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99년의 일입니다.
저는 공부에 영 취미가 없어 영화에 게임에 빠져 살고 있었죠.
그런 저를 보다 못한 어머니가 제게 제안을 하셨습니다.
[너 혹시 기숙학원에 한 번 들어가 볼 생각은 없니?]
하지만 공부를 전혀 좋아하지 않는 저는 기숙학원 같은 건 전혀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어머니께서 제게 30만원을 내미셨습니다.
[다녀오면 너한테 줄게.]
겨우 30만원과 방학을 바꾸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돈이 궁했던지라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죠.
[그 대신 선불로 주세요.]
그리하여 저는 30만원을 선불로 받고 안양에 있는 어느 기숙학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공부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던 저였으니만큼
수업은 밥 먹듯 빠지고 몰래 숙소로 도망쳐 낮잠만 자기 일쑤였습니다.
당시 그 학원의 숙소는 총 3개였는데, 2층 침대를 쭉 이어 붙여 놓은 구조였습니다.
제 자리는 그 중에서도 가장 안쪽의 2층 침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는 평소처럼 제 자리에서 낮잠을 즐기다 문득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런데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바로 말로만 듣던 가위에 눌린 것입니다.
저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소리도 못 내면서 눈만 뜨고 있었습니다.
[아, 이런게 바로 가위구나.. 그런데 어떻게 해야 풀리지?]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뚜벅뚜벅하고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순간 저 발자국 소리의 주인공이 나에게 오면 내가 죽겠구나 하는 공포감이 밀려왔습니다.
그 순간 문이 끼이익하고 열리더니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머리가 긴 여자가 들어왔습니다.
저는 분명히 남자 숙소에서 자고 있었는데 말이죠.
너무 무서웠던 저는 눈을 반대쪽으로 돌렸습니다.
그런데 쾅쾅쾅하고 철제 사다리를 밟고 2층 침대로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옆으로 다시 눈을 돌리니 그 여자가 저에게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2층 침대를 쭉 붙여 놓은 구조여서 침대가 20개 가량 붙어 있었거든요.
[아.. 가위를 못 풀면 죽는다더니 이렇게 죽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너무나 억울했습니다.
아직 해보지도 못한 것이 많은데다 이렇게 죽기에는 너무 억울했습니다.
저는 온 힘을 다해 몸부림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다행히 얼마 지나자 가위가 풀리면서 여자가 사라졌습니다.
식은 땀이 비오듯 흐르고 무서워서 거기서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원에 이야기를 해서 숙소를 옮겼습니다.
침대도 2층은 무서워서 1층으로 바꿨구요.
그 후 얼마 뒤, 학원에서 모의고사를 보는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숙소에 남아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자다가 문득 눈을 떴는데, 지난번 겪었던 그 공포감이 다시 몰려오는 것입니다.
[설마..?] 하고 눈을 떠보니,
저 끝에서 그 여자가 침대 위로 슬슬 기어오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지난 번과 똑같은 여자가요..
정말 무서워 죽을 것 같았습니다.
지난번처럼 몸부림을 쳐 봤지만 이번에는 가위가 쉽게 풀리지 않았습니다.
[아, 이젠 정말 끝이구나..] 하고 자포자기 할 무렵,
학원에서 알게 된 친구가 방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제 눈에는 그 여자가 여전히 보였지만,
그 친구 눈에는 보이지 않는 듯 그냥 저에게 쭉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가 저에게 도착할 무렵,
친구가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 제가 걱정된 것인지 저를 깨웠습니다.
순간 가위가 풀리더군요.
그 친구가 얼마나 고맙던지..
[많이 아프냐? 땀을 왜 그렇게 많이 흘려? 약은 먹었냐?]
친구의 질문에 저는 [아, 그냥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봐. 자꾸 가위에 눌리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너 혹시 머리 길고 하늘색 원피스 입은 여자애가 너한테 다가오지 않았냐?] 라고 묻는 겁니다.
순간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친구에게 [어떻게 알았냐?] 라고 물었습니다.
알고보니 학원에서 가위에 눌리는 사람이 저 뿐만이 아니었던 겁니다.
다른 아이들도 가위에 자주 눌렸는데, 언제나 그 여자가 나왔다고 합니다.
자살을 한 여자아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그 여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왜 이 학원에서 나타나는 건지는 아무도 모르더군요.
그리고 그 다음 날, 밤 12시가 넘게 자율학습을 하고
자기 전에 친구들과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그 학원은 남자 숙소 건물과 여자 숙소 건물이 따로 있고, 중간에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남자 숙소 옥상에서는 여자 숙소 옥상이 훤히 보였죠.
그런데 갑자기 여자 숙소 옥상에서 왠 여자 한 명이 깔깔깔 웃으면서 뛰어다니는 겁니다.
옥상 위에서 말이죠.
왠 미친 여자인가 싶었습니다.
입시 스트레스가 사람 하나 망쳤다며 친구들과 낄낄대고 있는데, 갑자기 센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 여자는 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순간 치마가 펄럭거렸죠.
그리고 저는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치마 밑에 당연히 있어야 할 다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 하고 소리를 쳤는데, 옆의 친구도 똑같이 [어?!]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서로 봤냐면서 물어보며 의아해하고 있는데 문득 제가 이상한 걸 하나 더 찾아 냈습니다.
건물 옥상에는 전등 하나가 달려 있는데,
전등 아래서 깔깔거리며 뛰고 있는 여자에게 그림자가 없는 겁니다.
[어? 왜 그림자가 없지..?] 하고 제가 말한 순간,
친구 하나가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며 계단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영문도 모른 채 덩달아 뛰기 시작했는데, 저는 5명 중 끝에서 두번째로 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뒤에서 깔깔깔거리면서 무언가가 쫓아오는 겁니다.
저는 뒤를 돌아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무서워서 미친 듯이 계단을 구르다시피 내려왔습니다.
저도 그렇게 무서웠는데 제 뒤에서 마지막으로 달리던 친구는 오죽했을까요.
결국 그 친구는 그 날로 학원을 그만뒀고,
저 역시 기간을 마저 채우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원을 나왔습니다.
지금 와서 보면 꾸며낸 이야기다 싶을 정도로 믿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저뿐 아니라 당시 학원을 다니던 아이들도 많이 목격했던 일입니다.
출처 :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