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던 여자애가 있었어
근처
고등학교의 교복을 입은 애였어
겨울까지는 중학교 교복이었는데
봄이 되니 그리 변해서 나이를 알 수 있었지
키가 작고
좀 귀염성 있게 생긴 얼굴이었다
깔끔한 인상에
언제나 좋은
향이 약간 났어
한번은 내 여동생이랑 나랑 그 애랑 셋이서
엘리베이터를 탄 적이 있는데
여동생이
다짜고짜 그 애한테 물어봤어
야 너한테 진짜 좋은 냄새 난다 향수 뭐 쓰니?
난 그냥 로션이겠거니 했는데
같은 여자라 그런가 단번에 향수란 걸 알더라고
그 애는 대답을 못 하고 좀 당황한 듯 하다가
5층에서 내렸고
우린 8층까지 올라왔지
어린애가 벌써 향수를 쓰네-
둘만 남으니 동생이
싫은 소리를 한 마디 했어
그래도 난 그 아이가 참 귀엽게 느껴졌던 게
이런 광경을 한번 목격했었거든
꽃잎을 한 장씩 떼면서 '그렇다, 아니다' 점치는 거 있잖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그걸 하고 있었어
점괘가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그깟 시답지 않은 꽃잎점으로
자기 미래를 예측하긴
어려웠을 거야
이 애가 죽어버렸거든...... 얼마 뒤에
꼭대기 층에 올라가서 투신을 했어
내가 집에 들어오기 두 시간 전 일이었다는데
아주 감쪽같이 흔적이 없더라
물청소라도 한듯 아파트
한쪽이 젖어있긴 했는데
그쪽이었는지도 잘 모르겠고
심지어 신문 기사 한 줄 안 나오더라고
이런 자살은
흔하다는 건가......
소문에는 집에서 너무 공부를 강요해서
평소 스트레스가 많았다고 해
게다가 좋아하던 학원 오빠라는 놈이
좀 이용해 먹었다고 들었어
좋아하던 오빠라......
향수를 뿌리고 꽃잎점을 보던 게 그런 의미였나
좀 안타까운 마음에
그 애가 뛰어내렸다는
13층 복도에
올라가본 적이 있어
그런데 지금 생각해도 미스터리한 일이지만
그 복도에서 그 애의 향이
났어
아닐 거야, 생각했지만
갑자기 너무나 오싹해져서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길 기다리지도 못하고
허겁지겁 비상계단으로 줄행랑을 쳤다
거기서 멈췄어야 했는데......
사람 호기심이라는 게 꽤 강한 것이어서
그 냄새가 정말 났던 것일까?
단지 내
착각이었을까?
며칠 뒤 조금 덜 무서워졌을 때 다시 올라가 봤어...
그럼 그렇지......
한 5분을 서성였는데도 아무 냄새도 맡지 못했어
내가 착각한 게 맞네 싶어서
마음 편히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런데... 내가 확실히 기억하는데
10층쯤 되었을 때 또 그 냄새가 확 났어
마치 내 옆에 그 애가 같이 탄 기분이 들었달까
그게 너무 익숙한 감각이라 미친듯이 소름이 돋는 거야
내리자마자 단거리 주자라도 된 것처럼 우리집까지 막 뛰었는데
뛸 땐 아무렇지 않다가 우리집 현관 앞에서
또 그 아이의 냄새가 확......
그때 제일 무서웠던 게
이거 내 방까지 따라오면
어떡하지?
자살귀는 정말 악독하다는데 나한테 붙어버리면 어떡하지?
어느새 내가 그 냄새를
그 아이의
존재 자체로 인식하고 있더라고......
집에 아무도 없어서
음악 크게 틀어놓고 이불 뒤집어 쓰고
벌벌 떨다가
또 그 냄새 날까 무서워
괜히 부엌에 들어가 팬에 기름 잔뜩 두르고
먹지도 않을 부침개를
몇 장이나 부쳤다
다른 냄새 나면 그 냄새 못 맡겠지 싶어서...
.
.
.
그 뒤로 13층엔 절대 가지 않았고
곧 우리집은 이사를 해서
지금 사는 아파트는 그다지 무섭지 않아
몇 년 전 일이라
그게 어떤 향이었는지 기억도
흐려졌다
이상하게 그 애에게서 나던 향은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다른 데서는 맡아본 적이 없어
미래 내 애인에게서 그 냄새가 나면
똑같이 줄행랑을 놓을 지도 몰라
농담이고...
지금 생각하면 그때 그 아이가 느껴졌을 때
좋은데 가라고 기도나 해 줄 걸 하는 생각도 가끔 드네
-웃대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