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11시,?나는 친구들과 야간 자율 학습을 마치고 학교를 나왔다.?마중 나오기로 한 아버지는 조금 늦는다고 했다.?학교 바로 옆 아파트에 사는 친구는 흔쾌히 함께 아버지를 기다려주기로 했다.?약?10분 정도 흘렀을까,?그나마 드문드문 학교를 나오던 학생들이 사라지자 조용한 골목에는 나와 친구 둘뿐이었다.?그 때,?근처에 세워져 있던 하얀색 차에 시동이 켜졌다.?자동차 조수석의 문이 천천히 내려가더니 걸걸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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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길 좀 알려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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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깜짝 놀라 대답을 하지 않았고,?친구는 내게 괜찮다며 차에 가까이 다가갔다.?차 안은 어두워 운전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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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신데요?”
“그게….?잘…..?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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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자의 목소리는 아까와는 다르게 아주 작고 띄엄띄엄 들렸다.?친구는 네??라고 반문하며 창문에 가까이 다가갔다.?조수석의 창문이 점점 내려가고 친구의 목소리가 작아지더니 열린 창문 사이로 상반신이 기울었다.?친구를 확 잡아당겨 얼굴을 보자 잠깐 사이에 동공이 풀려있었다.?차 안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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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내가 손에 본드가 묻어서 운전을 할 수 없어서 그러는데…?차에 타서 이것 좀 떼어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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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열려있던 창문 너머로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눈썹과 머리가 듬성듬성 난 얼굴은,?정체를 알 수 없는 하얀 가루로 뒤범벅이었다.?나와 마주친 눈은 친구와 마찬가지로 초점이 없었다.?남자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내게로 손을 뻗었다.?손에는 역시 본드와 하얀 가루가 뒤범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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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클락션 소리가 들렸다.?고개를 돌려보니 익숙한 아빠의 차가 다가오고 있었다.?남자는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창문을 닫고 차를 출발시켰다. 친구를 데려다주고 아버지와 함께?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계속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그의 얼굴과 손에 뒤범벅이었던?하얀 가루는 무엇이었을까.?친구는 어째서 그 짧은 순간에 정신을 잃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