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형편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한동안 외가에서 어린시절을 보낸적이 있습니다.
전형적인 시골풍경인 논과밭이 산세와 어우러지고 저녁이면 아궁이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벽촌인 그곳에선 지금과 달리 리무진에 버스를 대동한 현대식 장례가 아닌 상여를 동여메고 삼베옷을 입은 상주가 곡을 부르던 시절입니다.
어느날 같이 뛰어놀던 동네친구가 유난히도 화창한 초가을날 빳빳한 삼베옷을입은체 상여앞에서 해맑게 웃으며 가는것을 보고 뛰어가 물어보니, 이제 엄마가 더이상 안아픈곳으로 간다며 기뻐하며 대신 착하게 백일밤만 지나면 볼수있다고 시무룩해지며, 상여를 따라가던모습에 모티브를 느끼고 쓰는글이니 이후 이야기는 모두 허구입니다.
아마도 작은 시골의 벽촌인 그곳 그 어느것 하나 다를게없는 그곳에서 쪼그린체 하늘을 바라보던 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동네의 작은 꼬꼬마들은 산이며 들이며 이곳저곳을 누비며 아침해가 솟아올라 해가 산으로 넘어가는 노을을 등지고 삼삼오오 모여있던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그속에 느린발걸음으로 걸음을 옮기던 아이는 마을 외곽의 길에서 벗어난 작고 허름한 기울어진 초가에서 모자둘만 살아가는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어느순간 그 아이의 주변은 이상하리라만치 크고작은 사고가 벌어지고 마치 이상한 기류같은 위화감이 느껴졌지만 정작 그 주인공인 아이는 손끝하나 다치지않았다.
원래 병세가 깊었던 아이의 어머니는 도통 모습을 보이지않았지만 가을 추수로 이른새벽부터 분주하기 이를데없는 시골에서 관심을 가질만큼 여유가없는 상황에서도 아이는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나곤했다.
스산한 가을 시골의 작은분교 운동장에서 해가 늬엇늬엇 넘어가며 어스름이 찾아오는 초저녁의 한날 아이는 유독 이상하리만치 집으로 돌아가지못하고 쪼그린체 땅바닥만을 쳐다보고있었다.
마치 자신이 고개를 들어올리는것이 겁이나는것마냥 시선을 내리깐체 땅바닥만을 한참 주시하던 아이는 힘없는 발걸음을 집으로 돌린체 짙어지는 저녁의 깊은 어둠으로 사라져갔다.
여느때와 다름없는 한가로운 오후 아이들이 재잘거리던 교실 한가운데서 갑자기 폭음이 터지는듯한 소리와함께 유리창이 박살나자 학교의 소사로있던 어르신은 황급히 교실로 뛰어간 그곳에서 마주친 풍경은 흡사 무엇에 흘린듯한 모습으로 한참을 그곳을 뚫어져라 쳐다보고있었다.
교실한가운데 박살이난 유리창앞에 서있는 그 작은 아이는 작은상처하나없이 멀쩡하게 선체 다시 교실바닥을 쳐다보고있는 모습은 정지된 화면에 고요한 침묵처럼 비현실적인 그림을 만들어내는 기괴한 인상을 지울수없었다.
그렇게 정지된 화면이 한참이나 지나간듯한 시간이 흐르고 조용히 교실밖을 나가는 아이의 얼굴은 죄책감이나 놀람의 흥분이 아니라 마치 누군가에게 무척이나 미안한듯한 얼굴을한체 복도밖으로 사라져갔다.
그이후 한동안 이러한 기괴한 일들에 여러가지 풍문이돌자 그때서야 그 아이의 어머니가 얼굴을 비친지 한참이나 지나간것에 의아함을 느낀 동네의 어른들은 삼삼오오 이장의 집에서 일련의 사태에 무거운 토론이 오고갔다.
가을추수가 조금지나 한가로워진 오후 동네의 이장과 청년회의 어른몇몇이모여 동네외곽에 떨어진 그아이의 집으로 발길을 돌리던순간 평소와는 달리 한낮에도 볕이 잘들지않아 어두컴컴한 산골이 유난히도 밝은기운을 느끼며 마치 발걸음을 재촉하길 바라는 이상한 기분으로 그곳을 향해 바쁘게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 비춰진 뜻밖의 상황에 너무도 침착하게 자신을 쳐다보는 그아이의 시선에서 무언가 형용할수없는 복잡한 마음에 둘러본 그곳은 이미 한참이나 지나 사후경직이 일어난 시신은 보기와 달리 부패가 덜했고 무엇보다도 시체특유의 악취조차 크게 느끼지못할큼이라 누구나 당황한체 한동안 그곳을 둘러볼뿐이었다.
그무엇보다도 아이의 눈에선 마치 죽을죄를 지은 죄인마냥 미안한 눈빛과 떠나보낼수없는 애잔함으로 가득한 시선을 땅바닥에 고정한체 묵묵히 바라볼뿐이었다.
그럼에도 의아한것은 아무리 시골이라 두서없이 지내고 친구집에 놀러가서 밥먹는것이 일상일만큼 격의없이 지내지만 그 시간동안 아이가 다치지도않고 건강한 상태로 지금까지 버틴것에 모두들 입을 다물지못했다.
장례준비와함께 마을뒷산의 성황당에 제사를 올리고 산신에게 제를 지냄으로 일련의 불가사의한일은 마무리되는것같았다.
모든장례가 끝나고 아이 어머니를 천도제 지내기 위해서 근처 작은절의 스님한분과 다시금 그 아이의 집을 찾았다.
스님은 이토록 음기가 강하고 사자의 옆에서 아이가 온전한것은 죽어서도 끓지못하는 깊은모정으로 주변에서 모여드는 악귀와 영들로부터 아이를 지킨것이고 이로인해 그 혼령조차 만신창이가 되어서 천도할수있을지 안타까워했다.
문득 그 아이는 허공을 향해서 마치 누군가의 손을 꽉잡고 놓아주기싫은듯 한참을 바라보더니 망연자실한 얼굴을 손을 내려놓으며 눈물을 머금은 밝은얼굴로 나지막한 한마디를 내뱉었다. "미안 손을 놓지못해, 잘가 엄마."
주변에서 일어나는 끓임없는 이상한일속에도 오로지 아래로 시선을 고정한체 짐짓 모른체한것이 어쩌면 자기를위해서 만신창이가 되어가면서 온갖잡귀와 악령으로부터 지키는 모습을 차마 바라볼수없었던건 아닌가 생각한다.
마지막 손을 놓을수없어서 이미 망자가 되어서도 애끓는 모정에 아이손을 놓지못한 어미의 마음에 숙연해진체 한동안 그곳에서 떠나간 영혼을 향해서 애도를 마치고 나왔다.
스님께서는 처음부터 이아이가 죽은 어미의 혼을 느끼고 주변의 기괴한일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차마 떠나보낼수없는 그리움이 사무치게 가슴에 남아서 이런 불가사의한 일로부터 버틴것이라며 자신이 한동안 아이들 돌보겠다며 데려갔다.
흔히들어봤을법한 이야기로 가상의 허구입니다.
어린시절 한달에 한번식 찾아와 얼굴만보고 조용히 어린아들을 혼자두고 발걸음을 돌려셔야했을 어머니와 그 그리움에 온종일 울고불고 난리치던모습이 애잔하게 다가오는 가을날입니다.
그렇게 한동안 어머니가 다녀가시고난후 몇날몇일을 처마밑 마루에앉아 허공을 바라보며 식음을 전폐한체 공황에 빠진체 몇일을 보내고 겨우 진정되고나면 다시금 철부지처럼 산이며 들로 뛰어다니곤했죠...
세상에 귀신도 무섭고 사람도 무섭고 참 무서운게 많은 세상이지만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고통만큼 무서운것은 없다는 교훈을 어린시절 느꼈고 그때 상여앞에 해맑게웃던 그 동네아이는 지금쯤 잘살고있을지 궁금해지네요...
주제넘는 말이지만 지금 누군가 그리운사람이 있다면 얼른 전화한통화 걸어보시는게 후회없는 인생의 한걸음이 되지않을까 느낍니다...
나름 무섭게 쓴다고 한거지만 재미없으셨더라도 긴글 읽어주신것에 감사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