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3월 17일 밤 11시...
총기와는 거리가 먼 나라였고, 지금도 민간인의 총기 허용이 안되는 한국에서,
어느 한 젊은 여성이 총격당해 사망하고, 그녀의 기사겸 매니저였던 친오빠의 오른 넓적다리에 총상을 입어.
이게 바로 제 3공화국 최고의 섹스 스캔들의 시작이 될줄 당시엔 아무도 몰랐지...
정인숙 피살 사건
(당시 피격 장소 사진, 오른쪽은 피살자 '정인숙'씨의 생전 모습)
피살된 젊은 여성은 '정인숙'이라고 영화 단역과 모델일을 전전하는 여성이었지만,
실제 이 여성의 진짜 정체는 한국 고위급 관료들만 상대하던 고급 요정의 접대원이었지.
사건의 수사는 매우 급박하게 전개되었고, 유력 용의자로 차에 같이 타고 있던 오빠 정종욱이 지목되지.
사건의 마무리가 '평소 남자 관계가 난잡하였던 여동생에게 훈계를 했으나, 그녀가 분개해하며 욕설을 하자 총으로 쏴 사살했다.'
'그리고 가문의 명예를 생각해, 내 사진의 허벅지에 총을 쏘았고, 강도에게 당한것 처럼 위장했다.'
이걸로 발표가 나고 마는데, 사건 수사 과정에서 여러 의혹들이 드러나게 되..
결정적으로 그녀의 집에서 당시 남한을 좌지우지하던 초특급 정계인사들이 포함된 연락처, 명함이 발견되면서
이 사건은 걷잡을수 없이 커지고, 국민들 사이에서도 관심이 아주 높아지게 되지..
(당시 공개되지 못한 피살 사진)
사건 전개
당시에 사건이 터지자마자 몇시간만에 사건 현장이 싹 치워졌어.
다음날 일어난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다고 할정도니까.
더구나 범행 도구인 총기조차 발견되지 않았어.
피해 부검결과 몇차례 낙태 흔적이 있었고, 후에 이건 접대원으로 성공하기 전에
몇차례 동거 사실이 있었고 그 흔적이라고..이건 사건과 관련한 내용은 아니고 어쨌든.
검찰은 1주일 후에 당시 현장에 같이 있던 오빠 정종욱씨가 자백한걸로 사건을 마무리 지었고,
(당시에 권력으로 셋째, 넷째가라면 서러운 P모씨를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고 알려짐, 그 P가 누군지는...)
정종욱씨는 퇴원하자마자 구속 당하고, 징역 19년 형을 당하게 되지.
(당시 총리 정일권)
그래도 사건은 일파만파 커지게 되.
당시 고위급 인사들 (원조가카, 정일권, 중앙정보부장 김형욱, 청와대 경호실장 박종규, 장 차관급 인사들, 육군 장성들, 5대 그룹 회장, 국회의원 등 합쳐서 27명)의 관련성이 발견된 마당에 야당의 공세가 매우 만만치 않았고, 이런 노래까지 유행하게 되지
나훈아의 '눈물의 씨앗'을 개사한 곡으로 술집이나 아이들을 중심으로 퍼지게 되었다네...
아빠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 청와대 미스터 정이라고 말하겠어요
만약에 그대가 나를 죽이지 않았다면 / 영원히 우리만이 알았을 걸 / 죽고 보니 억울한 마음 한이 없소
성일이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 고관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그대가 나를 죽이지 않았다면 / 그렇게 모두가 밉지는 않았을 걸 / 죽고 나니 억울한 마음 한이 없소
이것때문에 나훈아의 눈물의 씨앗은 방송금지..
하여간 정인숙은 목격자나 주변 인물들의 말을 들어보면 원조가카도 알고있었던것 같아.
잠자리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당시엔 정부의 중요한 일들이 그런 고급 요정에서 일어나던 '요정 정치'시대니..
원조가카는 정일권보고 사태하라고 조용히 불렀고, 정일권이 무릎까지 꿇어가며 빌며 봐달라고 했으나
결국 자진 사퇴하고, 하와이로 떠나 말년을 조용히 보내게 되지.
그렇담 정인숙이 과연 누군가?
정인숙이 도대체 누구인가? 전국민의 관심사였지.
왜 그렇게 관심이 가게 되었냐면은
일개 접대원인 여성이 왜 고위 막료(원조 가카 포함 그 아래로 쭉 거의 다있었다고 해)의 명함들은 왜 있으며,
그녀의 그 엄청난 재산,
고급 외제차(당시 시보레 6기통 ㅍㅌㅊ?), 최고급 양옥집
더군다나 젊은 여자가 결혼도 안하고, 아들 하나가 있었는데도 이렇게 잘살다니..
더구나 평소에 정인숙이 누구의 아들인지 확언은 안하고.
'존나 힘센 사람 아들임', '가카 아들일지도?', '가카 아들 아니다.' 이런식으로
썰을 존나 풀면서 정재계 인사들에게 고깝지 않게 보였다고 해.
그래서 당시엔 아무나 가질수 없었던 여권도 가지고, 몇번 외국도 갔다온 사실이 드러나게 되지.
이러한 것들 째문에 사람들은 '사생아의 아버지가 죽음의 배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거지.
(당시 아들과 같이 찍은 정인숙)
그 아들은 대체 누구의 아들인가?
가장 유력한 설은 당시 총리였던 '정일권'이야.
정인숙의 아들 정성욱의 지금 외모를 보면 정일권과 너무나 똑 닮았다는 소리를 해.
실제 90년대 초반 친자 확인 소송을 스스로 내기도 했고,(이유는 알수 없으나 스스로 취하)
여러 증언들이 뒷받침하고 있지만 94년에 정일권이 타계하면서 뭐 이젠 어쩔수 없는 얘기지.
그밖에 원조가카 등 몇명이 거론되고 있지만, 레이디 가카께서 1986년에 인터뷰에서 이에 관해 얘기한 적이 있는데,
'당시 부모님은 누군지 알고 계셨고, 그 누군가가 와서 관계는 했지만 죽인건 내가 아니다라며, 울면서 사죄했다.'
고 말하시는데, '박정희의 아들이기 때문에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다.'라는 의혹에 대해서
'살인자로 비쳐질것이 걱정되서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으셨다.'고 하시지.
더구나 원조가카는 남녀 관계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편이셨어.
김영삼, 김대중의 사생활에대한 레포트를 중앙정보국에서 내자 찢어버리시며 화를 내셨다는 일화도 있을정도지.
(좌좀들은 일본 사무라이 정신을 좋아해서 그런거라고 까지만..)
그렇다면 배후는 정일권?
후에 넷째 오빠 '정성욱'은 출소후에
'나는 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여동생을 죽이겠냐. 그 아들의 친아버지는 정일권이 맞고, 심지어 이름까지 직접 지어주었고,
정인숙에게 여러차례 아들하나만 낳아달라고 자주 했다. 출산후엔 1주일에 한번꼴로 매번 찾아왔다.'라고 말하지.
억울하다면서 지금도 명예회복을 위해 소송을 걸고 있는데 지금은 어찌된지 모르겠다.
어쨌든, 피살된 그날 저녁 정일권과의 만남에서 그가 '입조심하고 다니라.'는 말을 했고,
정인숙이 '왜요? 절 죽이기라도 하시게요?'라고 말하고, 30분뒤 그 일이 벌어졌다고 말하는데...진실은 뭐 알 수 없지.
오빠는 당시에 '심부름 왔습니다.' 하면서 저격수가 차 밖에서 쏘았고,
당시에 아버지가 '권력자가 뒤를 봐주고 있다.'라는 귀뜸에 자백했을 뿐이라고.
2010년에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이 주제를 다룬적이 있는데,
저격수의 존재 가능성을 증명했고, 당시에 검찰수사가 '총을 쏘지 않았다면 오빠의 소매에 화약반응이 있을리가 없다.'는
말을 부정하는 결과를 내기도 했어.
근데 뭐 주변 가족들은 넷째 오빠가 확실히 살인범이 맞고, 현재 가족이랑 연락도 끊었다고
말하는데 정말 정일권씨가 배후인지, 넷째 오빠 정성욱이 죽였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어.
요약
1. 정인숙 피살사건 벌어짐.
2. 범인 누군지 모름. 정재계 인사 관련 가능성.
3. 유력한 아버지 정일권. 끝.
참고
정일권은 만주에 있던 광명 중학교 출신인데, 후에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 일본군으로 광복까지 일하지.
유명한 친일인사로 친일인명사전에도 등재되.
근데 광명중학교 당시 절친이고, 위에 사진에도 서있는 3명이 차례대로 문익환, 장준하, 윤동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