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ch] 기억

금산스님 작성일 13.06.28 09: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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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이제 30살이 넘은 내가 체험했다고 할까, 아직도 체험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흐릿한 기억 속에 당시 3,4살 정도였던 나는 이웃에 매일 함께 노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빨간 옷이 잘 어울리는 미소가 귀여운 여자아이.

 

작은 빨간 지붕의 집.

 

코스모스가 만발한 화단.

 

그리고 아이를 낳을 때가 되어 크게 배가 부풀어 오른 그 아이의 어머니.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던 그 집과 그 사람들.

 

그러나 어떤 놀이를 하고 있었던 것인지 지금은 기억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단 하나,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또 놀자. 반드시 널 기다리고 있을게.]

 

뒤돌아보는 나.

 

작은 빨간 지붕의 집.

 

코스모스가 만발한 화단.

 

그리고 손을 흔드는 그 아이.

 

생긋 미소를 짓고 있는 그 아이의 어머니.

 

그것이 최후의 기억입니다.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초등학생이 된 나는 새로운 친구도 많이 생겼고, 어느새 그 집도,

그 아이도 기억의 깊숙한 곳에 묻어둔채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여름에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로 그 집에 다시 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우리 학교에서는 해골의 모양을 한 기묘한 키홀더가 유행하고 있었습니다.

 

그 날 집으로 돌아가면서 나와 친한 친구 2명도 그것을 사기 위해 문구점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렇지만 한 발 늦어 모두 매진되어 버린 것입니다.

 

너무 아쉬워서 먼저 키홀더를 산 친구들에게 떼를 쓰고 있자 선배 한 명이 다가와 말했습니다.

 

[나 해골이 있는 곳 알고있어. 거기엔 아직 많이 있을텐데. 가지러 갈래?]

 

나와 친구들은 선배가 가르쳐 준 곳으로 자전거를 타고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도착했을 때는 어느새 황혼이 되어 있었습니다.

 

풀숲에 적적히 묻혀있는 빨간 지붕의 폐가.

 

이미 몇년이나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듯 보였습니다.

 

한창 호기심이 넘쳐날 때였던 우리에게는 좋은 놀이터였습니다.

 

나는 집 옆으로 다가가 창문을 깨서 열쇠를 푼 다음 창문을 열었습니다.

 

집 안에 들어가니 [파직]하는 소리와 함께 먼지가 눈처럼 흩날렸습니다.

 

밖에서 들어오는 황혼의 빛.

 

어둑어둑한 방.

 

집 안을 둘러보면 작은 식탁, 읽고 있었던 것 같은 신문, 사용하고 있던 것 같은 밥공기.

 

거기만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아무도 살지 않는 세계...

 

그리고 갑자기 내게 현기증이 몰려왔습니다.

 

마치 왜곡된 시공에 빨려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

 

 

 

 

그리고 모든 것이 생각났습니다.

 

여기에 있었던 적이 있다!

 

확실히 여기에!

 

저 식탁도, 저 컵도 본 적이 있다!

 

방의 배치마저도 눈에 익었습니다...

 

주저 앉은 나를 친구는 걱정하며 일으켜 세웠습니다.

 

[왜 그래? 괘,괜찮은 거야? 빨리 찾아서 돌아가자.]

 

[응... 괜찮아... 가자...]

 

선배가 말해준 곳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거기는, 그 방은 그렇게나 상냥했던 그 아이의 어머니가 유일하게 내게 주의하고 들어가지 못하게 한 곳.

 

싫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슴을 압박하는 듯한 숨가쁨...

 

나는 방의 입구에 있는 맹장지를 힘차게 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천장에 있었습니다.

 

대일본 제국의 깃발.

 

거기에 먹으로 쓰여진 경문과 같은 문자.

 

거기에 무엇이라고 쓰여있는지는 어린 우리에게는 알 수 없었습니다.

 

방의 네 귀퉁이에 못으로 느슨하게 박힌 깃발 위에 '그것'이 있었습니다.

 

[아, 저거 같은데? 어떻게 하지?]

 

[그냥 빨리 가자.]

 

함께 온 친구는 그 이상한 분위기에 압도된 듯 했습니다.

 

나는 가까이에 있던 빗자루로 그것을 쿡쿡 찔러보았습니다.

 

[쾅!]

 

엄청난 소리와 함께 우리 앞으로 떨어진 '그것'은, 곰팡이와 먼지 투성이의 다다미를 굴러

우리 앞에 떨어져 우리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검게 썩어 문드러진 인간의 해골이었습니다.

 

[으아아아악----!!!!]

 

우리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집을 뛰쳐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다시는 그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몇 년 사이 그 폐가는 헐렸고, 그와 동시에 근처의 절에 무연불의 비석이 새로 생겼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을까, 오랜만에 귀향한 나는 문득 떠올렸습니다.

 

빨간 옷이 잘 어울리는 미소가 귀여운 여자아이.

 

작은 빨간 지붕의 집.

 

코스모스가 만발한 화단.

 

그리고 아이를 낳을 때가 되어 크게 배가 부풀어 오른 그 아이의 어머니.

 

나는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내가 어릴 때 여자 아이랑 만삭의 어머니가 작은 빨간 지붕 집에 살고 있었는데.

그러니까, 저 쪽이었어... 자주 같이 놀았는데. 어디로 이사갔을까?]

 

그러나 어머니가 한 말에 나는 아연실색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소리니? 저 쪽에 있었던 집이라면 네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비어있었는데.]

 

...그렇지만 확실히 나는 그 곳에 있었습니다.

 

저 집에서, 그 사람들과...

 

[또 놀자. 반드시 널 기다리고 있을게.]

 

그 아이가 마지막에 나에게 한 말이 지금도 머리 속을 맴도며 나를 어지럽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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