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친구가 죽은지 4년이 지났다.
지난주, 대학에서 같이 부활동을 했던 친구들이 모여 그 녀석 무덤에 성묘를 하러 갔다.
한적한 시골의 작은 공원묘지였기에,
휴일 낮인데도 우리 말고 다른 참배객은 없었다.
따로 할 일도 별로 없고, 남자 다섯이 흉하게 몰려와 참배나 하고 있었기에,
주변에 패밀리 레스토랑이라도 찾아 거기서 옛날 이야기나 하기로 했다.
그래서 뒤로 돌아 공원묘지를 나가려는데, 출구에 사람이 있었다.
그 곳은 무척 작은 곳이라, 출입구는 두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것 하나 뿐이었다.
우리 다섯이 거기를 우격다짐으로 지나가면 분명 폐가 될테니,
우리는 그 사람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움직이지 않는다.
꽤 거리가 있어 얼굴은 보이질 않지만, 딱히 뭔가 하는 듯한 낌새도 없었다.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에 그냥 지나가려고 하는데,
문득 처음 있던 사람 옆에 사람들이 잔뜩 서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뭔가 모임이라도 하는건가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화창한 날이라 조금 거리는 있어도 저편 모습은 잘 보였다.
출입구 주변에는 철조망이 쳐 있고, 그 밖은 주차장이다.
누가 출입구 쪽으로 다가온 거라면, 바로 눈에 들어왔을 터였다.
게다가 출입구에 서 있던 사람이 비키면 지나갈 요량으로 계속 바라보고 있던 터였다.
처음 우리가 봤을 때 출입구에는 한 명 밖에 없었다.
그게 한순간에 10명이 넘는 무리로 늘어나 있었다.
당황해 주변을 보니, 친구들도 뭔가 미묘하다고 할까,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화창한 휴일 낮이다 보니 아직 공포감이 엄습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기분이 나빴다..
뭐야, 저건..
한 번 더 출구 쪽을 보았다.
더욱 사람이 늘어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도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다소 거리가 있다고 해도 워낙에 맑은 날이다 보니 다른 것들은 선명하게 보이는데,
기묘하게 그 사람들의 얼굴만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모두가 우리 쪽을 보고 있다.
보고 있다는게 느껴졌다.
친구 중 한 명이 [도망쳐야..겠지?] 라고 입을 열었다.
어디로 도망치자는걸까.
철조망 너머는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있다.
길쭉한 공원묘지는 우리 정면에 출입구가 있었다.
왼쪽은 가까운 절로 이어지는 철조망,
오른쪽은 도로,
뒤는 강이었다.
누군가가 [도망치자!] 라고 외친 걸 시작으로, 다들 뒤쪽으로 강을 향해 달렸다.
등 뒤의 출입구에서 우르르 사람들이 달려오는 게 느껴졌다.
강과 묘지 사이를 가르는 철조망에 올라타,
찔려서 피가 나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기어올라 굴러 떨어지듯 반대편으로 넘어왔다.
넘어와서 위를 보니 아직 철조망에 붙어있는 친구가 있었다.
그리고 그 녀석 파카의 후드를 붙잡고 있는 손이 하나, 그리고 뒤에서 뻗어오고 있는 팔이 여럿 보였다.
그 녀석은 철조망에서 손을 떼더니,
뛰어내리는 것처럼 몸을 던져 겨우 팔을 뿌리쳤다.
아파서 제대로 걷지 못하는 녀석을 부축해서, 어떻게 겨우 전부 도망쳤다.
다행히 크게 다친 놈은 없었지만,
묘지와 강 사이에 높이가 좀 있었던데다 철조망에 긁히기도 해서 다들 상처투성이였다.
차는 여전히 주차장에 있는 채였다.
몇시간이 지나고서야 겨우 안정을 되찾아,
우리는 절에 전화해 스님과 동행해 차를 가지고 돌아왔다.
일단 스님에게 상황 설명은 했지만,
곤란하다는 얼굴만 할 뿐 제령이나 뭐 다른 이야기는 해주지 않았다.
우리도 혼란해하고 있었으니 제대로 전하지 못했던 걸지도 모르지만,
내 차였기 때문에 내가 가지러 갈 수 밖에 없었다.
친구 중 한 놈은 따라와줬지만,
다른 녀석들은 더는 묘지에 가까이 가고 싶지 않다며 멀리서 떨어져 기다렸다.
매정하다고 말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나 스스로도 너무나 무서웠으니까.
저녁이 되어 주차장에서 본 묘지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같았지만, 소름 끼쳤다.
이제 그 녀석 무덤의 성묘는 어떻게 해야하는걸까..
출처 :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