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인? 은귀?

탕슉짜장짬뽕 작성일 16.02.13 02: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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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금이네요. 술 좋아 하는 저로서는 한잔 꺽어야 하는데 이곳 안개가 워낙 짙게 드리워진데다 전날 밤 꾼 꿈이 뒤숭숭해서 퇴근 하는길에 치킨 한마리에 생맥 포장 해 와 가족들과 조촐히 한잔 한 후입니다. 불현듯 옛 미스테리한 경험이 떠 올라 한자 올리고 갈께요.

(안무섬 주의)(귀신 읎슴)(강심장, 드르륵족 스킵 요망)

7-8년 전쯤으로 기억 되는 실제 경험담입니다. 전 직장이 홍대역 근처에 위치 해 사방이 맛집 술집이라 회사 사람들과 퇴근 후 저녁겸 한잔 꺾고 가는 일이 잦았죠.
그러던 어느날 그 일이 있었던 날도 회사 사람들과 술을 먹게 되었는데 회사, 상사 뒷담화 하다가 술을 평소보다 갑절로 먹고 3차 노래방까지 가서 맥주까지 들이키다 보니 인사불성 직전까지 갔었죠. 속이 역해 화장실 변기 붙잡고 먹은 걸 게워 내니 속은 가라 앉는 반면 눈껍데기가 떠 지지 않을 정도로 졸려 노래방서 놀고 있는 회사 사람들한테 인사도 못하고 나와 버렸습니다. 빨리 집에 가고 싶단 생각에 택시를 잡으려 해도 홍대 특성상 빈택시가 없어 한참을 서성이다 나도 모르게 인도와 차도 경계선에 걸터 앉아 꾸벅꾸벅 졸아 버렸습니다. 얼마나 졸았는지 누군가가 저한테 말을 거는 소리에 젖먹던 힘까지 눈에 힘을 주고 부릅 떠보니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여윈 남자사람이 저한테 뭐라 뭐라 말을 하는데 좀체 무슨말인지 알아 들을 수가 없더라구요. 몸은 가누지 못하더라도 순간 살짝 긴장 되면서 " 아- 이 쉐이 취객 터는 절도범이다"라는 쀨이 와서 손으로 훠이 훠이 꺼지라는 제스쳐를 몇번 취해도 옆에 딱 붙어 계속 말을 거는 겁니다. 뭐라 하는지 못 알아 들으니 슬슬 짜증이 밀려 와 일어 서려고 하니 딱 부축을 해 줍디다. 이거 놔라 해도 계속 말을 붙이길래 너 뭐하는 놈이냐라고 버럭하니 대꾸하는게 중국 말을 하고 있구나 감이 오기 시작하는데 희안하게도 중국어 한번 배워 보지 않았는데도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또렷하게 이해가 되는 겁니다. 내용인즉슨 " 선생님 여기서 이렇게 자면 위험합니다. 집이 어딘지 알려 주면 택시 타는 거 도와 드릴께요. 그때까지 정신 차리세요" 순간 어리둥절 해서 멍하니 그 사람 얼굴을 보는데 윤곽은 보여도 눈 코 입이 또렷하게 초점이 잡히지 않아 얼굴이 기억이 안납니다. 이내 택시 한대가 제 앞에 서더니 그사람이 차문을 열고 절 태워 주길래 탔고 맥 없이 뒷자리에 고꾸라지듯이 쓰러짐과 동시에 필름 끊겼습니다. 정말 택시 탄 거밖에 기억 안납니다만 아침에 눈 떠 보니 제 방에서 이불 덮고 편하게 자고 있는거 있죠... 택시 타서 기사분께 목적지도 얘기 히지 않았는데 어떻게 들어 왔지? 의아해서 죽을 각오하고 마눌님께 나 어제 어떻게 들어 왔어? 물어 보니 본인도 새벽에 화장실 가려고 눈 떠보니 언제 들어 왔는지 모르게 조용히 들어 와 자고 있었다. 몇시에 들어 왔냐며 약간 뾰루퉁하게 대꾸한걸 보니 참말로 별탈없이 들어 왔나 싶더라구요. 쓰린 배를 쓰다듬고 출근 준비하면서 핸드폰 보니 회사 동료들의 부재중 전화에 문자가 도배 되어 있을 뿐 전날 날 도와 줬던 묘령의 청년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당연지사 출근하자마자 너 어제 혼자 어디 갔길래 전화도 안 받고 홀연히 사라졌느냐 집에 들어가긴 한거냐 너랑 이제 술 안먹는다 등등 난리에 꾸사리 좀 먹었죠. 점심 먹으며 전날 자초지종을 말해 주니 어디서 개구라 치냐. 노래방서 너 없어져서 전화질이며 찾으러 주변 수색 했는데 전혀 못 봤다. 솔직히 우리 몰래 맛사지 받으러 갔냐며 핀잔만 주더라구요. ㅠ.ㅠ 퇴근 후 마눌님에게도 솔직히 전날 이래저래 했다 토로하니 입에 거품 물고 잔소리... 누구 과부 만들고 싶냐. 술 끊을래? 연 끊을래 등등 으르렁만 했지 믿거나 말거나지만 희안하게도 아무도 그 청년을 궁금해 하는 이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그 이후 아무에게도 이 얘길 안하고 기억속에 묻어 두었다가 처음으로 무게에 옮겨 놓고 갑니다.

모쪼록 술은 즐겁게 적당히 드시고 무사한 병신년 되세요(_ _)

(캡쳐 사진은 미스테리 청년을 만났다고 추정되는 장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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