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박물관에서 근무를 한다.
말은 공립박물관이지만, 과거 전시행정 날림으로 지은 박물관이라서 완전 시 외곽 산중에 위치하고 있다.
박물관 운동장에 가끔씩 고라니가 풀을 뜯다가 놀라 도망치기도 할 정도니 말 다했다.
공립박물관이라는 이름도 무색하게 건물도 조그만하고 근무인원도 달랑 세명이다.
말이 세명이지 한명은 야간경비원이고 둘은 평일근무, 주말근무로 나누어 근무하는지라 실질적으로 근무하는 인원은 한명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도 그간의 노력으로 은근히 찾아주는 관람객도 많아지고 9월 10월은 유치원과 학교 단체 관람이 많아 혼자서 박물관을 돌보는 일은 여간 정신없는 일이 아니다.
한두번 단체관람 폭풍이 지나가고 나면 평일 외곽에 위치한 박물관을 찾는 이는 많지 않아서 망중한을 즐길 수 있는 이점도 있다.
몇주 전 일이다.
아침부터 유치원생 백여명이 단체관람을 와서 체험학습까지 하면서 정말 정신없는 오전을 보냈다.
원래는 나 혼자 근무하는 것을 안쓰럽게 생각해 주시는 체험학습 선생님이 수업이 끝나면 뒷정리도 도와주시고 커피도 한잔 하면서 말벗도 해주시고 하셨는데, 그날은 감기를 지독하게 걸려 오셔서 수업이 끝나는데로 빨리 돌려보내드렸다.
유치원생들도 관람이 끝나자마자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박물관에는 또 나 혼자 남게 되었다.
청소하고 정리하고 서류처리좀 하고.... 한 세시쯤 되었나? 숨좀 돌리면서 커피한잔 타 마시려는데 아침부터 수상쩍던 하늘이 더 어두워 지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둑어둑하게 변한 하늘에서 차가운 가을비가 쏟아지자 그렇지 않아도 고요한 박물관이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
조용하게 가을비를 감상하면서 커피를 한잔 하려고 밖으로 나갔다.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대문과 내 차만 덩그러니 주차된 주차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날따라 기분이 묘하게 이상했다.
산중에 외롭게 달랑 떨어져서 혼자 근무하고 있지만, 박물관은 전체적으로 따뜻한 느낌이었기 때문에 그간 무섭거나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을씨년스럽다고나 할까? 차갑고 음산한 기운이 박물관을 감싸고 있어서 기분이 묘하게 나빴다.
가지고 나온 커피를 반도 안마시고 버려버리곤 박물관을 다시 들어오는데 체험학습실에 누군가 서 있었다.
키가 제법 큰 남자가 뒤돌아서 우두커니 그냥 서 있었다.
'누구지? 언제 들어왔지? 관람객인가?'
다가가서 어떻게 오셨는지 물을까 싶었지만 좀 실례인 것 같아 일단 프론트로 향했다.
이상했다. 박물관건물 출입문은 정문 후문 두개였지만 5m도 안떨어져서 서로 마주보고 있다. 난 커피를 가지고 정문에 서서 십여분 커피를 마시다가 들어온 것인데 그 사이 바로 코앞의 후문으로 누군가 나도 모르게 들어왓다는 것인가? 뭐 그럴수도 있다.
그래도 이상하다. 난 정문에서 대문을 보고 있었고 아무도 안들어왔었다. 주차장에는 차가 없다. 여기는 외곽 산중, 차가 없으면 외부인 접근이 어렵다.
비가와서 잠시 피한 등산객일까? 그러나 사실 여기는 야산일 뿐이라서 누군가 등산을 하는건 한번도 본적이 없다.
글로 쓰니 길지만 프론트로 걸어가는 사이에 든 생각이다.
CCTV를 확인했다. 체험실엔 아무도 없었다. 좀 오싹 했지만 곧바로 두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1) 체험실 CCTV도 사각지점이 있다. 하필 거기 서 있나보다.
2) 내가 잘못 본 것일까?
일어나 체험실로 향했다. 내가 잘못봤을 리는 없는 것 같고 비를 피해 들어온 사람이라면 따뜻한 차라도 한잔 대접해 드려야겠다 싶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원래 아무도 없었나보다.
프론트는 정문과 후문 사이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내 시야를 거치지 않고 나갈 수는 없다.
다시 두가지 생각이 든다.
1) 처음부터 잘못본거다.
2) 다른 문으로 들어왔고 그 문으로 나간거다.
내가 잘못 본 것 같지는 않았다. 확실히 우두커니 체험실 입구에 서있는 뒷모습을 봤다고 생각된다.
박물관 출입구는 정문 후문 두곳이라고 했지만, 평상시 개방 해 두는 곳이 두 곳이라는 말이고 다른 문이 두개 더 있다.
문제는 이 두 출입문은 평상시 폐쇄되어 있다는 것.
자물쇠를 걸어두어서 열쇠가 없으면 안된다. 혹시 주말 근무자가 개방해 둔 채 퇴근 한건가?
비를 피하려던 등산객인지 누군지는 모르지만 열린 문으로 들어왔다가 그 문으로 다시 나간 것일지 모른다.
열쇠를 챙겨들고 문을 확인하러 간다. 앞서 말 했다시피 공립이라지만 작은 박물관이라 지척인 거리다. 그리고 자물쇠는 둘 다 잘 잠겨져 있었다.
그럼 내가 잘못 본 거네. CCTV를 확인 해 볼 수도 있지만, 왠지 꺼림찍하고 으스스해서 그만두었다. 다른 관람객들이라도 오면 그때 확인 해 보던가 해야겠다.
'참 별일도 다있다... 확실히 본 것 같았는데... 피곤한가?' 정문으로 나가서 기지개를 한껏 켜고 기분전환도 할 겸스트레칭도 하면서 피로를 풀었다. 뭐 여기까진 그냥 으스스한 날의 헤프닝인줄 알았다.
이제 4시 30분이 넘어가고 비는 더 굵어지고 주변은 밤처럼 어두워졌는데 오늘 방문객은 없다고봐도 좋을 터였다. 이제 정말 들어가서 망중한을 즐기며 퇴근시간까지 쉬어볼까... 하며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어지러진 책상을 정리좀 하고 행정문서 좀 들여다 보려고 하는데 '똑똑똑' 소리가 난다.
고개를 들어보니 모자를 눌러쓴 여자가 박물관 유리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아이쿠, 관람객인가?' 난 못할짓 하다 걸린 아이처럼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물관에 바로 들어오시지 못하고 개관을 했는지 저렇게 물어보시는 분들이 종종 있어서 안내해 드리기위해서였다.
또 그 짧은 시간에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상했다.
정문에서 스트레칭하며 박물관 대문을 보고 있었지만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들어와서 책상정리니 뭐니 했지만 1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박물관 문은 이중으로 되어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와서 유리문 하나를 더 통과해야 건물 내부로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난 그 문에 종을 달아두어서 정~~~말 조심스럽게 열지 않는 이상 소리가 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종소리에 놀라곤 한다.
그런데 아무소리도 안내고 외곽문을 통과해서 내부문을 '똑똑똑' 두드리고 있다는거다. 프론트에서 이 종소리를 안내고 들락날락 하는사람은 아직까지 한번도 없었다.
여하튼 참 신기하네 하면서 아무생각없이 내부문을 열어드린다. 난 키가 190인데, 여자는 키가 작고 모자까지 눌러써서 얼굴은 안보인다. 얼핏봐도 얇은 옷을 입고 비에 흠뻑 젖어있다.
'아이고, 괜찮으세요? 관람오셨습니까?' 하면서 문을 열어주며 주차장을 힐끗 봤는데 차는 역시 내 차 뿐이다. 걸어왔단 말인가?
'화장실 좀 쓸 수 있을까요?'여자가 한 말이었다.
'아, 네 들어오세요. 화장실은 여기 뒤로 나가셔서 왼쪽에 있는 건물입니다' 나는 이상하다는 생각은 순식간에 없어지고 추운날 흠벅 젖은 아가씨가 걱정스러웠다.
박물관 화장실은 후문으로 나가서 10여m 떨어져 있었는데 지붕이 연결되어 있어서 비를 맞지 않고 갈 수 있었다. 난 아가씨를 위해서 따뜻한 차라도 한잔 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사무실로 향했다.
'화장실로 안내해 주시면 안될까요?' 등 뒤에서 아가씨가 말했다.
'?'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화장실은 박물관 후문 지척으로 훤히 보이는 곳에 있고 지붕도 연결되어있다.
무서운가? 화장실 불을 좀 켜달라는 건가? 얼마전 여자화장실 살인사건 뭐 이런것 때문에?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처음보는 남자한테 화장실 안내를 해달라는 사람은 얼마나 쪽팔릴까 싶어서 당연하다는 듯이 '네, 그러죠' 하면서 앞장섰다.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고양이들이 야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전에 산고양이에게 밥을 몇번 줬더니 아주 눌러앉아 새끼를 낳아 여섯마리라는 대식구가 되어서 사료를 엄청 먹어대는 놈들이었다.
산고양이들이면서 사람을 엄청 잘 따라서 개처럼 부비고 애교를 부리는 친구들이었는데, 다른사람들에게도 너무 살갑게 대해서 걱정이 들기도 했던 놈들이었다.
그런데 이놈들이 털을 바짝 곤두새우더니 하악거리면서 살벌한 분위기를 만든다. 이놈들이 이러는건 처음봤다. 유치원생들이나 초등학생들이 안아보겠다고 달려들때도 야옹거림면서 도망만 치던 놈들이 이러니까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이놈들이 왜이러지, 평소에는 안그러는 녀석들인데 오늘 이상하네요. 얘들아, 저리가!!!' 하면서 손을 휘휘 저어 쫓으려는데 고양이들이 무서운 소리를 내면서 내 어깨를 넘어 뒤로 달려들었다. 여섯마리가 순식간에 나를 뛰어넘어 손님에게 달려드니 난 기겁 했다. 관람객이 박물관 고양이에게 다쳤다고 한다면 정말 큰일이기 때문이다.
'어어!!!! 뭐야!!!!' 하면서 반사적으로 뒤의 아가씨가 있는 곳을 돌아봤지만,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고양이들은 아직도 뭔가에 잔뜩 흥분해서 으르렁거리고 있었지만 뒤에 있어야 할 아가씨는 어디에도 없었다.
주변은 탁 트여있어서 그 찰나의 순간에 어딜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혹시나 박물관 건물로 들어간건 아닌가 했지만 역시 아무도 없었다. 처음부터 아무도 안왔었던 것만 같았다.
이제 나도 정말 정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뭘 어떻게 해야하나? 시청 과장님께 보고하고 튀어? 경찰에 신고해? 다들 미쳤다고 하지 않을까? 일단 박물관에서 가장 가까운곳에서 도자기를 굽는 체험선생님께 전화를 했다. 좀 급한일이 생겨서 그러는데 지금 꼭좀 와주시라고 했다.
한 10여분 후에 도자기 선생님이 오토바이를 타고 방문해 주셨다. 정신이 나간 것 같은데 괜찮으냐고 물으시면서 멧돼지라도 나왔느냐고 하신다. 난 좀처럼 흥분을 잘 하지 않는 사람인데, 손이 부들거리고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어버버버.... 횡설수설 하면서 선생님을 옆에 모시고 CCTV를 돌려봤다.
난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인사를하고 문을 열고 누군가를 안내하고 있었다.....
도자기 선생님도 크게 놀라셨다. 결국 박물관 문 닫을 때까지 도자기 선생님과 함께 있다가 문을 닫고 퇴근 할 수있었다.
도자기 선생님은 다행이 내일 아침에 자기 할 일거리를 가지고 박물관에 와서 함게 있어주시겠다고 했다.
별수 있나? 다음날 난 정상 출근을 했고 과장님께 전화로 구두보고를 했다.
참 황당해 하셨지만, 어린애도 아니고 직원이 그러니 안믿을 수도 없을 것이다.
오후에 과장님이 방문하셔서 이야기도 나누고 CCTV도 함께 보았다.
문제는 여기도 관공서라 인원을 마음데로 뽑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야간근무자가 놀고있는 자기 백수 동생을 데려와 함께 근무 시키고 체험학습 강사비 명목으로 보수를 지급하기로 하면서 이 소동은 가라앉았다.
어제, 도자기 선생님이 근처에 사시는 무당을 모셔왔다. 무형문화재 등록 건으로 나도 안면이 있던 분이었다. 그분이 박물관을 둘러보시고 말씀 하시길, 박물관 터나 뭐나 나무랄데 없다고 하셨다. 잡귀가 붙거나 뭐 이런 곳이 아니고 밝고 따뜻한 기운이 머무는 그런 곳이라고 하셨다.
'그럼 그 날은 왜 그런건가요?'
'운수가 나쁜 날이지'
'네?'
'가끔 그런 날이 있어. 엄청나게 좋은 터여서 잡귀가 아주 범접하지 못할 정도의 강한 기운의 터가 아니라면 가끔식 이런 놈들이 방문을 하기도 해.'
그분 말씀으론 비바람이 몰아치며 음기가 강해지는 날에는 그 비바람을 타고 사람을 놀래켜주는 걸 업으로 하는 잡귀들이 가끔씩 나타난고 했다. 그나마 평소에 고양이들에게 잘 해줬던 것이 나를 도왔다면서 앞으로도 고양이들에게 잘 하라는 당부를 하셨고 박물관 터나 뭐 그런 것 때문이 아니니 직장을 옮기거나 할 생각 말라고 하셨다.
앞으로 박물관이 커지고 좋아질거라고 하시며 여기서 잘 해서 관장까지 하라는데.... 믿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난 아직도 그 박물관에서 근무하고 있고 이제 다시 일인근무 체제로 돌아갔다.....
끝.
재미있게 잘 보셨나요? 위의 내용을 제 100% 창작임을 밝혀드립니다. 무서운이야기에는 언제나 실화다 내가 직접 겪은 일이다 이런 수식어가 따라 붙는데요, 이런걸 붙이면 왠지 글을 쓸 때 스스로 범위를 규정하는 것 같아 제 근무지를 모티브로 삼아 창작해 보았습니다. 여러분 반응이 좋으시면 자주 활동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