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께.
어제 아침, 선생님이 '은영이가 실종되었다는구나'라고 말씀하셨을 때,
선생님이 주의깊게 살피셨다면 저를 비롯한 불안에 떠는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으셨을겁니다.
하기사 삼십명이 넘는 학생중에서 고작 대여섯명에 불과한 저희를 발견하셨다면 그게 더 놀라운 일이겠지요.
저와 뭉쳐다니는 몇명의 아이들을 아실거라 생각합니다.
몰려다니며 이런저런 장난도 많이 치고, 여러 과제도 하고는 하였으니까요.
그리고 그 중 한명이 지금 실종신고가 접수된 상황이라는 것도 아실겁니다. 은영이도 이제 곧 그렇게 되겠지요.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마 몇명의 학생이 더 없어질겁니다. 그중에는 저도 포함될 것 같아요.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기억나는대로 적어보려고 합니다.
한달 전쯤이었을겁니다.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과 모여 집으로 가던 중 누군가가 폐공장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아마도 준태였을겁니다. 그런 이야기를 가장 많이 아는 녀석이니까요.
폐공장이 흉가가 있던 곳을 허물고 지은 곳이라 이유를 알 수 없는, 그러니까 귀신의 소행으로 직원들이 못견디고 떠났고,
그 때문에 공장을 운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네. 그냥 흔하디 흔한 괴담이었습니다. 항상 그랬듯이 말입니다. 저희도 그냥 쉽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주말에 그 곳을 가보기로 했습니다.
'겁도 없구나'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미 한두번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학기 초, 누군가가 한밤중에 학교에 침입한 일이 있었죠.
네, 저희가 그랬습니다. 음악실에 정말 귀신이 있는지 알고 싶었거든요. 결국 확인은 못하고 소동만 일으켰지만.
그런 식으로 여러 곳을 다녔었습니다. 방학중에는 지방까지 가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한번도 귀신을 봤다던가 이상한 일을 겪은 적은 없었습니다. 가장 무서웠던 일은 그런 곳에서 다른 팀을 만난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니까, 귀신이 아니라 사람을 본 것이 여태 겪었던 가장 무서운 일이었죠.
어쨌든 이번에도 갔었습니다. 병철이와 준태는 후레쉬를 들고 왔고, 저는 사진기를 준비했지요.
은영이는 캠코더를 가지고 왔습니다. 나머지는 굳이 말할 필요없는 쓰잘데기 없는 것들을 가져왔지요.
그렇게 공장으로 들어갔습니다.
공장은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제가 생각한 공장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말하니,
'그건 거의 공단이지 이 바보야'라는 핀잔만 들었습니다.
공장 안에는 여러가지 기계가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회사에서 비슷한 기계를 봤다는 성준이의 말에 의하면
NCT라던가, 절곡기계, 레이저 절단기, 용접하는 기계 등등이 있었습니다.
한 곳에 섞여있던 것은 아니고 구역별로 그런 기계들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여기서 NCT나 레이저로 모양을 만들면 이쪽에서 절곡을 하고 이쪽에서 용접을 하고 다른 곳에서 조립을 하는거지.'
따위의 설명을 들으며 공장 안을 둘러보았습니다.
준태가 말한, 귀신이 나온다는 곳은 용접기가 놓여져 있는 곳이었습니다.
다른 곳과 다르게 칸막이가 쳐져있어서 뭔가 수술실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은영이와 저는 카메라와 캠코더로 주위를 찍었지요. 어차피 저와 은영이의 역할은 그것이었으니까요.
성준이가 '별건 없네'라고 말한 순간이었습니다. 병철이와 준태의 후레쉬가 한번에 고장나버린겁니다.
병철이의 후레쉬는 일반적인 노란 빛이 나오는 후레쉬여서 자주 불이 안들어왔지만, 준태의 후레쉬는 LED방식인 최신 후레쉬라 여태 고장난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저희는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면 핸드폰 후레쉬로 비추면 되니까요. 그렇게 생각하고 핸드폰을 꺼냈지만 핸드폰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배터리가 방전이 되었더군요. 다른 아이들의 핸드폰 모두.
순식간에 저희는 어둠안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제 카메라와 은영이의 캠코더는 작동을 하더군요.
하지만 어둠속에서 은영이의 캠코더에 무언가가 찍힐지는 의문이었습니다. 그나마 제 카메라에 후레쉬 기능으로 주위 분간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죠.
그러다 준태가 사라졌습니다.
'어떻게'라는건 잘 모르겠습니다. 후레쉬가 고장났고, 핸드폰이 꺼져있었고, 때문에 저희는 혼란상태였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일단 나가자!'라고 누군가 말한 순간 정신을 차리고 일행을 챙겨보니 준태가 없었습니다.
선생님. 괴담을 읽으면서 가장 답답했던 부분은 누군가가 사라졌을 때, 일단 남은 사람들은 안전한 곳으로 가고 다시 준비해서 가면 된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아닐까요?
그런데 정작 저희가 그 상황이 오니 그게 안되더군요. 우정인지 의리인지 객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일단 나가자고 주장했습니다. 나가서 후레쉬라도 고치던가 어른들이라도 데리고 와야지 지금 상황에서는 더 위험하니까요. 귀신을 떠나서, 밤중에 공장안에 돌아다니다가 어딘가에 부딪히거나 넘어져서 다치면 큰일이잖아요.
그런데 은영이와 병철이가 강력하게 반대를 하였습니다. 어디로 갔던간에 멀리는 못갔을거니 금방 찾을거라고요.
그런데 정말 멀리 못갔다면 저희가 떠드는 소리를 못들었을리가 없겠죠. 그 조용한 공장안에서.
어쨌든 은영이와 병철이는 좀 더 찾기로 했고 저와 성준이는 일단 나가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후레쉬가 되는 기기가 하나 뿐이었다는 것이었지만 밤눈이 좋은 성준이를 믿기로 하고 제 카메라를 병철이에게 넘겨줬습니다.
그렇게 저와 성준이는 들어왔던 곳으로 갔습니다.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어둠에 익숙해지니 약간은 보이더라구요. 너무 조용했는지 성준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얼마 전 웹툰을 보았는데, 거기서 '헛것이라는 건 없다'라고 하더라.'
이 상황에서 또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 성준이의 담력이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성준이는 무언가를 보았던겁니다.
어쨌든 한참을 걸어서 공장을 나올 수 있었습니다.
'너무 조용하지?'라는 성준이의 말에 '그러게'라고 대답했습니다. 별 생각없이요. 그리고 성준이가 덧붙인 말을 듣고서야 깨달았습니다.
'공장 안에서도 너무 조용했어. 너랑 나 말고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병철이나 은영이가 그렇게 조용히 다닌걸까? 그렇게 큰 공장도 아닌데 아무 소리가 안들릴 수 있나?'
바로 얼마전까지 제가 했던 생각인데, 그 새 잊어버린겁니다. 준태가 멀리 안갔다면 우리 소리를 들었을거야,라고 생각했었으면서.
그런데 공장안에서 가봐야 얼마나 멀리 갔을까요. 그러자 성준이가 말했습니다.
'공장 한쪽에 작은 건물이 하나 있었어. 아마 사무실이었겠지. 거기로 갔다면 안들릴수도 있어.'
우리는 결정은 내려야했습니다. 여기 남아서 아이들을 기다릴지, 아니면 집으로 가서 다시 준비하고 나올지. 결국 집이 가장 가까운 성준이가 집으로 가서 후레쉬와 형들을 데리고 오기로 했습니다. 저는 기다리기로 했고요.
성준이가 떠난지 한참 뒤, 공장에 들어갔었던 나머지 세명이 나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은영이는 계속 울고 있었고, 병철이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있었습니다. '새파랗게 질리다'라는 표현이 어떤건지 확실하게 알 정도로요.
준태는... 완전 넋이 나가있었습니다. 병철이의 말로는 건물 안쪽 화장실에서 발견했다고 합니다. 성준이가 예상했던 곳이었죠.
그런데 저희가 있던 곳과 그곳은 꽤 거리가 있었는데 언제 거기까지 갔던 걸까요.
은영이와 준태의 상태를 보니 얼른 집에 보내야할 것 같았습니다. 집 방향이 같은 사람끼리 데려다주기로 했습니다. 제가 은영이를 바래다 주고, 병철이는 준태를 데려다 주기로 했지요.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조금 진정된 은영이가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그러니까 저와 성준이와 헤어진 뒤 카메라의 후레쉬가 바로 꺼져버렸다고 합니다. 조작하는 법을 몰라 켜지를 못했다고요. 그래도 셔터를 눌러 사진을 찍는 순간에는 후레쉬가 켜져서 그런 식으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준태 이름을 불렀답니다. 큰소리로요.
'준태 이름을 불렀다고?' 제가 되물었습니다. 왜냐면 성준이와 저는 아무 소리도 못들었거든요.
은영이는 그렇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병철이가 '건물쪽에 누가 있는 것 같아'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은영이가 건물쪽을 봤는데, 그 순간 병철이가 셔터를 눌러 후레쉬를 터뜨렸답니다.
분명 누군가 있긴 했는데, 누군가가 2층 창문에 서있었답니다. 너무 확실하게 봤기에 잘못본건 아닌데, 뭔가 사람은 아닌 느낌이었답니다.
'눈은 안보이고 입은 너무 컸어.'
그래서 저는 머리카락으로 눈을 가린 입 큰 귀신을 떠올렸습니다. 예를 들면 빨간마스크같은. 그런데 병철이는 그걸 못보았는지 겁도 없이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따라 들어갔고 잠시 헤매이다가 화장실에서 준태를 찾았답니다.
너무 무서웠던게, 화장실에 들어서니 준태가 멍하니 서서 문쪽- 그러니까 은영이쪽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있었다는겁니다. 반갑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그보다는 낯선 느낌으로 다가서는데 갑자기 준태가 말했답니다.
'봤지?'
근데 왠지 뉘앙스가 '그걸 봤지?'가 아니라 '내가 말했었잖아?'라는 느낌이었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은영이의 집에 도착하였고, 무사히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저도 얼른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 전화로 얼른 성준이 핸드폰으로 전화해보니 역시 꺼져있더군요. 그래서 집으로 전화를 걸어보니 아무도 받지 않았습니다. 다시 형에게 걸어보니 홍대에 놀러나와있다고 하더군요.
여러 가능성을 생각해보았습니다. 길이 엇갈렸다면. 그래서 성준이가 다시 그 공장으로 갔다면.
그러나 저는 성준이나 병철이처럼 용감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문자로 '우리 모두 집으로 돌아왔어. 그러니 메세지 확인하거든 연락해줘'라고만 남겼습니다.
선생님. 제가 그때 공장으로 갔었다면 성준이를 만날 수 있었을까요?
아니면 성준이와 같이 저도 실종되었을까요?
그날 이후로 성준이를 보지 못했고... 그 이후로는 어른들까지 나서서 찾아보았지만 발견하지 못했었죠.
준태도 상황이 안좋았죠. 몸이 아파서 학교에 나오지 못하다가 결국 휴학을 했으니까요. 병원으로 가기 전, 병철이가 병문안을 간 적이 있었는데... 몸이 문제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창문을 모두 두꺼운 종이로 막고, 방안 불은 항상 켜두고, 방안에 틀어박혀서 계속 주위를 경계했다는군요.
결국 저와 은영이, 병철이 셋이서 의논을 해야했습니다. 성준이가 어디 갔는지. 솔직히 준태보다도 성준이가 더 걱정스러웠으니까요.
그런데 의논을 하던 중, 병철이가 은영이에게 이상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건물, 1층짜리였어'라고. 무슨 소리냐며 디카에 남아있는 사진을 확인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사진에는 2층짜리 건물이 찍혀있었습니다. 은영이 이야기가 맞았을까요? 아뇨. 병철이의 이야기가 맞았습니다. 그 공장안에 건물은 1층짜리 뿐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사진안에 찍힌 건물은 사무실이 아닌 2층짜리 가정집 느낌의 집이었습니다.
사진을 보는 순간 셋 모두 할말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어디서 이런 사진을 찍은걸까요.
그리고 사진을 확대해 창문을 자세히 보았습니다. 은영이의 말대로 어느 여자가 있었습니다. 다만, 제가 생각한 모습은 아니었어요. '눈이 안보이고 입이 큰 여자'이기는 했습니다만...정확히 말하자면 눈이 있어야할 부분이 피부로 덮여있었습니다.
네, 눈이 없었어요.
우리는 모든 사진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인터넷에서만 봤던 합성으로 된 무서운 사진을 우리가 찍은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반투명하게, 때로는 상반신만, 어느 부분에선 목매단 사진이, 어느 부분에서는 카메라 바로 앞에서 얼굴을 들이민 사진이.
모든 사진이 그런 식이었습니다. 물론 자세히 봐야 윤곽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눈에 익으니 그 뒤로는 모두 눈에 들어오더군요.
솔직히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무서웠거든요. 그래도 은영이의 캠코더까지는 확인해야했습니다.
캠코더에는 그런 무서운 것들이 찍혀있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준태가 사라지던 순간이 찍혀있었지요. 누군가에게 손을 붙잡혀 끌려가는 듯한 모습이.
눈은 카메라쪽을 보면서 뭐라 말하고 싶어하는 듯 했지만, 정작 말은 하지 않고 끌려갔습니다.
이걸 찍는 도중 은영이가 봤을까요? 아니면 우연히 찍혔을까요? 우리는 우연히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은영이도 그렇게 말을 했고요.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너무 정확하게 찍혀있었습니다.
은영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그 뒤로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하지만 저와 병철이는 위로를 할 겨를이 없었어요.
병철이는 성준이를 되찾고 준태를 원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나름대로 무언가를 알아보고 있었고,
저는 밤마다 오는 성준이의 문자를 무시하기에도 벅찼으니까요.
'나 도착했어. 너네들 안보이는데 다들 어딨어? 빨리 와.'
전화를 걸어보면 항상 꺼져있었는데 말이죠. 한번은 답장을 보내니 화면 가득히
'빨리와빨리와빨리와빨리와빨리와빨리와빨리와빨리와빨리와빨리와빨리와'
하며 문자가 왔죠. 그 이후로는 무시하기 바빴습니다. 그러니 제가 어떻게 은영이를 위로할 수 있었겠어요.
엊그저께 은영이에게 문자를 받았습니다. '성준이가 빨리 오래.'라며. 그리고 오늘 선생님이 말씀하시기 전부터 이리될줄 알고 있었어요.
왜냐면 '은영이가 왔어. 늦게 와서 미안하데. 너네는 언제 와?'라는 문자를 받았거든요.
누군가에게 말하면 믿어줄까요? 선생님은 이 모든 이야기가 믿겨지세요?
오늘 집에 오기 전, 병철이에게 물어봤어요. 혹시 성준이에게 문자같은거 오냐고. 그러자 들릴듯 말듯하게 말하더군요. '응'이라고.
어쩌면 은영이도 그 문자를 받았을지 몰라요. 그리고 성준이가 어디에 있는건지 확인하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요. 왜냐면, 제가 지금 그렇거든요.
만약 오늘도 문자가 온다면 확인해보러 가려고요. 하루하루 불안에 사느니 그게 더 나을 것 같아요.
부디 내일 뵙기를 바랄게요.
추신. 선생님이 전에 알려주신 방법, 전혀 효과가 없었어요. 인터넷을 찾아보니 위험하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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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써놓고 보니 너무 길고 별로 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