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 직후,
우리 할아버지의 체험담이다.
어느 여름밤, 늦게까지 일한 할아버지는
집에 돌아오던 도중 기차 건널목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당시는 종전 직후였기에,
대도시라도 가로등 하나 없고 거리는 깜깜했다.
게다가 할아버지는 근시였기에,
주변이 제대로 보이질 않았더라는 것이다.
건널목을 막 넘어가는데
발 아래 툭하고 둥근 게 맞았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다들 힘들게 살 무렵이라,
당시에는 다들 텃밭에서 야채를 길러 어떻게든 버텨나갔다고 한다.
마침 여름이니,
할아버지는 그게 영락없이 수박일 거라 여겼다.
"이 수박을 집에 가지고 가면 아이들이 좋아하겠지?"
그렇게 생각해 발 아래 수박을 주우려고 했다.
하지만 문득 건널목에 떨어져 있으면
필시 더러울 거라는 생각이 들어, 손을 거뒀다.
"이걸 주워야 하나, 내버려둬야 하나.."
할아버지는 한참을 고민하며, 수박을 발로 데굴데굴 굴리며 걸었다고 한다.
고민하는 사이 한 100m 가량을 걸어왔는데,
그 사이 딱히 식욕도 없어졌기에 수박은 도로변에 굴려놓고 집으로 갔다나.
그리고 다음날,
출근하려고 어제 그 건널목 근처를 지나가는데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더란다.
[무슨 일 있나요?]
할아버지는 아무 생각 없이 사람들에게 물었다.
[어젯밤, 건널목에서 누가 치여죽었나봐요.]
[저런..]
[그런데 건널목에는 목 없는 시체만 남아있지 뭡니까? 목만 저 멀리서 발견됐다는거에요!]
할아버지는 순간 말을 잃었다고 한다.
[목만 혼자 움직일 수 있을리도 없고.. 사고를 가장한 살인일까요? 생각만 해도 기분 나쁘네요.]
할아버지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건널목을 지나왔다고 한다.
어젯밤, 발로 차면서 왔던 건 수박이 아니라 사람 머리였던 것이다.
지독한 근시인 할아버지는 발밑의 물체마저 판별하지 못했던 거겠지.
속이 메스꺼워진 할아버지는 그 후 집으로 돌아와 이틀 동안 앓아누웠다고 한다.
전쟁이랑 공습을 다 겪은 분치고는 꽤나 담이 약한 분이셨다.
그 "머리가 혼자 돌아다닌 사건"은 현장검증 결과 사고로 처리됐지만,
지역에서는 괴담처럼 나돌아다니는 이야기가 됐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진실을 누구한테도 말하지 못했지만,
할머니에게만 말해줬다고 한다.
며칠 후 다시 일터로 돌아갔지만,
하필 할아버지는 학교 선생님이셨다.
아이들이 "머리가 혼자 돌아다닌 사건" 이라며
열을 올리며 떠들어대는 것을 볼 때마다 그 생각이 떠올라 힘드셨다나.
[네놈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당장 교과서나 펴라!]
그렇게 소리치며 애써 위엄을 부리려 애를 쓰셨다고 한다.
출처: VK's Epitaph