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군복무 했던 곳은 해병2사단 보급대대 탄약소대라는 작은 곳이었습니다.
탄약 창고를 지키는 근무와 탄약 받으러 오는 군부대에게 탄약을 나누어 주는 게 모든 일과인 곳이었습니다.
일과가 이렇다 보니 상근대원들과 현역대원들의 인원 비율이 거의 비슷했습니다.
전 이곳에 상근으로 가게 됐습니다. 상근도 야간조와 주간조가 있는데 야간조로 배치 받았습니다.
상근병들과 현역병들의 인원비율이 비슷하니까 상근 선임들이 상근도 현역하고 같다!! 우리가 더 잘해야 한다면서 얕보이지 않기 위해 엄격한 분위기 속에서 근무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이야기하려는 사건이 일어난 건 이쪽으로 배치 받은 첫날의 일입니다. 어수룩한 이병으로 들어가서 아직 뭘 해야 할지 몰랐어요. 기수빨이나 달달 외웠죠. 이병 야간 근무는 현역 최고참 병들하고 같이 들어가는데 무지하게 떨렸습니다.
저녁 8시, 12시 근무까지는 그래도 덜덜 거리면서 잘 넘겼습니다. 문제는 새벽2시 근무. 이게 당시 현역 최고 선임이랑 들어가는 건데 많이 긴장됐습니다.
커다란 탄약 창고를 철조망으로 둘러쌓은 게 2개 이를 지키는 초소가 각 2개 총 4개의 초소에 근무자가 두 명씩 배치됩니다. 제가 이 최고참하고 들어간 곳은 1탄약고의 입구 쪽이 아닌 뒤쪽의 외진 초소였습니다.
30분마다 철조망을 따라 외곽순찰을 돌아서 입구 쪽 초소 근무자들과 교대 다시 30분 후에 뒤쪽으로 순찰 후 다시 근무자들과 교대인데 과감하게 무시하시더군요.
"무전기 가져왔냐?? 어차피 입구에서 간부순찰 들어오면 무전칠거니 그 무전 오기 전까지는 나 깨우지 마라."
"무전 오기 전까지 깨우지 않겠습니다!"
"졸면 죽는다!!병기 초소에 부딪히는 소리 나면 작살날 줄 알아!!"
"병기 부딪히지 않겠습니다!!"
완전 겁먹고 눈 번쩍 키고 병기 들고 초소바깥 근무 자리에서 차렷 자세로 있었습니다.
입구 쪽 근무자들도 30분 순찰 안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려니 하면서 그냥 지키고 있었습니다.
전날 친구들과 과음 탓인지 과한 긴장 탓인지 살짝 졸음이 왔었습니다. 용케 균형을 잃고 초소에 부딪히려는 찰나에 일어나게 됐습니다.
휴 하고 정신 차리고 앞을 보는데, 앞에 보이는 언덕, 그 언덕 위에서 애들 둘이 놀고 있었습니다. 나무들이 우거져서 나중에 보니 한낮에도 깜깜한 언덕인데 그곳에서 흰옷을 입은 남자애들 둘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놀고 있었습니다. 웃는 소리도 나지막하게 들렸습니다. 잘못본줄 알고 눈을 부비고 다시 봐도 보이고 들렸습니다.
처음엔 들어간 지 첫날이었고, 바로 철조망 하나 건너서 민가이니까 어리바리한 그때 생각에 그럴 수도. 라고 해버렸습니다. 무엇보다 이 선임을 깨우고 나면 어찌될지 겁이 났습니다.
그런데 시계를 보니까 새벽 3시. 흠, 애들이 탄약창 언덕에서?? 철조망을 넘어 들어와서??
그런 생각을 계속 하다보니 무서워지기 시작했어요. 아직 그 애들은 앞 언덕위에서 뛰면서 놀고 있었습니다.
"언덕 뭐!!언덕 뭐!! 자다 꿈 꿨냐?? 뒤질라고 작정을 했나!! 야간 근무 첫날에 쳐자?"
"방금 전까지 언덕위에서 뛰고 다녔습니다. 하얀 옷 입은 애들 둘이었습니다. 자지 않았습니다."
"아놔, 여기서 뭐 이상한 거 봤다는 애들이 왜케 많아!!"
"……."
"너 올라가서 확인 해봐!!아 너 때문에 잠 다 날아가잖아!!다 날아가기 전에 빨리!!"
그 말을 듣자마자 언덕으로 향했습니다.
왜 이렇게 많다니, 저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위 나무들 때문에 더 깜깜하고 무서웠지만 천천히 언덕으로 발을 옮겼습니다.
바닥에 랜턴을 비추면서 천천히 올라가고 있는데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잘못 봤구나, 이제 선임한테 혼나겠구나, 이런 생각하면서 언덕 중간쯤 올라갔을 때였습니다.
"야! 너 내려와!!! 당장 내려와!!!"
갑자기 뒤에서 선임이 부르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뒤를 돌아보니까 병기도 매지 않고 철모랑 병기를 한손에 들고 고가 초소를 바람같이 내려오는 선임이 보였습니다. 내려오는 선임에게 뛰어갔습니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구 쪽 초소에 가기 전까지 선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나지막하게 뭐라고 혼자 중얼거리기만 했습니다.
입구 쪽 초소 도착하자마자 안으로 들어가더니 원 근무자 2명을 초소건물 앞으로 보냈습니다. 그래서 전 원 근무자 2명하고 앞에 섰습니다.
근무지 최고선임은 다음 근무자 와서 교대할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교대가 끝나서야 입을 열었는데, 휴게실로 절 불러서 한말은…….아직도 오싹합니다.
"너 언덕 오를 때 아무것도 못 봤어?"
"랜턴 들고 확인하면서 올라갔지만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언덕위에서 너한테 웃으면서 손짓하는 애들 못 봤어?"
선임은 처음에는 언덕위에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제가 중턱정도 올라갔을 때 좌우에서 하얀 옷 입은 아이 둘이 나타났다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걸음을 천천히 옮길 때 마다 손짓을 하며 웃어댔답니다.
그리고 그 선임은 제대할 때까지 소대장님께 부탁해서 초소 근 무외에 상황실 근무만 한 후에 제대했습니다. 저 역시 미친 소리 들을 각오하면서 53초소 근무만 열외해달라고 했습니다. 처음엔 다들 미쳤다고 했지만, 이후에 저 같은 애들이 많이 나오자 소대장님이 53초소 근무지를 언덕이 보이지 않는 중간 쪽으로 이동시켰습니다. 그 후에는 제가 소집해제 할 때까지 무언가 나왔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그 아이들이 뭔지 모르겠지만 그 애들 웃음소리와 그 때 선임 표정을 생각하면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저를 소름 돋게 합니다. 예비군 5년차라 이젠 다 잊은 줄 알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