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으로 내려간 지 한달 쯤 뒤,
그래도 방값은 계속 나가고 있고 계약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그냥 나간다고 하기엔 뭔가 뚜렷한
증거도 없고 그래서 눈 딱 감고 조금만 더 살아보자 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마침 그 때 제 친구도 서울에 일자리를 잡겠다고 올라와서 같이 몇 달만 살아도 되겠냐고 하더군요.
원체 덩치 크고 인상도 강한 상남자 스타일 친구라 같이 있으면 안심될 것 같아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같이 살게 됐죠.
그 친구 영향 덕분일까요? 올라왔는데 별 일이 없더군요.
"박박..박박.." 거리는 소리도 벽장에서 나지 않았고
침대 혼자서 덜덜덜 떨리는 현상도 없어졌구요.
그렇게 평화롭게 몇 주를 지냈습니다.
아무래도 신경과민 때문에 그랬었나보다 하고 스무스하게 넘어가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일은 제가 아닌 친구에게서 터지더군요.
주말에 전 울산에 내려갈 일이 있어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집에는 친구 혼자 남게 되었던거죠.
전 편에 설명 드렸지만 저희집은 분리형 구조였습니다. 현관문과 부엌, 화장실이 일자형으로 바로 이어져 있구요,
그걸 벽과 방음식 철문이 방과 구분지었죠.
그러니까 즉, 방으로 들어오기 위해선 이중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제 친구가 덩치도 크고 잠이 들면 좀처럼 깨는 법이 없습니다.
알람이 울리든 말든 코 드르렁 드르렁 골면서 정말 잘 자는 스타일 아시죠?
그런 스타일이에요.
그날 밤, 친구는 침대에 옆으로 누워서 자고 있었습니다.
근데 뭔가 흔들리는 느낌이 드는겁니다.
침대가 흔들리나?
아니, 자기 몸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세게 흔들어 깨워도 잘 안깨는 친구인데 그 날따라 갑자기 잠이 깨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어쨌든 이 새벽에 누가 자기를 깨우는거니까
잠결에 아 뭐야.. 이러면서 있는데, 옆으로 돌아 누워있는 상태에서 누가 자기 팔을 잡고
"일어나라.. 일어나라.."
이런 말과 함께 자기 팔을 잡고 흔들었답니다.
돌아누운 상태에서 창 밖으로 어두운지 밝은지 보이잖아요?
아직 새벽인 것 같은데 뭐야? 이러면서 잠결에 본능적으로 저 인줄 알고
"아 왜..."
라고 대답하면서 정신이 드는 순간, 갑자기 식은 땀이 등에 흐르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왜냐면 전 그 때 울산에 있었고, 이 방 안엔 자기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으니까요.
그럼 이건 뭐지? 꿈인가? 꿈 치고는 내가 지금 정신이 너무 멀쩡하잖아?
그러면서 눈을 살짝 떴습니다.
그랬더니 잠시 뒤에 다시 자기 팔을 붙잡고
"일어나라... 일어나라.."
라면서 자기를 좀 더 세게 흔들더랍니다.
뭔가 여자 같기도 하고 남자 같기도 한 한기가 살짝 묻어있는 중성적 목소리..
도둑이면 자기를 깨울리가 없는데..
그 생각까지 미치자 제가 예전부터 말했던 그 여자 귀신 얘기가 번뜩 떠올랐다고 하더라구요.
와 진짜.. 이게 그건가 싶어서 돌아보면 큰일나겠다 싶은 생각이 온 몸을 엄습하더랍니다.
그래서 그 상태로 가만히 식은 땀 흘리면서 누워있는데
다시 자기 팔을 붙잡는 느낌이 오더랍니다.
그래서 에라이 씨 모르겠다 하고 확 몸을 돌리는 순간..
제 친구 눈에 보인 것은 활짝 열려있는 방음문과 현관문이었습니다.
분명히 닫아놓고 잠그기까지 한게 기억이 생생한데 말이죠.
아니, 안쪽 방음문은 그렇다 치더라도 현관문까지 열려 있는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요?
저도 기억이 생생한게 그 때 전 울산에서 자고 있었는데
새벽 4시쯤인가 친구한테서 카톡이 갑자기 오길래 깼었거든요.
"야 니 울산이가."
"울산이지, 아직 안자나."
"와.. 내 뭐 이상한 거 본 거 같다."
"뭐?"
"아.. 몰라. 빨리 올라온나. 일단 내 pc방 갈거다. 내 여기서 못자겠다."
올라가서 자초지종을 듣고 친구도 얼마 안 있어서 그 집을 떠나게 됐죠.
저도 얼마 안 있어서 그 집을 떠나게 되었는데..
그 얘기를 듣고 보니
막상 몇 달 전에 여자친구 집에서 겪었던 이상한 일이 같이 떠오르면서 소름이 돋는 겁니다.
그 얘긴 4편에서 계속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