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학교에는 군자관이라고 오래된 건물이 있습니다. 지금 이 건물은 계속된 증개축으로 인해 모양이 많이 변했지만 제가 입학한 98년 당시에는 건물 가운데 정원이 있는 'ㅁ'자 모양에 계단과 더불어 경사로가 있는 건물이었습니다. 지금 할 이야기는 바로 이 경사로에 얽힌 이야기 입니다.
90년대 당시 군자관에서는 인문대 수업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인문대 학생 중에 발작을 일으키는 여학생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여학생은 발작하면 소리를 지르며 복도를 뛰어다녔는 데, 워낙 자주 발작을 일으키는데다가 나둬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정상으로 돌아오기에 대다수의 학생들은 그 여학생이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녀도 무관심하게 '저 미친*, 또 지*이야' 정도의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시험을 앞 둔 어느 날 밤에 몇몇 학생들이 군자관에서 공부하고 있는 데, 그 여학생이 발작을 일으켜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공부하던 학생들은 짜증이 났지만 그냥 공부를 했고, 어느 순간 갑자기 조용해지기에 별 생각 없이 공부를 계속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날 새벽, 순찰을 돌던 수위 아저씨는 군자관 2층과 3층 사이의 경사로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그 여학생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견 당시에 이미 죽어 있었지만 몸은 따뜻한 상태였다고 합니다.
조사에 따르면 그 여학생이 3층 복도에서 발작을 일으켜 뛰어 다니던 중에 경사로 근처에서 1층 시멘트 바닥으로 떨어져 중상을 입고 피를 흘리며 경사로를 기어 올라가던 중에 2층과 3층 사이에서 사망했다는 것입니다. (실족인지 투신인지는 불명확하지만 실족으로 인한 사고이고 3층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에게 도움을 구하기 위해 경사로를 기어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학생이 죽음이 잊혀진 1년 후의 어느 날에 밤늦게까지 군자관 1층에서 작업하던 어떤 여학생이 화장실(여자화장실은 경사로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을 가던 중에 어둡고 후미진 경사로를 기어 올라가는 여자를 보고 비명과 함께 기절한 사건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그 여학생은 자신의 비명을 듣고 달려온 사람들에게 긴 머리를 하고 경사로를 아주 느리게 기어올라 가는 사람형태의 무엇을 봤다고 말했답니다.
그 후, 밤에는 아무도 혼자 그 경사로에는 다가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 이후에는 저도 야간에는 되도록이면 경사로를 이용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