이가 무언가를 적는 것을 보고 서서히 현실감각이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분노가 폭발한다는 의미하기도 했다.
 
"이,이봐!..이..이게 대체 무슨일이요! 이런 빌어먹을, 말도 제대로 안나오는군.
 
난 이 염.병할 곳에서 1년여간을 억울하게 처박혀 있었어! 대, 대체.. 당신들 누구야?"
 
그러자 안경과 여자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여자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고, 안경쟁이는 금무테 안경을 접어들고는 상의에 끼웠다.
 
"러프넥 씨, 지금 많이 혼란스러우실 겁니다."
 
"당연한거 아니오? 빨리 이 문이나 열어요!"
 
"아니, 그전에 제 설명을 들으셔야 합니다."
 
빌은 씩씩 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러프넥 씨... 이해하기 힘들겁니다. 저도 이 상황을 이해하기 힘드니까요.
 
당신은... 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당신은 가족들의 입원 동의서로 인해 이 병원에 수감된 겁니다.
 
치료를 위해서죠. 하지만 정상으로 돌아올 가망이 거의 없다고 여겨져 중환자들만 격리수용하는 이곳에서
 
지내게 된 것입니다."
 
빌은 눈알을 굴렸다.
 
"내 몸은 멀쩡합니다. 오늘 다친 이 머리가 좀 아프긴 하지만.. 이걸 빼면 멀쩡하다고요.
 
대체 이곳이 무슨 병원입니까?"
 
안경쟁이는 품안에서 작은 디스플레이 기기를 꺼냈다.
 
"당신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 훨씬 더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화면을 주시하던 빌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말도 안돼... 라고 중얼거리는 입술이 벌어졌다.
 
"우히히히.. 히힉.. 컥, 커윽" 실성한 사람이었다. 미친듯이 팔다리를 휘젖는가 하면, 침을 질질 흘렸다.
 
갑자기 문으로 돌진해 쇠에 부딪히자 커다란 소리가 났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동요없이 그를 지나쳤다.
 
그는 바로... 빌 러프넥. 그 자신이었다.
 
"이게... 무슨"
 
안경쟁이는 디스플레이어를 집어넣었다.
 
"이제 알겠소?
 
이곳은 정신병원이오.
 
그동안 당신은 가족들은 물론 우리 의료진들과도 말 한마디 통하지 않을만큼 중증의 환자였소.
 
지금 이렇게 회복되기 전에는.. 내 생각에는... 아마 당신이 넘어지면서
 
머리를 부딫혔을 때, 극히 희박한 확률로 제 정신으로 돌아온 것 같소"
 
빌은 오한으로 몸을 부들 부들 떨었다.
 
그렇다면, 대체 내가 겪었던 이곳에서의 1년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나, 빌 러프넥은 지금 정상인가?
 
내가 정상적으로 대화를 나누었던 그 때의 입장에서 정신병자는.. 바로 빌 앞에 서있는 여자와 의사였다.
 
무엇인가? 단지... 내가 만들어낸 환각인것인가?
 
그는 확인해야만 했다.
 
"저, 옆 방에 수감되어 있는 남자 말이오. 이름이... 제임스 헤더웨이가 아닙니까?"
 
간호사와 의사는 서로를 쳐다보며 당황했다.
 
"어떻게 그것을..?"
 
"그가 직접 말해줬소... 내 옆방이잖소"
 
의사는 빠르게 말했다. "거짓말하지 마시오, 누군가가 당신에게 알려주었겠지. 제임스 헤더웨이씨는
 
5년전에 이곳에 수감되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누군가와 대화한마디 하지 못하는 중증환자요"
 
그랬다, 그들은 모르고 있었다.
 
빌은 이 충격적인 진실에, 섬뜩한 진실에 무릎을 꿇고 비명을 지르며 절규했다.
 
그들은 미치지 않았다. 다만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을 따름이다.
 
우린 어디에 살고 있는 건가? 이곳이.. 빌이 대화를 나누는 이곳이 정상인들의 세계인가? 아니면...
 
아직도 완전히 각성하지 못한,
 
스스로 정상인이라고 믿고있는 또 다른 정신 병자들의 세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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